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찾아서
2021. 12. 31(송구영신예배) 여호수아 1:6-9
고대 로마의 야뉴스라는 신이 있다. 두뒤통수에도 얼굴을 가지고 있는 야누스는 얼굴 하나가 앞을 보면 또 다른 얼굴은 뒤를 보는 신이다. 그래서 야누스는 문의 신이라고 하여서 문안과 밖을 보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새해 첫달을 1월이라 부르는데, 서양사람들은 그 1월을 January(야누스의 달)이라고 부른다. 서양사람들은 1월은 지나온 날과 다가오는 날을 바라보면서 어디로 갈까? 바라보는 달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이 야누스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2021년을 마무리하고, 2022년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 해를 아쉬워하며 21년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저와 여러분은 미지의 세계인 22년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21년과 22년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은 어디로 더 가기를 원하는가? 김정운교수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김정우교수는 왜 여행을 가는가?를 묻는다.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 가고, 또 힘들게 내려오는 산에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이유는 감동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에펠탑아래서 철탑을 바라볼 때, 아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에펠탑에 올라가서 파리시내를 바라볼 때 가지는 감격은 정말 환상적이다.
남자들이 골프에 목숨을 거는 이유도 똑같다고 한다. 전날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골프 연습하였다. 그러면 피곤해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할 것인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필드로 나가서 골프를 친다. 남자들이 이렇게 골프를 치는 이유는 사장님 나이스 샷! 하면서 나를 보며 감동하는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손에 물집이 잡혀도 공을 치고 또 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나라에 감탄이 사라졌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은 조그마한 일에도 원더풀(wonderful) 하고 감탄을 한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도 별것 아닌 일에 스고이, 스바라시하면서 감탄하고, 독일은 분더바(wunderbar), 아우스게짜이흐네트(Ausgezeichnet) 라고 하면서 감탄한다. 모두 오 놀라워라~라는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말로 오 놀라워라 하면 그 감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이 쓰는 감탄사가 와 죽인다! 이다. 우리의 유일한 감탄사이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감탄을 잃어버리게 되었는가?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한 기사이다. 하나님은 빛을 만드시고, 궁창을 만드시고, 바다와 땅을 만드셨다. 그리고 이렇게 만물을 만드시는 하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좋았더라는 히브리어로는 토브이고,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Wonderful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그냥 좋구먼 한 것이 아니라, 와 너무 좋아 하면서 감탄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감탄하면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그리고 모든 만물을 보시며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만물을 보고 아이고 좋아라 고 말씀하시고, 또 사람을 보고도 감탄하며 좋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만물을 보고, 또 사람을 보고 아이고 좋아라 는 감탄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만물과 사람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실 때의 내용이다. 먼저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부르시는 말씀을 함께 읽기 바란다.
(수 1:2-4)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그 땅을 여호수아에게 주겠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요단을 건너 그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여호수아였다면 하나님의 이 말씀에 어떤 반응을 하겠는가? 먼저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였다는 사실에 감격해야 한다. 왜냐하면 출애굽기 33장을 보면 모세가 언약궤를 받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서 뛰어놀았다. 그래서 모세는 언약궤를 던지고, 금송아지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그 가루를 다 마시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였음을 깨닫게 하였다. 그렇게 한 후 모세는 회막에서 하나님과 대면하였는데, 그때의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출 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왜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부르시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것만으로 감동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더 감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말씀에 따라 세겜땅 모레상수리에 거주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진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가 보는 곳을 다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을 보면 횃불언약후에 하나님은 좀 더 구체적으로 애굽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 주신다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할 때의 장면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다. 그래서 세겜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그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아브라함은 감동하였을 것이다. 그랬던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진 후(창 13장)에 허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땅을 주겠다는 말씀을 하심으로 그래 롯은 자기 보기에 좋은 소돔땅으로 갔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주시기로 한 땅이 있었지고 하고 기억하며 힘을 얻게 하신 것이다. 횃불언약(창 15장)도 마찬가지이다. 후사가 없었던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이 후사가 될 것이다고 말한다. 그때 하나님은 횃불언약을 통하여서 내가 너에게 후사를 주어 약속한 땅에서 살게 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여 주신 것이다. 그 약속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이주신 땅에 자기 백성들이 거하는 것을 생각하며 감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언약이 여호수아를 통하여 성취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약속한 땅을 다 차지하는 자리에 선 것이다. 그러면 기뻐하고 감격해야 하는데, 여호수아는 두려움이 가득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왜 여호수아는 감격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는가? 누다심(강현식)이 쓴 엄마의 첫 심리공부 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을 보면 엄마는 아이를 위하여 공부해라, 밥먹어라, 일찍 일어나라, 방청소 좀 해라는 말을 하는데, 아이는 엄마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해서 아이를 칭찬하기 시작했는데, 부담스러워하기만 한다. 아니 남편은 칭찬하면 오히려 짜증을 낸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특정한 한두사람이 겪는 일이 아니라, 대부분의 엄마들이 다 겪는 일이다.
혹시 여러분도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저자 강현식씨는 이 문제를 가진 부모들에게 문제자체보다 관계에 초점을 두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강현식씨는 책의 처음 장 제목을 아이 성적을 읽기 전에 아이 마음부터 읽어라로 정하였다.
그런데 내 주위에 내 성적(실력, 능력)을 보기 전에 내 마음을 보는 사람이 있겠는가? 저는 종종 아내에게 나를 참 사랑하는가? 필요에 의한 사랑을 하는가? 하고 묻는다. 아내의 필요를 제가 공급해 주므로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니면 저 자체를 사랑하는지 궁금해서 종종 묻는 것이다. 그러면 아내는 아주 쉽게 필요에 의한 사랑이다고 가르쳐 준다. 그래서 저는 하는 수 없이 아내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무척 노력하며 살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필요를 채우기에 급급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격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지도자가 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알아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5절)고 말씀하신다. 아니 6절,7절,9절에서는 강하고 담대하라고는 말을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여기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심을 믿고 무릎을 견고히 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너희 함께하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마음을 알아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는 분이 하나님 한분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강하고 담대함을 가진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가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양식을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여호수아가 명령할 때 백성들은 16-18절로 말한다. 그 중에 17-18절만 읽기 바란다.
(수 1:17-18)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말에 순종했던 것처럼 순종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그들은 입을 모아서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라고 여호수아에게 부탁한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심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과 백성들의 말을 듣고 이제 언약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의 눈에 아직도 두려움이 가득했겠는가? 2022년의 한해를 우리는 녹록치 않은 해로 볼 것이다. 그래서 힘든 21년을 버텼는데, 22년은 어떻게 버틸까? 고민하며 걱정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용기를 가지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어나서 선포하기 바란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들도 또한 나의 마음을 알아서 위로하고 동역자의 자리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22년을 한숨이 아니라, 벅찬 가슴으로 감격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