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양9경 중 제5경인 안양1번가는 안양역 광장 앞 구도로와 안양대로 사이 직사각형 모양의 중심상업지역을 말합니다.
안양1번가는 안양읍(安養邑) 이전의 서이면사무소부터 시작하여 1973년 안양읍이 시로 승격된 뒤에도 수년 후까지 시흥군청, 안양읍사무소, 안양경찰서, 안양소방서가 한 골목에 마주 보고 있었던 곳입니다
그 위치가 안양의 중심부로 음식점, 다방, 술집 , 숙박업소 등이 몰려있는 안양의 번화가 였습니다.
# 안양역 역사(驛舍)와 안양역 광장
1930년대 안양역 정차장의 모습
(사진출처 : 안양시 승격 50주년 전시회)
신축 안양역사는 롯데백화점 건물로 지어졌으나, 롯데백화점이 평촌 신시가지로 이전한 후에는 엔터-식스(ENTER-6)로 전환하여 롯데시네마를 위시한 의류점과 FOOD STREET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안양제5경의 해설은 안양역 앞에 모여서 시작합니다.
역사 앞에는 안양시 관광안내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안양시 지도를 보면 안양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안양 시가지와 안양9경의 위치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안양9경을 익히고 갑니다.
역시 한 획이 모자라는 샵(#)의 순서로,
제1경 : 안양예술공원,
제2경 : 안양천,
제3경 : 평촌중앙공원,
제4경 : 망해암 일몰,
제5경 : 안양1번가,
제6경 : 수리산성지(최경환성지),
제7경 : 평촌1번가 문화의거리,
제8경 : 병목안 시민공원,
제9경 : 만안교.
계단을 올라 안양역 대합실로 올라갑니다.
계단 측면 벽에는 원태우 의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양역 대합실의 모습
만남과 쇼핑의 전당 안양역,
철도역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해설시에는 대합실로 올라오지 않고 광장 앞에서 설명을 합니다)
안양역은 현재 무궁화 열차와,
전철1호선이 정차하는 역입니다.
하행선은 수원과 천안행이고, 상행선은 서울과 인천행 전철이 다니는 곳입니다.
두 구간 남쪽의 금정역에서 4호선(당고개-사당-금정-안산-오이도)의 환승역입니다.
안양역은 현재 무궁화호가 하루 10여차례 정차하는 간이역 수준입니다.
엔터-식스 안내도 및 FOOD STREET 안내도
안양역 광장에서 바라본 시가지
안양역 광장은 원래 미나리밭 이었습니다.
1795년 정조 임금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화성 현륭원(顯隆園)을 찾던 을묘원행(乙卯園幸) 당시 행궁(行宮)을 지었던 자리이고,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안양역이 운영되면서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안양역 주변에 공장이 세워지고 안양1번가는 금융, 행정,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안양역 광장 안내도
안양1번가의 배치 모습
걸어요 안양9경 안양1번가
안양역 광장의 북측 골목은 일제강점기 수리산 채석장의 석재를 운반하던 자갈차 철길이 있던 골목입니다.
이 위치가 롯데백화점이 운영될 당시 정문 자리였으나 지금의 ENTER-6는 안양역사 대합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안양역사의 남쪽 건물은 안양지구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삼덕도서관 옆으로 신축이전 하였습니다.
안양역 광장을 남북으로 잇는 구도로의 모습
6•25전쟁 당시 경찰서를 비롯한 시가지의 95%가 폐허로 변한 안양 시가지의 모습
(사진춘처 : 종군기자 존 도미니스 촬영, LIFE, 1951년 2월 19일)
안양1번가의 모습
안양1번가의 구도로에서 안양대로를 이어주는 중심도로 가운데에는 검은돌로 휴식을 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중심도로의 가운데 쯤 롯데리아가 있는 자리는,
안양읍사무소 자리에서 1976년 안양 최초의 안양백화점이 들어섰다가 진도모피를 거쳐 롯데리아가 영업중입니다.
탕후루가 영업중인 자리는 안양경찰서가 있던 자리입니다.
안양행궁터 자리를 설명하는 박석환 부회장님
안양행궁터(安養行宮址).
