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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이혼」, 『당신의 신』, 문학동네, 2017, 7-67
1
오래전 그녀는 이혼하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아직 고등학생일 때였다. 시험 기간이었고 책상에 엎드려 깜박 잠든 사이에 꾼 꿈이었다. 꿈에서도 그녀는 단발에 회색 교복 차림인 고등학생이었다. 그녀와 이혼하고 훌훌 돌아서던 남자는 남색 줄무늬 넥타이를 맨 중년 남자였다.
책상 위에 펼쳐진 노트에는 삼각함수 공식과 함께 에밀리 디킨슨의 편지 글귀가 낙서처럼 쓰여 있었다.
나는
이렇게 늦은 철에
복숭아를
손에 들었던 적이 없었지……
평생 독신으로 산 에밀리의 묘비명은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다(called back)”였다. 늦은 철 작고 수줍은 에밀리의 손에 들려 있었을 복숭아는,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이 다 가도록 그녀는 어머니의 손에 복숭아가 들려 있는 걸 보지 못했다.
그 이듬해 여름도 다 가도록.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남색 줄무늬 넥타이를 맨 남자와 이혼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직장 동료들에게 고백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만두 전문 식당에서였다. 그들 속에는 영미 선배도 있었다. 영미 선배는 그녀의 꿈 이야기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듯 만둣국 국물을 가만가만 떠먹기만 했다. 꿈을 꾸고 났을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프로이트 정신분석 강의를 한창 들으러 다니던 동료가 물었다.
“그냥……덤덤했던 것 같아.”
하지만 어쩌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남색 줄무늬 넥타이를 맨 남자를 보면 그 꿈이 떠오른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꿈속 남색 줄무늬 넥타이를 맨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2
204호 대기실에는 창문이 없다.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대신에 문이 있다.
플라스틱 재질의 노란 등받이 의자 오십여 개가 문을 향해 극장 좌석처럼 나열되어 있다. 빈 의자는 거의 없다.
난방을 세게 해 대기실 공기가 건조하고 더운 편이지만 그녀는 카키색 모직 코트를 벗지 않는다.
그녀는 오늘 이곳에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철식이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에 왔고, 철식도 왔다.
둘 다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문이 열리고, 회색 모직 코트 차림의 남자와 갈색 니트 코트 차림의 여자가 걸어나온다. 벌겋게 상기된 남자의 얼굴과 다르게 여자의 얼굴은 담담하다. 치러야 할 걸 마침내 치른 얼굴인 여자의 손에는 종잇장들이 들려 있다. 자신들에게 쏠리는 시선들을 차갑게 뿌리치고 그들은 서둘러 대기실을 떠난다.
김성민씨, 서희경씨-
문 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차례로 남녀 이름을 호명하는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목소리는 낮지도 높지도, 가늘지도 굵지도 않다. 특별히 사무적이지도 그렇다고 상냥하지도 않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 특색 없는 목소리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남자가 부산을 떨며 몸을 일으킨다. 그 옆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여자가 몹시 천천히 티눈이 뽑히듯 일어선다. 남자가 여자를 흘겨보고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여자가 뒤따라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는 눈을 감는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차례로 남녀 이름을 호명하는 여자 목소리, 또다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바닥이 납작한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걷는 소리, 정수기 물 내리는 소리, 종잇장 간추리는 소리, 스테이플러 찍는 소리, 휴대전화 진동소리…….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대기실 시계는 열시 이십분을 지나고 있다. 그녀가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아홉시 사십분을 지나고 있었다. 철식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삼십 분이 지나서였다.
대기실 사람들 얼굴은 제각각이지만 표정은 어딘가 닮았다. 무심한 듯 불안하고 초초한 기색이 여력하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허공의 한 지점을 멍하니 응시하거나, 다른 사람을 흘끔 흘끔 곁눈질하는 사람들의 연령은 다양하다. 중학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앳된 여자부터 백발 성성한 노인까지. 사람들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이 그녀에게 느껴진다.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눈길을 고정하고 있던 철식이 투덜거린다.
“일본에서는 사후 이혼이 유행이라는군. 정말이지, 극성이지 않아?”
그녀도 전날 신문에 실린 사후 이혼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일본에서 사후 이혼이 유행처럼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말이 사후 이혼이지, 그것은 죽은 배우자와의 이혼이 아니라 배우자 가족과의 이혼을 뜻했다. ‘인척 관계 종료 신청서’를 담당 관청에 제출하면 죽은 배우자 가족들과 법적으로 남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후 이혼이라는 말을 처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접했을 때, 그녀는 죽은 배우자와의 이혼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이혼을.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죽은 사람은 끝인지 몰라도 살아 있는 사람은 끝이 아니니까…….”
“열한시 전에는 끝나겠지? 열두시에 약속이 있어.”
철식이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시간을 늦추거나 다른 날로 잡지 그랬어. 늦으면 어쩌려고…….”
그녀는 어떤 약속인지는 묻지 않는다.
“이 분이면 끝난다던걸.”
이 분, 이 분이면……. 중얼거리던 그녀의 눈길이 저절로 백발성성한 노인을 향한다. 노인 옆에는 와인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과하게 부풀려 가발을 쓴 것 같아 보이는 노파가 앉아 있다. 그들은 그녀가 도착하기 전부터 대기실에 와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은 얼마나 오래 부부로 살았을까?
사십 년? 오십 년?
속으로 자문자답하던 그녀의 눈꺼풀이 발작적으로 경련한다. 방금 막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오십삼 년이었다. 자그마치 오십삼 년…….
“신분증 제출 안 하신 분들은 제출하세요.”
문 옆 책상을 파수꾼처럼 지키고 앉아 있는 남자가 대기실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남자의 목소리는 고압적으로 느껴질 만큼 사무적이다. 그 남자는 청색 야구모자를 쓴 남자는 내내 갈색 생머리 여자와 어깨를 맞대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키득거리고 있다. 옷차림과 분위기만 놓고 보면 평일 대낮 극장이나 카페를 찾은 대학생 커플같다. 들떠 있는 듯 보이지만, 나쁜 짓을 저지르고 교무실로 불려온 학생들처럼 기가 죽어있다.
스피커에서 또다시 남녀 이름을 호명하는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앞머리가 벗어진 남자와 그 옆 파마머리 여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간다.
벌써 아홉 쌍의 남녀가 들어갔다 나온 문에는 ‘204호 협의이혼의사확인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 부르는 거야?”
경상도 억양이 강한 남자의 목소리는 대기실 모든 사람에게 들릴 만큼 크다.
생판 모르는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우리’라는 말이 낯설다못해 폭력적으로 들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 부르는 거야? 응?”
“우리 차례가 되면 부르겠지.”
남자 옆 여자가 무뚝뚝하게 대꾸한다.
“그건 그렇고, 내 통장에서 다달이 빠져나가는 당신 종신보험금은 어떻게 할 거야? 이혼까지 한 마당에 내가 계속 내줄 수는 없잖아.”
“알았어, 알았다고!”
남자와 여자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그녀는 생각한다. 저들은 언제까지 자신들을 우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땅딸막하고 배가 불룩한 남자가 향수 냄새를 짙게 풍기며 대기실로 뛰어들어온다. 남자는 열차 칸을 잘못 들어온 사람처럼 머리를 거칠게 흔들더니 도로 나가버린다.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던 여자가 벌떡 일어나 구둣발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따라 나간다.
복도에서 남자와 여자가 실랑이하는 소리가 대기실까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무시하고 철식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묻는다.
“잠은 좀 잤어?”
“조금…….”
지난밤 일 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고 호소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
칠 년 전 그녀는 유방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유방 절제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철식은 남쪽 도시에 내려가 있었다.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일간지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전향한 그는 부당해고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얼굴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수년째 해오고 있었다. 항암 치료가 끝나자 주치의는 그녀에게 방사선 치료와 호르몬제 복용을 제안했다. 암재발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치료로, 호르몬제를 복용하는 동안 임신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호르몬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생리 불순과 불면증이 찾아왔다. 두 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녀에게 주치의는 정신과 치료를 제안했다. 정신과 의사 앞에서 불면증을 호소하고 돌아온 날 밤, 두 달 만에 남쪽 도시에서 돌아온 그가 지나가는 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치료는 잘 받고 있는 거지?”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그가 새삼스레 물었다.
