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80년대 이후 한국교회 설교의 동향과 전망(6) |
은혜가 배제되고 인과율에 얽매인 성화론①" 에서 발췌.... |
현재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설교의 의도 혹은 목적이 무엇인가? 100%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대부분이 “세상살이에 힘든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 격려하고 또 윤리적으로 경고해서 하나님의 예비된 은혜와 축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가운데 교회에 기쁨을 갖고 참석하면서 부흥하도록 하는 것”에 모아져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설교적인 의도가 뭐가 잘못인가? 이 의도 속에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청중의 기복적인 심리를 조장하는 실용주의적인 메시지가 잠복해 있으며, 자의적 성경 해석의 문제, 그리고 설교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를 세워가는 도구가 아니라 성도의 기복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줌으로써 교회의 가시적 성장을 실현시키려는 변질된 설교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이런 설교의 의도 속에는 구원받은 이후의 성도의 삶의 본질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왜곡된 설교의 저변에 자리하고 있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본질에 대한 왜곡된 관점은 구원의 서정의 관점에서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칭의에 대한 오해와 또 다른 하나는 성화에 대한 오해이다. 칭의와 관련해서 설교자들은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을 전부 구원받은 자로 생각하고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말미암은 복음에 관하여 설교하기를 등한시한다.
한국교회에는 성도들의 확고한 중생의 체험과 확신을 위해서 나름대로 계절별로 부흥회나 특별집회를 통하여 중생의 도리에 관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지만, 예전에 대각성 부흥운동 시절이나 한국교회사 초기의 부흥회에서 줄기차게 선포되었던 것과 같이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은 극적인 회심 체험에 관한 확신도 부족하고 또 이 체험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성도 스스로가 자신의 죄를 철저히 미워하며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섭고 공의로운 진노와 심판을 인식하도록 심령을 난도질할 수 있는 죄악과 지옥에 관한 설교도 거의 사라진지 오래이다.
오늘날 설교자는 성도들이 그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통한 죄 씻음과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기본 교리들을 다 알고 있으려니 짐작하면서, 인간의 죄악의 실상에 대한 과감한 노출과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 그리고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전적인 의존을 강조하는 복음 설교(혹은 전도 설교)를 등한시 하고 있다. 김서택 목사 역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은 교회 안에서 더 이상 복음이 선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교회에 출석하기만 하면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간주해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따라 설교의 내용도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간단한 윤리적 교훈을 가르치는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교회는 설교를 내용에 있어서나 또는 교인의 영적 성숙을 관리하고 직분을 맡기는 경우에 교인의 영적 상태나 수준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거나 너무 수준 높게, 다시 말해서 이미 확고한 중생의 단계를 넘어서버린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그 결과 설교 시간에는 중생의 문제를 자주 다루지도 않으며 또 다양한 교회 사역 속에서도 신도의 중생 문제를 전혀 중시하지 않고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하면서 여러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복음의 능력과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설교자들은 성도의 회심과 중생의 문제에 대해서 지금보다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제시하는 설교를 해야만 한다. 인간의 죄악의 끔찍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며 그 죄악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을 준엄히 선포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죄악을 태우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앞에서 자신 역시 자신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죄악의 실상과 직면하여 이 죄악을 하나님과 함께 증오하며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죄인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직면하도록 해야 한다.
죄악에 대한 철저한 증오와 격리,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에 직면하여 율법의 굴레 속에서 죄악과 함께 죽는 순간, 그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죽은 죄인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허락하시며 그 은혜의 고귀함을 철저히 깨달을 때, 비로소 그 성도는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의 비밀을 깨달으며 그 연합의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복음의 은혜와 영광을 풍성히 누리며 다시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첫댓글 아멘..값싼 구원, 관념구원,모태신앙 따위는 제발 훠어이~~
뉴스앤조이에서 설교자들 입장에서 게재된 글이네요. 한국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청중들의 문제, 즉 중생보다는 외형적인 종교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 다시 한번 엄격한 설교를 요구하고 있네요.
->그런데 저는 한국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한 원동력이 중생보다는 외형적인 종교생활을 유도한 목회자들의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는 말씀이 설교된다면 지금보다 거품은 훨씬 더 빠질것 같습니다.
거품이 빠질때 주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겠죠... 저는 얼마만큼의 거품으로 가득한지...ㅠ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계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계3:9)
행 7:47, 48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 ....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히13:12 -14..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 ...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 .....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히 9:9 , 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 .....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예수께서 이미 종교(세상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를 개혁하셨읍니다 .... .... 손으로 지은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 .... 개혁하신 예수께서는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읍니다 (종교인들에게) .... .... 하늘에 속한 자 (약속으로 난 자) 우리는 예수께서 지신 능욕을 지고 성문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