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혀)의 위험성 3:1~12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위로부터 난 지혜 3:13~18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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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말에 실수가 없어야 온전한 사람입니다. 길들이지 못한 혀는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시기와 다툼에는 혼란과 악이 따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며,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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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 '행함'이 더해질 때, 한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지혜가 됩니다.
선생이 되려 하지 말고 화평에 힘쓰라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_약 3:1
교회의 가르침은 말씀으로 충분해야 하며 모든 사역과 사랑의 방식은 예수님의 사랑에서 근거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르치려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가르침은 세상의 가르침에 불가합니다. 교회 안에서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당회에서는 목사님을, 젊은 집사들은 장로를 모욕하고 미워합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다음 세대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믿음을 얻기 이전에,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다툼과 복음 이외의 것들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많이 떠나게 됩니다.
무언가 개선하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면 선생이 아닌 동료가 되어 주십시오. 동역자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사랑하기로 선택하십시오. 아무리 답답하고 낙심되는 상황 가운데 그럼에도 제자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단인 것입니다. 분란과 분쟁, 분주함을 멈추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다음 세대가 배우게 되길. 그 안에 꽃피우는 소망과 사랑이 전달되길 소망합니다.
2023.1.4. by ji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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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1~2) : 이 구절에서 야고보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교회의 ‘선생들’(교사들) 축에 낀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더 엄격한 척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그들의 혀로써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쁜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직위를 얻으려는 사람은 스스로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선생이 되다’의 의미는 ‘교회의 집회에서 교사로 나서려고 하다’입니다).④
-(야고보서 3:1~12 -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 : 야고보서의 저자는 이미 사람의 혀를 다스리지 않는 위험성(1:26)에 대해서 언급하였지만, 이제 이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3~37; 15:11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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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2절 말을 많이 하고 말의 영향력이 큰 선생의 자리가 엄중하니, 그 자리가 주는 권위나 명예가 부러워 선생이 되려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말의 실수가 없다면 언제든 교정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몸이 말을 통제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말이 온몸을 통제할 만큼, 말은 남은 물론이고 자신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혀를 통제할 수 있다면, 삶을 온전하게 꾸릴 수 있습니다.
3-6절 혀의 특징은, 작지만 영향력이 크다는 것입니다. 광풍에 밀려가는 큰 배를 작은 키 하나로 사공이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또 큰 말을 재갈 하나로 제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작은 불이 숲을 태우듯이, 성령과 말씀으로 통제되지 않은 우리 혀는 우리 온몸과 삶을 더럽히고, 인생 전체를 불의와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혀는 단지 많은 지체 중 하나가 아니라, 마치 독립적으로 자리 잡은 ‘세계’인 듯합니다. 내 말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누가 왕이고, 누구를 예배하며, 누가 영광을 받고 있습니까?
7,8절 혀의 또 다른 특징은 길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지혜를 얻어야 하고, 성령의 감동과 말씀의 감화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쉬지 않는 악과 죽이는 독이 가득한 혀 때문에 인생이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수양보다 앞서야 할 것은 혀의 주도권을 주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9-12절 성령과 말씀으로 길들여지지 않고 제멋대로 자리 잡은 혀의 세계를 방치한다면, 우리는 한 입에서 저주와 찬양이 함께 흘러나오는 그릇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 나무에서 두 종류의 열매가 맺힐 수 없고, 한 우물에서 두 종류의 물이 나올 수 없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형제를 저주하는 입에서 나오는 찬송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종교언어로 치장할 뿐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비방과 험담을 하고 있다면,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시 141:3), 성령과 말씀으로 말의 본류인 내 마음을 새롭게 채워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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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한 사람이 되길 힘써야 합니다(1~5절).
1절에 앞에 나오는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명령을 받은 자를 가리키지만, 뒤에 나오는 ‘선생’은 사람들을 매도하여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은 매우 높이 평가되었고, 상당한 지위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격이 되지 않는 자들이 선생의 위치에서 남을 가르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에 야고보는 ‘차라리 선생이 안 되는 것이 낫다’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실수가 많습니다. 특별히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2절)입니다. 큰 배의 방향은 작은 키에 의해 결정이 되고, 작은 불이 큰 산을 태우는 것처럼 혀는 몸에서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몸 전체가 혀의 영향을 받고 있음(4~5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들은 교회 공동체에 더 큰 영향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언어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재갈이나 배의 키 그리고 혀는 모두 작지만 제각각 자기보다 더 큰 것에게 지시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불씨로 인해 커다란 산불이 일어난 것처럼 통제를 벗어난 내 자신의 혀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34)고 경고하셨습니다.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은혜를 충만하게 공급받아야 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아름답고, 깨끗하고, 덕스럽고, 은혜가 되고, 기쁨을 주고, 소망을 주는 말이 일상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말로 인하여 평생 후회하지 않도록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기를 힘쓰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살리는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6~8절).