이곳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1752~1800)이 수원 화산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원침(園寢)인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키 위하여 쉬어가던 행궁이 있던 자리입니다.
행궁의 건립시기는 만안교(萬安橋)가 가설된 1795년 경으로 추정되나 언제 훼철(毁撤)되었는 지 알 수는 없으며 근대에는 이곳에 큰 집이 있었다 하여 대궐터(大闕址)로 불리고 있습니다.
안양1번가를 가로질러 안양대로변으로 나가면 건너 편에 안양고용복지센터 건물이있고,
그 주변이 안양 중앙시장입니다.
안양 중앙시장은 현재 과일, 생선, 야채 등으로 항상 손님들이 넘치는 뜨거운 시장입니다.
중앙시장은 1925년 을축대홍수로 군포구시장이 복구 불능의 피해를 입자 안양역 뒤 안양천변으로 옮겼다가, 이곳 또한 화재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후 1960년대 초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습니다.
중앙시장 앞은 현재 월곶-판교선 공사가 한창입니다.
월판선이 개통되면 안양1번가와 중앙시장의 재도약이 기대됩니다.
중앙시장과 안양1번가가 끝나는 지점인 벽산 사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바라보면 2001 Outlet 건물이 자리하고 뒷쪽으로 벽산 아파트가 보입니다.
이곳은 고려석면고무공업주식회사 공장이었다가 1985년 백화점과 유사한 벽산쇼핑센터를 거쳐 2001 아웃렛으로 되었습니다.
건너편 중앙시장 모서리 위치는 읍민관에서 안양극장으로 변모하였다가 지금은 다이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벽산 사거리 안양1번가 모퉁이의 꽃집 뒤쪽 건물은 교육청과 시흥군청이 있던 자리입니다.
벽산 사거리에서 다시 구도로 쪽으로 이동하면 (구) 서이면 사무소(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100호)가 있습니다.
이 일대는 1905년 안양역이 생기면서 상권이 형성되고 다양한 관공서와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구 서이면 사무소는 1914년 안양의 최초 관청이던 시흥군 서이면(과천군 상서면과 하서면이 통합) 사무소가 호계도서관 부근에서 1917년 교통이 편리한 이곳으로 이전되어 왔고,
이 후 시흥군 청사, 안양금융조합, 안양경찰서 등이 세워지면서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서이면 사무소는 그 후 1941년 10월 1일까지는 서이면 사무소로, 1949년 8월 13일까지는 안양면 사무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같은 해 8월 14일 안양면 인구가 2만 명이 넘어서자 안양읍으로 승격되어 읍청사가 서이면 사무소 좌측에 신축됨에 따라 본 건물은 개인에게 이전되었으나 안양시에서 2000년에 매입하여 복원을 하였습니다.
구 서이면 사무소는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수탈기관으로서의 중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서이면 사무소 공적조서(功績調書).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읍•면 단위까지 조직적인 헌금•헌납 운동을 실시하였습니다.
(사진출처 : 안양시 승격 50주년 기념전시회)
구 서이면 사무소는 현재 관리동 보수공사로 인하여 관람제한 입니다.
구 서이면 사무소 뒷쪽 빈 터는 안양읍 사무소가 있었던 자리이고 지금은 청소년의 놀이터인 쌈지공원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인근 NH농협 건물 자리는 열차에 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돌을 던진 원태우(元泰祐) 의사가 살던 집 터입니다.
원태우 의사는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 후 그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그 해 11월 22일 수원을 순시하고 서울로 올라간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안양의 서리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를 향해 약 9Cm 크기의 돌을 던졌습니다.
이 돌은 이토 히로부미의 머리에 명중하였으며 유리창 파편 8조각이 얼굴에 박혔다고 합니다.
원태우는 의거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징역 2개월에 곤장 100대를 맞고 1906년 1월 24일에 석방되었습니다.
안양역사 계단에 설치된 원태우 의사의 상.
