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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1자락길의 달밭길 산행후기
일시: 2023. 6. 18
참석: 102명(25회 7명)
산행: A코스 12.3Km (6.5시간), B코스 6Km (3시간)
소백산과 자락길
소백산은 백두대간 줄기가 서남쪽으로 뻗어 내리며 강원도를 막 벗어나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갈라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소백산은 큰 산을 의미하는 백산(白山) 계열에 속하는 작은 백산을 의미한다. 이름은 동북쪽 이웃에 위치한 태백산이 크지만, 실제 산은 소백산이 훨씬 더 크다.
소백산은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제1연화봉(1,394m), 제2연화봉(1,357m), 도솔봉 (1,314m), 등 높은 영봉들이 이어져 웅장하면서 부드러운 산세,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는 산이다. 1987년 18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으로는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네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산이 큰 만큼, 고개도 많고 길도 많다. 산 서쪽에는 죽령 옛길이, 산 동쪽에는 고치령, 마구령 같은 고갯길이 있다. 소백산 능선 주 탐방로는 백두대간과 겹치고, 능선의 부드러운 멋과 우아한 곡선미는 예술이다. 솜다리, 모데미풀 등 수많은 야생화가 자라며, 천연기념물 제244호인 주목군락이 있다.
젊은 시절 소백산은 철쭉산행, 눈꽃산행, 칼바람산행을 하러 꽤 많이 올랐다. 2004년 마지막으로 오르곤 최근까지 한 번도 오르지 못했고, 허리때문에 앞으로도 못 오를 것 같다. 오늘 35도의 폭염속에 소백산 비로봉을 오른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소백산 자락에도 걷기 둘레길이 생겼다. 소백산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소백산자락길’이다. 자락은 ‘논밭이나 산 따위의 넓은 부분’
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즐긴다(自樂)’는 의미이다. 2009년 영주문화연구회가 조성을 시작해 2012년 마무리를 하였다. 전체 길이는 143㎞에 이르고, 모두 12개 코스로 나뉜다. 각 자락의 평균 거리는 12㎞ 내외로 각 자락을 걷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4시간이다.
소백산자락길은 시군과 소백산국립공원을 수시로 넘나든다. 소백산의 동서남북 자락마다 미세한 문화적 경계로 구분되어 있어 각 시군의 다양한 생활 문화적 특징을 느끼고, 희방폭포, 죽계계곡, 천동계곡 등 멋진 경관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소백산 자락은 유불문화의 성지이다. 우리나라 제일가는 절로 평가받는 부석사를 비롯한 성혈사, 초암사, 비로사, 희방사, 구인사 등의 불교사찰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수서원, 그리고 선비의 얼과 혼을 느낄 수 있는 선비촌을 탐방할 수 있다.
오늘은 가장 인기있는 소백산자락길 1자락의 일부인 달밭길을 걸었다.
소백산 1자락길은 영주시 순흥 선비촌에서 풍기 삼가주차장까지 12.6㎞의 코스로 3.8㎞의 선비길, 3.3㎞의 구곡길, 5.5㎞의 달밭길 3구간으로 구성되며 역사, 문화, 생태 분야를 고루 갖추었다. 달밭길은 초암사에서 월전계곡을 지나고 성재를 넘어 비로사로 가는 계곡산행과 들레길을 겸비한 자연미 넘치는 코스였다.
소백산 가는 길
인생이 길다 한들 100년이 고작이고, 짧다 한들 가는 세월을 붙들어 맬 수도 없다. 봄인가 느낄 새도 없이 벌써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초여름, 6월의 숲은 암녹색으로 짙어만 간다.
두 달 만에 원거리 산행이라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강변역에 30여분 일찍 도착하였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A팀, 1자락길 달밭길 은 B팀, 소수사원 탐방은 C팀, 각 코스별로 버스가 배정되어 있어 올라탔다. 동기끼리도 코스별로 헤어져 따로 타긴 처음이다.
7시 20분, 강변역을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의 치악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전체가 모일 기회가 없어 휴게소 주차장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A팀은 단양IC에서 빠져나가 천둥탐방지원센타로 향하고, B팀과 C팀은 풍기IC에서 빠져나와 인삼, 사과와 함께 인견으로 이름난 풍기읍을 지나, 931번 지방도로를 타고 순흥의 초암탐방지원센타로 향했다. 버스 창밖으로 인삼밭, 사과밭 그리고 멀리 소백산의 연화봉, 비로봉이 스치듯 지나갔다.
