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 산행기 * 일시: 2008년06월07일(이동/토요일)~08일(산행/일요일)//무박 * 제28 구간(백복령~석병산~삽당령 / 35구간중(36구간 예정:향로봉) * 모임장소: -광주블랙야크상무점:2008.06.07(토) 21:30 -문회예술회관후문경유:2008.06.07(토) 21:50
* 참석 인원: 44명 * 차량 운행: 대형 버스(45인승)1대. * 백두대간(白頭大幹)지도: 임계,삼척,묵호,구정 * 소 재 지: 강원 정선,삼척,동해,평창,강릉
* 산행지: 백복령-석병산-삽당령 // 18.50km
* 산행거리(죽령-고치령): 도상거리(17.0km), 실측거리(18.5km), 접속거리( ): 0.0km. * 구간 진행 거리(km)/소요시간(hr:min): 18.50km//05:06분 백복령<->5.4km/01:15<->생계령<->5.5km/01:33<->남봉/헬기장 <-> /00:33<->석병산(石屛山:1055.3m)-(6.3km/01:45)-삽당령 * 산행 총 소요 시간(hr:min) : 약 05:06분 소요 (03:50~08:56)/본인 약 05:00분/06:40분 소요 (선두/후미)
* 상세 진행 마루금(고도/진행 현시간): 백복령(=백봉령/780m/03:50)->임도 이정표(04:01):생계령/백복령-> 카르스트 지형(안내판/04:24)->생계령/이정표(640m/05:05):남봉(헬기장 908고지):5.5km/백복령:5.4km->강릉 서대굴(안내판/05:20) ->노송지대(05:30)->931m봉(05:54)->백두대간 (안내판/06:16) ->기뱅이재/이정표(=고뱅이재/06:27):옥계석화동굴(우 갈림길)-> ->남봉/헬기장/이정표(908m/06:38):석병산(=일월봉)/01:15분, 고뱅이재/00:10분->헬기장 이정표(07:03):일월봉(=석병산 정상)/00:15, 헬기장/01:00,상황지미골(우측 갈림길)/02:30-> 석병산 정상 갈림길 3거리 이정표/독도주의/07:10):일월봉 (우측=석병산 정상)/00:05분, 헬기장:01:10분,두리봉(좌측):1.4km -> 이정표/독도주의(석병산 입구/07:11):일월봉/우측(석병산 정상)/ 00:05분, 헬기장:01:10분, 두리봉(좌측):1.4km -> 석병산 정상(石屛山:1055.3m/07:11)->두리봉(1033m/08:00)-> 임도 이정표(08:50):삽당령:0.1km,두리봉:4.5km, 석병산:6.1km-> 삽당령(680m/08:56) : 강릉시 왕산면 (산행고도표) * 도로 경로:상무점(운천저수지)~문예회관 후문~서광주IC~호남 고속도로(25번)~ 논산 분기점/251고속도로~회덕 분기점/경부고속도로(1번)~남이 분기점/ 중부고속도로(35)~호법분기점/영동고속국도(50번)~진부IC~ 진부 59번 도로~정선 42도로/백복령
* 공동장비: 블랙야크 무전기 4대 * 개인 준비물: 우천대비(판쵸이,고어쟈켓,롱스패츠), 바람막이,모자/방수모,장갑,스틱 한 쌍,양말(우천시 여벌), 헤드랜턴(여벌 건전지),비상약,나침반,지도 간식(초코렛,치즈,육포,사탕,빵,떡,과일 등), 2끼식사(아침,점심), 목욕후 여벌 옷, 식수 2리터이상
* 날씨: 새벽: 별 총총, 달 둥실. 아침: 해 두둥실, 맑음 낮: 햇빛, 가시거리: 보통. 마루금 기온: 12℃(새벽)~25℃, 시원한 바람과 꽃바람이 교차한 마루금. * 총 소요 시간: 광주 출발: 토/22:00~광주 도착: 일/20:00 // (22:00/hr:min)
[산행기] * 백복령(=백봉령,780m/03:50): 강릉시 옥계면 강릉시 옥계면, 동해(32km),삼척(22km)과 정선 임계를 연결 하는 42번 도로(큰 재)로 정선방향으로 “아리랑의 고장 정선입니다”라고 쓰인 표지석이 높은 좌대위에 올려져 있는 모습이 흡사 인물상을 추상화한 듯하다. 강릉쪽 언덕마루에는 괴목, 뿌리 공예품 판매와 포장마차를 겸해서 운영하는 곳이 있는데 새벽이라 닫혀 있다. (백복령을 출발 하며....)
