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 (사적 제 212호,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산28-1)
상당산성은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上黨縣)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된 이름인 듯하다.
이 성은 둘레가 4.2km, 높이 3~4m, 내부면적 220,000평의 거대한 석축산성인데, 백제 때부터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최초의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 원정공(元貞公)이 서원술성(西原述城)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김유신장군의 아버지인 金舒玄將軍이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45년에 충청도병마절도사에 의해 돌 성으로 다시 쌓았다.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성벽은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으나 여장(女墻, 성벽 위에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공격이 가능하도록 낮게 쌓은 담)은 남아있지 않다.
그 후 여러 차례 수축이 이루어져 성내의 시설들인 관아, 병기고, 창고, 水口, 장대(將臺), 포루(砲樓) 등이 완성되었다.
상당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이 3개문과 동암문・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雉城) 3개소, 水口 3개소가 있는데, 1977년~1978년에 동・남문루가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東將臺)도 재건되었다. 또한 1995년도의 발굴조사로 서장대(西將臺)의 규모(15평)와 위치가 확인되었다.
상당산성 안에는 산성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있는 저수지는 본래의 水門이 홍수로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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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의 남문 밖 잔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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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 남문인 공남문((控南門)과 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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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 사적비
남문 옆에 있는 구룡사 사적비는 상당산성 안에 있던 구룡사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조선 영조 40년(1764) 세운 사적비다.
비문에는 숙종 46년(1720) 군영의 건물을 신축하고 연못을 만들 때 도천스님이
구룡사를 창건했으며 영조 19년(1743)에 극락보전을 완성했다고 적혀 있다.
성내에 있던 구룡사 터에 남아 있던 이 사적비만 남문 앞으로 옮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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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女墻)과 총안(銃眼)
성벽의 윗부분에 병사들이 몸을 숨기며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사진과 같이 낮게 덧쌓은 담이다.
여장(女墻)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총안(銃眼)이다.
이 네모난 구멍을 통하여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에게 화살 등으로 공격할 수 있다.
그런데 총안은 안을 살펴보면 똑같은 구조가 아니다. 정면으로 향하거나 좌우로 향한 것,
그리고 아래로 향한 것 등 조금씩 다르게 되어 있는데, 다양한 각도로 적에게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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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雉城)
성곽 위에 일정한 거리마다 성벽 밖으로 돌출시켜 낮게 쌓은 담을 말하는데,
성 위의 군사가 몸을 은폐하거나 적의 화살로부터 몸을 보호하면서,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을 좌우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요새이다.
상당산성의 성벽 위에는 약 150m 거리마다 치성을 두었는데, 길이는 대체로 3장(9.3m)
정도였고 바깥쪽으로 현안(懸眼) 1개를 설치하여 적의 접근에 대비하였다.
(* 현안(懸眼) : 성벽의 위에서 아래를 향해 곳곳에 만든 홈.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에게 끓는 물을 쏟아 붓기 위하여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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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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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 서문(西門)인 미호문(彌虎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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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한옥마을,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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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마을 앞에 있는 저수지, 이곳은 원래 성의 수문이 있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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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의 지휘소 역할을 하던 동장대(東將臺), 보화정(輔龢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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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곳곳에 뜻깊은 고적들이 많이 있구나!
임박사가 제대로 청주 문화탐방 잘 하셨네~~~ 이 산성이 지리학상 백제의 영역인데
신라의 누가 건축했다니 의심을 좀 했네~~
그때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란~~~을 생각했지!!
내 생각엔 그성ㄱ곽은 분명 백제에서 축선한것인데~~`
왜냐 하면 상주까지가 신라의 경게선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