길을 잘못들어 선비촌 주차장에서 차를 돌리고, 순흥의 로타리에서 오른쪽으로 죽계로를 따라 순흥지, 배점주차장을 지나서 죽계구곡과 나란히 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 죽계구곡 중간에 위치한 초암주차장에 10시 20분경 도착하였다.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다함께 사진을 찍은 후, B팀은 초암사로 향하고, C팀은 다시 소수서원으로 향했다.
소백산국립공원 깃대종
초암주차장 쉼터에는 좌우에 빨간 여우 형상이 서있는 빨간 벤치가 있다.
처음보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잘 모르고 그저 예쁜 모형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소백산국립공원에서 동물로는 '여우', 식물로는 '모데미풀'을 깃대종으로 삼고 있다.
여우의 경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현재 소백산에서 복원사업이 진행중이다. 모데미풀은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소백산의 연화봉과 비로봉 주변이 국내 최대 군락지이다. 능선근처 또는 깊은 산 습지에 자라는 모데미풀은 지리산 '모데미마을(모뎀골)'에서 발견되어 그 이름이 유래했다.
‘깃대종’이란 1993년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생물다양성 국가 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생태계의 여러 종 가운데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생물종을 통틀어 일컫는다.
죽계구곡의 상류 4곡을 보다
초암주차장을 중심으로 위로는 죽계구곡 중 1~4곡이 있고, 아래로는 5~9곡이 있다.
소백산 초암사 위 1곡을 시작으로 배점주차장 근처의 9곡에 이르기까지 약 2㎞ 구간, 기암과 암벽사이로 숨바꼭질하듯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 가운데 절경인 아홉 굽이를 골라 죽계구곡(竹溪九曲)이라 하였다. 죽계구곡은 소백산 비로봉과 국망봉 사이에서 발원하여 영주시 순흥을 휘감아 돈 뒤 낙동강 상류로 흘러 들어가는 죽계천(竹溪川)의 상류지역이다.
구곡(九曲)이라 이름을 붙이는 것은 유교의 문화이다. 성리학의 시조 주자(1130∼1200)가 중국 푸젠(福建)성 무이산의 아홉 계곡을 ‘무이구곡’이라 이르고 시를 지어 ‘무이구곡가’라 하였다. 조선의 성리학자들도 주자를 본 따 곳곳에서 선유구곡, 무흘구곡, 용유구곡, 죽계구곡, 하회구곡 등 구곡을 재현하였고, 구곡마다 시를 지었다.
죽계구곡에 대하여 풍기군수 주세붕, 퇴계 이황과 순흥부사 신필하가 이름을 지었다. 영조 때 순흥부사 신필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상류에서 하류로 진행하며 바위에 구곡을 새긴 까닭에, 현재는 신필하의 구곡을 죽계구곡으로 알고 있다.
초암주차장 아래에 있는 5곡 청령동애부터 9곡 이화동은 볼 수가 없었다.
4곡 용추(龍湫)
초암탐방지원센터 쉼터를 지나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죽계2교의 좌측 아래쪽에 4곡인 용추가 있다
너른 반석 위를 흐르는 물줄기는 좌우편의 암벽 가운데로 성난 여울을 형성하며 두 세단에 걸쳐 세차게 쏟아져 내려서는 널찍한 소에 잠시 머물렀다 흘러내려간다. 용추의 아름다움은 물방울 날리며 쏟아져 내리는 모습, 비폭(飛瀑)에 있다. 순흥 사람들이 돼지를 잡아 돼지머리를 던지고 피를 뿌리며 피를 씻어낼 비가 내리도록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직접 바라본 용추는 안내판과는 많이 달랐다. 폭포는 높이 약 6m, 폭 2~3m 정도로서 죽계의 여러 폭포들 가운데 크다고 쳐도 그 아래에 형성된 소의 깊이는 어른 무릎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주변 분위기가 깊어서 ‘용추’라는 이름을 얻게 된 듯하다.
