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방 TV가 빛나는 밤에 (연이말2)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이 곳은 무조건적으로 연예인을 비난하는 곳이 아닌 올바른 비판을 지향하는 카페입니다. |
한국스포츠 기적하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축구의 박지성 등..
전 조국수님의 제1회 응씨배 우승 (소곤소곤) 한 표 던집니다^.^;;.
응씨배가 세계바둑대회 중 최고의 권위를 누리는 데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세계기전 중 가장 높은 금액(40만 달러)
2. 우승 시 4년동안 세계대회 타이틀 홀더
3. 세계 최초의 국제대회는 후지쓰배로 기록되고 있지만, 중국에서 응씨배를 열기로했다는 소식에 당시 바둑 종주국을 자처하던 일본이 허겁지겁 후지쓰배를 급조, 출범시켰다. 그래도 바둑인들은 치밀한 밑그림 아래 차분히 준비된 진짜 ‘효시’는 응씨배란
사실을 잘 안다. 이것이 잉씨배가 국제 바둑대회들 중 최고 권위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세 번째 이유
1988년 제 1회 응씨배 바둑대회에서는 주최측인 중국과 당시 최강국으로 불리우던 일본에 각각 6~7명씩 출전권을 주었으나 우리나라는 구색맞추기용으로 1장만 준 굴욕을 맛보기도 했습니다.ㅜㅜㅜ 이는 당시 아마추어 수준급이였던 유럽, 미국과 동등하게 본 것으로... 응씨배 목적이 뭐였냐면 바둑을 통해 중국인들의 우수성을 과시하는데 있었는데, 대회 출범 무렵 바둑의 리더국은 중국 아닌 일본이었지만, 한 두 차례 대회를 거듭하고 나면 중국의 우승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런 서러움속에서 조훈현 9단이 혈혈단신으로 참가해서 일본의 바둑1인자로 불리우던 고바야시9단을 이기고, 대만의 1인자였던 임해봉까지 이기고, 드디어 1989년 중국의 1인자인 녜위이핑과 결승전에서 만나 3-2로 이기고 우승해서 한국을 바둑 최강국으로 발돋움 시키게 됩니다!!!! (결승 제 5국은 20세기 명국이라고 불리죠. 요즘 다음 인기 웹툰 ' 미생'이 5국을 다루고 있습니다.)
(헉, 조국수님 엄청나게 말랐음ㅡ.ㅡ;; 승부사 시절엔 어쩔 수 없었을 듯 )
귀국 후 금의환향 카 퍼레이드를 펼치는 조국수님.
며칠 뒤엔 정부에서 조국수님께 은관 문화훈장을 수여. 둘 다 바둑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음.
그 뒤 응씨배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동등, 혹은 그 이상으로 이젠 인정해서
응씨배 우리나라 참가권을 늘려주었음.
1993년 제2회 응씨배 결승 5번기 마지막 대국을 기다리고 있었음. 일본의 오다케 히데오vs 한국의 서봉수 9단. 당시 오다케는 일본을 대표하는 초일류고수였고, 서명인은 한물갔다라는 말을 듣고 있었음. 응씨배에도 가까스로 막차를 막차를 타듯이 참가. 2-2 스코어 마지막 대국. 이 대국 한판에 40만 달러라는 엄청난 상금이 걸려있음에 사뭇 긴장한 탓인지 서명인은 실수를 연달아 유발함. 그렇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대마의 생사가 걸린 수상전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 하지만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 줄 한 수가 반상에 존재했음. 그러나 오다케는 그걸 발견 못하고(당시 50이 넘었음) 서명인은 최악의 바둑을 역전하는데 성공. 한국의 2연패!!!!