옛날 무거운 소금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 험준한 고개를 넘던 모습에서 백복령(百伏嶺)이 되었을까? 지금은 흰봉황재(白鳳嶺)로 불러지기를 바란다는 백봉령이다.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 '白伏嶺' 이라 포기되어 있는 백봉령은 42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위치가 변경되었다. 20여 년 전의 지도에는 '百伏嶺'(百伏은 온갖 것이 수그린다는 뜻)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85년에 간행된 <삼척군지(三陟郡誌)에는 百福嶺 . 옛 명칭은 희복현(希福峴), 일명 백복(白茯), 또는 백봉(白鳳)이라고도 하는데.... (중략), 높고도 험악하여 해발 922m이다'라고 되어 있다. 어쨌든 백두대간보전회는 어감에도 좋지 않은 '백복령'보다는 주민 정서에도 좋고 <택리지>에 근거가 있는 흰 봉황의 뜻인 백봉령(白鳳嶺)으로 부르기를 홍보하고 있다. 백복령의 이정표에 '780m'라는 높이는 42번 국도가 새로 포장되면서 정정된 것이다. (발췌:實戰 백두대간 종주산행) 오늘 산행은 북쪽에 위치한 자병산(872m)을 거처 다시 서쪽으로 내려와 북서 방향의 석병산(1055m)과 두리봉(1033m)을 향해 가야 하지만 자병산은 1978년부터 한라시멘트(주)에서 석회석 채석을 하느라 야금야금 갈아 먹기 시작해 지금은 자줏빛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와 백두대간 허리가 무지막지하게 잘라 주져 앉혀 버려서 갈수가 없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 어둠속에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할퀸 백두대간의 회복 불가한 상처를 모르척하고 지나 칠 수 있음이……. 눈물은 가슴속에 한없이 떨어지고 무거운 발걸음은 도망치듯 빨라만 진다. 자병산의 흐느낌인가?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자병산쪽 갈림길에서 바람소리 스산하고 나뭇잎들이 파리 쫓듯 인간들을 쫓는다. 345.000볼트의 42번 초고압 송전탑을 지난다(03:55). 초고압으로 전기를 보내야 중간에 새어나가는 전기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는데 자연생태 훼손이 이만저만 아니고 경관도 해치니 애물단지이지만 현제 어쩔 수 없는 기술적 한계인듯 하다. 사라진 대간 능선 좌측으로 세워져 있는 여러 개의 철탑(42,43,44,45번)을 지나 생계령으로 향한다. 어둠속에서 작은 봉우리(869m)를 넘어 내려오더니 임도를 만난다(04:01). -이정표(임도/04:01):생계령/백복령 임도를 건너 좌측 방향의 건너 산 능선을 향해 대간 들머리를 찾는다. 이곳이 군대가 아닌가 싶다. 다시 잡은 산 능선 들머리에는 야생화를 심어 명패를 설치했다. 명패 때문에 야생화는 순수성을 잃어 버렸다.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야생화가 아닌 화초가 되어 버린 꽃이라 사진에 담지는 않았다. 야생화는 바람과 함께 사진 속에 담겨야 향기와 자태가 있다. 화단 가운데 묘지가 있다. 숲속 오르막을 한 참 올라 임도를 만나고 계단길(돌계단/나무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기를 두 번으로 헬기장(796m)과 묘(756m)가 있는곳을 지났다. -임계 카르스트 지형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는 곳에 왔다(04:24). -카르스트 지형(안내판)- 고생대의 조선계 지층에 분포하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륨이 빗물과 지하수(이산화탄소를 포함한 물)의 작용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물에 용해됨(용식)에 따라 암석이나 지층이 침식되는 일종의 화학적인 풍화작용이다. 