3곡 척수대(滌愁臺)
왜들 이리 급할까? 4곡 용추를 건성으로 보고 3곡 척수대는 보지도 않고 죽암2교를 건너 올라가버렸다.
용추에서 나와 바로 도로를 건너면 소백산국립공원과 죽계구곡 안내도가 좌우에 서있다. 그 사이에 있는 계단을 올라 숲속의 오솔길을 따라가면 3곡 척수대 전망대가 나온다.
척수는 이백의 ‘우인회숙’이란 작품의 첫 구절에서 차용한 말이다. 천고의 세월동안 흐르는 물은 좌우로 세차게 부딪히며 돌부리마저 말끔하게 씻어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한없는 욕망추구와 세속적 성공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온갖 근심을 씻어 낼 수 있으리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척수대는 일품이다. 그러나, 다리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멋있을 것 같다. 암각(岩角)들 사이로 물이 흐르면서 만들어 내는 와폭(臥瀑)이 제법 규모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소 또한 제법 넓다.
2곡 청운대(靑雲臺)
척수대 전망대 다리를 건너서 오솔길을 걸어가면 다시 도로를 만난다. 좌측 저 멀리 일주문은 보이지만 일행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죽계1교 좁은 옛 나무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계곡쪽으로 기묘하게 틀어진 오래된 느티나무 괴목을 만난다.
커다란 바위 아래 뿌리를 내리고 힘찬 계곡 물살을 버티며 긴 세월을 모질게 살아온 느티나무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울퉁불퉁 굽은 기둥과 마디마디 굵은 혹들이 참으로 희한하게 생겼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길 왼편에 2곡 안내판이 서 있고, 우거진 숲사이로 계곡에 2곡 청운대가 겨우 보인다. 숲이 우거져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나무가지 사이로 선명하게 청운대(靑雲臺)라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우뚝 서서 흐르는 물을 지켜보고 있다.
소백산의 흰구름 모습이 비친다 하여 주세붕은 이곳을 백운대라 했는데 이황은 백운동의 소수서원과 구별할 수 있도록 청운대라 하였다. 부딪쳐 휘감아 흐르는 물길 속에 우뚝 서 자신의 존재를 지켜 나가는 바위 앞에서 스스로 청운의 꿈을 키운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곡 금당반석(金堂盤石)
죽계구곡 1곡을 보려면 반드시 초암사에서 숨 한번 돌리고 올라와야한다.
초암사를 서둘러 둘러보고 약수 한잔 마시고 대적광전을 지나 한여름에도 햇빛이 스며들지 않는 나무터널 속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아치형의 문을 만들고 ‘달밭골․국망봉 가는 길’이라고 쓰인 이름표까지 달아 놓았다.
문을 지나 숲길로 오르니 죽계구곡의 맏형인 1곡의 이정표가 보였다. 일행들 흔적도 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지나간 것 같다.
왼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옥빛 물이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널찍한 반석이 펼쳐있다. 이곳이 죽계계곡에서 가장 넓다는 1곡 금당반석(金堂盤石)이다. 초암사 대웅전이 가까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당은 절에서 본존, 즉 석가모니불을 모셔 두는 건물이나 크고 하려한 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렇듯이 1곡은 죽계구곡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곳이다. 화강암 너럭바위도 일품이지만 그 위를 흐르는 물길은 마치 거울 같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준다.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부석사' 창건을 계획하였다.
소 위쪽 폭포 우측 바위에 쓴 '一曲’ 옆에 흐미하게 새겨진 ‘竹溪'는 신필하의 글씨로 전한다. 그 앞의 큰 바위벽에는 신필하의 이름을 포함해 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신필하가 이렇게 금당반석을 제1곡으로 삼고 자신의 이름까지 새겨놓은 것을 보면 그가 죽계계곡 최고로 꼽은 절경지가 아닐까 싶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모습을 구경 못하고 다들 그냥 지나가다니 ---.
죽계계곡 반듯한 산사 초암사(草庵寺)
초암사는 국망봉 남쪽 자락에 있는 비구니 사찰로 조계종 제16교구 고운사의 말사이다.
