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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7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217수] 동계 올림픽의 값지고 소중한 메달들
이래서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어제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모태범이 금메달을 따냈다. 이 종목에는 세계랭킹 1위 이강석과 4전5기의 이규혁이 있어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첫 금메달을 기대는 했지만, 막상 그 숙원을 스물 한 살의 막내가 풀어 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모태범은 두 선배가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사이 특유의 패기와 힘으로 질주해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한국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500m는 그의 주종목도 아니며 세계 랭킹도 14위에 불과했다. 원래 목표는 세계 2~4위를 기록 중인 1,000m에서의 메달 획득이었다. 그러나 모든 결과가 그렇듯, 속을 들여다보면 그의 쾌거는 이변이 아니며 운이나 우연도 아니다. 2006, 2007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연속 우승했고, 2008년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지난해 아시아 종목별 선수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주 종목은 아니지만 언제든 세계 정상에 오를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 금메달의 원동력은 두 말할 필요 없이 땀이었다. 선배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사이 그는 묵묵히 연습에 열중했다.
19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부터 출전한 한국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62년 만에 처음이다. 이 금메달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수영의 첫 금메달을 딴 것과 비견될 만하다. 14일에는 스피드스케이팅 5000m에서 이승훈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은메달을 획득, 아시아 빙속 사상 유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이들의 쾌거는 쇼트트랙에서만 메달을 따온 한국 동계스포츠의 이미지를 바꾸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큰 힘을 불어넣었다. 그 바탕에는 스피드 스케이팅의 수준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려 놓은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모태범 이승훈이 끝이 아니다. 김연아 등 많은 선수들의 아름다운 도전이 좋은 결실을 이루어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에게도 기쁨과 자부심을 심어주기를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217수] 헌재 결정 취지 외면한 여당의 집시법 개정안
한나라당이 밤 10시부터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어제 국회 관련 상임위에 상정해, 처리에 나섰다. 현행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9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조처라지만, 개정안이 헌재의 결정 취지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 개정안은 무엇보다 집회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제21조 제2항)에 어긋난다. 지난해 결정 당시 헌재 재판관 5인의 다수의견은 이 조항을 “집회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허가뿐만 아니라 집회의 시간·장소를 기준으로 한 허가도 금지된다는 의미”라고 판시했다. 해가 진 뒤의 옥외집회를 모두 허용하지 않는 것이 헌법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처럼, 야간집회 허용시간을 한정하는 법규 역시 헌법 정신에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헌법에서 집회 허가제 금지를 명문으로 규정하고서도 따로 법률로 집회 금지시간을 정하는 것부터가 어색하다.
더구나 한나라당 개정안은 현행 집시법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현행법에서도 질서유지인을 둘 경우 야간집회가 허용될 여지는 그나마 있었지만, 개정안대로라면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열리는 모든 집회는 예외 없이 금지된다. 경찰의 자의적 법집행은 더 심해질 것이다. 국민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예전보다 더 제한하겠다는 것이니, 헌재 결정의 뜻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그런 점에서 헌재 결정 뒤의 집시법 개정 논의가 야간집회 허용시간대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는 데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법률로 시간대를 미리 정하기보다는, 집회의 자유를 좀 더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옳다. 경찰이 사실상 집회를 허가하는 월권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준사법적이고 독립된 위원회가 집회 관련 주요 결정을 맡거나, 주택가에서의 야간집회에 대해선 다른 규정을 두는 등의 방식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와 집회의 자유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자신의 개정안 처리를 고집할 게 아니라 이런 사회적 합의 과정을 성실히 거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헌재가 개정시한을 6월로 정했으니 바람직한 방안을 논의할 시간이 모자라지도 않는다. 멋대로 2월 안에 졸속 처리하겠다고 서두르다가는 또다른 위헌 논란과 반발이 빚어지게 된다.