“참, 호르몬제는 언제까지 먹어야 한다고 했지?”
“오 년…….”
“오 년? 평생 복용해야 하는 건 아니네?”
그리고 이튿날 그는 다시 남쪽 도시로 떠났다.
호르몬제를 복용중일 때 그녀는 사진작가 최의 전시회 오프닝 행사에 철식과 동행한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꽤나 이름이 알려진 최는 제자를 기르는 일에도 열성이었다. 행사 자리에는 최의 아내와 그들의 장성한 두 아들도 와 있었다. 초대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전 최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칭찬과 자랑을 늘어놓았다. 요조숙녀이자 현모양처인 아내가 시정잡배인 자신을 대신해 가정을 얼마나 잘 돌보았는지를, 두 아들을 얼마나 훌륭하게 키워냈는지를, 맏며느리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시아버지의 병시중까지 마다하지 않은 아내에게 존경과 감사의 눈빛을 보내는 최를 바라보며 그녀는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의 말처럼 시정잡배인 최가 여자 문제로 아내의 속을 퍽 썩였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훤칠한 두 아들을 양옆에 거느리고 서 있는 최의 아내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제자를 병원에 반강제로 끌고 가 중절 수술을 시켰다는 소문이 그녀의 귀에까지 흘러들어왔을 정도로.
공식 행사가 끝나고 전시된 사진들을 둘러보는 그녀에게 최의 아내가 다가왔다.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어쩌겠어요.”
“우리……요??”
그녀가 묻는 눈빛으로 최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내들 말이에요. 우리 둘 다 힘든 남자를 남편으로 골랐으니 어쩌겠어요.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팔자라고 해야하나…….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너그러워져요. 이해 못할 일도, 용서 못할 일도 없고요. 아들이 살인을 저질러도 끝까지 감싸고도는 게 어머니잖아요.”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주기 위해 결혼한 게 아니라는 말을 간신히 삼키고, 그녀는 사진에 눈길을 주었다.
야트막하고 푸른 언덕 위에 나신裸身의 여자가 검고 풍성한 음부를 드러내고 서있는 사진이었다. ‘릴리트’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은, 최의 전작들과 다르게 초현실적인 분위기였다. 원근감을 최소화해 이차원적으로 표현한 사진 속 여자의 한쪽 다리가 의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사진은 거부감이 들 만큼 작위적이었다. 다큐멘터리에는 실재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안드레아스 파이닝거의 말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철식은 불쑥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형수님을 좀 봐…….”
최의 아내를 그는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택시가 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멈추어 섰을 때에야 그녀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택시에서 내려 볼펜심처럼 좁고 어두운 골목 안으로 걸어들어가며 그녀는 철식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내게 강요하지 마……. 나는 그녀가 아니야.”
그녀는 생각했다. ‘릴리트’라는 제목만 아니었어도 최의 사진이 그토록 끔찍하진 않았으리라.
릴리트는 유대 민담에 등장하는 인물로, 최초의 여자이자 아담의 첫 아내였다. 민담에 따르면, 하느님은 릴리트를 아담의 갈비뼈가 아니라 아담과 똑같이 흙으로 빚은 뒤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만들었다. 그러니까 최초의 남자 아담과 최초의 여자 릴리트는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첫날밤, 아담이 동침하려 했지만 릴리트는 그의 밑에 깔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을 주인이자 남편으로 섬기기를 거부한 릴리트는 하느님의 노여움을 샀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사탄이 되었다. 얼마 뒤 하느님은 흙이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고, 그렇게 해서 최초의 여자이자 아담의 아내는 릴리트가 아닌 하와가 되었다.
*
그녀와 대각선으로 앉아 있는 여자가 초조하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낟. 파마기가 풀린 머리카락을 풀어헤쳐 스산한 분위기다.
대기실로 오기 전 그녀는 화장실에서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세면대 거울 앞에 버티고 서서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는 화장실 밖에까지 들릴 정도로 새되고 컸다.
“글세, 내가 남편하고 이혼하려고 한다니까 석구 선배가 대뜸 그러지 뭐야. 그러지 않아도 복잡한 인생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어지간하면 참고 살지 그래. 어지간하면 참고 살라니! 웃으면서 한 말이 내가 들은 말 중에 가장 최악이라는 걸, 석구 선배는 알기나 할까? 어지간하지 않으니까 내가 이혼하려는 거 아니야? 달력 바꾸듯 일년을 주기로 애인 갈아치우는 남편하고 백년해로라도 하라는 거야? 석구 선배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그 글들은 다 뭐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글들 말이야……. 석구 선배는 그럼 지금까지 페미니스트인 척한 거라니?”
시선이 느껴지는지 여자가 목을 비틀어 그녀를 쳐다본다. 여자의 눈은 아이라인을 짙게 그려 짐승의 눈 같다. 겁에 질린 짐승의 눈.
얼결에 웃어 보이는 그녀를, 여자가 경고하듯 차갑게 쏘아본다.
“쉽지가 않네…….”
언젠가 전화 통화 끝에 영미 선배가 혼잣소리처럼 내뱉은 말을 그녀는 얼떨결에 중얼거린다. 온전한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말을 여자가 알아들었을 것 같다.
여자의 입술에 경련이 일더니 벙긋 벌어진다.
“그러게, 쉽지가 않네…….”
여자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그녀는 눈시울이 당기도록 눈을 크게 치켜뜬다.
*
십 년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던 영미 선배를 그녀가 다시 만난 것은 재작년 여름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P복지재단에서 일할 때 그녀의 사수였던 영미 선배는 수 년 전부터 충북 영동에 내려가 살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영미 선배와 약속이 되어 있던 것도 아닌데 오후 반차를 내고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 영동행 표를 끊었다. 그 여름 폭염이 유난히 기승을 부려 과일가게마다 복숭아 짓무르는 냄새가 진동했다.
호르몬제 복용이 거의 끝나가던 그즈음 그녀는 근 일 년 만에 들어온 시 청탁을 거절했다. 그녀가 쓴 문장들은 시가 되어주지 못했다.
등단할 때 그녀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버렸다. 잡지사에 등단 소감과 함께 필명을 써 보내며,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버리기 위해 그토록 시를 쓰고 등단이라는 걸 하고 싶어했음을 깨달았다.
영동 터미널에서 내려 늦은 점심으로 김밥을 한 줄 사먹고 나서야 그녀는 영미 선배에게 전화를 넣었다. 십 년 만에 옛 직장 후배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영미 선배는 의외로 무덤덤했다.
“며칠 전부터 바람 쐬고 싶었는데 오늘 선배 생각이 문득 났어요. 선배가 영동에 내려와 살고 있다는 걸 선주 선배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거든요……. 선배가 보고 싶기도 하고……. 선주 선배가 선배 연락처를 알려주었어요.”
변명을 늘어놓듯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영미 선배가 말했다.
“잘 왔어.”
한 시간 뒤, 영미 선배와 그녀는 영동 읍내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있엏다. 영동 대학교 근처에 있다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려는 영미 선배에게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영미 선배를 그녀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배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어요…….”
영미 선배는 십 년 전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십 년 전만 해도 없던 눈가와 입가 주름은,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던 그녀의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어놓았다. 긴 머리를 목덜미쯤에서 헐렁하게 묶고 자잘한 꽃무늬가 프린트된 하늘색 면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편하고 순박해 보였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영미 선배는 무채색의 단순하지만 세련된 옷을 즐겨 입었다.
“진작 연락 못해서 미안해요.”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 연락했었어야 하는데 면목이 없어.”
영미 선배의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그녀는 자제력을 잃고 불쑥 말했다.
“선배, 미안해요.”
“뭐가……?”
“이혼하고 힘들었을 텐데, 멀리했던 거…….”
그게 벌써 십 년 전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선배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었어요……. 그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은 아니지만…….