죽계계곡과 나란히 있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자리를 잡은 초암사는 크지는 않아도 반듯한 산사이다. 의상대사가 호국사찰을 세우고자 산수 좋은 이 곳에 초막을 지어 임시거처를 정하고 명당자리를 골라 부석사를 세운 뒤, 초막이 있던 곳에 절을 지어 초암사라 했다. 거석 축대, 주춧돌 등으로 미루어 규모가 큰 절이었음이 분명하다.
6.25전쟁으로 전소된 후, 승려가 없어 폐사 직전이었던 것을 1970년대 초반 환갑을 넘어 출가한 비구니 보원이 사찰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1981년에는 대웅전 등의 전각을 중수하였다. 사찰 건물로 대적광전,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염불당, 안심당, 일주문 등이 있다.
대적광전에는 삼신불을 봉안하였는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이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봉안하였다. 또한 3층석탑과 동·서부도가 있는데, 모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삼층석탑은 높이 3.5m로 통일신라시대 일반형에 속하는 석탑으로 염불당 앞에 있다. 현재 기단의 맨 윗돌 일부가 파손되어 시멘트로 보완했고, 갈라짐이 심한 위층 기단은 철사로 감아 더 이상 파손을 막고 있다.
출토지는 정확히 모르나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국보 제78호로 지정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은 일제 때 도둑을 맞았지만 원래 이 초암사에 모셔져 있었던 것이다.
저절로 힐링 되는 달밭길
금당반석을 나와 우거진 숲길을 따라 200여m 오르면 국망봉과 비로사 갈림길이다.
'국망봉 4.1㎞, 비로사 3.1㎞'라는 이정표가 서있다. 직진하여 국망봉 길로 들어서면 석륜암골을 지나서 국망봉에 올라서고, 왼쪽 비로사 길로 들어서면 월전계곡을 지나서 성재를 넘어 달밭골 비로사로 내려선다.
국망봉으로 올라가는 길의 좌우에 길게 철조망을 세워놓고, 그 사이에 문을 내어 산행을 통제하고 있다.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자 낙엽송이 하늘 높이 쭉쭉 자라고 있다. 어디선가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온다. 키 큰 낙엽송들 사이에 사각마루가 있고, 그 앞에 달밭골 안내판이 있다.
소백산 초암사와 비로사 사이의 골짜기가 달밭골이다. 달뙈기만한 밭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달밭골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 보다는 국망봉과 초암사의 바깥 골짜기라는 의미가 더 설득력이 있다. 달밭골은 옛날 화랑도들이 유오산수(遊娛山水)하던 곳으로 구전되고 있으며, 광복과 6.25 사변 전후에는 월남한 사람들이 피난처로 많이 모여 살았다. ‘달밭’의 한자음이 월전(月田)이다.
바로 이어진 데크 쉼터는 계곡을 끼고 낙엽송 사이에 만들어 놓아서 지친 몸을 달래기에는 그만이다. 민족문화의 발원지 소백산, 낙동강 발원 생태공원 안내도가 쉼터 앞에 서있다.
바위덩어리가 널려 있는 계곡을 바라보며 나무 다리를 건넜다. 처음 건너는 다리가 '월전7교'인 것으로 보아 월전계곡에 있는 다리는 모두 7개인 것 같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또다른 전망대 쉼터가 있다.
시야가 크게 트이지 않아 퇴계가 9곡으로 꼽았다는 중봉합류(中峰合流)를 찾을 수는 없었다. 중봉합류는 소백산 국망봉과 비로봉 남사면에서 흘러 드는 석륜암골 물줄기와 월전계곡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다. 죽계계곡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다리 좌우의 전망대에서도 보이지 않고, 계곡으로 내려 갈 시간도 없으니 그저 ‘저기쯤이구나!’ 짐작만 하고 길을 나섰다.
전망대 쉼터를 지나서 달밭길은 선계 같은 월전계곡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달밭길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 원시 숲길이다. 한마디로 끝내주는 길이다. 하늘은 울창한 숲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숲은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짙푸른 낙엽송들, 구부정하게 뻗어 오른 초록의 참나무들, 잎이 무성한 활엽수 잡목들, 나무를 휘감고 늘어진 덩굴들로 빽빽하였다.
올라갈수록 원시의 숲을 낀 골짜기는 더욱 깊어지고 자연미도 넘쳐났다.