[조선일보 사설-20100217수] 모태범 氷速 금메달, 눈부신 신세대 패기 보여줬다
스물한 살 모태범이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국제빙상경기연맹의 500m 세계랭킹 14위에 불과했던 모태범 스스로도 믿지 못했을 승리였다. 우리 선수들이 처음 태극기를 달고 나선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이후 첫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모태범은 울지 않았다. 기적처럼 금빛 레이스를 질주해낸 그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자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네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표팀 막내 모태범은 "태릉에서 단체 기자회견을 할 때 아무도 나한텐 질문을 하지 않더라"고 했다. "그래서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고, 내게 관심이 없었기에 오히려 부담 없이 내달려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미니홈피 대문에 "성공이라는 못을 박으려면 끈질김이라는 망치가 필요하다"고 써뒀듯 그의 승리 뒤엔 오랜 인내와 투지가 있었다. 그는 고질적인 골반뼈 통증에도 씩씩함을 잃지 않았다. 스피드스케이팅이 국기(國技)인 네덜란드 팬들이 관중석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며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았다. 얼음판 고르는 기계가 고장 나 경기가 1시간30분이나 늦춰졌는데도 페이스가 흐트러지기는커녕 2차 시기(試技)에서 더 좋은 기록을 냈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는 육상으로 치면 100m다. 순간적으로 폭발적 에너지를 뿜어내야 해서 몸집 작은 아시아 선수들에겐 무덤과도 같은 종목이었다. 수영 자유형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를 이어 모태범이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듯이 스피드스케이팅을 정복했다. 그러면서 박태환·김연아가 정상에서 보였던 해맑고 여유 있고 패기 찬 모습을 국민에게 다시금 보여줬다.
우리가 오래전 아시아 스포츠강국이라고 자랑했던 밑천은 복싱·레슬링 같은 '헝그리 종목' 격투기(格鬪技)였다. 나라 살림이 나아지고 국력이 커가면서 스포츠도 함께 진화했다. 축구·야구 같은 구기(球技)를 넘어 선진국 것으로만 여겼던 골프·수영·피겨스케이팅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그 맨 앞에 어리고 나약한 줄 알았던 신세대, 신(新)한국인이 서 있다. 모태범의 의젓한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읽는다.
[서울신문 사설-20100217수] ‘슈퍼 앱스토어’ 성공시켜 IT한국 위상 높이자
KT와 SK텔레콤,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의 대표적 통신·제조업체들이 세계 휴대전화 운용프로그램 도매 연합체인 ‘홀세일 애플리케이션 커뮤니티(WAC)’에 참여한다는 소식이다. WAC는 최근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휩쓸고 있는 애플과 구글에 맞서 세계적 통신업체 24곳이 함께 만드는 일종의 ‘콘텐츠 도매장터’다. 애플사의 운용프로그램 판매가게(앱스토어)가 소매점이라면 WAC는 콘텐츠의 가격과 물량 면에서 도매점(슈퍼마켓) 수준이라 해서 ‘슈퍼 앱스토어’로 통한다. WAC 참여 통신업체와 계약한 모든 콘텐츠 개발자는 이 가게에 상품을 올려놓을 수 있고, 30억명에 이르는 24개 통신업체 가입자들은 필요한 콘텐츠를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한국의 통신·제조업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로선 IT강국의 위상을 높일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애플이 선보인 스마트폰은 단순히 전화를 걸고 몇가지 운용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기존 휴대전화 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휴대전화+인터넷’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빠른 정보력과 네트워크 파워를 바탕으로 한 스마트폰 시대는 경제·사회적으로 그 파급효과를 예측할 수 없다. IT 기술력의 차이는 국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세계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 IT업계는 하드웨어는 뛰어나지만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는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IT업체들이 WAC 참여를 계기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운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이제 단말기 중심의 IT산업은 한계에 이르렀다. 불과 3년 전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 애플은 지난해 아이폰 2500만대를 팔아 5조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휴대전화 2억 2700만대를 판매한 삼성전자(4조 1000억원)보다 이익을 더 남긴 것은 소프트웨어 덕분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그래서 중요하다. 세계 유수의 통신·제조사가 만든 운영체제(OS) ‘리모 파운데이션’이 제 구실을 못하고, 애플과 구글이 앱스토어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WAC의 성공을 낙관하기엔 이르다. 그렇더라도 한국 업체들이 WAC를 주도하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새 시장 개척의 발판으로 삼길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217수] 공인회계사가 분식결산 기획했다니
공인 회계사가 기업 분식회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코스닥 상장사였던 신명비엔에프의 당기순손실 314억원을 숨기는 등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이 회사 대주주와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해준 공인회계사, 변호사 등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놀라움을 감추기 힘든 것은 회계사들이 전담팀까지 만들어 재무제표를 조작하고 기획부터 실행까지 도맡아 처리하는 등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대담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이 회사는 10개월 동안이나 상장폐지를 모면할 수 있었고, 선의의 투자자들만 그 피해를 몽땅 뒤집어썼다. 잘못된 재무제표를 바로잡는 게 회계사들의 책무이고 보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장부 조작이 이 회사에만 국한된 것일까 하는 의구심까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사건은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서라면 분식회계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또 기소된 회계사 중 일부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을 구제해 주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는 소문이 나오는 것도 그런 가능성을 시사한다.