영미 선배가 해외사업부 고부장과 내연 관계라는 소문이 나돌기 몇 달 전 영미 선배는 이혼으로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가 남편이나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을 다른 직원들 앞에서 실수로라도 흘린 적이 없었던 터라 더 그랬다. 영미 선배의 이혼 소식은 누구보다 그녀에게 충격이었다. 그녀는 영미 선배가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는 줄 알았다. 그녀는 영미 선배 부부와 광화문 근처에서 두 번 식사를 같이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영미 선배의 전남편은 합리적이고 예의바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경우 바르고 단정한 영미 선배의 이미지는 이혼으로 한 차례, 추문으로 또 한 차례 길바닥에 내팽겨쳐졌다. P복지재단 이사장은 여든 다섯 살의 대형 교회 원로 장로로, 신년 조례 때마다 직원들에게 성경 속 계명을 지키며 살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소문은 이사장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노발대발한 이사장은 영미 선배를 해고했다. 소문의 두 주인공 중 여자인 영미 선배만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은 부당한 처사였지만, 그것에 대해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여자 직원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직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부장은 해외 파견 업무를 자원했고 삼 년 만에 돌아와 P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복지관 관장으로 승진했다.
“소문이 과장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파견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고부장은 뒤늦게야 삼 년 전의 소문에 대해 해명했다.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더라며 계면쩍은 웃음을 흘리는 그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영미 선배에게는 직장을 그만둘 만큼 치명적이었던 소문이 고부장에게는 구두 밑바닥에 들어붙은 껌이나 양복바지에 튄 구정물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고.
“그때 왜 아무 해명도 하지 않았어요?”
그녀의 질문에 흔들리는 영미 선배의 눈동자에서 원망의 빛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도 내게 소문에 대해 묻지 않았는걸.”
“미안해요, 선배…….”
“이혼하고 오 년쯤 지나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그 사람을 우연히 보았어. 품에 아기를 안고 있더라. 재혼해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날 밤 이혼하고 처음으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대답을 듣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입이 마르는지 영미 선배는 물잔을 들고 얼음이 녹아든 물을 천천히 두 모금 마셨다.
“결혼할 때 그 사람이 내건 조건이 아이를 갖지 않는 거였어……. 부모 세대처럼 자식들 때문에 인생을 허비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했지. 그렇다고 일방적인 요구는 아니었어. 백 년 뒤의 지구를 상상하면 끔찍했거든. 자원은 고갈되고,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식수난으로 매일 다섯 살 미만 어린이 팔백 명이 오염된 물을 먹고 죽어가고…… 암울하지만, 나는 내가 언젠가 아이를 갖고 싶어할 거라는 걸 알았어. 그 사람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원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한 지 십이 년이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더라고. 시댁 조카 돌잔치에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을 처음을 꺼냈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집에 도착해서도 아무 말이 없던 사람이 며칠 뒤 지나가는 투로 말하는 거야, 카레에 밥을 비비다 말고, 점심시간에 사무실 근처 비뇨기과를 찾아가 불임수술을 받았다고. 충격을 받았지만, 티를 내고 싶지 않아 밥을 꾸역꾸역 입안으로 밀어 넣기만 했어. 아이를 갖고 싶다는 고백에 제 발로 비뇨기과를 찾아가 불임수술을 받은 사람이, 다른 여자와 재혼해 정관 복원 수술을 받고 남들처럼 아이를 낳아 살고 있었던 거야.”
“........”
“부부가 뭔지 모르겠어. 그 사람과 내가 이혼한 게 꼭 자식이 없어서였을까? 어머니는 둘 사이에 자식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이혼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지만 정말 그랬을까? 어머니 말대로 이혼까지는 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결혼해 사는 내내 수억 광년 떨어진 행성처럼 서로 겉도는 느낌이었거든. 주말부부로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새벽에 잠에서 깨, 그 사람 손을 슬그머니 그러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옆에 누워 잠든 그 사람이 이생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존재처럼 멀고 멀게 느껴져서.”
“......”
“친인척들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구청에 혼인신고를 하고, 사회적으로 떳떳한 부부가 되었지만, 십이 년을 사는 동안 온전한 부부로 살았던 날이 하루도, 단 하루도 없었다는 걸, 그 사람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어.”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영동에 내려온 이유가 영미 선배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선배, 나도 이혼하고 싶어요.’
그 말이 목구멍에 심지처럼 박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혼하고 싶은데 너무 두려워요.’
그 말 역시,
“혼자 사는 거 힘들지 않아요?”
“나쁘지 않아. 괜찮아…….”
“무슨 일, 해요?”
“학습지 교사……. 퇴사하고 아직 서울에 살 때 초등학교 앞에 교습소를 냈었어. 내가 나이가 있으니까, 학부모 하나가 끈질기게 묻지 뭐야. 결혼은 했는지, 했으면 남편은 뭘 하는 사람인지, 아이는 몇이나 있는지…….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서 이혼해 혼자 살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했는데, 그게 학부모들 사이에 퍼졌어. 교습소에 다니던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발길을 끊더라고. 교습소 문닫고, 일 년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냈어. 그렇게 계속 살 수는 없어서 취직을 하려고 스무 군데 넘게 이력서를 냈는데,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어. 이혼한 경력이 그렇게 치명적일 줄 몰랐지. 그러다 감자탕집 유리문에 붙어 있는 종이를 봤어. 서빙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고 쓰여 있더라고. 근무 조건을 물어보려고 들어갔는데 주인 여자가 당장 그날 저녁부터 일할 수 있겠냐고 묻지 뭐야.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지…….”
“선배…… 가요?”
영미 선배는 소위 말하는 일류대 출신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P복지재단에 취직한 영미 선배는 당시 복지관 관장의 신임을 받았다. 깐깐하고 보수적인 관장이 영미 선배를 자신의 며느리 삼고 싶어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소문이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며칠 전에는 학부모가 간식을 챙겨주며 묻는 거야.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내가 당연히 결혼했을 거라고 생각했나봐. 그냥 독신이라고 했어. 혼자 살고 있다고……. 그나저나 어머니는 건강하셔?”
“내가 어머니 얘기를 선배에게 했었나요?”
“민정씨가 수습일 때였지? 근무 시간에 어머니 전화 받고 집에 급하게 갔던 적 있잖아.”
*
그녀가 P복지재단에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되었을 때였다. 예순 살인 어머니를 예순다섯 살인 아버지가 주먹으로 때려 고막이 터진 적이 있었다. 오전 열시쯤 전화를 걸어온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않고 울먹이기만 했다. 불안해진 그녀는 영미 선배에게 허락을 구하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와 인천 집으로 향했다.
핏자국이 선명한 귀를 손으로 감싸고 부엌 바닥에 엎드려 있던 어머니가 흐느껴 울며 말했다.
“정말이 네 아버지하고 그만 살고 싶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던 아버지는 중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아내가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집안의 모든 결정권과 경제권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어머니는 생활비를 받아 쓰며 매달 숙제 검사를 받듯 아버지에게 가계부 검사를 받았다. 마음에 드는 스카프 한 장 살 여윳돈조차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주지 않았다.
그녀는 일찌감치 결혼해 분가한 오빠들에게 알리지 않고 부모의 이혼을 준비했다. 시청역 근처 이혼 전문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이혼 상담을 받고, 이혼소송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혼할 경우 아버지의 재산과 연금의 일부를 위자료로 받을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어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생 자신의 명의로 된 통장 하나, 신용카드 한 장 가져보지 못한 어머니였다.
파자마 차림으로 거실 소파에 파묻혀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그녀는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어머니는 식탁에서 가만가만 손을 놀려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서너 종류의 견과류가 그득 담긴 유리 그릇으로 손을 뻗던 아버지가 이혼 서류를 흘끔 쳐다보았다.
“두 분 이혼 서류에요.”
“뭐?”
“아버지하고 어머니, 두 분 이혼 서류요. 어머니가 이혼을 원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의 얼굴이 금세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합의 이혼이 어려울 경우 소송을 알아보려 한다는 그녀의 말에 흥분한 아버지는 유리 그릇을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그릇이 산산조각 나며 그 안에 담겨 있던 견과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사십 년……. 사십 년으로도 부족해요?”
그녀는 아버지에게 따져 물었다.
“뭐?”