카르스트 지형의 가장 큰 특징은 지하에 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며, 때때로 거대한 석회암동굴(예: 종유동)과 표면에 “돌리네”라고 불리는 원형인 와지(움푹 패여 웅덩이가 된 땅)가 형성 된다는 것이다. 강원도의 삼척, 정선, 영월과 충북 단양 등지에 발달되어 있다 이곳은 특이한 지형이다. 능선이 움푹 꺼지는가(속칭:돌리네,쇠곳) 하면 서고동저 지형으로 오른쪽의 동쪽은 시커먹게 깊은 적벽이고 왼쪽의 서쪽은 완만한 지형이다. 나무뿌리에라도 걸려 오른쪽으로 넘어지면 비명횡사하기 십상이겠다. 발걸음이 자꾸 왼쪽으로 쏠린다. 5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어둠기가 많이 가셨다(04:50). 랜턴 없이도 충분한 밝기다. 새들이 일어나 함께 지져 긴다. 새들은 참으로 부지런 하다. 산사의 범종이 울리는 새벽 4시면 목탁소리와 함께 일제히 염불이라도 하듯 분주히 노래한다(흥국사의 새들....,). 756m봉의 내리막 좋은 길을 죽 내려오니 공터가 나타난다. 생계령이다. * 생계령(640m/05:05): 강릉시 옥계와 정선군 임계면 큰피원을 잇는 재로 산행 초입인 백복령(780m)보다 더 낮은 지대이다.
(생계령에서......,)
- 이정표(생계령:640m/05:05): 남봉(헬기장 908고지):5.5km / 백복령:5.4km 생계령 공터에 아침 엷은 빛이 덜 여문 풀잎에 앉는다. 14명이나 함께 왔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석병산은 6.25km 더 가야 한다. 873m봉을 향해 오르다 뒤돌아보니 어둠을 해치고 도망치듯 왔던 만신창이가 된 백두대간의 상처를 이른 아침 안개가 하얀 붕대인 듯 감싸고 있다(05:09).
(백복령쪽과 송전탑들.....,)
바람길을 막아섰던 송전철탑도 눈에 가시처럼 박힌다. 오르막길에 야생화가 이슬을 먹음 은채 색감이 부드럽고 깊다. 지금은 사진 속에 야생화의 색조를 다 담기에는 빛이 약하다. 색이 빛바래기 전인 이슬 마르기전까지가 가장 촉촉한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 강릉 서대굴 안내판 있는 곳에 왔다(05:20). -강릉 서대굴(안내판)- 강원도 기념물 제36호 소재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서대굴은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약 4억 8천만 년 전)에 퇴적된 조선누층군 석병 석회암 내에 형성되어 있다. 이 석회암지대에는 서대굴 외에도 옥계굴, 동대굴, 남대굴 등 수많은 석회동굴이 발달되어 있다. 석병산층은 주로 결정질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회암 내에는 변성작용의 영향으로 변성광물이 포함되어 있다. 서대굴은 전형적인 석회동굴로, 동굴의 총 길이는 약500m에 이른다. 동굴 내에는 수많은 작은 통로가 있으며, 주 통로의 길이는 약 300m이다. 동굴은 수평 통로와 수직 통로가 복합적으로 형성된 계단형 경사 동굴 이며, 동굴은 전체적으로 여러 층을 보이는 다층 구조로 발달해 있다. 동굴 내에는 종유석, 석순, 석주, 유석, 커튼, 곡석 등 여러 종류의 동굴 생성물이 성장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대규모로 발달한 휴석과 기형 종유석, 계란 후라이형 석순과 동굴방패는 서대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대굴에서 발견된 동굴생물은 총 19종이며, 이 중에서 갈르와벌레와 꼬리치레도롱뇽은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 노송지대(05:30)
(적송의 노송 지대)
