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반과 5분 북어국
새색시가 된 후배에게 점심을 샀다. 꽃미남 의사선생님과 사니
재미가 좋느냐고 농을 쳤더니 대번“사기 결혼이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알고 보니 남편이 종손이었다는 거다..
부모를 일찍 여윈 데다 총각 이었던 지라 지금까지
남편 대신 인척들이 제사를 지내왔지만 앞으로는 4대조까지
일 년에 열 번 이상 제사와 차례를 모셔야 할 것 같다고
엄살이다.
하긴 제상에 울릴 밤 한 톨 쳐본 적 없는 손으로 달마다 한 번
꼴로 제수 준비하고 손님 모실 생각하면 겁이 나긴 하겠다.
그래선지 결혼 전에 신랑감이 부모 제사 지내는 걸 거들며 미리
연숩 해 본 모양이다. 후배의 남편은 총각시절 남동생과 함께
부모 제사만 약식으로 모셨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볼 만하다.
“호화로움보다 검소함이 낫다”
과일이야 준비가 어려운게 아니니 홍동백서(紅東白西),조율이시
(棗栗梨柿)를 제법 지켜 내더란다. 부모님이 촉식(觸食)하도록
과일의 윗부분을 깎는 것도 잊지 않았음은 물 론이다. 이어 전(煎)
이니 적(炙)이니 시장 반찬가게에서 사온 음식을 올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위패에 가장 가까이 놓는 밥과 국으로 인스턴트 ‘햇반’과
'5분 북어국’이 등장 할 때는 웃음을 참을 수 없더란다.
나 역시 눈물 나도록 자지러졌다가 “햇반고 즉석국이 제법 맛있더라”
고 위로하는데. 합석했던 다른 후배의 말이 걸작이었다.
"부모님이 와서 보시고 너무 귀여워하셨을 것 같아요”
맞다 그런 거다. 평소 밥짓는 일이 없어 냄비하나 변변찮은 두 형제가
뜨더운 물만 부으면 해결되는 즉석 북어국을 제상에 올렸다고 성의
없다 까탈 부릴 부모가 어디 있겠나 말이다.
시장에서 사온 음식인지라 마늘.고추 안넣은 금기를 지켰을리 없지만
눈 가리고 코 막고 서라도 두 아들 정성을 맛있게 흠향(歆饗) 하셨을 게
분명할 터다.
공자도 “제례의 호화로움 보다는 차라리 검소함이 낫다”고 했고 예절
차리기로 따를 자 없는 주자(朱子)마저"검소함과 슬픔,공경하는 마음에
바탕을 둬 예를 표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젯밥의 과다, 우열보다 제사 모시는 사람의 정성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따지자니 우리네 제상 차림이 다시 볼 게 여럿이다.
무엇보다 제수가 너무 구식이다. 제사 음식이란 게 그 시대에
가장 푸성하고 값 나가는 물산을 형편이 닿는 대로 차려 냈던 게
아닐는지. 그런데 오늘날 온갖 새로운 먹거리들이 지천에 널렸어도
제상은 그저 옛 차림 그대로다. 제사가 끝나고도 음복으로 대추나
하나 집을 뿐 제상에 따로 손이 가지 않는 이유다. 입맛 앞에는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제상 물리고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따로
장만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검소한 것도 아니고 조상을 공경하는
태도도 아니다. 조상이라고 늘 먹던 것만 먹고 싶겠나. 후손들이
즐기는 새로운 요리나 처음 보는 과일도 맛보고 싶지 않겠나 이 말이다.
팔 걷고 나서는 요리 연구가가 왜 없는지 모르겠다.
망자 추억하는 집안 고유 제사상
자고로 "남의 제사에 밤 놔라 대추 놔라한다"는 속담이 있다.
역설적으로 제사 예법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걸 보여 주는 말이다.