“사십 년을 욕하고 때리고 노예처럼 부리며 산 걸로 성에 안 차세요?”
“내 덕에 사십 년 동안 세상 무서운 거 모르고 호의호식하며 산 줄 알아야지!”
“아버지가 그렇게 나오시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네 어미 년이 시키던!”
아버지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손아귀에서 놓여나려는 그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술이 터져 피가 턱을 타고 흘렀지만 극도로 흥분한 아버지는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녀의 머리채를 놓아준 것은 비명 섞인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서였다.
“때리지 말아요……!”
손에 식칼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의 어깨가 심하게 떨렸다.
“내가…… 내가 잘못했으니까, 때리지 말아요.”
터져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그녀는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때리지 말아요. 다 큰 애 얼굴에 멍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이혼하는 날이 네 어미 년 제삿날인 줄 알아라!”
아버지는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어머니와 그녀를 흘겨보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식칼을 손에 들고 떨며 서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엄마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엄마가 뭘…….”
“나 때문에…….”
“엄마는 아무 잘못 없어……. 그러니까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그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반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다. 시험 기간이라 아버지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집에 와 있는 줄 모르고. 어머니는 그녀가 친구를 집에 데려오면 감자를 가안에 갈아 감자전을 부쳐주거나, 야채튀김을 만들어주었다.
그날따라 마당에도, 부엌에도, 마루에도 어머니가 없었다. 선풍기가 마루에서 저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엄마, 하고 부르려는데 꼭 닫힌 안방 문 너머에서 짓눌리고 으깨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버지가 쥐약 먹은 개처럼 눈에 파란 불을 켜고 발광할 때마다 어머니는 잘못했다고 빌고 빌었다.
그녀는 이혼소송을 준비하며 어머니와 단둘이 살 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그런데 이혼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뜻밖에도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소송을 맡아줄 변호사를 만난 자리에서 어머니는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결혼생활에 대해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던 변호사는 난감해했다. 이혼소송을 청구하려면 누구보다 당사자인 어머니의 의지가 중요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나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냉면 전문 식당에서도 어머니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희멀건 육수에 담겨 나온 냉면 가락을 말없이 건져 먹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녀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실은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엄마, 아버지하고 이혼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
“엄마가 그랬잖아. 아버지하고 이혼하는 게 소원이라고.”
“모르겠다…….”
“왜 몰라?”
“그러게…….”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던가. 엄마가 시장에 장 보러 갔다가 달리아 화분을 하나 사왔는데, 아버지가 돈을 함부로 쓴다며 초등학생 혼내듯 엄마를 혼냈잖아. 그때 엄마가 그랬잖아. 나만 크면 식모살이를 해 먹고사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하고 이혼하겠다고…….”
눈빛을 흐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스스로가 이혼을 원하지는 원하지 않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지경까지 어머니가 가버렸다는 걸. 자신의 기분과 감정이 어떤지조차 모르는 지경까지 어머니 가버렸다는 걸.
그녀는 유치원 선생이 아이에게 묻듯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지금 감정이 어때?”
“응……?”
“엄마가 지금 느끼는 감정 말이야. 슬퍼?”
“.......”
“행복해?”
“.......”
“아니면 화가 나?”
“......”
“막 화가 나지 않아?”
“모르겠어…….”
“화가 나 미칠 것 같지 않아?”
그러나 화가 나 미칠 것 같은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녀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이혼을 간절히 원하는 한 여자를 알았다.
항암 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 알게 된 여자로, 여자의 남편은 신도가 이천 명이 넘는 교회의 목사였다. 그는 늘 자신의 아내가 목사 사모로서 믿음과 기도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신도들 앞에서 목사 사모로서 품위가 떨어지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고 판단하면 아내를 조용히 목사실로 불렀다. 창 블라인드를 내리고 문을 잠근 뒤 손바닥으로 서너 차례 아내의 머리를 때렸다.
여자가 유방암에 걸렸다고 고백하자 남편은 대뜸 믿음과 기도가 부족해서 벌을 받는 거라고 비난했다.
당장 이혼하지 않으면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심할 때면 일이 분 간격으로 반복되는데도 여자는 이혼을 못했다.
여자에게 이혼은 간단하지 않았다.
남편과의 이혼이 이천 명이 넘는 신도들과의 이혼이기도 해서.
모태에서부터 믿은 신과의 이혼이기도 해서.
여자는 믿음과 기도가 부족해 자신이 벌을 받는 것이라는 남편의 비난에서 헤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
얼마 전 그녀는 여자에게서 암이 척추로 전이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
강일구씨, 임순임씨-
노인이 끙 소리를 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옆에 있던 노파도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일어선다.
노인이 한쪽 다리를 약간 절며 문이 아니라 책상 쪽으로 걸어간다. 책상을 지키고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무언가를 묻는다.
“들어가셔서 판사님께 말씀하세요.”
“......내가 할말이 있다니까!”
“글쎄, 판사님께 말씀하세요.”
노인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노파는 그새 문안으로 들어가버리고 없다.
“자그마치 오십삼 년이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철식의 고개가 그녀를 향했다.
“오 년도, 십 년도 아니고……. 오십삼 년을 부부로 산 거야.”
그녀와 대각선으로 앉아 있는 여자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킨다. 구둣발 소리를 울리며 복도로 나간다. 조금 뒤 여자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대기실 안까지 들려온다.
“어디야? 어디냐니까? 당장 택시 타고 와. 소송까지 가야겠어? 약속했잖아. 순순히 이혼해주겠다고 애들 보는 데서 각서까지 썼잖아! 평생 미친개처럼 내 치맛자락 물고 안 놔줄 작정이야?”
여자의 목소리는 흐느낌에 가깝다.
이혼소송을 청구해서라도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를 분리시키려던 그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녀의 끈질긴 설득에 어머니는 더듬더듬 말했다.
“너 결혼도 시켜야 하고, 부모가 이혼했다고 하면 남자 쪽 집에서 볼 때 흉이 될 테니까…….”
“엄마, 엄마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더는 엄마를 도울 수 없어…….”
몇 달 뒤 그녀는 직장 근처에 원룸을 얻어 집을 나왔다. 용달차를 불러 자신의 짐들을 원룸으로 옮기던 날,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마침내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연신 탄성을 토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에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녀는 뒤늦게 후회한다.
나도 더는 엄마를 도울 수 없다던 그 말을.
*
영동에 다녀오고 열흘쯤 지나 영미 선배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의 꿈을 꾸었다고 했다. 영미 선배는 꿈 이야기 대신에 감자탕집에서 일할 때 이야기를 덤덤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술 취한 남자 손님이 갑자기 그녀의 엉덩이를 더듬어와 소스라친 이야기를, 감자탕 냄비를 나르다가 쏟은 이야기를, 이혼한 여자인 걸 알고 주인 남자가 치근덕거려 곤란했던 이야기를.
“식당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지났어. 화장만 겨우 지우고 TV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쓰러지듯 잠이 들었어. 자다가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지면 여자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끝났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
“......”
“그즈음 조금 이르게 폐경이 왔거든…….”
감자탕집에서 일하던 영미 선배의 모습에, 광주 은미식당에서 일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조용히 겹쳐 떠올랐다. 감자탕 집에서 일하던 영미 선배의 모습도, 광주 은미식당에서 일하던 어머니의 모습도 본 적이 없는데도, 두 여자는 그녀를 매개로 조우해 하나의 실루엣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꿈에 내가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어…….”
“버스요?”
“팔이 없는 남자가 모는 버스였어. 버스 표지판도 없는 곳에 버스가 섰고, 민정씨가 버스에 올랐어…….”
그러곤 십여 초 동안 아무 말이 없던 영미 선배가 그녀에게 물었다.
“민정씨,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치매가 왔대.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릴만큼 악화된 여자를 여자의 남편이 극진히 돌보았고. 그런데 기억을 잃어가던 여자가 과거의 남편을 찾아갔대. 사십여 년 동안 자신과 함께 산 현재의 남편을 망각하고, 사십 년도 더 전에 헤어진 과거의 남편이 여전히 자신의 남편인 줄 알고…….”
“쉽지가 않네…….”