투명 회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업이 재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진솔히 기록해야 함은 물론 공인회계사 또한 사명감을 갖고 감사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만 투자자들이 안심할 수 있고 증권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도 유지될 수 있다. 회계 부정이야말로 증시와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분식회계에 관련된 기업과 회계법인, 회계사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엄중히 처벌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 2000년대 초 미국 엔론사의 거대 회계부정 사건이 드러나면서 엔론은 물론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마저 함께 파산했던 사실은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0217수] 의약계 리베이트, 이번엔 꼭 뿌리 뽑아야
보건복지가족부가 16일 의약계의 고질병인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투명화 방안'을 내놓았다. 의약품 거래질서를 정상화하기 위한 것으로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근으로는 병원ㆍ약국이 정부 고시가보다 싼 값으로 의약품을 구입할 경우 차액에 대한 이윤을 인정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반면 리베이트에 대한 징벌은 훨씬 무거워졌다. 지금은 리베이트를 준 제약회사 등만 형사처벌을 받았으나 앞으로는 받은 사람도 최고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자격정지 기간도 2개월에서 1년으로 늘어난다.
리베이트는 제약회사들이 의약품 구입대가로 의사와 병원 등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행위로 제약사와 의사ㆍ병원ㆍ약국이 배를 불리는 대신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와 국민들이 입는 반사회적 행위다.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받은 약을 처방하게 되면 소비자들은 약효가 떨어지거나 적정가격보다 비싼 약을 처방 받게 된다. 의료보험 재정도 타격을 입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리베이트는 품질 좋은 신약 개발을 가로막아 국내 제약산업 발전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리베이트가 근절되면 의료재정과 국민의료복지 수준은 그만큼 향상된다. 복지부는 의약품 거래가질서가 투명하게 이뤄져 의료기관 및 약국이 약품구입 가격을 10% 낮출 경우 환자 부담금은 3,092억원, 요양기관 인센티브는 7,212억원 등 연간 총 8,242억원의 절감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2008년 건강보험의 약제비 10조3,036억원 가운데 8%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복지부는 오는 10월부터 이 같은 방안을 시행할 방침이나 제약업계와 의료계가 벌써부터 반발해 제대로 시행될지 의문이다. 그러나 리베이트 근절을 통한 의료비 절감은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친서민 정책'과도 맥을 같이 한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리베이트 근절대책을 내놓았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국회 논의 등 공론화 과정에서 리베이트 근절대책이 퇴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오늘의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권순택(논설위원)-20100217수] 경찰 인사청탁 명단 공개
오늘날의 인사청탁에 해당하는 한자어에 분경(奔競)이란 말이 있다.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준말인 분경은 벼슬을 얻기 위해 고관대작이나 권세가들을 분주하게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도 인사청탁이 극심해 정종은 1399년 분경금지법까지 만들었지만 바로 이듬해 대사헌이 분경에 연루돼 귀양을 갔다. 세종 때인 1447년에는 우부승지 아들의 인사청탁 사건으로 좌우 부승지는 물론 이조참판과 참의까지 파면됐지만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분경과 비슷한 말로는 관직을 얻기 위해 경쟁한다는 뜻의 엽관(獵官)이 있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초부터 선거 공신과 열성 당원을 공직에 임명하는 엽관제(Spoils system)가 실시됐다. 엽관제의 영어식 표현이 ‘전리품은 승자의 것’(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이란 윌리엄 마시 연방 상원의원의 말에서 유래한 것은 관직을 선거의 전리품으로 당연시했음을 보여준다. 엽관제는 1881년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대사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찰스 귀토에게 암살된 사건을 계기로 사라지게 됐다. 엽관제를 대체한 것이 능력을 기준으로 공직자를 임명하고 승진시키는 현재의 메리트 시스템이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지난달 27일 참모회의 때 외부 인사를 통해 자신에게 인사청탁을 한 경정들의 명단을 불러준 뒤 특별 관리하도록 했다. 조 청장은 인사청탁을 들어주지 않고 일부에 대해서는 불이익도 줬다지만 청탁 근절을 위해서는 명단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충격적인 조치도 고려해볼 만하다. 과거 경찰 인사청탁 루트는 국정감사, 예산심의, 인사청문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이나 권력 실세들이었다는데 이번에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궁금하다.
