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서툰 것들의 환한 환생 – 박남준의 「흰 부추꽃으로」
Daum카페/ 이보다 더 아름다울순 없다...나! 부추꽃이거든..!!!!!!!!!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게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백남준, 「흰 부추꽃으로」
박남준 시인의 「흰 부추꽃으로」를 읽고 난 첫 느낌은 서늘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편의 시를 읽고 그런 느낌을 받기는 드문 일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는 소불이라고 불렀지만, 부추는 텃밭 귀퉁이에 흔전만전한 것이었다. 부추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부추꽃 피면 부추가 억세진다는 말을 들었고, 부추꽃 피면 꺾어 말려 삼베 주머니에 씨를 받기도 했다. 어머니는 해질녘이 되면 부추 좀 끊어오라는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오래 써 끝이 닳은 무쇠 칼을 쥐고 밭으로 가 한 줌씩 부추 밑동을 끊으면 손아귀에 잡히는 가지런한 부추 다발이 뿌듯했다. 그런 후 오래전에 밭 언덕에 져다 놓은 잿더미를 한 줌 부추밭에 뿌리면 며칠 새 부추는 또 우북우북 자랐다. 어머니는 부추를 추리고 씻어 간장 조금 넣고 고춧가루에 버무려 상에 올렸다. 입맛 거드는 반찬이 있을 리 만무한 까닭에 우그러진 양푼에 밥을 덜어 넣고 부추를 넣어 썩썩 비비고는 거칠게 한 입씩 크게 떠넘기면 그날 하루가 저물어가곤 했다.
그러던 부추가 한 편의 단단한 시가 되었으니, 이 시를 다 읽고 나서 등골이 서늘했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뒤늦게 허벅지를 꼬집어대며 크게 자책한 일이 있다. 소불에 관해서라면, 아니 부추에 관해서라면 나도 남들에게 밑지지 않을 만큼 알고 있는데, 그것이 시가 될 거라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이런 자책의 배후에는 시 「흰 부추꽃으로」를 향한 시기와 질투의 젊은 날이 놓여 있었다. 이 시는 견고하게 버티고 선 절벽 같았다. 이 시를 넘어서지 않고는 도저히 시의 길을 갈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붉은 원고지 칸칸에 베껴 썼고, 그것도 모자라 원고지 뒷면에 촘촘하게 필사했다. 읽어보기를 수차례, 낭송하고 암송하는 사이, 이 시는 “내 삶의 무거운 옹이”처럼 박혔고, 나는 숱한 습작의 밤을 헤매며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 앞을 서성거렸다.
그렇게 마음에 새겨두고 또 몇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술자리에서 박남준 시인이 「흰 부추꽃으로」를 낭송하는 것을 들었다.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라는 첫 구절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뱉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서러움에 복받쳤다. ‘서툴다’라는 말이 명치 끝에 박힌 것이다. 시는 써지지 않고, 삶은 지지부진하던 때였다. 읽고 쓰기를 몇 해째, 좌충우돌 세상에 이마를 맞대고 사느라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절뚝거”리는 나날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 시를 따라 읊으며 내 가슴 모서리 작은 텃밭에 푸르게 밀어 올린 흰 부추꽃을 생각했다. 너무 작아서 꽃인가 싶기도 하고, 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맑은 흰 부추꽃은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돋아난 별이었다. 그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이라는 구절을 따라 읊는데, 내 기억의 숲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상처받은 나무”가 되어 불길 속에서 활활 타올라 버린 친구의 죽음이었다.
내 등단작 「작은 손」의 아이디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삶을 마감했던 친구가 “흰 부추꽃 그 환환 환생”처럼 시의 언어로 피어났다. 겨울이었고, 장례식장 앞 주차장 구석에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장작 난로 앞에 고등학교 졸업식을 며칠 앞둔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 술을 마셨고 애도했고 울분을 토했다. 뜨거운 드럼통을 주먹으로 쳐대는 녀석을 뜯어말리는 소리가 캄캄한 하늘 저쪽으로 사그라졌고, 그때 거짓말처럼 하얗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흰 부추꽃 같은 눈을 맞으며 그 눈송이들이 죽은 친구의 얼굴인 양 손바닥으로 받아 안으면 눈송이는 손바닥을 적셨다. 발갛게 추운 젖은 손을 장작불 앞으로 밀어 말리면 막막했던 핏줄이 트이고 다글다글 끓어오른 피고 춥고 쓸쓸한 밤을 휘몰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슬픔을 덜어냈다.
이런 기억을 더듬어가며 나는 시 「작은 손」을 썼다. 아니, 사실은 머릿속 구석에 별처럼, 눈처럼, 하얗게 피어 있던 흰 부추꽃이 이 시를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 박남준 시인이 「흰 부추꽃으로」에서 무섭도록 절제하고 있는 삶의 불길과 “흰 재, 저 흰 재”에 묻어두고 있던 환한 “목숨”이 알 수 없는 열망을 타고 내 시로 건너왔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손」을 쓰면서 나는 젊은 날 무섭도록 몰입했던 죽음 충동과 「흰 부추꽃으로」에서 읽었던 삶을 향한 뜨거운 열기의 세례를 한꺼번에 경험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나는 시를 쓸 때마다 우리의 삶을 “환한 인생”으로 읽어내는 버릇이 있다. 이 땅에 숨 붙이고 살아가는 모든 서툰 것들도 한 번쯤은 그렇게 환한 목숨으로 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하는 것처럼, 캄캄한 밤하늘 아래 서툰 목숨이 있어 우리 사는 일이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쓸쓸하고 덜 고단할 거라고, 나는, 믿는다. < ‘그 시를 읽고 나는 시인이 되었네, 내 영혼을 뒤흔든 41편의 시(이종민 엮음, 모악, 2021.)’에서 옮겨 적음. (2024. 4.26.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