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루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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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가 겨우 100만 달러 밖에 안 들어간 초저예산 영화 [블루 발렌타인]은 작년 골든글러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이 건져 낸 수확이었다. 이 작품은 골든글러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이 거의 배급을 맡은거나 마찬가지다. 두 시상식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금세 묻혔을 가능성이 높았다. [블루 발렌타인]은 2010년 초에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돼 호평을 받긴 했지만 정식으로 미국 내 극장에서 배급된건 2010년 12월 마지막 주였다. 다음 해 열리는 골든글러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을 염두에 두고 연말 극장가의 막차를 간신히 탄것이다. 그렇게 해서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선 주연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가 남녀주연상 후보에 등극됐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미셸 윌리엄스가 여우주연상 부문에 올랐다.
깜짝 후보였다. 수상할 가능성은 낮았지만 오스카 후보 지명으로 이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었다. 마치 미셸 윌리엄스와 [블루 발렌타인]에서 공동 주연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이 2007년 [하프 넬슨]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것과 같이 당시 [블루 발렌타인]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는 극히 약했고 영화도 비평계 쪽에서나 눈여겨 봤지 거의 언급이 안 되고 있었다. 미셸 윌리엄스의 오스카 후보는 연기 잘 하고 가능성 풍부한 여배우를 키우고자 아카데미 측에서 선심을 쓴것이다. 그 덕에 이 작품의 배급이 좀 더 수월해졌고 흥행성적도 제작비의 9배를 벌어들이며 저예산 영화가 꿈꿀 수 있는 최종 단계까지 밟을 수 있었다.
원래 아카데미 시상식은 자국 영화제지만 워낙 이름값이 높은 시상식이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수용해 차별 없고 포용력 강한것처럼 보이길 좋아한다. 그래서 아카데미와 무관할것같은 [블루 발렌타인]같은 영화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고 아카데미 후보 효과도 봤다. 지금도 그렇지만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업계에서 주목 받았던 젊은 연기파 배우들이기 때문에 아카데미 측의 관심을 산건데 [블루 발렌타인]은 골든글러브에서와 달리 아카데미에선 미셸 윌리엄스만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라이언 고슬링의 호연도 잊어서는 안 될것이다. 두 배우의 연기로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 [블루 발렌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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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권태기 부부의 서먹하고 건조한 관계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이들에게도 과거 풋풋하고 설레였던 연애 시절이 있었다는걸 시종일간 교차 편집을 통해 전개시키고 있다. 현실에서 이 부부는 적대감에 가득차 서로를 멸시하고 차갑게 대하며 이 둘을 연결시키는 유일한 끈은 그들의 어린 딸 뿐이다. 딸을 통해서 서로에게 의견전달을 하며 딸이 없으면 제대로 대화조차도 나누지 못할 만큼 어색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결혼 전 둘은 정말로 사랑했고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둘은 열정적이었으며 아름답게 사랑했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가 채 되기 전에 임신을 계기로 결혼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생각만큼 잘 알지 못한다.
연애 기간은 짧았고 계급에서 오는 벽도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만 느껴진다. 여주인공 신디는 의사를 꿈꾸는 의학도였고 남주인고 딘은 고등학교도 못마친 빈민계층이다. 그는 브루클린 출신으로 결손가정에서 자라나 배움의 중요성보단 하루하루 먹고 사는게 바쁜 남자다. 변변한 직업이나 경력도 없이 일당제로 이삿짐 센터에서 일을 하며 현재는 술, 담배를 하루 종일 물고 사는 페인트 공이다. 영화는 남자주인공의 직업세계를 비교적 소상히 담아내고 있는데 의사를 꿈꾸다 결혼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현재는 간호사로 재직하고 있는 신디가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함에도 끝내 소통을 못하는 이유를 그간 살아온 환경과 직업과 연계하여 계층 갈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동물적인 감정과 감성에 충실하여 결혼하긴 했지만 남자는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빠가 되기를 처음부터 원치 않았고 여자는 학업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이를 가로막은게 여자의 임신인데 중요한건 애 아빠가 누군지 몰랐다는것이다. 여주인공의 남자관계가 복잡한데 초반에 여주인공이 같은 과 급우와 성관계를 나눌 때 실수로 남자가 질내 사정을 해서 예민하게 구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 마트에서 우연히 만나 어색하게 재회하긴 하지만 그 남자와는 남자친구라 할만한 관계는 아니고 단순히 즐기는 정도의 사이였던것같다. 여주인공이 낙태 시술을 받으려고 산부인과에서 상담을 받을 때 첫 경험이 13살이고 그 뒤 25명 정도와 남자 관계가 있었다고 털어놓는 장면이 있다.
