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임청각 정침 군자정[安東 臨淸閣 正枕 君子亭]
*우리가 사범학교에 재학 중일 때의 임청각은 말 그대로 도깨비집이었다. 건물은 헐대로 헐어서 곧 쓰러질 것 같기만 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 아홉 분을 배출한 집이었기에 일본의 핍박으로 집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99칸 집은 의도적으로 중앙선 철도를 집 마당으로 통과 시켜 많은 부분이 잘려 나가는 피눈물 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제 남은 건물이나마 말끔히 보수되어 상해 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용(石州 李相龍) 선생이 태어난 곳이라는 위엄을 일부분이나마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퍼 옮긴이 대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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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임청각 정침 군자정[安東 臨淸閣 正枕 君子亭] |
지정번호 |
보물 제182호 |
지정연도 |
1963년 1월21일 |
설립연도 |
1519년 기묘년 |
소재지 |
경북 안동시 법흥동 20번지 |
시대 |
조선 중기 |
분류 |
누정 |
관리자 |
이항증 |
전화번호 |
054)853-3455, 016-611-9006 |
이메일 |
hj1225@hite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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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은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니 안동 고성이씨의 대 종택 입니다 세칭 99칸 기와집으로 알려진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었습니다 일제시대 철도 부설 때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건물을 철거당하고도 이런 규모를 보여주는 99칸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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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世宗:1418∼1450)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李原:1368∼1429)의 여섯째아들인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고 이증의 셋째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 을 지낸 이명(李?)이 지은 별당형 정자입니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귀거래사(歸去來辭)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 가에서 시를 짖기도 하노라.’라는 싯구에서‘임(臨)자’와 ‘청(淸)자’를 취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임청각은 귀래정(歸來亭) 영호루(映湖褸)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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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에 나와있는 임청각 |
택리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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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정 현판 |
퇴계 이황의 친필로 새겨진 현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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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이현보 선생 글씨 |
제봉 고경명 글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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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상룡 거국령 |
백사 윤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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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조사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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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시(時)·서(書)·화(畵)·악(樂)에 일가를 이룬 허주(虛舟 ; 李宗邱 : 1726-1773)가 이집 주인이었고 특히 한말 독립운동가 아홉 분이 이집에서 출생한 충절의 집입니다 특히 석주(石洲)이 상룡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國務嶺=지금의 國家元首) 을 역임한 분으로 현행 헌법으로 국가원수에 해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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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에 올라와서 입구 |
군자정으로 가는 출구 |
위에서본 임청각 |
우아한 예술무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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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은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안채, 중채, 사랑채, 행랑채 등 의 건물을 배치하여 채광효과를 높였으며, 각 동(棟) 사이에는 크고 작은 5개의 마당을 두어 공간의 활용도 를 높였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에 정침이 있으며, 그 우측에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군자정이 위 치하며, 군자정의 바로 옆에는 방형(方形)의 연못이 있고, 연못 옆 언덕 위에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임청각에 딸린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은 양반가의 별당형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건물로 정자 옆 에 연지(蓮池)를 조성하여 군자를 표상 하는 연꽃을 심었습니다. 연못에 핀 연꽃을 바라보면서 군자로서의 심성을 닦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정자 옆 방지(方池)를 지나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크기의 사당이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사당에는 원 래 불천위와 더불어 4대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였으나 석주 이상룡 선생이 한일합방이 되자 구국(救國)의 일 념으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만주로 떠날 때 위패를 모두 장주(藏主)하여 현재 봉안된 신위가 없습니다.
집을 짓는 데 있어 그 평면구성을 일, 월, 길(日月吉) 등의 글자를 취해 지으면 좋다고 하는데 임청각의 평 면구성을 보면 일(日)자, 월(月)자 또는 그 합형(合形)인 용(用)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일형과 월형, 용 자형은 하늘의 일월을 지상으로 불러서, 천지의 정기를 화합시켜 생기(生氣)를 받으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합 니다. 팔작지붕는 한 마리의 새가 날개 짓 하는 형상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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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정에서 바라본 연못 |
임시정부국무령 석주이상룡 출생한 곳 오른쪽 문 열린 곳 |
임청각 옆 군자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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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경 임청각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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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집은 살림채, 사당, 별당(군자정)으로 구분되고 살림채는 또 안채, 중채, 사랑채, 행랑채로 나누어져 있는 데 이 복잡한 구성과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 는 마당의 운용이 탁월하여 다른 대갓집에서 느끼던 숨막힐 듯한 답답함이 없다. 안마당, 사랑채마 당, 행랑채마당, 대문진입마당 그리고 헛간마당 등 다섯이다. 이 마당들은 각기 자기 기능에 알맞 은 크기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레벨을 몇단으로 나누어서 대문진입마당과 사랑채마당 사이에는 2.5cm정도 높이의 차이가 난다. | |
이로인해 외용상의 권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옥의 온화한 정취도 함께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같은 대갓집이면서도 경주 안강 양동마을의 여강 이씨 향단이 사랑채, 안채, 행랑채를 한 몸체로 엮어서 여백의 묘를 살리지 못했던 것을 생각할 때 임청각의 마당 운용은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 3 중>
우선 규모에 놀라고 다양한 기능이 체계적으로 조합된 공간 조직에 놀라게 된다. <한국의 건축(공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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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부 잘 하였네. 고맙다 대머리님이여! "대머리"하니 송구하고 앞으로 "구천아재"로 부름세.
"대머리"하면 친근하고 우리 동기들이 다 그렇게 부르는데 뭘..... "구천아재"도 괜찮기도 해....그러고 보니 "구천아재"가 더 우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