-829m봉을 지나면 평지 길에 붉은 노송지대가 나온다. 낮게 퍼진 가지가 기형적으로 커서 기이한 나무도 있고, 쌍간의 두 갈래로 갈라져 부부처럼 오래도록 함께한 한쪽은 죽고 한 쪽만 살아 있어 다정한 노부부가 사별한 것 같아 자연 속에도 인간의 모습이 있는 듯하다. 왠지 귀천이란 천상병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 놀다가 구름이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 말하리라……. 기골이 장대하고 기품 있는 소나무는 장수의 기개와 군자의 덕이 힘 있게 느껴져 기를 흠뻑 느낀다.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총괄님의 걸음을 세우고 기념 하였다(05:30). 능선길이 완만하고 편하게 이어지는데 우측의 꺼진 절벽에는 아직 햇빛이 미치지 못해 시커멓게 밑이 보이지 않는다.(05:33) -922m봉을 오르기 위해 긴 돌 계단길을 힘들게 오른다(05:38).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 물은 한 번도 마시지 않았다. 길가 양쪽으로 야생화(천남성,피뿌리풀,산딸기,쥐오줌풀…….)가 많아 뒤에서 사진 찍느라 선두와 자꾸 멀어 진다. 봉우리에 올라 공터 비슷하게 하늘이 열리고 바로 931m봉 오르막이 짧게 이어 진다. * 931m봉(05:54): 날카로운 암봉에 이름 모를 관목인 조팝나무가 하얀 꽃을 만발 하였다. 가야할 능선 곳곳에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 조팝나무 꽃이 피면 농부들이 쟁기 매고 나와 논을 갈고 모내기를 하는 시기였다고 하는데 고지대라 지금 피는것 같다. 931m봉은 조망이 좋은 곳이다, 멀리 석병산 봉우리가 보인다. 거친 봉우리를 내려서 완만한 능선 길로 이어 지는데 여름에는 잡목과 풀섶이 여간 아니겠다. 키 큰 조팝나무 하얀 꽃이 한 마당 가득 피어 눈이 내린것 같다. 정말 많은 야생화가 있다. 초롱꽃도 한 무더기로 피어 있다. -백두대간 안내판을 지난다(06:16) -백두대간 (안내판)-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큰 산줄기로서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까지 단절 없이 1400km가 이어지며, 6개도 32개 시,군에 걸쳐 다양한 기후대와 1326종의 식물이 서식하는 생물종 다양성의 보고이다. 더불어 대륙의 동물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이동통로 역할을 하며, 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의 주요 발원지로서 자연생태계적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따라서 무분별한 훼손과 개발을 방지하고, 백두대간 본래의 개념과 가치를 유지 증진시켜 후손에게 미래의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있도록 효율적 보호 관리가 더욱 절실하다. * 기뱅이재(=고뱅이재/06:27) -이정표(기병이재/06:27): 석병산, 백복령/옥계석화동굴(우 갈림길) 우측 석화동굴 갈림길은 산계리 성황뎅이로 갈수 있다. 통행이 많은듯 길바닥이 깨끗하다. * 남봉/헬기장(908m/06:38):넓은 터를 가진 헬기장이다. -이정표(남봉/헬기장:908m/06:38):석병산(일월봉):01:15분, 고뱅이재:00:10분 -이정표(헬기장/07:03):일월봉(석병산 정상);00:15, 헬기장:01:00, 상황지미골(우측 갈림길):02:30 -이정표/독도주의(석병산 정상 갈림길 3거리/07:10): 일월봉/우측(석병산 정상);00:05분, 헬기장:01:10분, 두리봉(좌측):1.4km 여기서 두리봉은 좌측 내리막으로 가고, 석병산은 우측으로 가서 내리막 약간 가면 두 개의 암봉 사이에 서게 되고 바로 정상이다. 석병산 정상을 들렀다가 다시 원위치 하여 좌측의 두리봉쪽으로 가야 대간 능선이다. * 석병산(石屛山:1055.3m/07:11):강릉시 왕산면 /암봉, 정상 표지석,전망터.