집집마다 다르다고 가가례(家家禮)라고 하지 않는 가. 돌아가신
이가 좋아하던 커피를 제상에 못 올릴 이유가 없고 조상이 애연가
였다면 담뱃불을 붙여 놓을 수도 있겠다. 요즘의 와인 열풍을 보건대
앞으로 는 와인도 자주 등장할 게 분명하다. 그게 오히려 망자를
추억하는 제사의 참뜻을 살리는 일 아닐는지. 옛것도 좋지만 시대
변화를 따르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 게 예법이다. 북쪽을 향해 제상을
차리는 것도 오늘날 남향 아파트에서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일 아니냔
말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들이 모여 좌포우혜(左脯右醯)니 어동육(서魚東肉西)니
따지지 말고 우리집안에 가장 알맞은 제사 음식은 무엇이며 예법은 또 어떤
것인지 의견을 나눠보시는 것은 어떨지. 그래서 우리 집안만의 제사 예법
매뉴얼을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떨지. 그렇게 만든 후배 부부의 깨소금 차례
상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2007.9.19. 중앙일보 視時各角 이훈범 논설위원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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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른건 이해 할수 있겠지만 햇반과 즉석 북어국은 넘 심하네요.그분들 평소에도 밥과 국을 햇반과 즉석국을 드시는지요? 우리 친정도 대 종갓집인데 울 엄마는 두부도,맷돌에 콩 갈아서 만들어 탕국 끓이셨는데, 탕국에는 쇠고기 북어 무우 다시마 두부 5가지를 꼭 넣으시던데,. 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풍요롭고 행복한 추석명절 되십시요.
호..ㅎㅎ...너무 웃습다. 정말 새댁의 용기가 대단하네요 조상님이 귀엽다고도 하겠어요 먹지도 않은 음식 많이하여 처분하기 곤란할때도 많구 작은집,막내집, 아들딸 챙겨주기에도 지겨운데... 문회장님! 추석명절 잘 지내시고 건강하세요^^
추석 명절에 며느리들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아시는것 같아요 ...풍요로운 추석 되시기를바랍니다.
먼훗날,..지금시대 피자먹고자란 아이들이 먼훗날 늙어서 죽게될때 그때도 지금처럼 녹두부침과 동글납작 알록달록(사탕이름을 몰라서)사탕을 놓고 제사를 지내려는지??..아마 그때는 초코렛과 멜론,바나나, 피자를 놓고 지내야 맞는거 아닌가 싶네요.말이 좀 이상 했나요?? 향기님들!! 즐건 추석명절 되세요.
제사는 돌아가신날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망자를위해 기도하는날 조율이시 홍동백서 가 이시대 아이들 에겐 의미가없어진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인 음식보다 평소그분이 좋와하셨던 음식으,로대처하고 집안대소가의 화목을 돈독히 함에 중심을두어야겠지요 요즘엔 일년 여러번의 제사를 한번에 날을정해놓고 지내는집도있어요 그집자손들 잘살고있지요 미신 우상숭배에 에너지 소비는 이제그만해야겠지요
많은것을 시사하는 글입니다 우리집도 다시한번 생각 해봐야겠습니다. 댓글다신 울님들 의견도 참고 하겠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되십시요..
회장님댁![종](https://t1.daumcdn.net/daumtop_deco/icon/deco.hanmail.net/contents/emoticon/things_34.gif)
가의고충이해됩니다.친정도![종](https://t1.daumcdn.net/daumtop_deco/icon/deco.hanmail.net/contents/emoticon/things_34.gif)
가였으니까요. 시대변하는즘음 따라야지요.조상님께서도맛보지못한음식들잡수싶을거예요.조상님잘모셔야지요. 명절보내시느라몸살은 안하셨는지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뒤 늦게 이 글을 읽어 보았읍니다. 우리나라 역사적인 말이 많이 올려 있는데 앞으로 자식들이 이런 형식은 없어지리라 믿습니다만 콘도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세상이니 훌륭한 유교정신이 이어질연지 의심이 됩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의 유교정신을 상당히 우러러 보고 있읍니다. 좋은 글 뒤늦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좋은말씀 올리신 글 잘봤읍니다.회장님도 4대 종손으로 제사를 모셔오느라 사모님 힘드셨다는 말씀 저도 이해가 감나다.제사 모시는일 때만되면 며칠전부터 마음 걱정많이 하게 돼요 ..수고하시는 회장님 힘내시고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