(우승컵 사진 찾다가 포기ㅜㅜ 이런 설정샷 매우 조으다 조으다~ㅋㅋ)
잠깐 서명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살의 늦은 나이에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 2년 뒤 입단.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서 프로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만 따진다면 세계 신기록ㅋㅋㅋㅋㅋㅋ 진로배 9연승, 응씨배 우승, 명인전에 강해 명인전의 사나이란 고유한 호칭을 얻음. 동시대를 함께 했던 조국수님과는 라이벌로 2인자..였지만 최근엔 분당기우회장배에서 우승컵을 안으셨지요ㅎㅎ
1996년 제 3회 응씨배. 한국은 대만과 같은 5명만 초청 됨. 두 번 연속 우승한 나라를 제쳐놓고 일본 6, 중국 7명이 자리를 차지했는데 이번엔 '최고의 공격수' , '일지매' 유창혁이 펄펄 날아 1997년 일본의 동갑내기 요다를 결승서 만나 3대1로 우승. 조훈현-서봉수에 이어 한국인 우승자 계보가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대회 창시자 잉창치씨가 처음으로 시상식에 불참.ㅋㅋ;;
한국 3연패!!
(우승컵 든 사진 찾기 정말 힘드네요ㅜ..최근 제자와 함께 참가해 우승한 SG배 페어바둑 )
유창혁 9단은 바둑계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개혁을 요구하며, 때론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바둑 도장을 운영하고 있고, 거기다 프로도 배출 했죠.
최근엔 제자 최정 초단과 함께 출전한 페어바둑대회에서 짜잔(^_^V) 우승 했습니다.
2000년 열린 제 4회 응씨배. 이땐 설명하려면 입 아픈 바둑의 신 이창호 9단의 정점이자, 독주 시대입니다. 실력으로나 인기로보나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습니다. 역시나 모두의 예상대로 한판한판 순조롭게 이겨나가 결승에 올라 만난 결승 상대는 당시 중국 1인자 창하오 9단. 한국타도라는 중국 바둑의 기대와 염원을 어깨에 걸친 창하오는 이창호와의 주요 대결에서 여러번 만났지만 연전연패 당하기 일 수ㅜㅜㅜ 창하오 스승 녜웨이핑이 1회 잉씨배 때 조국수에게, 역시 스승 마샤오춘 9단이 이창호 9단에게 발린것처럼 3-1이라는 스코어로 이창호 9단은 잉씨배 우승컵을 차지합니다. 상대전적14승 2패를 기록. 이때만해도 창하오 9단은 이창호의 그늘에 가려 슬그머니 한 때 활약했던 정상급기사☆...로 사라질 듯 하더니..
아무튼 이창호9단은 잉씨배+LG배 우승으로 프로기사로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금 10억 돌파했지요. 한국 4연패!!!!
그리고 2년 후 춘란배 우승으로 대망의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
(사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임ㅜㅜ 저 사진은 당시 결승 대국 모습. 이국수님 정말 어려보임ㅋㅋ)
2004년 열린 제 5회 응씨배.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 이세돌 9단, 최철한 8단, 송태곤 6단 등 총 5명이 한국의 5회 연속 우승을 향해 출전했음. 한국은 이번 대표선수 중 이창호 9단과 유창혁 9단을 제외하면 3명 모두 새로운 얼굴. 응씨배에서 그동안 연패 기록이 나오지 않았던 만큼 새로운 우승자가 탄생할 수 있을 지 주목하기도 했음. 그러나 이세돌 9단은 후지쯔배,LG배, 삼성화재배 등 국내, 세계기전에서 우승해 강력한 우승 후보로 뽑혔지만 1회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음ㅜㅜ
최철한-이창호의 8강전. 국내기전에선 최8단이 이9단과의 번기 대결로 국수전과 기성전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었음.(최철한은 이창호를 극복하면서 단숨에 정상급 기사로 발돋움 한 케이스) 이창호 9단이 졌음. 한국은 최철한과 송태곤이 준결승에 진출해 송태곤-창하오, 최철한-펑첸의 준결승 3번기. 그 결과는 최철한 8단의 결승 진출! 하지만 송태곤 7단은 대마를 2개나 잡으며 다 이긴 바둑을 막판 실수로 창하오에게 내주게 됨. 이 패배 이후 송태곤 9단(승단)의 이름을 찾기가 어려워졌다ㅜㅜ 마음이 아프다. 초일류 기사로서 더욱 더 대성할 수 있었는데ㅜㅜ분명 다시 일어 설 수 있을거야!!퐈이어!!!!!!!!!!!!!!!!사범님 힘내셔요ㅜㅜ
그리하여 결승에 올라온 최철한vs창하오. 창하오 9단에게 강한 이창호 9단을 이기고 올라왔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최8단의 우승을 점쳤음. 2005년 시작된 결승 제 1국. 역시나 최8단의 승리!! 하지만 이어 결승 제 2국~4국, 창하오 9단은 "응씨배를 만든 잉창지 선생의 영전에 우승컵을 바치고 싶다. 잉창지 선생은 중국 바둑을 위해 응씨배를 만들었으나 우리는 12년 동안이나 그에 보답하지 못했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이더니 최철한 8단을 꺾고 기어이 우승컵을 안았음.