(석병산 정상에서 두리봉쪽.....,)
-이정표/독도주의(석병산 입구/07:11):석병산(바로 위), 상황지미골(우측 갈림길):02:30분. 우측의 갈림의 내리막길은 상황지미골 방향으로 내려가 옥계면으로 가버린다. -석병산은 백두대간이 동해안을 끼고 남하하여 오대산과 황병산을 일구고 청옥산 두타산으로 뻗어 내려가 강릉시 왕산면에 안착한 산이다. 깎아지른 듯 솟아있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마치 산 아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석병산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정상에 서면 강릉시가 한 눈에 들어오며 멀찍이 동해의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광경이 일품이다. (발췌: 산림휴양문화포털) -주위에 만덕봉(萬德峰:1,035 m) ·대화실산(大花實山:1,010 m) · 노추산(魯鄒山:1,322 m) 등이 솟아 있다. 동쪽과 북쪽의 급사면에서는 주수천(珠樹川)의 지류가 발원하고, 서쪽의 완사면에서는 임계천의 지류가 발원한다. 남동쪽 비탈면에 옥계석화동굴이 있고, 생계령(生溪嶺) 기슭에는 임계 카르스트지형이 있다. 서쪽 기슭으로는 강릉~태백 국도가, 남쪽 기슭으로는 정선~동해 국도가 각각 지난다.(발췌:naver 백과사전) -석병산(石屛山):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와 옥계면 산계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1055m이다. 두리봉 동남쪽을 시작으로 산 전체가 돌로 쌓여 있어 바위가 마치 병풍을 두른것 같다. 석병산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 한다. 백두대간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겸비된 산으로 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절골, 황지미골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석병산에는 바위 한 가운데 둥근 구멍이 뚫린 일월문과 온 산에 불붙인 것 같은 철쭉 군락지가 있다.(정선국유림관리소)
(석병산 바위 병풍과 고사목)
석병산 정상 입구 왼쪽에 있는 고사목 한 그루가 있다. 몇 년 전 산행기 사진에는 푸른 잎이 살아 있었는데 지금은 고사되어 자연으로 산화되고 있다. 지반이 암반이어서 어느 시기 가뭄 갈수기에 탈수 되었거나, 겨울 혹한에 뿌리가 동해 입어 고사 되어으리라 추측 된다. 나무 둘레 크기로 보아 천수를 다한 것 같지는 않다. 고사목 뒤 암벽 아래에는 기어들어 갈만한 굴이 있는데 입구를 돌로 반은 막아 졌다. 정상은 바로 위에 암봉으로 형성되어 표지석이 흰색 화강암인데 모서리 마무리가 엉성하고 거칠다. 정상은 공간의 여유가 없어 다음 오는 사람에게 내어 주어야 한다. 안개 속에 시원치 않는 가시거리가 아쉽다. 강릉 바다와 푸른 하늘과 동해 바다물이 맞닿는 시원함을 보지 못하므로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없어져 버렸다. 아직은 아침 시간이라 엷은 안개가 삽당령 너머 대화실산, 석두봉 화란봉을 희미하게 가리어 가물거린다. 멀지 않는 거리의 두리봉과 능선이 짙은 녹색의 큰 너울로 한 번 가라앉았다 일어선다. 마루금은 석병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두리봉은 1.5km 가야하고 삽당령은 6.0km 더 가야 한다. 석병산 갈림 3거리로 다시 되돌아와 여유 공간에서 여러분과 식사를 하기로 한다(07:25). 좋은 길 내리막 6.0km는 우리 대원들 주력으로 1:30분이면 충분하다. 더러 삽당령 가서 먹자는 분들도 계시나 짊어지고 온 것이 억울하니 여기서 먹고 가자는 쪽이 우세했다. 병풍바우님은 물 한 번도 안 드시고 오셨단다. 솔방울님은 내려가서 드신다고 혼자 가신다. 오늘 산행은 거리나 난이도가 다른 구간에 비해 부담이 없다. * 두리봉(1033m/08:00): 그늘 쉼터, 둔봉