혀를 ‘불의의 세계’로 표현한 것은 혀가 인간의 인격을 파괴할 수 있는 매우 위험스런 존재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삶의 수레바퀴’는 인간의 인생을 말합니다(6절). 그러므로 잘못 사용된 혀는 불과 같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생을 무참하게 태워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든 짐승들은 길들일 수 있으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기 때문...’(7~8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혀를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8절b)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혀가 항상 악을 행하려고 요동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입술과 치아의 이중 울타리에 갇혀 있는 신세와 같지만, 그럼에도 혀는 그 울타리를 깨뜨리고 악한 말로 온갖 악을 행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능히 우리의 혀를 길들일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할 때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혀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무절제한 언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성령에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분노에 차서 함부로 뱉어내는 말은 독이 묻은 화살이 되어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다 줄 것입니다. 분노의 말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전체를 불 질러 버립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의 말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4)...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 12:18)..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아름답게도 하고 파괴하기도 합니다. 사랑하게 만들기도 하고 미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희망과 소망과 위로를 주기도 하고 좌절을 안겨다 주기도 합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들이 사람을 살리는 말인가, 아니면 죽이는 말인가.. 믿음 안에서 살리는 도구로 지혜롭게 말을 사용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성령의 도움을 간구 하여야 합니다(9~12절).
사람들은 자신의 혀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믿음의 공동체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혀를 올바로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으로 형제들을 정죄하고 비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 물을 낼 수 없는 것처럼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성도의 입술에서 찬양과 저주가 동시에 나오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서가 쓰여질 당시 교회 안에서는 실제로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성도들과의 관계에서는 은혜로운 말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벗어나면서부터는 온갖 세상적인 말로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오늘 내 자신 역시도 교회에서의 언어생활 따로, 세상 속에서의 언어생활 따로 이러한 이중적 생활 태도를 버려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 아름다운 말, 축복의 말로 내 자신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는 향기로운 언어를 내 뿜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선행으로 행함을 보이는 것입니다(13절).
야고보는 ‘지혜와 총명’이 있다면 ‘온유함 가운데서 행함’을 보여 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마음은 ‘온유해야 하며...’ 지혜로운 행함은 ‘선행’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즉, 참된 믿음처럼 참된 지혜 역시도 일상의 삶 속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야 합니다. 온유함 안에서 행하는 선한 행실로 참된 지혜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면 말만 하지 말고 선행을 보이라고 야고보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갈등과 분열의 조짐이 늘 끊이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굉장히 난폭해져 있습니다.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해 하지 말아야 할 행동까지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분노조절장애’라고 하는 병명을 들어서 끔찍한 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합리화하려는 일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 함이 많으니라..’(잠 29:22).. 한 번만 참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한다면 끔찍한 범죄로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함을 받아, 그 말씀이 삶으로 실천 되어 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삶을 행함으로 교회나 내가 속한 공동체의 분열과 다툼을 그치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선행으로 말미암아 행함을 보이므로 위로부터 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사람들로부터 인정함을 받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십자가의 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14~16절).
지혜와 총명을 자랑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독한 시기’는 온유와 대조되는 것으로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열정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쁜 열심’입니다. ‘다툼’은 교회 내에서 서로 당을 지어 분쟁함을 말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그것을 내세워 자랑하기 보다는 잠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는 ‘불의의 세계’(6절)를 만들 뿐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가 아닙니다(15절).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지혜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땅 위의 것, 정욕의 것, 귀신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이요, 그 목적이 파괴적인 사람들입니다. 말과 언어와 목소리가 얼마나 빠르게 파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만 있게 됩니다...’(16절)..
오늘 내 자신이 감당해야 할 궁극적인 사명은 세상의 지혜를 가져 사망의 길로 나아가는 인생들이 생명의 길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구원의 방법을 주님께서는 세상이 가장 미련하게 생각하는 십자가를 통해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길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 곧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를 깨닫는 사람입니다. 내가 죽어야 사랑할 수 있고, 내가 죽어야 남이 살고, 내 욕심을 버러야 진정으로 내게 유익한 것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 십자가야 말로, 진정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법이요, 승리의 방법이요, 구원의 방법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여 생명 살리는 일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본분을 지켜 나아가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공동체에 화평을 끼치는 것입니다(17~18절).