▷지연 학연 등 연고의식이 유별난 우리나라에서는 인사청탁이란 공직사회의 고질병이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인 때 “인사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형의 경우를 포함해 ‘인사청탁 공화국’을 만들다시피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깨끗한 인사, 능력 위주 인사를 강조하지만 현 정부도 인사에서 국민의 신뢰를 크게 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남중(논설위원)-20100217수] 교복 물려주기
옷의 용도는 몸을 가리고 보호하거나 멋을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신적 교감의 매개(媒介)이기도 하다. 동서고금(東西古今)에서 그런 예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부보상(負褓商)이란 이름을 하사했던 등짐·봇짐장수들은 강인한 단결력을 과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부자(父子)와 형제 이상의 의리를 나눌 정도로 ‘동무 의식’이 강했다. 그 바탕엔 ‘옷 바꿔 입기’ 습성이 있다. 부보상은 길을 오가다 만나면 입었던 옷을 서로 바꿔 입었다. 옷 바꿔 입기가 의리를 표시하는 방법이요, 일심동체(一心同體) 의식을 다지는 관습이었던 셈이다.
절에서의 승복 물림도 정신 영역의 행위에 가깝다. 절에 새로 들어온 행자는 세속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지내다 정식으로 머리를 깎고 나면 헌 옷을 받게 된다. 새 옷을 받게 된 승려들이 물려준 것이다. 나이 든 승려가 죽게 되면 그가 입던 옷들은 대개 그의 제자들이 물려받아 입는다. 그들 사이에 물려주고 물려받는 게 ‘겉껍데기 옷’만은 아닐 터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년)도 궁녀나 귀족 여인들에게 자신이 사용했던 의복들을 물려줬다. 은혜를 베푸는 징표였던 셈이니 그 옷은 ‘행운의 선물’로 여겨졌다. 영국의 옷 물림은 하찮은 내의마저도 형제자매끼리 물려 입을 정도라고 한다. 중고품 유통이 성한 나라이고, 내의의 내구성(耐久性)이 뛰어나다고 해서 생기는 현상만은 아닐 게다. 거기엔 우애와 일체감을 나누는 의미가 깃들어 있을 게 분명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원주민인 베타위(Betawi)족은 웨딩드레스를 대를 물려가며 신부에게 입힌다. 이 또한 가난의 탓보다는 사랑과 결속의 의미가 큰 풍습이 아닐까.
새 학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지자체·교육청이 지원한 교복 물려주기 알뜰장터가 성황이라고 한다. 헌 교복을 모아 깨끗이 빨고 수선해 한 벌에 500~5000원에 판다고 하니 거저나 마찬가지다. 교복 구입 부담을 덜 수 있는 기회다. 교복 물림은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복을 물려주고 물려 입으면서 선후배 간에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이 돈독해지는 소득 또한 크다. 교복 물려주기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교복을 찢고 밀가루를 뿌리다 못해 폭력 수준에까지 이른 졸업식 뒤풀이 일탈이 좀 수그러들지도 모를 일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유병선(논설위원)-20100217수] 파생상품 ‘아이올로스’
그리스 신화는 변덕과 배신으로 가득 차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등장한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하던 오디세우스에게 순풍과 역풍이 든 두 바람자루를 건네고, 한 선원이 역풍 자루를 열었다며 있는 대로 성질을 낸 신이 아이올로스다. 결정적인 열쇠를 뜻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은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에서 나왔다. 아리아드네는 미로에 갇힌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의붓형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려는 테세우스에게 길을 잃지 않도록 몸에 실을 묶어준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한 사내에게서 버림받는다.