월전계곡은 비로봉 동남쪽 골짜기에 있으니 골도 깊고 물도 많았다. 투명한 계류는 손을 담그면 온몸이 시릴 정도이다. 빽빽하게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좁아진 산길일지라도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와 조잘대는 새소리는 산행을 즐겁게 만들었다.
비로사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교행하며 인사도 나누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소백산의 숨겨진 비경을 품고 있는 달밭길은 오르막이라도 완만하고 편했다.
원시림에 묻힌 월전계곡은 작은 폭포와 소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수정처럼 맑은 물을 쉼 없이 토해낸다. 심산유곡의 진수를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계곡을 지그재그 건너는 월전교 나무 다리가 연이어 나오고, 다리 한가운데에서 바라보는 계곡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다리마다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오를수록 무하지경(無夏之境)의 극치를 보여준다.
계류는 한층 더 맑아져 바닥이 훤히 보인다. 짙푸른 울창한 숲, 그 사이로 보이는 검게 혹은 짙은 초록 이끼 낀 바위들, 그 바위 사이로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 그 물을 잠시 머물게 담아 두는 작은 소, 정말 멋진 풍경이 이어졌다. 어디서든 발을 담그고 무하지경에 빠지고 싶은 마음이다.
월전계곡 한가운데 소 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있는 골짜기를 쇠자우골로 부른다.
쇠자우골은 월전계곡중 망월봉 북쪽에 붙은 골짜기를 말한다. 소가 직접 바위를 밟아서 난 흔적이라 보기는 힘들고, 달밭골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다니며 위치를 알리는 약속의 의미로 붙인 이름일 것이다. 하여간 소발굽의 지름이 20cm가 넘는 큰 소가 이 깊은 골짜기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미소를 머금는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냄새 맡고 피부로 느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저절로 힐링이 된다.
계곡 물소리, 새 우는 소리, 풀벌레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등 자연이 내는 모든 소리에는 파동이 있고, 그 파동이 우리 심장에서 생기는 파동과 호응하기에 뇌에서는 알파 파가 나오고, 몸에서는 유익한 호르몬이 나오고, 당연히 마음은 진정되고 몸의 면역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월전계곡을 걷는 동안은 도대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뒤쳐저 혼자 걸으면서도 계곡의 멋진 풍경과 물소리를 눈과 귀에 담고, 또 사진에 담았다. 지루할 틈이 없으니 힘도 덜 든다. 사색하며 걷기에도 그지없이 좋다.
소백산 달밭길의 문화생태
소백산 달밭길에서 소백산 산자락의 문화생태를 배울 수 있다.
환경부와 소백산국립공원에서 달밭길은 ‘문화생태 탐방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소백산 자락의 문화, 서식하고 있는 각종 동식물에 대하여 수많은 입간판을 만들어 곳곳에 세워 설명하고 있다. 지나가며 잠시 읽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문화 입간판은 달밭골, 민족문화의 발원지 소백산, 쇠자우골 등이 있고, 생태 입간판은 계곡에 어느 누가 살까요, 소백산의 터줏대감, 숲속의 청소부, 달팽이, 멧토끼 등이 있다.
안내판을 보면 소백산의 터줏대감은 박새이고, 야생화로는 괭이눈, 현호색, 제비꽃, 물봉선, 산수국, 천낭성, 꽃향유, 고마리 등이고, 덩굴식물로는 청가시덩굴, 으름덩굴, 노박덩굴, 인동덩굴, 칡덩굴, 종덩굴이다. 참나무는 종류도 많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참나무의 여섯 형제로 모두 도토리 열매를 맺는다.
성재 오르는 길과 성재쉼터
월전계곡의 마지막 다리 월전2교를 건너서야 쉬고 있던 20회 원선자 선배와 후배들, B팀의 후미를 따라 잡았다.
해발 643m 지점에 ‘초암사 1.5Km, 비로사 1.9Km’ 이정표가 서있다. 월전계곡을 따라서는 더 이상 올라 가지를 못하고, 90도 왼쪽으로 꺾어 산길을 따라 성재로 올라가야 했다.
숨 한번 돌리고, 후미에서 천천히 뒤따라 갔다. 산길은 서두를 것 없다는 듯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갔다.