창하오 9단은 만년 2인자 그늘에서 벗어나 세계대회 타이틀 홀더로 우뚝 섰고, 최9단은........욕 엄청 얻어먹었음.......
여기요!!! 세계대회 준우승도 대단하거든요!!!!!!!!
(대국 후 복기. 기자들에게 둘러 싸인 창하오.어두운 표정의 최철한. 난 왜 우승컵든 사진을 못 찾는걸까?..아마 난 안될거야..)
2008년 제 6회 응씨배. 이창호 9단, 최철한 9단, 송태곤 8단과 더불어 국가시드로 이세돌 9단, 박영훈 9단, 이영구 7단을 포함해 총 6명의 기사들이 이번 대회에 참가했음. 한국은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박영훈 9단, 최철한 9단이 생존 해 열린 8강전에선 박영훈 9단만이 홀로 패해 준결승엔 3명의 한국 기사가 출전하게 되었음. 특히 이세돌은 1회전부터 3회전까지 중국선수들을 만나 차례대로 격파! 짝짝짝. 이어 준결승은 형제대결 이창호vs이세돌과 최철한vs류싱으로 좁혀졌음. 3년째 세계대회 무관인 이창호 9단은 건재함을 과시하듯 2:0으로 이세돌 9단을 이기고, 최철한 역시 2:0으로 중국의 류싱을 이김.
2009년 응씨배 결승전. 이창호vs최철한. 결승 제 1국. 이창호 9단이 선취점을 올렸음. 하지만 결승 제 2국에서 최철한 9단이 이겨 승부는 원점이 되었다. 이어 열린 3국 역시 최9단이 승리해 2-1, 우승에 한발 앞섰음. 40만 달러가 걸린 결승 제 4국. 불리하던 바둑을 역전하여 최9단의 승리!!!
(맘 고생 많았을 듯. 부활을 축하합니다. 우승을 축하합니다. 짝짝짝//)
그리고 2012년 제 7회 응씨배가 개최 됨. 27개월 연속 랭킹 1위를 거머쥐고 있는 이세돌이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기전이 잉씨배. 2005년부터 잉씨배에 출전한 이세돌은 3승 3패의 그 답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이번 잉씨배에서 과연 우승컵을 안으며 세계기전 그랜드슬램을 달성할지 기대된다. 이 외에도 우승 경험자 이창호·최철한이 잉씨배 역사상 최초로 2회 우승자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이며, 박정환·원성진·김지석의 활약상도 기대해 봄직하다. 최철한·이창호·이세돌은 시드를 받아 25일 본선 2회전부터, 박정환·원성진·김지석은 23일 본선 1회전부터 참가한다.->타이젬 발췌
본선 1회전 김지석의 탈락, 본선 2회전 박정환 9단과 이창호 9단을 뺀 나머지도 탈락! 위에도 써놨지만 상위 랭커 대거탈락은 이제 놀랍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세돌 9단의 패배는 왜 이리 맘이 아픈지.. 과연 4년 후에 본선 무대를 또 밟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어 열린 8강전에선 한국기사 두명 모두가 살아남아 준결승 진출! 한국 박정환vs이창호, 중국 판팅위vs씨헤어의 대결로 결승은 한중전이 되겠네요. 재미있는 사실이 본선 인터뷰때 이창호 9단이 뽑은 우승 후보가 박정환 9단ㅋㅋ
박정환 9단은 현재(12년 9월) 한국랭킹 1위, 이창호 9단은 벌써 14위까지 떨어졌습니다.ㅜㅜㅜㅜㅜ
박 9단이 우승해서 랭킹 1위로서의 든든한 면모를 보여줬음 하지만, 최근 10 연속 준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이 9단이 우승하는 바람도 너무나 큽니다. 아직 4강, 결승 일정이 나오지 않았네요. 과연 누가 결승에 올라가고 우승할지 기대됩니다.