(두리봉)
대체로 내리막으로 길이 구성 되고 바닥은 좋은 상태이다. 산죽이 많아 양 어깨로 밀고 지나간다, 거의 산죽길이다. -이정표(07:44):삽당령:5.3km, 두리봉:0.7km, 석병산:0.7km 헬기장도 중간에 지난다. 갈참나무 아래 여러 개의 나무 탁자가 놓여 있는 펑퍼짐한 둔부가 두리봉이다. 봉우리라기보다는 밋밋한 언덕배기를 넘는것 같다. 표지석도 없고 우측 나무에 매달린 판자에 표식을 했다. -이정표(08:28):삽당령:2.2km / 두리봉:2.4km, 석병산:4.0km 갈참나무가 한 층을 이루고 아래로 산죽이 조밀하게 밀집되어 온 산을 덮었다. 빠르게 진행하다, 산죽길 벗어 난 곳에서 잎도 꽃도 줄기도 온통 은백색의 수정란풀 세 그루를 만났다. 문주란이나 군자란이 난과가 아니듯 수정란풀도 난이 아니다. 노루발풀과로 제주도, 남부, 중부에 지방에 주로 자생하며 민간에서는 이뇨,익정 등에 약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수정란풀)
식생대가 강원도 강릉까지 상당히 북상한 것이 아열대기후로 분류된 우리나라의 기후 탓일 것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기후변화로 밀려 올라와 종을 유지하다 사라지는 마지막 멸종의 최후 무덤이다. 사라지는 자병산을 보면서 소탐대실이라는 사자성어를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자연숲과 백두대간은 생물과 동물의 생존에 필요한 산소의 자연 발생과 물의 저장고로 정제 역할을 담당하는 필터이고, 오염을 자정하는 기능도 한다. -866.4m봉을 지나 마지막 헬기장에서 우측 급경사 계단으로 내려간다(08:50). -이정표(임도/08:50): 삽당령:0.1km, 두리봉:4.5km, 석병산:6.1km 석병산에서 1:30분도 안 걸렸다.(빨리 옴/기준 삼지 말 것) 삽당령에서 강릉 목계로 넘어 가는 임도인것 같다. 임도를 건너 다시 숲으로 들어가 내려간다. 뛰어 가다 낮은 나뭇가지가 머리위에 얹은 선글라스를 벗겨 날려 버렸다. 숲이 칙칙해 어두워 싶게 찾지 못하다가 뒤에 오시는 총괄님이 찾아 주신다. 나뭇가지 사이로 큰 빛이 들어오며 아스팔트 도로 건너로 삽당령 표지석과 감시초소 컨테이너가 보인다. * 삽당령(680m/08:56) : 강릉시 왕산면 소재 (표지석, 감시초소 컨테이너, 산신당, 샘터, 포장마차, 동물 이동통로, 수준점)
강릉과 정선군 임계를 잇는 재로 아스팔트 2차선의 35번 지방 도로이다. 커다란 자연석을 3단으로 올린 삽당령 표지석은 오래된듯하고, 표지석과 감시초소와 사이의 콘크리트 임도 20m 안쪽의 오른쪽을 통해 닭목령으로 가는 들머리가 있음을 작은 안내판이 지시 한다. 정선(왼)쪽 방향으로 오른편에 300년 역사를 지닌 성황당이 큰 소나무 한 그루를 당목 삼아 있어 강릉 왕산면 송현리 사람들이 8월에 소를 잡아 제를 지낸다고 한다. 동물 이동통로도 설치되어 있다. 성황당 길 건너편에는 할머니와 손녀가 운영하는 간이 휴게소 (정상주막)가 있어 간단한 요기와 안주로 동동주도 먹을 수 있다. 정상주막 왼쪽에 샘터가 있어 시원한 물을 보급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샘터에서 세면을 하면 안 된다. 샘터 물이 넘쳐흘러 아래 마을 70가구의 식수 탱크로 간다고 주막 할머니가 부탁 하신다. 삽당령 정상 도로가로 여유 차선이 있어 버스 몇 대는 주차 가능 하다. 안산에서는 석병산 등산을 왔고, 대전에서 대간을 하는 팀들은 3시에 출발 했다며 버스가 같이 주차 되어 있다. 대전 팀들이 족발에 소주, 맥주를 마시며 한 잔 권한다. 제대로 맥주 맛이 나면 여름인데 햇볕이 쨍쨍하다. 찰랑이와 정재진구조대장이 함께 오고(10:15), 6조 오병주조장님과 7명의 조원들이 함께 들어오며 오늘 산행은 쉽게 마무리 되었다(10:30). 오늘 마루금은 강릉을 오른쪽에 정선을 왼쪽에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졌다.