1882년에 안양에서 태어난 원태우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에 돌을 던져 상처를 입힌 이 의거는 민간 항일운동의 효시가 된 거사로써 당시 대한매일신문, 동경매일신문은 물론이요, 일본이 제작한 일로전쟁화보와 속음청사에도 수록된 일대 사건이었으며,
훗날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철도법은 철도를 조금만 훼손하여도 사형에 처하는 중범죄였으나 이토 히로부미는 반일감정의 불씨가 될 것을 우려하여 징역 2개월형에 처했으나 곤장 100대는 맞고 살아 남기는 힘든 형벌이었습니다.
의거 당시 23세의 젊은 나이인 원태우 의사의 모습이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일로전쟁화보를 그린 일본인 기무라 고타로가 조선인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안양역 광장으로 나와서 안양1번가 해설을 마칩니다.
안양역에서 안양대로까지 이어지는 안양역전 지하상가의 모습
1981년 안양역전지하상가 건설공사 모습
(사진출처 : 안양시 승격 50주년 기념전시회)
안양 중앙사거리에서 병목안으로 가는 길의 모습
안양일번가 롯데시네마 건물은 삼원극장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안양영화촬영소가 있던 영화의 도시 안양에 있던 안양극장, 삼원극장, 화단극장 등 3개 극장은 서울의 극장과 동시에 개봉극장으로 상영되어서 영화 도시로서의 명성을 나타냈습니다.
삼원극장 맞은편 안양 본백화점 건물은 원래 대동문고 건물이었습니다.
포천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던 전영선 씨가 1963년 안양여자고등학교 맞은 편에서 시작하여 1968년 현재의 위치에 대동서림으로 상호를 바꾸어 개점을 하였는데, 날로 번창하여 8층 건물로 확장 증축하여 안양 최초의 독립된 서점으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2008년 대기업 서점들의 진입으로 부도를 맞아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면서 현재 본 프라자 지하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대동문고는 여전히 안양의 명소로 안양역과 함께 친구나 연인들이 만나는 약속 장소로서 많은 이들의 추억을 간직하고 지역의 문화발전을 위해 소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본 백화점.
1983년 경기도 최초의 직영백화점으로 벽산쇼핑과 함께 안양 상권의 양대 랜드마크였으며, 당시 전국 백화점 매출액 순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릴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IMF 체제 이후 불황과 평촌 신도시 개발에 따른 상권 분산, 안양역사 내에 롯데백화점이 입주 예정에 따라 2001년 폐점하고 '본 프라자'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안양대로 건너 자갈차길 골목을 지나면 수리산과 수암봉에서 발원하여 병목안을 돌아서 흘러내리는 수암천이 있습니다.
1960년대 수암천의 모습.
수암천 우안(사진의 좌측)으로 삼덕제지가 자리하고, 오른쪽에 안양공고가 있습니다.
(사진출처 : 안양시 승격 50주년 기념전시회)
뒤로 돌아보면 안양대로를 건너 수암천을 복개(覆蓋)하여서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수암천은 복개천 아래로 흘러 안양천으로 유입됩니다.
수암천 옆에는 댕리단길이 있습니다.
댕리단길 초입에 커다란 칠옆수에 열매가 노랗게 익어갑니다.
나뭇잎의 갯수가 일곱개이고 열매에 가시가 돗아 가시칠옆수라고 부르는 이 나무는 마로니에라고도 부릅니다.
이용구 선생이 1940년대 안양시가지를 손으로 그린 「안양면」 약도.
안양천을 중심으로 경부선 철도와 국도가 지나가고(이 당시에는 안양대로가 없슴) 자갈차길 철길 윗쪽에 수암천이 흘르고 있습니다.
<보기>에 안양역과 미륵당, 주재소, 구시장, 안양신사 등 여러 건물들을 자세하게 그렸습니다.
국도 위치에서 수암천의 흐름을 막아 안양천으로 합류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사진출처 : 안양시 승격 50주년 기념전시회)
<참고자료>
[안양의 자랑 안양9경 알아보기-한국평생교육사 안양지회]
[안양에 있는 구경이 안양9경-안양문화원]
[답사 해설-박석환 부회장님]
첫댓글 강호인해설사님 안양5경 안양일번가 잘 정리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정할 부분은 없나요?
@강호인 답사내용보다 더 자세하게 보충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