그것이 삼십 분이 넘는 긴 통화 끝에 영미 선배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십 년이나 지났지만 선배가 아직 이혼의 여진 속에 있구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오래 살기를 바랐다.
부디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를.
죽음뿐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아버지라는 한 남자에게서, 어머니라는 한 여자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런데 그녀의 생각은 틀렸다.
*
어머니의 일흔번째 생일날 철식은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녀가 선물한 연분홍색 블라우스를 입고 노란 국화 화분 앞에 앉은 어머니는 카메라 렌즈를 좀처럼 응시하지 못했다.
철식이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한 순간 어머니의 눈동자가 카메라 렌즈를 향했고, 철식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흑백사진 속 정면을 빤히 응시하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에 가까운 탄식을 내질렀다.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슬픈 얼굴이어서. 슬픔이 깊어지면 감탄을 자아낸다는 걸, 어머니의 얼굴이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다.
어머니의 사진을 앞에 놓고 그녀는 철식에게 물었다.
“악랄한 포주처럼 자신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의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어떤 걸까? 그런 여자들은 자신의 아이가 원망스럽고 저주스럽지 않을까? 더구나 아이가 아버지의 눈빛을 하고 있으면 그 아이가 끔찍하지 않을까?”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오빠들의 눈빛에서 그녀는 종종 아버지의 눈빛을 보고는 했다.
그녀 자신의 눈빛에서도.
삼십 년도 더 전, 아버지는 자신의 첫 차인 은회색 르망에 가족을 태우고 강릉 경포대로 떠났다.
그것은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풍이었다.
경포대 횟집에서 아버지가 주문한 광어회가 나오자 어머니는 깻잎을 한 장 얼른 집어 광어 대가리를 가리듯 덮었다. 광어 대가리가 아가미를 벌름거릴 때마다 깻잎이 숨을 쉬듯 들썩였다.
아버지는 광어회를 안주로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대관령 고개를 넘을 때였을까. 먹지처럼 캄캄한 도로 위에서 만난 푸른 야광의 눈동자를, 은회색 르망은 그대로 들이받고 내달렸다. 내내 아버지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던 어머니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액셀 위 아버지의 발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뒷좌석의 그녀에게도 느껴졌다.
은회색 르망이 터널을 통과할 때 어머니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주먹으로 운전대를 치며 소리쳤다.
“쌍년, 재수없게 울고 지랄이야!”
깻잎 밑에서 뛰고 있는 것은 아가미가 아니라 심장이었다.
어머니의 오그라든 심장이, 깻잎 밑에서 자맥질하듯 뛰고 있었다.
한때 그녀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이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 같은 망상에 시달렸다. 세상 모든 폭력의 근원이 아버지 같았다. 심지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폭탄 테러도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만 같았다.
*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던 날 철식이 그녀에게 물었다.
“나는 고아가 되는 건가?”
“고아?”
그녀가 되물었다.
“고아…….”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녀는 물었다.
“그게 마흔일곱 살이나 먹은 남자가 할 말이야?”
*
그녀의 바람대로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오래 살았지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의 몸과 영혼은 급격히 무너졌다. 고혈압과 뇌출혈이 한꺼번에 왔다.
어머니가 뇌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녀는 어머니 곁을 지켰다. 그녀는 자신 역시 유방암 수술을 받고 호르몬제를 복용중이라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이 불발로 끝난 뒤로, 그녀는 어머니와 화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 인용 병실에 어머니와 그녀 둘만 남겨졌을 때였다. 그녀는 젖은 가제 손수건으로 어머니의 손을 가만가만 닦고 있었다. 잠든 줄 알았던 어머니가 천장을 향해 눈을 뜨더니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아버지에게서 도망쳤었다…….”
“……언제요?”
“두 번이나…….”
“언제, 언제요?”
“결혼하고 일 년 못 돼서.”
새의 발처럼 앙상하고 섬세한 어머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친정 부모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욕을 해대고, 사람을 개돼지 취급하는 남자하고 도무지 못 살겠더라. 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빨래해 널고 집을 나와 김천 친정으로 갔지. 그 시절에는 인천서 김천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환할 때 나섰는데 해가 떨어져서야 친정 대문에 들어섰으니까. 못 살겠어서 왔다고 했더니 네 외할머니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더라……. 그런데 글쎄, 네 아버지하고 나를 중매 선 당숙모가 어떻게 알고 나 몰래 네 아버지한테 연락을 했지 뭐냐. 내가 친정에 와 있다고…….”
“그리고 또 한번은요?”
“네가 태어나기 전해에…… 그때 네 큰오빠가 열 살, 네 작은오빠가 아홉 살이었지. 네 할머니한테 네 큰오빠하고 작은 오빠를 맡기고 집을 나와 무작정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눈치가 이상했는지 네 할머니가 묻더라. 어딜 가느냐고. 시장에 조기 몇 마리 사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는 데 떨려서 네 할머니 눈을 똑바로 못 보겠더라. 터미널로 가 되는대로 고속버스 표를 끊었는데 그게 전라도 광주행 표였다……. 막상 광주에서 내렸는데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 터미널 근처를 배회하다가 백반 전문 식당에 들어가 일 좀 하게 해달라고 했더니, 주인 할머니가 그러라고 하더라. 식당 이름이 은미……. 은미 식당이었다. 네 오빠들이 보고 싶어서 밤마다 울면서도, 네 아버지가 싫고 무서워서 집에 가고 싶지 않더라…….”
때마침 수술을 마친 환자가 병실로 돌아오는 바람에 어머니의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간호사가 환자 보호자에게 일렀다.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가 도로 잠들지 못하게 옆에서 계속 깨우라고. 환자 보호자는 반백의 자그마한 남자로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여보, 눈 좀 떠봐. 여보, 여보...... 고생했어...... 여보, 눈 좀 떠...... 수술은 잘됐대...... 아주 잘됐대......”
부러움이 담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입이 가만히 다물렸다.
어머니는 퇴원 후 아들 집으로도, 딸 집으로도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3
한 달이라는 이혼 숙려 기간 중에 철식은 조선소가 있는 남쪽 도시에 다녀왔다.
밤 아홉시쯤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 외출한 그는 자정이 넘어서야 그녀에게 문자메시지를 한 통 보내왔다. 급한 일이 생겨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남쪽 도시로 내려가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사흘이 지나서야 남쪽 도시에서 돌아온 그는 홀연히 날아든 새처럼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식빵 봉지와 오백 밀리리터 우유, 땅콩잼이 식탁 위에 널려 있었다. 그 옆의 탁상시계는 새벽 두시 십오분을 지나고 있었다.
“허기가 져서......”
그가손에 든 식빵을 들어 보이며 허탈하게 웃었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았는지 턱 주변이 거뭇거뭇했다. 냉장고에서 꺼냈을 식빵은 유통기한이 지난데다 차갑고 딱딱할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늘 그렇게 홀연히 돌아와 있고는 했다. 주로 깊은 밤이나 새벽에 돌아와서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을 걸 찾았다.
그녀는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만두가 있는데 쪄줄까?”
“그럴까…….”
그녀는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 찜통에 올렸다. 가스불을 켜고 전기포트에 물을 부었다.
전기포트에서 물이 끓어오를 때 그가 말했다.
“강인구씨가 죽었다는 소식이 왔어…….”
그녀는 전기포트 속 물을 머그잔에 따르며 강인구라는 이름을 중얼거려보았지만, 자신이 아는 사람들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가 누구지?”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 내 모델이 되어주었던.”
그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아내라는 여자가 내 연락처를 수소문해 연락을 해왔지 뭐야. 영정으로 쓸 사진이 필요한데 내가 찍은 사진을 줄 수 없겠느냐며.”
그러니까 그는 강인구라는 남자의 영정 사진을 그의 아내에게 전해주기 위해 남쪽 도시에 다녀온 것이었다.
“내려간 김에 발인까지 보고 올라오는 길이야.”
그녀는 재스민 티백을 넣은 머그잔을 듣고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육백 컷쯤 찍었을 거야, 그의 얼굴을……. 그가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기 위해 면접을 보던 날부터였으니까.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니며 얼굴을 찍고 찍었으니까. 구토가 나도록 그의 얼굴을 찍고 찍었으니까.”