계곡에서 멀어지며 숲 터널 사이로 흙길, 야자매트 깔린 길, 흙길이 번갈아 이어졌다.
육산이라서 그리 험하지는 않고, 발걸음 따라 ‘자락(自樂)’이 더해지는 부드러운 흙길이다. 소백산자락길 트레킹은 부드러움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옛날 밭뙈기 흔적인듯 갑자기 파란 하늘이 열리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은근히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오른쪽 길 위 산기슭에 폐가처럼 보이는 집이 보였다. 그 아래 비탈에 만들어져 있는 밭뙈기 흔적들로 보아 달밭골의 뒷골이 아닐까 싶다. 배점리에 속하는 달밭골은 한자로 표기해서 월전동(月田洞)이라고 한다.
집이 있으니 산길에 드문드문 쇠파이프 전봇대가 보였다.
비로사 1.74Km 이정표 지나고, 또다른 밭뙈기 흔적도 지났다. 작은 고개마루에 20회 선배과 후배들이 식사자리를 펴고 있어 안쪽으로 올라가 쉬려는데, 갑자기 그곳에서 고향 영주에 내려와 사는 대학동창이 튀어 나왔다. 부산에서 의사로 있는 25회 이석용이 하고도 영주 국민학교 동창이다.
"어! 반갑다! 몇 년 만에 여기서 보네! 그렇찮아도 사대부고라 해서 너도 있을 줄 알았지!"
초등학교 친구들이랑 삼가에서 넘어 오는 길이란다.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곧 헤어졌다.
그 사이 식사를 하는 선후배들을 두고, 먼저 길을 나서 천천히 올라갔다.
마지막 다리인 달밭 1교를 막 건너려는데 인자한테서 "어디 있느냐?" 고 전화가 왔다. 계곡에서는 전화가 안되었으니 이제라도 연결되어 다행이었다. 사진을 찍고 맨 마지막에 천천히 올라갔는데, 맨 앞서 나간 줄 오해하고 현주와 둘이서 부지런히 올라갔단다. 벌써 성재를 넘어 잣나무숲에서 간식을 먹고 있다.
당장 날아갈 수는 없으니, 다리를 건너 나무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계단 시작점에 서 있는 소백산 자락길 미끄럼 주의 표지판
그림이 멋있다. 싸인펜으로 스케치 하듯 슥싹 그렸는데도 제대로다.
근처에 집이 있는지 약초재배지역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고, 제법 크게 자란 옥수수밭도 있다.
길은 나무와 함석으로 만든 문이 있는 함석지붕 외딴집 뒷담으로 이어졌다. 사람이 사는 것 같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주인이 없는 듯하여 닫힌 문 앞에서 잠시 기웃거리다가 그냥 지나갔다. 작고 허름하지만 남향에 전망은 일품이다. 담을 따라 돌아가다가 오른쪽을 보니, 저 멀리 함석지붕 위로 뾰족히 솟아오른 산이 보였다. 산 이름은 모른다.
이런 산속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며 적적함을 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시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참 어렵다.
외딴집에서 야차매트 위에 양탄자처럼 깔린 잣나무 낙엽을 밟으며 산 모퉁이를 돌아서면 달밭길의 꼭대기 ‘성재’이다.
초암사에서 2.4km, 해발 793m 고개마루이다. 초암주차장에서 1시간 40분 걸렸다. 지도상에는 '밀목재'로 표기 되어있으나, 여러 안내판에는 '성재'로 표기되어 있다. 성재를 중심으로 순흥의 달밭골과 풍기의 달밭골로 나뉘지만, 행정구역의 의미일 뿐이다.
성재쉼터에서 35회 주리원 후배가 주는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고, 잣나무숲 안에 있는 ‘잣나무숲 명상쉼터’로 갔다.
길 좌우로 빽빽하게 들어선 아름드리 잣나무는 쭉쭉 뻗어 오른 날씬한 몸매로 하늘을 가렸다.
잣나무는 인간에게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이다. 그 좋은 기운을 잠시 쉬면서 실컷 담아가라고, 넓은 평상과 S라인으로 설계된 길고 멋진 침대의자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 수도 꽤 많았다.
