香閨에 일이 없어 백화보를 헤쳐보니 봉선화 그 이름을 누가 지어 내었는가 신선의 퉁소 소리 선경으로 사라진 후 규방에 남은 인연 일지화로 머무르니 유약한 푸른 잎은 鳳의 꼬리 노니는 듯 아름다운 붉은 꽃은 신선의 옷 펼친 듯이 고운 섬돌 맑은 흙에 촘촘하게 심어내니 춘삼월이 지난 후에 향기없다 웃지마소 취한 나비 미친 벌이 따라올까 두려우니 정숙한 저 기상을 여자 밖에 뉘 벗할꼬 옥난간 긴 긴날에 보아도 못다 보아 비단창을 반쯤 열고 어린 종을 불러내어 다 핀 꽃을 캐어다가 繡상자에 담아놓고 바느질을 중단하고 中堂에 밤이 깊어 밀촛불이 밝았을때 차츰차츰 꼿꼿이 앉아 흰 백반을 갈고 바수어 빙옥같은 손 가운데 흐물흐물 개어내니 파사제후 좋아하는 紅산호를 개어논 듯 구중구궐 돌절구에 도마뱀을 빻아논 듯 섬섬옥수 열손가락 수실로 감아내니 종이위에 붉은 물이 스며드는 그 모양이 가인의 고운 뺨에 홍조가 어리는 듯 단단히 묶은 모양 곤륜산 서왕모에 보내는 서신인양 봄잠을 늦춰 깨어 차례로 풀어놓고 경대앞에 좌정하여 팔자눈섭 그리려니 난데없이 붉은 꽃이 가지 끝에 붙었는 듯 손으로 잡으려니 어지럽게 흩어지고 입으로 불려하니 안개처럼 가리웠네 친구들을 서로 불러 즐겁게 자랑하고 꽃앞에 나아가서 두 빛을 비교하니 쪽잎의 푸른 물이 쪽보다 푸르단 말 이 아니 옳을손가 은근히 풀을 매고 들어와서 누웠더니 녹의홍상 한 여인이 표연히 앞에 와서 웃는 듯 찡그린 듯 사례인듯 하직는 듯 어렴풋이 잠을 깨어 곰곰이 생각하니 아마도 꽃귀신이 내게 와서 하직한 듯 繡戶를 급히 열고 꽃수풀을 살펴 보니 붉은 꽃이 떨어져서 땅 가득히 수 놓았네 마음 상해 슬퍼하며 낱낱이 주워 담아 꽃에게 말하기를 한스러워 말으시오 시세연년 꽃빛은 옛날과 같으오며 하물며 그대 자취 내 손톱에 머물었지 동산의 도리화는 한조각 봄 자랑마소 봄바람에 그대들이 적막히 떨어진들 그 누구가 설워할꼬 규방에 남은 인연 그대 한몸 뿐이로세 봉선화 그 이름을 그 누구가 지었는가 오로지 그리해서 지어진 이름임을.
*고어체를 의역하였습니다. 이렇게 썩 마음에 드는 내방가사는 없었습니다. 1970년 판 난설헌 전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봉선화 물들이기 힘들지만 여성만의 옛풍류를 지나칠 수는 없지요. 난설헌의 #염지봉선화가 읊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