암이 발생한 자신의 왼쪽 유방 주위에 방사선이 조사될 때, 그의 카메라 렌즈 초점이 강인구라는 남자의 얼굴에 맞추어져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조선소 하청업체 작업반장이 면접관이었어. 하청업체라 조선소 안에 별도의 사무실이 없어서, 구내식당에 딸린 매점에서 면접을 봤지. 작업반장이 그에게 물었어. ‘이 일을 얼마나 할 수 있겠소?’ 그가 아무 말이 없자 작업반장이 내 카메라 렌즈를 흘끔 쳐다보며 투덜거리더군. ‘별의별 인간이 다 있어서 말이지. 반나절만에 말도 없이 사라지는 인간이 있지를 않나, 작업복으로 갈아입자마자 못하겠다고 나가떨어지는 인간이 있지를 않나.’ 작업반장이 그에게 다시 물었지. ‘어떻게, 할 수 있겠소?’ 그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으로 면접이 끝났어. 기술은커녕 초보자인 그에게 주어진 일은 선박 내부 전로에 전선을 고정시키는 일이었어…….”
찜통에서 만두가 쪄지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 때문에 그녀는 자신들이 있는 곳이 휴게소 같았다. 새벽의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서 그와 마주앉아 있는 것 같았다. 탁상시계는 이제 새벽 세시를 지나고 있었다. 새벽 세시는 누군가에게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넘 늦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조금 뒤, 자신들은 차를 타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릴 것이라고. 날이 밝아올 즈음 터널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어. 미묘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아니었으면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손으로 쥐어뜯었을지도 몰라. 그는 넉 달을 버티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어. 넉 달 동안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나한테까지 말 한마디 없이.”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찜통 뚜껑을 열었다. 만두를 접시에 담아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얼굴에 집요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게 그는 자신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 자신이 어쩌다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는지조차 말하지 않았지. 그 누구하고도 친해지려 노력하지 않았어. 어느 날 밤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처럼 그는 철저히 혼자였어.”
푹 쪄진 만두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그가 말했다.
“어느 순간 그의 얼굴을 삼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의 얼굴을 삼키는 것 같은……. 못이 마흔 개쯤 박힌 것 같은 얼굴을.”
그는 만두를 입에 넣고 한없이 느리게 씹었다. 그녀는 그가 입속에서 씹고 있는 게 강인구라는 남자의 얼굴 같았다. 그의 입을 벌리면 처참하게 으깨진 그 남자 얼굴이 침과 뒤범벅되어 들어 있을 것 같았다.
“영정 사진으로 쓸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그의 아내를 만나고 나서야 그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어. 사진만 전해주고 올라오려고 했는데, 빈소가 너무 썰렁해서 그럴 수가 없겠더라고. 누님 두 분이 계신데, 오래전에 독일로 이민을 떠났다고 했어. 발인 전날 그의 아내와 잠깐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어. 내가 자신의 남편과 무척 각별한 사이인 줄 알았을거야. 내내 빈소를 지켰으니까 그런 오해를 할 만도 하지. 그 여자가 내게 묻더군. 자신들이 별거중인 걸 알고 있었냐고.”
“그들 부부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어……?”
“결혼 십 년 차까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부였다더군. 그때만 해도 강인구씨는 굴지의 제철회사에 다녔었대. 쌍둥이 아들이 여섯 살 되던 해 그 여자가 아들들을 데리고 이 년 계획으로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그런데 그 이 년 사이에 제철회사에 여러 일이 있었나봐. 계열사들을 인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해고가 있었는데, 그 일을 그가 해야 했던 모양이야. 계열사 공장 근로자를 삼백 명 가까이 해고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자살을 했고. 자살한 근로자의 아내가 돌도 안 지난 아이를 업고 그를 찾아왔었나봐…….”
철식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녀는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남편이 백팔십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했어. 그 여자가 그러더군. 자신과 아이들이 호주에 있을 때 새벽 두시쯤 남편이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다고. 남편이 앞뒤 설명도 없이 갑자기 호주로 이민 가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해와서 그 여자가 그랬대. 무슨 소리냐고, 정년퇴직 때까지 회사에 꼭 붙어 있으라고. 못해도 계열사 이사 자리까지는 올라가야 하지 않겠냐고. 아이들과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면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이나 하라고.”
“자신의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여자는 몰랐으니까…….”
그 여자를 두둔하는 말이 저절로 그녀의 입에서 중얼거려졌다.
“사표를 내고 퇴직금으로 주식 투자를 했다가 고스란히 날렸나봐. 앞집에서 경비실에 신고할 만큼 부부싸움을 크게 한 날, 남편이 가족사진을 전부 불태웠대. 욕실 문을 잠그고 세면대에서 한 장 한 장 전부…… 결혼식 때 찍은 사진까지…….”
“그래서 사진이 없었던 거구나.”
“그러게.”
“다행이네. 당신이 찍은 사진이 있어서…… 당신이 찍은 사진이 그의 영정 사진이 되어주어서.”
그녀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남쪽 도시를 생각하는 사이에,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골목 어느 집 부엌에서인가 압력밥솥 추가 요란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식이 혀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듯 물었다.
“이혼을 꼭 해야겠어?”
“그 말……. 그 말 때문이야…….”
“무슨?”
“영혼…….”
*
그녀가 이혼 얘기를 처음 꺼낸 것은 삼 년 전 겨울이었다. 호르몬제를 복용할 때로, 불면증이 심해져 그녀는 삼십 분 이상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한파 경보가 내려진 날 직장에서 송년 회식이 있었다. 자정 즈음 귀가한 그녀는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철식의 휴대 전화로 스무 통 넘게 전화를 넣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그의 연락을 기다리며 빌라 계단에서 떨던 그녀는 이십사 시간 하는 롯데리아를 찾아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사흘 전 시사 잡지의 기획 특집에 실릴 사진 의뢰를 받고 경북 밀양으로 촬영을 떠난 그는 그날 집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롯데리아 통유리 너머 텅 빈 횡단보도를 바라보며, 그녀는 결혼한 지 일 년쯤 돼 들어선 아이를 유산했을 때도 그가 곁에 없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욕실 천장에서 물이 샌다며 밤늦게 아래층 남자가 쫓아 올라왔을 때도, 보일러가 고장나 수리 기사를 불러야 했을 때도, 전세 기간이 다 되어 새로 이사 갈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동안에도, 유산 후 임신이 되지 않아 산부인과에서 불임 상담을 받기로 예약되어 있던 날에도.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녀는 그에게 묻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회적 약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고통을 낱낱이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그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의 고통에는 어떻게 그렇게 무감각할 수 있는지.
새벽 여섯시에야 연락을 해온 그는 전화가 걸려온 걸 몰랐다고, 며칠 더 그곳에 머물 계획이라고 통보하듯 말했다. 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는 술기운도, 잠기운도 묻어나지 않았다. 열흘 뒤에야 집에 돌아온 그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는 자신과 한마디 상의 없이 현관 자물쇠를 자동키로 바꾼 것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았다.
이혼을 원한다는 그녀의 요구를 그는 번번이 묵살했다. 혀가 꼬이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 밤, 마침내 따지듯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 무엇을 위해 시를 쓰지?”
“무슨 말이야?”
“시 말이야. 무엇을 위해 쓰지? 응?”
그녀가 차가운 침묵으로 일관하자 감정이 격해진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아니었어?”
“영혼……? 나는 당신과 이혼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러니까 날 버리겠다는 거 아니야?”
“버리다니? 누가 누구를?”
“네가, 나를!”
“나는 지금 당신을 버리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당신과 이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닌가?”
“억지 부리지 마!”
“네가 날 버리는 건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므로 앞으로 네가 쓰는 시는 거짓이고, 쓰레기야.”
*
그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가 그녀를 데리고 김천 외갓집에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생일이기도 하던 그 날, 아버지는 마침 학교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어머니는 김천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시장에 들러 미역과 소고기, 잡채 거리, 조기 몇 마리를 샀다.
