노동의 가치
신통
삼립에서 만든 빵에는 추억이 있다. 지금도 인기가 많은 포켓몬빵. 일주일에 용돈을 천 원 단위로 받던 시절에 포켓몬 스티커를 위해 포켓몬빵에 바친 돈이 반은 차지하지 않을까? 포켓몬 스티커가 아니어도, 삼립에서 나온 빵은 맛있기도 해서 줄곧 애용했다.
그리고 재작년인 2022년 10월에 아직은 누구나 기억할, 그 일이 일어났다. SPC삼립(주) 계열사인 SPL의 빵 생산 공장에서 산재가 발생했다. 불시에 일어나는 사고를 인간이 막을 수는 없겠지만, 안전 수칙이 의례히 지켜지지 않음으로 인해 일어난 사고는 인간이 막을 수 있었던 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고라고 한다면, 이후 SPC의 대처는 사고에 대한 책임 회피를 뛰어넘은 가해였다. SPC는 산재가 발생한 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동료들이 노동을 이어 나가도록 했고, 고인의 장례식장에는 답례품으로 빵을 두 박스를 보냈다. 처음에는 가짜뉴스인 줄 알 정도로,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작태였다. SPC 불매 운동이 시작됐고, 그 불매 운동은 사건 다음 해인 작년 2023년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파리바게트, 파리크라상에는 다시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고인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며 홀로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해 온 가장이라고 했는데, 그 생계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마음이 쓰인다. 2023년 12월, 산재청문회에서 SPC 회장은 고개를 숙였지만 중대 재해 발생에 따른 책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고 한다. 이전에도 있었던 산업재해는, 앞으로도 있을 전망이다. 수많은 산재가 있겠지만 2023년 8월에만 해도 샤니 제빵공장에서는 끼임 사고가 사망으로 이어지는 산재가 발생했다.
작년, 학교에서 체육 활동을 한 후에 단체 주문할 간식을 정해야 했다. 학년부 교사들이 정한 간식을 배부할 예정이었고, 더운 날씨와 체육 활동을 고려해서 간식을 배스킨라빈스로 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배스킨라빈스에 대적할 간식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반대 의견을 내어서 모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결과로 아이들은 각자 배스킨라빈스를 한 컵씩 제공받고 신이 났다.
포켓몬빵이 더 커져서 돌아온다고 한다. SPC라는 거대한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한 내 추억이 포켓몬빵만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한 빵은 삼립 크림빵이었고, 31일이면 배라 사이즈업을 하고 신나서 동생에게 연락했다. 산재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장례식장에 SPC에서 본사 계열사인 파리바게트 빵 두 상자를 보낸 뒤로 그 추억들은 함께 묻혔다. 노동의 가치는 효율성보다 못하고, 생명의 가치는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빵만 하단 말인가. ‘그 쇳물 쓰지 마라’던 시인의 말처럼, 그 빵들은 못 먹겠다.
(1,353자 원고지 7매)
첫댓글 ‘그 쇳물 쓰지 마라’던 시인의 말처럼, 그 빵들은 못 먹겠다. 라는 구절..
저도 웬만한 건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하고 다 먹는데 이 글을 읽으니 spc는 더 적극적으로 걸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사건 당시 장례식장에 답례품으로 빵을 보냈다는 뉴스를 보긴 봤는데, 그때의 저는 별 문제의식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 치가 떨립니다. 슬프고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공공 님 댓글 덕분에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SPC 말고도 산적한 문제를 가진 생산품이 많을 텐데.. spc는 그나마 대체품들이 충분해서 거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위건부두로 가는 길에서 나한테 필요하다면 임산부가 열악한 탄광에서 일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거라는 맥락의 문장이 생각납니다😢
계속 생각하다 보니 동료가 사고가 났던 자리에서 계속 일했던 분들에 대한 부분도 글을 쓸 때 지나쳐진 것 같아요
'노동의 가치'라는 제목이 너무 포괄적으로 느껴져요. '노동'이라는 단어도, '가치'라는 단어도, 서술된 글이 포괄하기에는 범주가 너무 큰 단어같거든요. 포켓몬빵, spc 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신만큼 제목도 보다 구체적이고 압축적이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과잉되지 않고 담백하게 전달될 것 같아요. 에피소드를 좀 더 효과적으로 구분해준다면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개연성 있게 전달될 것 같아요. 지금은 다소 문단마다 규칙이 없게 전개된다는 인상입니다!
문단마다 소제목을 달고 써봐야겠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노동의 가치>라는 제목에 글을 열기도 전부터 '흡!' 하고 마음다짐을 할만큼 어마어마한 분량과 날카로운 분석의 글을 예상했답니다. ㅎㅎ 막상 글을 열고는 공감하고 연대하고 있는 내용이라 금방 읽게 되었지만요. 그만큼 제목이 주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오반장님이 위에서 벌써 이야기를 해 주셨네요^^;;;) 제목과 내용을 보다 구체화해서 생기 (떠올랐던 생각이나 오고갔던 말, 표정 등을 세밀하게 넣어서) 를 불어 넣어준다면 독자로 하여금 훨씬 더 많은 공감을 이끌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글도 좀 더 구체적으로 쓰고, 제목도 고민해서 써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지난 조지오웰 책을 읽으면서 spc 사건을 떠올렸는데, 책모든님의 발표에서도 그렇고 신통님도 이 사건을 언급해주셨네요! 발표 글도 그랬고, 일상의 모순(불매를 하지만, 포켓몬 빵은 모으고 싶어)을 바라보는 시각이 신통님의 글에서 잘 보여요. 항상 이렇게 까끌거리는 지점을 잘 포착해주시는 것 같아서, 굉장히 섬세한 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일상의 관찰자로서,,, 자주 고민하는 부분이긴 한데 "그때 반대의견을 냈다면... 이런 말을 했다면..." 글에서 이런 상상 같은 걸 써보면 생각을 더 깊이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반대 의견을 냈다면 어땠을지를 두려워하기만 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