계단이 있는 넓은 평상 한귀퉁이에 인자와 현주가 자리를 잡고 벌써 간단한 식사를 마쳤다. 나도 싸 가지고 온 오이, 채리, 방울 토마토를 꺼내 놓고, 샌드위치 한조각을 먹었다. 사진을 찍으며 혼자 뒤쳐져 오느라 힘들어서 그런지 입맛도 별로 없었다.
잠시일지라도 S라인 침대의자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편안히 쉬었다. 빽빽한 잣나무 사이로 살랑살랑 부는 솔바람에 천상의 기분이었다.
명품마을 달밭골
명상쉼터에서 느긋하게 쉬었다가 본격적인 하산길에 들었다.
피톤치드 기운으로 경사가 아주 완만한 내리막길을 휘적휘적 걸어 내려가니 곧 소백산 명품마을 달밭골이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화전민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주민들이 이제는 펜션, 민박, 카페 등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바로 앞에 새로 멋진 카페가 지어져 장사에 타격을 받았을 것 같지만, 달밭골 명품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집은 마을 최초의 민박집인 ‘달밭골 나눔터’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에 내려온 부부가 운영을 한다. 소백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겐 숙박소이자 주막이고 식당으로 사랑받는 공간이다. 막걸리 한잔 마시고 가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그리고, 힘들고 지친 이들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이 집의 명물 ‘자유의 종’도 걸려있다. 이 종소리에는 자유, 평화, 사랑, 희망, 그리고 꿈이 담겨있다.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 했지 않는가? 이 산자락에 우리의 영혼을 깨워 살리는 자유의 종이 있다는 것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달밭골 나눔터를 지나자 삼거리가 나왔다. 이 삼거리의 다른 한쪽은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등산길이다.
달밭골 마을입구 길가에는 천막 장터, 달밭골 안내판, 장승도 세우고, 포토존도 조성해 놓았다. 포토존에는 반달형 골조와 통나무 의자, 화전민 부부로 연상되는 상(像)을 양 옆에 세우고, 여우 조형물들을 함께 배치했다.
계곡을 끼고 시멘트 포장도로와 야자매트 깔린 데크 길이 나 있다.
도로 한편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한 대가 대기하고 있다. 계곡 따라 난 데크 길로 내려갔다. 계곡엔 물은 별로 없다. 길 건너에 달밭골 명품마을 부부 장승도 보였다. 5분여 내러가 작은 다리를 건너니 비로사 일주문이 높게 보였다.
달밭골 비로사
순흥 달밭골에 초암사(草庵寺)가 있다면, 풍기 달밭골에는 비로사(毘盧寺)가 있다.
비로사 역시 의상의 발자취가 있는 절이다. 서기 680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의 고찰로 서기 931년도에 진공대사가 다시 중건하여 큰 사찰로 전해오다가, 임진왜란과 1908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여러 번의 개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사찰이다.
그런 절이니 어찌 탐방로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그냥 갈 수 있겠는가? 다들 그냥 지나가고 겨우 5명만 들렀다 갔다.
일주문을 지나 둘계단을 올라가면 거대한 당간지주를 만난다.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역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당간지주 뒤로 경사진 돌계단이 보이고, 그 위로 화박나무 숲에 둘러싸인 비로사가 보인다. 비로사는 계단식으로 된 전형적인 산간사찰이다.
돌계단을 올라가면 범종각과 더불어 진공대사의 ‘보법탑비’가 서 있다.
이 탑비 옆으로 넓은 마당이 펼쳐지면서 중앙에 2층의 월명루(月明樓)가 있고, 그 오른편으로 보연당 요사채가 있다. 월명루 밑으로 만들어진 길 따라 급경사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본존불을 모신 적광전이 있고, 그 앞에는 오래된 석탑이 있다.
적광전 안에는 보물 제996호로 지정된 2분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오른편은 ‘아미타불좌상’이고, 왼편은 ‘비로자나불좌상’이다. 두 불상은 모두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이다. 적광전 오른편에 나한전, 그 앞으로 반야실이라는 별당이 자리잡고 있다. 그 뒤편 높은 산비탈에 망원당과 삼성각이 있다.
최근에 많은 불사로 다양한 건물이 새로 지어져 짜임새는 떨어져도 제법 큰 사찰임에 틀림없다.