월스트리트는 그리스 신화에 ‘분식(粉飾)’을 추가했다. 골드만삭스는 2001년 유로통화권 가입을 전후해 빚이 많은 그리스 정부에 신화의 이름을 딴 파생상품을 은밀히 제시했다. 통화스와프나 금리스와프 등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하면 빚을 장부상에서 숨길 수 있다고 꼬드겼다. 2년 전 미 금융붕괴를 촉발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 수법을 국가채무에까지 적용한 것이다. 2000년과 2001년 그리스는 정부 회계를 분식하는 수십억달러짜리 파생상품을 잇달아 계약했는데, 그 이름이 ‘아리아드네’와 ‘아이올로스’다.
그리스 신화가 월가의 분식을 거치면서 그리스엔 ‘재앙’이 되고 있다. 분식으로 그리스 정부 곳간은 더 비었고, 국가 자산은 헐값에 담보로 넘어갔고, 갚아야 할 채무는 더 무거워졌다. ‘아리아드네’ 계약으로 그리스의 국가 복권 수익이 담보로 잡혔다. 국고로 들어가야 할 복권 수익금이 골드만삭스 금고로 빠져나가게 됐다. 골드만삭스는 ‘아이올로스’ 계약의 수수료 명목으로 3억달러를 챙겼을뿐더러 공항 이용료도 담보로 잡았다. 그리스의 빚더미에 월가의 탐욕이 올라탄 꼴이다.
뉴욕타임스는 엊그제 월가가 파생상품을 팔아 유럽의 재정위기를 더 덧나게 했다고 폭로했다. 그리스와 같은 월가와 유럽의 재정분식형 파생상품 계약이 수십건에 달한다고 했다. 월가가 유럽 재정위기의 주범은 아니더라도 공범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월가는 무책임한 유럽의 정부에게 신화와 첨단으로 버무린 탐욕을 팔았다. 월가는 그리스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이 아니었다. 월가가 이미 아리올로스의 역풍 자루에 손을 댄 것이 아닌가 싶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유왕돈(진매트릭스 대표)-20100217수] 세상구도
`현대 속 미개인`이라 난 골프도 못 친다. 여가생활 시대에 취미 하나 없다면 `원시인` 취급을 받을 것 같아 나도 취미를 만들려고 애써 왔다.
중학생 시절 현미경을 보는 것으로 내 취미는 시작됐다. 처음 본 양파 속 세포 모습은 정말 신기했다. 하지만 복잡한 준비가 싫어 양파를 머리카락으로 바꾸었고, 늘 머리카락을 기둥만 하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호기심 많은 중학생으로선 곧 싫증을 낼 수밖에 없는 취미였다.
한동안 없던 취미는 망원경을 얻고 다시 시작됐다. 천체 관측의 적기는 습도가 낮은 겨울이란 말에 캄캄한 벌판으로 갔다. 문제는 야심 찬 관측의 첫 장소가 영하 35도의 추운 미국 미네소타주 벌판이었다는 사실이다. 혹한의 밤 벌판에서 여가생활은 그날로 끝났다. 초등학생 같은 내 호기심은 40대 초에 다시 발동해 값싼 망원경을 구입했다. 새벽 3시에도 일어나고 아파트 옥상도 오르곤 했는데, 서울 아파트 하늘 위에 별이 그렇게 없는지 그때 다시 알았다.
현대인이라면 취미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번엔 사진 찍기를 취미로 택했다. 카메라도 구하고, 도서관에 들러 책도 봤다. 거의 4년이 됐는데도 사람들은 나를 소개할 때 "취미가 사진"이라고 소개할 뿐 "잘 찍는다"고 칭찬하지는 않는다. 동호회 한 번 안 가고 `실내활동`에 머문 까닭에 렌즈 달린 카메라를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미술책도 사진첩도 봤지만 나의 `이공계 뇌`로는 이 구도가 저 구도보다 나은 이유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번에도 또 한계가 보인다. 나는 타고난 `구도치(構圖癡)`인가 보다.
말뿐인 취미지만 언젠가는 내가 찍은 사진으로 탁상용 달력사진 정도는 꾸며 보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다. `구도치`인 내 재주로 남 앞에 내놓을 만한 근사한 사진 12장을 찍으려면 한 10년은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형편만 따라 지나온 세상에 대해 사진을 찍으며 다시 둘러보고 싶다. 미처 못 보고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내 생각을 고치고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구도치` 안목으로 세상을 보면 정해진 `세상 구도`의 마법이 풀려 싫은 것도 좋아지고, 미운 것도 고와 보이는 세상을 혹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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