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복을 세어보세요
참고말씀: 마25:17~18,22~23
읽을말씀: 살전5:18; 민11:5,6; 마25:24,25; 요21:10,11
주제말씀: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새찬송가: 429장
*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무엇을 명하셨습니까? 범사에 감사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상)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당신의 뜻임을 분명히 하시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하)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감사해야 하는데 도무지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이나 원망이 앞설 때도 많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럴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일, 감사의 범위를 넘어선 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사하기를 포기해야 합니까? 감사할 수 없다고 백기를 들어야 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감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하)
*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세요!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엇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11:5,6)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갈 수 있습니까?
첫째,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광야생활 내내 불평했습니까? ‘있는 것’은 놓아두고 ‘없는 것’만 자꾸 부각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엇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11:5,6)
하나님께서 광야생활 내내 하늘로부터 내리신 양식, 곧 만나로 먹이셨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감사하기는커녕 지난날에 먹었던 생선이나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 등을 먹을 수 없다고 아우성 했던 것입니다. 즉 ‘있는 것’은 제쳐두고 자꾸만 ‘없는 것’만 찾았기 때문에 도무지 감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없는 것은 놓아두고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라고 하지 말고, 오히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하나님께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주셨네’ 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 받지 못한 것보다 받은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마25:24,25)
둘째, 받지 못한 것보다 받은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 중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왜 나머지 두 사람처럼 가서 장사하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잘못된 비교의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즉 ‘누구는 다섯, 누구는 둘을 주는데, 왜 나게만 하나를 주었는가?’라고 하면서 ‘더 받지 못한 것’에 서운해 하고 불만이었던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마25:18)
그러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 역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 비하면 적게 받은 것이 분명한데, 왜 그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는 다르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까?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마25:17) ‘더 받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받은 것’에 맞췄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더 받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원망이나 불평을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받은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주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25:22,23)
* 받은 복을 세어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21:10,11)
셋째, 받은 복을 세어보아야 합니다.
대부분 감사보다는 원망이나 불평이 빠릅니다. 어째서입니까? 원망이나 불평은 특별한 훈련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감사는 부단한 신앙 훈련을 통해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감사가 쉬웠습니까? 아니면 원망이나 불평이 쉬웠습니까? 십중팔구 후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생활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신앙훈련입니다. 어떤 훈련입니까? 복잡하고 어려운 훈련입니까?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훈련입니다. 즉 받은 복을 세어보는 것입니다. 한 찬송가의 가사처럼 말입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새찬송가 429장 1절)
왜 받은 복을 세어보아야 합니까? 우리는 완악해서 ‘일일이 세어보지 않으면’ 얼마나 받았고, 얼마나 큰 복들을 받았는지를 다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일일이 세어보아야 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지난 반 년 동안, 지난 한 달간, 지난 한 주간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부어주시고 허락하셨는지를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원망이나 불평이 앞선다고요? 그렇다면 받은 복들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세어보지 않으면’ 다 잊어버릴 수밖에 없으나 ‘일일이 세어보기 시작하면 할수록’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복 받은 인생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하면서 말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