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성 지키기
2. 바닷가에서
by문두Jul 31. 2023
2. 바닷가에서
거실과 부엌, 현관공사까지 끝내자 큰 아주버니께서 우리에게 휴가를 선물해 주셨다. 시댁에서 큰 아주버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전주에 며칠 다녀오게 된 것이다. 장례식장으로 휴가를 갔다는 말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막일을 하다가 길을 나서니 여행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딸은 이미 전주에 내려가 있고, 군복무 중인 아들은 코로나 때문에 휴가를 받을 수 없어서 남편과 오붓하게 가는 길이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명절 때도 내려가지 못한 길을 한가로이 가게 되었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 떼는 해변처럼 펼쳐져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주 다가산 능선에 있는 엠마오사랑병원 장례식장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작은 동산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풍경을 한 발 떨어져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1912년에 의료선교사 마티 잉골드여사에 의해 세워진 구 예수병원이었다. 오래된 성당의 벽돌과 같은 빨간 벽돌로 지워놓은 고풍스러운 건물은 온통 담쟁이넝쿨로 덮여있어서 병원인데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오른쪽에는 호스피스병동이 있었고 왼쪽에는 장례식장이 있었다. 큰 아주버니는 살아서 오른쪽에 있다가 죽어서 왼쪽으로 옮겨왔다.
우리는 통째로 장례식장을 차지했다. 이곳은 명절에도 잘 모이지 못하는 시댁식구들을 다 모이도록 큰 아주버니가 빌린 풀 펜션이었다. 장례식에 소요된 모든 비용은 큰 아주버니의 보험금으로 지불되었다. 장례식장 마당 끝은 다가공원 산책로로 활짝 열려있었다. 답답할 때마다 산책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큰 아주버니는 결혼을 하지 않으셔서 거의 손님이 없었다. 친구를 좋아했던 분이라 조문도 많이 다녔겠지만 처자식이 없다 보니 그 품을 다 갚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더 한산했다. 덕분에 명절 때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형제들과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명절이면 음식을 챙기느라 잠시도 앉아있지 못했던 어머니는 큰 아들 덕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아도 되었다.
장례식장에는 세상 걱정 없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찼다. 유달리 조카 들을 예뻐했던 큰 아주버니가 원하시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다 자라지 않은 여섯 명의 조카들과 장성한 조카의 두 아이들까지 깔깔거리며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끼니때가 되면 도우미 아줌마가 밥을 챙겨주었고, 아이들은 좋아하는 음료와 과일과 간식들을 시시 때때로 찾아 먹으며 놀았다. 공부하라는 이도 없고 혼내는 이도 없어서 철없는 아이들은 그저 즐거운 날이었다. 타고르의 시가 절로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기탄잘리 60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입니다. 한없는 하늘이 머리 위에 멈춰있고 쉼 없는 물결은 사납지요.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소리치고 춤추며 모입니다. 그들은 모래로 집을 짓고 빈 조개껍질로 놀이를 합니다. 시든 가랑잎으로 배를 만들고 웃으며 이 배들을 넓고 깊은 바다로 띄워 보내지요. 아이들은 세계의 바닷가에서 놀이를 합니다. 그들은 헤엄치는 법을 알지 못하고, 그물을 던지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진주잡이 어부들은 진주를 찾아 물에 뛰어들고, 장사꾼은 배를 타고 항해하지만,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다시 흩뜨립니다. 그들은 숨은 보물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물을 던지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바다는 웃음소리를 내며 끓어오르고 해변의 미소는 희미하게 빛납니다. 죽음을 흥정하는 물결은 아이들에게 뜻 없는 노래를 불러주지요, 아가의 요람을 흔드는 어머니처럼. 바다는 아이들과 놀고, 해변의 미소는 희미하게 빛납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입니다. 폭풍은 길 없는 하늘을 떠돌고, 배들은 흔적 없는 물 위에서 난파하고, 죽음이 도처에 널려있는데 아이들은 놀고 있습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위대한 모임이 있습니다. 의전실 냉장고에는 큰 아주버니가 누워 상해 가고 있고, 조문객을 받는 식당 냉장고에는 썰어놓은 수박과 돼지고기 보쌈이 상해 가고 있었다. 밖에 내놓은 보쌈은 미끈거려서 한 무더기를 버렸다. 빈소에는 영정사진을 모셔놓고 그 앞에 차려놓은 음식들을 위해 에어컨을 돌리지만 그것도 상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상주들이 쉬는 방안의 화장실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있었다. 어린 바퀴벌레들이 깨어나 돌아다니고 있었다.
두 번째 날 의전실에서 입관하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둘째 아주버니는 슬리퍼에 맨발로 복장이 불량해 장례지도사가 지적하자 참석하지 않았다. 장례지도사는 큰 아주버니의 학교동창이라고 했다. 나도 큰 아주버니의 싸늘한 몸을 마지막으로 만져보고 얼굴도 잘 봐두었다. 살이 많이 빠져서 코가 오뚝했다. 이제 보니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날 밤은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하며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장례식장 왼편에 있던 개집에서 개가 몹시 짖어댔다. 장례식장이 사방으로 열려 답답하지 않아 좋은 줄만 알았더니, 사방에서 무엇이든 다 찾아들어올 것 같아 더럭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낮에 갔던 지하에 있는 의전실로 자꾸 길을 잘못 드는 상상이 되었다. 이틀 밤을 나는 어머니랑 영안실 옆방에서 딱 붙어 잤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겁이 많은 나는 잠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계셔서 든든했다. 영안실에서는 남편과 막내도련님이 잤다. 남편은 상복을 점잖게 입고 더운지 배를 아이처럼 내놓고 자고 있었다. 남편도 나중에 얘기하는데, 그날 밤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한다.
발인하는 날은 비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다. 냉장고에서 꺼내 찬물기가 어린 관 위에 붉은 만장을 덮어서 싣고 전주 승화원 화장터로 갔다. 영구차로부터 시신을 운구했고, 우리는 분향실로 이동 후 모니터로 입실 장면을 참관했다. 약 두 시간 후 하얀 뼈만 남은 것을 보여주더니 분쇄해 유골함에 넣어주었다. 차로 이동할 때 내가 유골함을 안았다. 아직도 뜨거운 기운이 그대로였다. 그리고 아침까지 무서웠던 마음도 깨끗이 불로 소독이 된 듯 사라져 버렸다. 날씨도 화창하게 갰다. 자연장을 하기 위해 공원묘지로 가서 땅에 유골단지를 묻고 막내도련님이 방망이로 두들겨 깨 그 위에 잔디를 덮었다. 그리고 이름 석 자와 태어난 때와 사망한 때를 적은 작은 묘지석을 하나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