집에 가는 길에 정선 아우라지 나루터에도 들렸다. 강을 삶의 가운데 두고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과 님를 떠나보내고 돌아 올날을 목이 길어지게 기다리던 강나루의 한숨소리가 강물에 씻기는 듯하다. 기다림의 염원이 얼마나 길고 깊었는지 기도하는 마음이 돌탑으로 싸였다. 지게 발에 엽전 몇 개 걸고 백복령, 삽당령의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 강릉으로 소금 사려 보내는 정선의 아낙들은 기다림의 마음을 정선 아리랑으로 구슬피 불러 강 건너, 산 넘어 임을 불렀으리라…….
( 아우라지 나루의 처녀상)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인 동시에 주민들의 주요 휴식처이다. 오른쪽의 처녀상은 1987년 아우라지강 언덕 양지 바른 곳에 정선아리랑을 기념하여 아리랑비와 함께 세운 것이다.- - 정선아리랑 유래- 옛날, 강원도 정선 지방에 아우라지 강을 사이에 두고 살던 처녀와 총각이 서로 사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날밤 큰 비가 내려 배가 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강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여 몹시 안타까웠지만 뱃사공 또한 배를 띄우지 못하여 안타까웠습니다. 비는 오래도록 내린 후에 그쳤지만 강물이 너무 많이 불어서 한동안 서로 오고 갈 수 없다는 슬픈 의미에서 두 사람의 슬픈 이야기를 노래로 부른게 정선 아리랑이 되었고, 정선지방에 아우라지강 기슭에는 슬픈 표정으로 강 너머를 바라보는 처녀의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 정선아리랑 가사 중에서 일부-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며는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며는 두견새는 왜 우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 장철 임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우리댁에 서방님은 잘 났던지 못 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위에 엽전석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 오세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후렴구)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그대 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 배에 올렀나 앞 남산의 청송아리가 변하이면 변했지 우리 둘이 들었던 정이야 변할 리 있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앞남산 살구꽃으는 필락 말락 하는데 우리 둘에 정이야 들락 말락 하네 이밥에 고기반찬은 맛을 몰라서 못먹나 사절치기 강냉이 밥으는 마음만 편하면 되쟎소 육칠월 감자싹도 삼재팔난을 젺는데 대한 청년 남아도 망고풍상을 다 져네 우릿님 말씨는 얼마나 고운지 뒷동산 몸푸레 회초리 착착 휘네 신발 벗고 못 가실 데는 참밤나무 밑이요 금전 없이 못 갈데는 술집 문전이라 갈 적에 보니는 젖 먹던 아기가 올 적에 보니는 술장사를 하네 술집에 큰 애기는 정을 두니 냉수만 달라고 했는데 청주만 주네 왕모래 자락에 비 오나 마나 어린 가장 품 안에 잠드나 마나 개고장 가이 포롬포롬에 날가자고 하더니 온 산천이 다 어우레져도야 종문소식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개고장 가에 고무노리는 무슨 죄를 짓고서 다 큰 아기 손질에 칼침을 맞는가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여자더냐 산 넘고 물을 건너이면 또 사랑 있으리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남자더냐 산 넘고 강을 건너이면 또 남자 있겠지 산지당 까마구는 까왁까왁 짖는데 낭군님 병세는 날로 깊어가네 앞 남산 실안개는 산허리를 돌고요 우릿님 양팔은 내 허리를 감네 오양목 중외 적삼은 첫물이나 좋지 처녀 색시는 첫날밤이 좋더라 니 팔자나 내팔자나 이불 담요 깔곗나 엉틀멍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 두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꼬치밭 한 골을 못 매는 그 자가 이마 눈썹 매라고 하니는 여덟 팔자로 매더라 네 발 색경에 가지네 종지깨는 내가 담당할꺼니 이마 눈썹 여드레 팔자를 잘 가꿔주게 사고지 못 할 것은 금정꾼 아저씨 노다지만 나오이면은 간 곳이 없네 금전을 따를라거던 제멋대로 가구요 사랑을 할라거던 날만 따라 오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백두대간에서 내려와 아우라지 나루터의 나룻배를 통해 유한속에 무한의 시간 흐름을 본다....., 바람(김 성 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