그녀가 마당에서 혼자 사방치기를 하며 노는 동안 어머니는 부엌과 수돗가를 종종걸음으로 오가며 음식을 만들었다.
소고기미역국과 잡채와 노릇노릇 구운 조기가 올라온 생일상을 가운데 두고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그녀, 그렇게 세 여자가 둘러앉았다.
외할머니 손에 숟가락을 들려주며 어머니가 말했다. 오늘 자신을 낳느라 고생했으니 배불리 드시라고. 그러니까 어머니는 자신의 생일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낳느라 고생한 외할머니를 위해 생일상을 차린 것이었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다 말고 외할머니가 문득 눈빛을 흐리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앞산 너머 너머 마을에 두 다리가 없는 여자가 살았단다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가 없는 여자였다……. 혼기가 차도 아무도 데려갈 생각을 안 하자 늙은 홀아비가 다리 없는 여자를 데려다 살았단다. 다리만 없다뿐이지 여자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억센지, 남편이 지게에 져 밭에 데려다놓으면 하루종일 두 손을 호미 삼아 밭을 맸단다. 남편은 또 얼마나 위하는지 이가 버글버글하던 늙은 홀아비 얼굴에 때깔이 났지. 부부로 여섯 해를 살았을까? 일곱 해를 살았을까? 육이오 난리가 났지 뭐냐……. 난리통에 군인들이 마을에 나타나 빨치산을 소탕한다고 마을 사내들을 죄다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 어스름이 질 즈음 산에서 콩타작하듯 총소리가 들려왔지. 날이 밝고, 군인들이 마을을 떠난 뒤에야 여자들이 자식들을 이끌고 산으로 올라갔단다. 산천이 뒤흔들리도록 통곡하며 남편의 시신을 떠메고 내려왔지. 다리가 없는 여자는 자식을 못 낳았단다. 자식이라도 하나 있으면 산에 올라가 아버지 시신을 찾아오라고 시킬 텐데 말이다……. 속만 태우던 여자는 두 팔로 기어서 산에 올라갔단다. 시신들 속에서 피범벅인 남편의 시신을 찾아내 한 팔로 남편의 목을 끌어안고 다른 한 팔로 기어서, 기어서 산을 내려왔단다…….”
“미역국이 다 식겠어요, 어서 드세요.”
묵묵히 조기 살점을 바르던 어머니가 말했다.
미역국에 만 밥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외할머니가 한탄했다.
“부부가 그렇게 무서운 거란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스물여섯 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와 부부로 함께 산 햇수는 고작 육 년이었지만,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낸 햇수는 삼십구 년이었다.
외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그녀는 스무살 넘어, 육이오 전후 민간인 집단 학살을 기록한 책에서 읽었다. 외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와 책에 기록된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육이오 전쟁통에 마을 사내들이 빨치산으로 몰려 국군에 의해 집단 학살을 당하고, 다리를 쓰지 못하는 여자가 팔로 기어서 남편의 시신을 수습해온다는 큰 줄거리는 같았다.
이혼을 고민할 때 그녀를 가장 혼란스럽게 한 사람은 철식도, 어머니도 아니었다. 외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속 다리가 없는 여자였다.
4
불멸할 것 같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 그녀는 생각했다.
신이라는 존재가 잇다면, 그 신은 아버지에게 가장 존귀한 사람을 보내주었다고. 그런데 아버지가 그 사람을 가장 비천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아버지의 빈소가 차려지고 문상객들이 몰려오기 전, 그녀는 불현 듯 생각나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광주 은미식당에는 얼마나 있었어?”
“다섯 달이 조금 못 됐지……. 글쎄, 네 아버지가 식당으로 쑥 들어오지 뭐냐……. 남색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손으로 주렴을 걷으며 들어서는 네 아버지를 보고 기겁을 했지. 지금도 주렴 소리만 들리면 그때가 떠올라 심장이 벌렁거린다. 집 나와 떠돌던 개가 주인한테 붙들려 끌려가듯 네 아버지한테 꼼짝없이 붙들려 집으로 끌려왔지……. 그러고 얼마 안 돼 네가 들어섰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은미식당을 네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네 외할머니한테도 내가 있는 데를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서……. 나는 그게 늘 수수께끼였다. 죽기 전에 네 아버지한테 물어본다는 걸 못 물어봤지 뭐냐…….”
어머니에게는 광주 은미식당으로 숨어든 자신을 아버지가 찾아낸 것이 수수께끼였지만,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 어머니가 서럽게 울던 게 수수께끼였다.
발인 전날, 어머니가 아버지의 영정 앞으로 가더니 그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명주실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좀처럼 그치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그녀가 따지듯 물었다.
“엄마, 왜 울어?”
“불쌍해서…….”
“누가? 누가 불쌍해?”
“불쌍해…….”
*
지난밤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비난을 들은 뒤로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그러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았다.
그가 한 말이 여전히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걸. 오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걸.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자신이, 자신의 영혼조차 어쩌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이혼이 나는 통과의례 같아. 나도, 당신도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시속 백이십 킬로로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만난 터널처럼…….”
“그래…….”
“나는 이혼이라는 통과의례가 내게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
“그래야겠지…….”
“당신에게는 더더구나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고 바라…….”
“그래, 그래야겠지…….”
*
스피커에서 남녀 이름을 호명하는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철식과 그녀는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킨다.
“우리가 마지막인가?”
철식이 문 쪽으로 발을 내디디며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묻는다.
입속이 메말라 침을 모으던 그녀가 대답한다.
“아니, 저쪽에 한 쌍이 더 있어.”
<분석>
인물
1. 민정(그녀)
-이혼을 앞두고 있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 자랐고 어머니에게 동정심을 품고 있다. 시인이지만, 철식의 영혼 운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시를 더 쓰지 못하고 있다.
2. 철식
-사진작가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담아내는 일을 하지만 아내의 아픔에는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 이혼을 하려 하자 그녀를 비난하고 이기적인 면모를 다수 보인다.
3. 어머니
-가정폭력을 당하며 53년을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결국 이혼은 하지 못했다.
4. 아버지
-어머니를 수시로 폭행하며 무시했다. 고등학교 교사이며,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이다.
5. 영미 선배
-민정의 직장 선배였으나, 10년 전 이혼을 하고 직장동료와의 추문으로 회사에서 잘린다. 다른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으나 이혼 경력이 큰 영향을 미쳤는지 번번이 실패했다. 감자탕 집에서 청소 일을 한다.
줄거리
민정은 철식과 이혼하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있다. 민정은 자리에 앉은 채 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이혼을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을 보며 민정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떠올린다.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이혼을 하지 못했던 어머니, 이혼한 뒤 직장동료와 생긴 추문에 잘린 영미 선배, 유방암이 척추까지 전이되어버린 목사의 아내를 떠올린다. 그들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남성과 단절하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렇지 못하거나 그렇게 하였어도 불행한 결과를 얻었다. 대기실에서 그들을 떠올리던 민정이 이혼을 하기 위해 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소설은 끝난다.
대표 문장
“쉽지가 않네…….”
언젠가 전화 통화 끝에 영미 선배가 혼잣소리처럼 내뱉은 말을 그녀는 얼떨결에 중얼거린다. 온전한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말을 여자가 알아들었을 것 같다.
여자의 입술에 경련이 일더니 벙긋 벌어진다.
“그러게, 쉽지가 않네…….”
여자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그녀는 눈시울이 당기도록 눈을 크게 치켜뜬다.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던 날 철식이 그녀에게 물었다.
“나는 고아가 되는 건가?”
“고아?”
그녀가 되물었다.
“고아……”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녀는 물었다.
“그게 마흔일곱 살이나 먹은 남자가 할 말이야?”
지난밤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난을 들은 뒤로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그러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았다.
그가 할 말이 여전히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걸. 오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걸.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자신이, 자신의 영혼조차 어쩌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이혼이 나는 통과의례 같아. 나도, 당신도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시속 백이십 킬로로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만난 터널처럼……”
“그래…….”
“나는 이혼이라는 통과의례가 내게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
“그래야겠지…….”
“당신에게는 더더구나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고 바라…….”
“그래, 그래야겠지…….”
