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뛰어넘는 축복
창33:1-12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아서 크게 쓰임 받는 사람도 있고, 버림받아서 저주와 슬픔과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면 반드시 행복하고 성공하고 승리하는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리더스다이제스트〉 칼럼리스트인 존 쿨해인(John Culhane)은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사인 월트 디즈니의 성공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 내일을 생각하라. 둘째, 상상력을 발휘하라. 셋째, 품질 유지를 위해서 노력하라. 넷째, 끈기를 가져라. 다섯째, 즐겨라(enjoy to work).
월트 디즈니의 첫번째 성공 비결은 ‘내일을 생각하라’입니다. 현재에만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준비하신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축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기대감을 뛰어넘는 축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기대를 넘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나 원수가 되었습니다. 동생은 형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형은 동생은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는 가운데 그렇게 2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 원한이 얼마나 큰이 20년이 지나도 야곱은 형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고, 에서는 동생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원수된 형제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만남을 생각만 해도 두렵고 떨렸고, 인간적 노력도 해보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얍복 강가에서 밤새 하나님과 대면하며 천사와 씨름했던 야곱은 그 간절함으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으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문은 기어이 야곱이 에서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한편의 드라마죠. 이 속에서 저는 하나님의 축복을 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이 여러분의 축복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응답받은 자여 담대하라.
얍복 강가에서의 지난밤은 야곱에게 길고 긴 밤이었습니다. 밤새 천사와 씨름했고 천사가 쳐서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었습니다. 피곤함과 통증으로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 순간이었지만,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은 것으로 겨우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순간 야곱에게 에서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장정 400명, 창칼로 무장한 400명이 달려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도 몇 명의 종들이 있었지만, 4명의 부인과 10명이 넘는 어린 자녀들을 보호해야 하는 야곱에게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면, 자신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이 순간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에서가 달려오는 것이 보이는 그 순간, 일초일초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요? 심장 뛰는 소리가 옆에서도 들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는 믿음과 눈앞에 보이는 두려움의 대상인 에서의 모습이 그 안에서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을까요?
도망갈까? 살려달라고 애원할까?
온갖 생각이 그 마음에 치열했습니다.
야곱이 무장군인 400명과 달려오는 에서를 바라보는 순간이 우리 삶에 있습니다. 질병의 에서가 달려옵니다. 물질의 에서가 달려옵니다. 미래의 불안이 에서처렴 달려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 받고 기도하며 신앙생활하고 있지만 이렇게 두려운 에서가 달려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야곱을 떠올리세요.
야곱도 두려워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에게로 나아갑니다. 두려운 발걸음이지만 뒤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죽일 듯이 달려오던 에서, 두렵기만 생각되던 에서가 야곱을 끌어안습니다. 입을 맞춥니다. 눈물을 흘리고 화해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위대한 순간이 나타났습니다. 두려움에 피하고 싶었지만 뒤돌아서지 않았던 야곱의 믿음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눈앞에 현실화되는 순간입니다.
에서는 동생을 안고 울었지만, 야곱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감격스러워 울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받기를 정말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담대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응답하셨고,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이 완성될 순간에 넘어야 할 현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무서워 피해서는 안됩니다. 죽음의 문제 앞에서도 불안한 미래 앞에서도, 당당합시다.
영국의 유명한 사상가 윌리암 쿠퍼는 노년에 뇌에 질병을 얻어 그 마음이 심히 낙심되었습니다. 뇌종양으로 인해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끝내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건져서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다락에 올라가서 줄을 걸고 목을 매달았습니다. 튼튼한 새줄이었는데 툭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그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이런 글을 썼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상한 방법으로 그의 희망을 이루신다. 주님은 바다에 그의 발자국을 남기시고 폭풍을 일으키신다. 두려움에 떠는 성도들아 용기를 가져라. 비구름이 두려워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부서지리라. 너희에게 축복이 내려지며 연약한 감정으로 주를 판단하지 말며, 주의 은혜 안에서 주를 믿으라. 우리를 위협하는 그의 섭리 뒤에는 미소를 담으신 얼굴을 감추신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받은 여러분 담대하십시오.
둘째,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기대감을 회복해라
삶에 있어서 “기대감”이란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에도, 기대감이 중요합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하루를 시작할 때에도, 좋은 식당에 갈 때에도 기대감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기대감을 제거해 보십시오. 정말 재미없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죽은 거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견딜 수 있고, 중요한 것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캐나다를 떠나기 전 한 성도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하소연을 하더군요.
“목사님, 신앙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 보았습니다. 목사님과 교회를 개척하고 난 후 몇 년 간에 가장 행복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매주일 교회 가기가 힘들어요. 은혜가 안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도 들었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은혜가 안됩니다.”란 말은 다른 말로하면 기대감이 없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영혼에 반드시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대감입니다. 기대감이 없으면 예배가 지겨워집니다. 찬양, 입술이 열리지 않습니다. 기도, 안하게 되고, 말씀 읽을 필요를 못느낍니다. 기대감이 없는 자의 모습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의 모습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야곱은 얍복 강가의 체험으로, 천사와의 씨름과 그가 남긴 말로 그의 마음은 이제 기대감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움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버틴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역사는 야곱의 기대보다 훨씬 대단했습니다. 20년 동안 쌓인 분노와 원한이 눈물로 녹아내리는 이 순간, 위대한 순간입니다. 하나님께 기대가 있는 자,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가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라기보다 병 고침의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대감이 믿음의 출발이 되고, 기적의 배경이 됩니다.
20년의 원한도 눈물로 녹아내리신 하나님의 능력,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눈먼 자를 고치시고, 왕따당한 인생 삭개오의 심령을 치유하시며 구원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향하여 여러분의 기대가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어떤 문제를 갖고 계십니까? 어떤 아픔이 있습니까? 무엇을 답답해 하십니까? 기도하세요. 그리고 기다리시고 기대하십시오.
셋째, 하나님은 이미 그곳에 계십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인 귀족 세 가족이 가장 안전한 곳을 연구한 결과 오키나와 섬으로 결정짓고 그리로 피신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곳이 가장 위험한 격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브린클리라는 사람이 “신은 가끔 빵 대신 벽돌을 던져 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원망하면서 그 벽돌을 차다가 발가락 하나가 더 부러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기막힌 집을 짓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눈에 보이는 것이나, 계산으로 얻는 답으로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원수 사이였던 형제가 만난 순간 야곱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야곱이 발견한 것은 고난과 역경의 현장에, 두려움의 대상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본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그곳에 이미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가 염려했던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체험한 하나님을 향하여 고백하기를 “여호와 이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 22:13∼14)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주저치 않았던 아브라함의 신앙을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이레의 체험으로 보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과 헌신에 대하여 축복을 선포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창 22:15∼19)
여러분의 고통을, 아픔을 그리고 염려를 기도하시고 믿음의 눈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그 속에 이미 임재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며, 부족한 종이 지난 6개월의 시간과 여러 가지 난관을 벤츄라교회 성도님들의 기도와 소망,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소망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고, 체험했고, 그 믿음으로 두렵고 떨린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것이 합하여져서, 벤츄라 교회의 미래를 향한 기대로, 여러분의 삶을 향한 축복의 기대로, 보배로운 각 가정의 자녀들과 어린들의 미래를 향한 기대로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