위에서 오는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17절)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겉으로 그 결과가 드러나는 성품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난 지혜를 따라 행할 때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18절)거두게 됩니다. 야고보는 당시 교회 내에 분열과 다툼이 있음을 보면서 화평을 다시 강조하고 있고, 분열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다툼과 분열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행위에 대하여 의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해야 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화평을 도모하게 하고, 하늘의 위로와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함으로써 참된 평안과 소망을 소유하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 모든 일들을 가능케 하는 힘과 능력의 근원은 바로 예수님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온유와 겸손으로 이웃을 섬기고, 죄를 멀리하고 경건에 힘쓰는 삶을 통해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 화평을 끼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내 자신이 화평의 도구로 쓰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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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위력(3:1∼6)
언어생활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혀를 다스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몸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특히 말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교사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말의 실수로 인해 더 큰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동물인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주인의 뜻에 순종하게 하고 지극히 작은 키로 배를 사공의 뜻대로
움직이듯이, 세 치(9cm)밖에 안 되는 작은 혀는 그 사람의 전체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혀는 곧 불과 같습니다. 작은 불씨가 산 전체를 태워 버리듯이, 혀를 잘못 사용하면
그것으로 인해 인격을 더럽히고 인생 전체를 망칩니다. 성도는 입과 혀를 지켜서
자기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할 뿐 아니라(잠 21:23),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드러내고 이웃을 축복하며 덕을 세워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 적용 질문: 내가 자주하는 말실수는 무엇인가요? 말실수를 줄이기 위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요?
혀의 이중성(3:7∼12)
인간은 온갖 짐승을 다 길들여 왔지만, 세 치밖에 안 되는 혀는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영혼까지 파멸시킵니다. 마음이 거룩한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해야 혀가 선하게 작용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른 사람을 축복합니다. 마음이 교만으로 가득하면 혀는 악하게 작용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저주합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동시에 나올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참된 성도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혀를 선하게 사용하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이 혀를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묵상 질문: 혀를 능히 길들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내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로 결단하고 오늘 실천해 보세요.
열매로 그 나무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듯이(마 7:15~20) 사람도 그 행위를 보면
하늘에 속한 사람인지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육신적이고
악한 영에게 속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마음이 독한 시기와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혼란과 분열을 일으키고 악한 일을 서슴없이 행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사람은 지혜와 총명이 있기에 온유하고 성결하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공동체를 화평하게 하고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도는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사모해 삶의 모든 분야에서 거룩한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와 땅에 속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각각 어떤 열매를 맺나요?
- 적용 질문: 하늘로부터 난 지혜를 내가 속한 공동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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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
말은 경건의 첫 표지(1장 26절)입니다. 신중하고 절제된 언어 사용은 온전함에 이르는 길입니다. 누구나 말에 실수가 있지만 지도자의 말은 그 범위와 강도에서 더 큰 영향을 끼치기에 더 큰 책임이 따릅니다. 야고보는 선생인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하며 더욱 신중하자고 채근합니다. 말의 허물만 아니라 말과 다른 삶의 위선도 경계해야 합니다. 행함 없는 말은 궁핍만 가져올 뿐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말과 행동에 진실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십시오. 말의 온전함에서 삶의 온전함이 시작됩니다.
3~6절
혀는 작지만 그 위력은 막대합니다. 재갈 하나로 말을 제어하고 작은 키로 배의 진로를 바꾸듯이 혀는 온몸을 지배합니다. 마치 작은 불씨가 온 산을 태우듯,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무시하는 말, 부주의하고 사려 깊지 못한 말, 욕심에 사로잡힌 언어의 습성이 여태껏 쌓아온 인생의 궤적을 짓이길 수 있습니다. 내 말은 살리는 말입니까? 아픔을 달래주고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며 평화를 일구는 말입니까?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이 시대의 언어를 닮아가는 우리와 자녀들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여기고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7,8절
혀(말)는 유독 길들이기 어렵습니다. 성난 짐승처럼 다루기 힘들고, 음흉한 독사처럼 언제든 치명적인 악을 내뿜어댑니다.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혀(1장 8절), 불의의 도구(6절)인 혀에서 나오는 것이란 생명과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악독뿐입니다. 그러니 언어의 순화만 아닌 언어의 성화가 필요합니다. 말의 습관을 훈련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말씀을 묵상하여 내 마음을 늘 성령의 생각으로 채우고 성령의 통치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9~12절
혀의 이중성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그 입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험담한다면 위선이고 거짓 경건일 뿐입니다. 종교적인 언어로 자신을 감추거나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고 있다면 어서 주께 토로하고 새롭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 덕담보다 험담이, 칭찬보다 비방이 더 많은 사회에서 내 말이 해가 되는 무기가 아닌 덕이 되는 향기가 되게 합시다.
'지식'에 '행함'이 더해질 때, 한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지혜가 됩니다.
[남연화] [오후 5:08] 김미옥,한순득성도님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원하시느니라 " 말씀으로 순종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