"집중을
위해 시합 때는 아이 생각을 안 했지만, 대회 기간에는 계속 했지요."
좀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던 이 9단. 결혼 후엔 잘 웃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기좋슴돵
|
첫댓글 바둑은 예전 파란웹툰 바둑 삼국지를 보면서 관심이 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스포츠에요 저에겐..바둑 삼국지가 조훈현 국수님의 대국을 다루고 있거든요 응씨배에서의 마지막 대국...정말 표현이나 그런것들이 너무너무 멋있고 또 그 삶에 소름이 끼치는 만화라서 재밌게 봤음.. 책을 소장하고 싶은 몇 안되는 웹툰중 하나에요...잉..? 어째 바둑이야기 하다가 웹툰 추천으로 넘어가 버렸네요 ㅋㅋㅋ
맞습니다. 바둑삼국지의 메인. 조국수님이 한국 바둑의 영웅이었죠. 성장과정-응씨배 이야기를 왔다갔다 진행하시다가 작가님이 건강상의 이유로 휴재 들어가더니 결국엔 파란의 웹툰 서비스 종료ㅜㅜ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가 한가득이었는데!! 네이버나 다음에서 재연재 소식이 들렸으면 합니다. 바둑이 물론 어려운 스포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많이들 지루하다 재미없다 저걸 왜 보지란 말도 자주 들리죠ㅜㅜ 하지만 쪼~금, 아주 조금만 관심 가지시면 바둑의 매력에 빠지시게 될 겁니다ㅎㅎ
이야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ㅋㅋ 바둑에대해서 더 알고싶은데 쉬운책이나 그런것 추천해두실수있나요? ㅋㅋㅋㅋ
바둑 대중화에 노력한다는데 정작 쉽게 다가갈 책이 없네요...바둑이 약간의 공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거의가 공부용ㅜㅜㅜ 흠.. 맞다!! 약간 자선적 느낌이 담긴 이세돌의 판을 엎어라, 이창호의 부득탐승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 드라마로 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조훈현 9단 역활을 유인촌이 했었고
조훈현 9단이 먹여 살리며 가르쳤던 이창호 9단은 누군지 모르지만 당시엔 바둑이 인기있던 시절이라
m국 방송사에서 나왔던 걸로 기억나네요.^^
k국에서 간간히 바둑방송 했던 것이 어느덧 프로 바둑과 다양한 형태로 바둑 저변이 넓혀진게 인상적이네요.^^
군계일학의 시대에서 상향 평준화로 이어지는 전환점이라 생각하며 응씨배 이야기 잘봤습니다.
드라마도 있었군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62.gif)
예전엔 바둑 인기가 대단했으니..나름 열심히 포스팅해봤는데 부족한것 투성이었는데 친절한 댓글 고맙습니다![부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26.gif)
후지쓰배가 최초의 국제대회인 배경을 지금 알았네요ㅡㅡ 아 진짜 일본 하는 짓 보면 더러운 속이 뻔히 보여서 정말 왜 저러냐 ㅋㅋ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ㅋㅋㅋ 하게 만드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어쨌든 기록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국제대회연걸로 되고 ㅋㅋㅋㅋ 바둑계에서도 저랬다니 ㅋㅋㅋ 일본-비열함=0
이제 후지쯔배는 역사속으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5.gif)
... 창설 당시 목적이 비열하기 짝이 없는데![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 결과적으로 울 나라에겐 효자기전이었슴당![흐흐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7.gif)
93년 유창혁 9단의 우승 이후 쭉 한국우승(그 사이 중국 3번, 일본 1번) 마지막 대회인 작년에도 박정환 9단이 우승했죠. 아마 자국 기사가 우승을 못하니 배가 아파서 중지시킨건 아닐까합니다![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