여주인공이 대학 재학 중 결혼을 하는데 그럼 대충 7~8년 동안 25명의 남자와 잤다는거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캐리와 막상막하다. 남자 만나는거 보면 좀 헤펐던 편이고 진지하게 만난 남자관계는 별로 없었던걸로 보인다. 그러던 중 비슷한 시기에 딘과 관계를 나눴고 그 전에 같은 과 급우가 실수로 질내 사정을 했고 얼마 뒤 임신했다는것을 안다. 그래서 누구의 아이인지 감을 못잡은것이고 유전자 검사 확인할 생각은 하지도 않는것같다. 여주인공이 처음에 이를 딘에게 고백했을 때 딘 역시 만난지 얼마 안 된 사이였기 때문에 자기의 아이냐고 물어본것이다. 영화는 권태기에 접어드는 시기인 결혼 5~6년차 부부의 위기를 다루고 있으면서 이 둘이 정확이 어떤 계기로 사이가 멀어졌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분위기 잡으려고 러브호텔 가서도 부부관계를 하지 못하는 현재와는 대조적인 과거만을 조명하는데 서로를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주며 그리워하고 보듬어줬던 과거의 모습들은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애초 누구의 씨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준비 없이 결혼을 했던 만큼 결혼에 대한 환상과 안락함은 금세 산산조각이 났을것이고 가치관의 차이로 점점 불신감만 조장된것이라 추측된다. 각자 서로를 갈구하며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달라서 해소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것이다. 이들의 분노는 그래서 더욱 처연하다. 둘 다 나약하고 애처롭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를 제대로 미워하지도 못한다. 상대방에게 조금이나마 진심을 열면 금세 울음을 터뜨리며 기대고 싶어하는 유약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결국엔 끝장을 보고 후회를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가버려 파탄난 가정을 복구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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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감독 출신의 데릭 시앤프랜스 감독은 본인의 장기를 십분 발휘해 권태기 부부의 우중충한 일상과 갈등관계를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세련되게 포장했다. 시종일간 유럽풍 뮤직비디오를 보는 느낌인데 영상으로 집중시키는 힘이 크다. 크레딧은 편집 잘한 뮤직비디오 한편을 보는것같다. 특별히 예쁜 화면을 위해 별도로 신경쓴 부분이 없는데도 굉장히 깔끔하고 아름답게 찍었다.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의 사실적인 연기가 무엇보다 백미다. 재능있고 성실한 두 젊은 배우의 열연을 보는것만으로도 아깝지 않은 영화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이혼하는 부부들이 많다. 감독은 그런 부부들에게도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던것같다. 이혼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닌 할 수 밖에 없어서 하는걸 섬세하게 직조했다. 결국엔 아무런 해결도 내놓지 못하고 영화는 끝이 나지만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중첩시켜 관객들의 공감대를 사고 있다.
[블루 발렌타인]은 국내에서 지각 개봉을 한 영화다. 작년 유수의 영화제들에서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가 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도 인지도가 워낙 약해서 국내에서 개봉이 성사될거라고 생각 못했고 실제로 그 뒤에도 개봉 소식은 커녕 dvd로도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다른 영화들처럼 영화팬들 사이에서나 얘기가 오가는 영화가 됐는데 2년 만에 극장 개봉이 갑작스럽게 추진된 이유는 아마도 작년 한해 동안 라이언 고슬링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치솟았기 때문인것으로 파악된다. 라이언 고슬링은 그동안 국내 극장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배우는 아니었다. 그나마 제대로 개봉한 작품은 [노트북]정도였고 나머지는 개봉조차 못했다.
그러나 작년 한해 3편의 출연작을 모두 성공시켰고 그 중 두편이 국내 개봉을 했다. 외모도 신경쓰면서 각종 패션지에서 주목하는 배우가 됐으며 [드라이브]로 그의 진가를 재확인한 관객들이 많았고 dvd로만 나온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에서는 그의 스타성을 가장 멋지게 활용하여 팬을 늘렸다. 그 덕에 [킹 메이커]도 극장 개봉이 추진됐고 급기야 2년 전 출연한 [블루 발렌타인]은 CGV에서 라이언 고슬링 영화제란 이름으로 상영되기에 이른다. 오스카 후보 지명을 받았던 [하프 넬슨]은 뒤늦게 dvd까지 출시됐다. [블루 발렌타인]에선 그의 노래 실력까지 확인할 수 있으니 라이언 고슬링 팬들에겐 즐거운 선물이 될것이다. 라이언 고슬링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2008년, 2009년에 출연작이 없었던것도 음반 준비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룹을 만들어 인디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했고 라이브 공연에도 서면서 노래 실력을 증명했었다. [블루 발렌타인]은 라이언 고슬링 뿐만 아니라 미셸 윌리엄스도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로 많은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주연 배우들의 달라진 위상을 믿고 개봉이 이뤄진것같다.
출처 뮤지컬매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