플롯
<서술시간>
1. 고등학교 시절에 그녀는 이혼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대상은 아버지였다.
2. 그녀는 철식과 204호 대기실에 앉아있다. 대기실은 이혼 처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3. 칠 년 전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호르몬제를 복용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남편인 철식은 사진을 찍으러 다니느라 집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4. 호르몬제를 복용하던 때 사진작가 최의 전시회에서 그의 아내를 만난 적이 있다. 최는 시정잡배였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아들처럼 생각하라고 그녀에게 조언해준다. 형수님을 좀 보라는 철식에게 그녀는 내게 강요하지 말라고 말한다.
5. 대기실에서 그녀는 대각선에 앉아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대기실에 들어오기 직전 그녀는 화장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6. 재작년 여름, 영미 선배를 만난다. 영미 선배가 십 년 전 회사에서 쫓겨난 뒤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는다.
8. 어머니는 몇십 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다. 그녀는 어머니의 이혼을 준비하고 이혼 서류를 아버지에게 내밀지만 아버지는 화를 내며 그녀를 폭행한다.
9. 그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폭행했다. 우연히 마주한 광경이었다.
10. 그녀는 어머니의 이혼소송을 준비하지만,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녀는 어머니를 보며 한 교회 목사의 아내를 떠올린다. 그는 가정폭력을 겪고 있으나 두려움에 이혼을 하지 못하고, 결국 유방암은 척추로 전이되었다.
11. 대기실에서 노인과 노파가 문 안으로 들어간다. 대각선에 앉은 여자의 전화 소리가 들린다. 제발 이혼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12. 어머니의 의사로, 그녀는 어머니를 이혼시키려는 걸 포기하고 집을 나온다. 어머니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13. 재작년에 영미 선배를 만나고 열흘쯤 지나서 전화가 걸려온다. 영미 선배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준다.
14. 어머니의 일흔 번째 생일에 철식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깊은 슬픔이 담겨있어서 그녀는 죄책감을 느낀다.
15. 삼십 년도 더 전에 그녀의 가족은 소풍을 갔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고 들짐승을 치어죽이고 어머니는 옆에서 흐느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16.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던 날 “나는 이제 고아가 되는 건가.” 철식이 말한다. 그녀는 분노한다.
17.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는 고혈압과 뇌출혈로 쓰러진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결혼 후 아버지에게서 도망쳤던 이야기를 해준다.
18. 이혼 숙려기간에 철식은 남쪽 도시로 내려갔다 온다. 갔다 온 철식은 강인구 씨가 죽었다는 말을 한다. 강인구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6개월 동안 철식의 모델이었다.
19. 그녀가 이혼 얘기를 처음 꺼낸 것은 3년 전이었다. 철식은 그녀의 고통에는 그렇게 무심했다. 그녀가 불면증을 앓을 때도, 유산했을 때도. 그녀의 이혼 요구에 철식은 그녀를 비난한다.
20. 그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어머니와 김천 외갓집에 간 적이 있었다. 밥을 먹던 중 할머니는 다리 없는 여자 이야기를 해준다. 다리 없는 여자는 산을 기어 올라가서 한쪽 팔로 남편시체의 목을 안고 내려왔다.
21. 아버지가 죽던 날, 그녀는 우는 엄마를 보며 의아해한다.
22, 지난밤, 그녀는 철식에게 나는 너를 구원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23. 스피커에서 둘의 이름을 부르고 철식과 그녀는 몸을 일으킨다.
<이야기 시간>
20. 그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어머니와 김천 외갓집에 간 적이 있었다. 밥을 먹던 중 할머니는 다리 없는 여자 이야기를 해준다. 다리 없는 여자는 산을 기어 올라가서 한쪽 팔로 남편시체의 목을 안고 내려왔다.
9. 그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폭행했다. 우연히 마주한 광경이었다.
15. 삼십 년도 더 전에 그녀의 가족은 소풍을 갔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고 들짐승을 치어죽이고 어머니는 옆에서 흐느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1. 고등학교 시절에 그녀는 이혼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대상은 아버지였다.
3. 칠 년 전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호르몬제를 복용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남편인 철식은 사진을 찍으러 다니느라 집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4. 호르몬제를 복용하던 때 사진작가 최의 전시회에서 그의 아내를 만난 적이 있다. 최는 시정잡배였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아들처럼 생각하라고 그녀에게 조언해준다. 형수님을 좀 보라는 철식에게 그녀는 내게 강요하지 말라고 말한다.
8. 어머니는 몇십 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다. 그녀는 어머니의 이혼을 준비하고 이혼 서류를 아버지에게 내밀지만 아버지는 화를 내며 그녀를 폭행한다.
10. 그녀는 어머니의 이혼소송을 준비하지만,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녀는 어머니를 보며 한 교회 목사의 아내를 떠올린다. 그는 가정폭력을 겪고 있으나 두려움에 이혼을 하지 못하고, 결국 유방암은 척추로 전이되었다.
12. 어머니의 의사로, 그녀는 어머니를 이혼시키려는 걸 포기하고 집을 나온다. 어머니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21. 아버지가 죽던 날, 그녀는 우는 엄마를 보며 의아해한다.
17.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는 고혈압과 뇌출혈로 쓰러진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결혼 후 아버지에게서 도망쳤던 이야기를 해준다.
14. 어머니의 일흔 번째 생일에 철식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깊은 슬픔이 담겨있어서 그녀는 죄책감을 느낀다.
19. 그녀가 이혼 얘기를 처음 꺼낸 것은 3년 전이었다. 철식은 그녀의 고통에는 그렇게 무심했다. 그녀가 불면증을 앓을 때도, 유산했을 때도. 그녀의 이혼 요구에 철식은 그녀를 비난한다.
6. 재작년 여름, 영미 선배를 만난다. 영미 선배가 십 년 전 회사에서 쫓겨난 뒤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는다.
13. 재작년에 영미 선배를 만나고 열흘쯤 지나서 전화가 걸려온다. 영미 선배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준다.
16.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던 날 “나는 이제 고아가 되는 건가.” 철식이 말한다. 그녀는 분노한다.
18. 이혼 숙려기간에 철식은 남쪽 도시로 내려갔다 온다. 갔다 온 철식은 강인구 씨가 죽었다는 말을 한다. 강인구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6개월 동안 철식의 모델이었다.
22. 지난밤, 그녀는 철식에게 나는 너를 구원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2. 그녀는 철식과 204호 대기실에 앉아있다. 대기실은 이혼 처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5. 대기실에서 그녀는 대각선에 앉아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대기실에 들어오기 직전 그녀는 화장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11. 대기실에서 노인과 노파가 문 안으로 들어간다. 대각선에 앉은 여자의 전화 소리가 들린다. 제발 이혼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23. 스피커에서 둘의 이름을 부르고 철식과 그녀는 몸을 일으킨다.
시공간의 집약
이야기 시간을 정리한 것을 보면 이 소설은 30년 이상의 매우 긴 시간을 담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민정이 대기실에 앉아서 회상하는 식으로 현재적 시간상황은 하루 이내의 시간으로 제한되어있다. 작가는 과거 상황은 필요한 만큼만 불러내어 현재 시간과 연계하는 형태로 서술시간을 재구성했다.
상징물
최의 사진‘릴리트’
릴리트는 유대 민간 설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이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흙으로 여자를 빚었다. 첫날 밤 릴리트는 아담의 밑에 깔리고 싶어 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이에 분노하여 릴리트를 지옥에 떨어뜨린다. 그 후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든다.
남성의 억압에 반대하여 지옥에 떨어진 여자의 이름을 지은 사진을 찍은 것이, 여자에 기대어 시정잡배 짓을 하는 최라는 것에서 그녀는 역겨움을 느꼈다. 그녀를 포함한 이 소설 속 이혼하고자 하는 여자들은 이를테면 릴리트로 볼 수 있다. 남성의 억압에 반대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주제
‘우리’라는 형태로 다른 두 개인을 억지로 묶는 사회에서의 탈피가 주제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있을 때 한 사람이 너무나 편안하다면 그것은 나머지 한 사람이 참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가정 안에서 고통받는 기혼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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