달밭길 삼가주차장
절을 나와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삼가주차장으로 향했다. 1.3Km를 더 걸어야 했다.
역시 계곡 흐름 따라 설치된 데크 길을 이용하였다. 야자매트를 깔아 놓은 바닥은 많이 닳았어도 폭신하고, 데크에 벤치에 그네까지 있는 쉼터도 있다. 쉼터에서 계곡으로 내려가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발도 담갔다. 물은 차가워 오래 발을 담글 수도 없었다. 내려오면서 보니 우리가 걸었던 데크길은 '달맞이길 탐방로'이다. 하늘아래 달이 처음 뜨는 달밭골로 달맞이하러 오르는 길이다.
데크길 따라 한참 내려가면 수많은 텐트촌을 형성하고 있는 소백산 자연휴양림 삼가야영장이 나타난다. 휴양림은 단일 건물 내에 휴게시설과 샤워장, 음식점, 매점, 화장실, 세족장이 만들어져 있다. 세족장에는 일찍 내려온 선후배들이 세족을 하고 있었다.
삼가야영장 입구에는 소백산 자락길 홍보관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뙤약볕 도로를 피해 왼쪽 길가 그늘진 풀길로 내려가 삼가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식사장소로 향했다.
횡재먹거리한우집 무수촌청국장정식
동양대학교를 지나 풍기역 근처 풍기선비골인삼시장 2층에 있는 횡재먹거리한우집에서 무수촌 청국장정식을 먹었다.
영주 부석사의 부석태를 사용해서 만든 청국장 정식은 영주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경상도 음식은 별로라는 편견을 깬 음식이다.
청국장은 된장찌게나 김치찌게처럼 매우 흔한 식단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맛있다는 말을 듣기가 쉽지 않지만 심심하고 깊은 맛을
낸다. 밑반찬도 정갈하고 인삼튀김과 나물도 맛깔스럽다.
고맙게도 35회 회장단은 산행 때마다 그 고장의 맛집을 참 잘도 골라낸다.
소백산 자락에 살며 사과농사를 짖고있는 32회 후배가 직접 식당으로 찾아와 막걸리도 대접했다. 동문이라 좋고, 산을 좋아해서 좋고, 사람사는 게 별거없다. 그렇게 이렇게 어울려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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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 아 ~~ 이렇듯 , 훌륭한 풍광 들을 , 모두,, 모두 ,,,
뒤로 하고 ~~~
바로 옆에 둔,, 계곡들 도,, 쳐다볼 볼, 여념 도 없이,,
~~~~ 저는,,, 그저,,
... 쫒기듯, 숨가쁘게;; 앞사람, 발꿈치만 보면서,,,,
뒤 쫒아, 왔으니,, ㅠ ㅠ ,,,, ㅠ ㅠ
주묵씨 의 소백산 자락길, 후기를 , 세세히 읽고,, 나니 ~~~
언젠간,,, 다시 한번, 소백산자락길, 과
죽계구곡 과 , 부석사, 초암사 ,,, ~~ 비롯하여 ,,
다시 한번,,
부드러운 트레킹 으로, 힐링 하러,~~~ 소백산의 여러 자락길 들을,,,
꼭 가보고 싶습니다... ,
아 ~~ !!!
신필하 선조님 께서 , 우리를 얼마나 한심해 하셨을까 ?
" 인생 이 ,, 뭐 그리, 바쁘냐고,,,,~~
주묵씨 ~~~ 잘 읽었습니다,,,,
늘 그렇듯 언제나
믿고 보는 후배님의 후기!
역시나 대단하게 담아낸
소백산 트레킹 스케치!
해설가로
사진가로
수필가로
넘치도록 흘러내린
감동 감탄 감격!
두 해 전 내가 걸어 올랐던
달밭길 코스로
소백산 정상 비로봉에 서던
추억 소환까지
가슴이 떨려오네요.
김주묵 후배님이 있어
총동산행 다녀온 뒤가
늘 고대됩니다.
수고에 감사한 마음
듬뿍 실어 보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는 C코스로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을 다녀왔는데,
선배님의 후기를 읽으면,
제가 B코스를 다녀온 느낌입니다. 꼭 책을 내셔서, 저희가 선배님의 글을 두고두고 읽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