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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가진 자는 추락이 두렵지 않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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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이 선생이지 보몹니까?”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여자는 연출된 분위기가 엿보이는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뱉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날 바라보더니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행위가 몇 번을 반복되고 서서히 내 미간이 곱게 찌푸려졌다.
“지랄도 병이라더만….”
나지막한 내 목소리에 여자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욕 얻어먹고 실실 웃는 조폭이라,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닌 것 같은데.
요즘 생계가 어려운가?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돈 없어 미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여자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든 말든 한참동안 웃더니 다시 시뻘건 입술을 열었다.
“역시, 그 정도 성질은 있어야 그 새끼를 맡겨놔도 뒤탈이 없겠지.
보모노릇을 하라는 게 아니라 너희 학교로 애새끼 하나 보낼 테니까
감시 좀 잘 해달라는 거야.
새끼가 뇌세포를 팔아먹었는지 갑자기 학교가 가고 싶다고 바가지를 긁어 대서 말이야.”
내가 무슨 특수 문제아 담당 선생도 아니고,
지금 우리 반에 있는 놈들로도 벅차 죽겠구만 여기서 하날 더 더하라고?
아주 피를 쪽쪽 빨아먹지 그래.
그건 그렇고, 저 여자가 소개할 만한 놈이면 혹시 17에 조폭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직도 실실 웃고 있는 여자를 지긋지긋한 눈빛을 가득 담아 바라보며
그 ‘애새끼’라는 놈에 대해 묻자 여자가 순간적으로 얼굴을 굳히며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는 좋아, 지나치게. 성격은 더럽고, 심각하게. 광신교 신자지, 엄청난.”
“뭡니까? 그 반복적 효과는.”
지나치게 머리가 좋고, 심각하게 성격 더럽고, 엄청난 광신교 신자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 정상은 아니었군.
지나치고, 심각하고, 엄청나다…라,
벌써부터 뒷골이 슬슬 땅겨오는 게 그다지 즐거운 기분은 아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레 저런 여자한테 걸려가지고서는….
지끈지끈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처한 현실에 좌절하는데
여자가 기다란 손가락을 건성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우선 한번 봐. 어차피 앞으로 질리도록 볼 면상이니까. 영운아.”
여자의 손짓에 후의 뒤에 서 있던 놈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보디빌더가 어울릴 것 같은 터질 듯한 근육을 가진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귀에 닿도록 기른 갈색기가 도는 약간은 긴 듯한 머리와 적당한 체격이
보통의 대학생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역시 조폭은 조폭인 듯,
왼쪽 뺨에는 길게 난 상흔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호오, 여자한테도 형님인가?
하긴, 아무래도 누님이라고 하면 조폭보다는 제비 분위기가 나겠지?
녀석의 묵직한 목소리에 여자는 기다란 손톱으로 미간을 누르며 다시 손을 저었다.
“그 새끼 데려와라.”
“예, 형님.”
간단명료하게 대답한 녀석이 어디론가 사라지자 여자가 다시 한숨을 뱉어냈다.
처음과는 다르게 삶에 찌든 듯한, 여자와는 그다지 매치가 되지 않는 한숨이었다.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올 정도로 맛이 간 놈이라, 기대 반 걱정 반이로구만.
작은 사기잔을 들어 진하게 탄 커피를 한 모급 마시는데 잠시 후,
뒷문으로 들어간 녀석이 넓은 보폭으로 다시 걸어 나왔다.
약간 피곤한 듯한 표정의 녀석 뒤로, 흑색의 무언가가 들어왔다.
무광택의 검은 나시와 바지.
그리고 언밸런스한 검은 영웅건과 한쪽 팔에 새겨진 이상한 문양의 문신.
적어도 180은 거뜬히 넘는 키와 그에 상응하는 알맞은 덩치.
그래도 보디빌더 같은 근육질이 아니고 조폭같은 칼자국 인상파가 아니라 다행이지
만약 그랬다면 학교도 뭐고 집어쳐야 했을 거다.
물론 저 문신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긴 하지만 우선은 조폭의 메인이라는 용은 아니니까.
녀석의 쌍꺼풀 없는 알맞은 크기의 눈과 똑바로 잘 솟은 코를 바라보는데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카트라챠 신교의 교리를 아시는지요.”
…무슨 교라더니 사이비 신자였나?
다분히 황당한 표정으로 녀석과 여자를 바라보자 녀석은 무뚝뚝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고
여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녀석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쳤다.
퍽-! 하는 꽤나 커다란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꽤 강한 여자의 힘에 녀석의 머리가 휙 돌아갔지만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고개를 원위치로 돌려놨다.
하지만 맞은 기분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지
무뚝뚝한 얼굴에 어느새 한 가닥 불만이 서려 있었다.
안 그래도 좀 안 좋은 인상이 찌푸려지기까지 하자
건달들도 슬슬 피할 것 같은 외모가 완성됐다.
꽤나 잘 생겨먹은 얼굴인데도 인상이 안 좋아 보일 정도면 심각한거지.
녀석은 잔득 찡그린 얼굴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
“내면의 어둠 속에 생존하는 더럽고 추악한 사귀여.
지금 당장 인간의 약한 영혼을 핍박하지 말고 사라져라,
나 ‘교’가 위대한 카트라챠의 이름을 빌어 용서치 않으리라.”
…라고.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두 가지 진단을 내리겠다.
미쳤거나, 돌았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대단하다는 정신과 의사에게 가도
이 이상의 답을 듣긴 어려울 거라 확신한다.
“저놈입니까?”
내 물음에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있던 여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무의식중에라도 한숨이 나올 만 하겠다.
“학교고 뭐고 때려치우고 가까운 정신병원이나 알아보는 게….”
저 꼴로 학교는 무슨 학교,
솔직히 내가 보기에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살아있는 게 신기하구만.
저 정도면 돌아도 퍼펙트하게 돌았는데.
“데려다 놨더니 카트라챠 신교의 교리를 널리 가르치네, 어쩌네 하면서
병원 의사고, 환자고 할 거 없이 쓸고 다니는 바람에 쫓겨났다.
두말 필요 없이 들고 가라.”
제기랄.
“우리학교 교장이 광신교도를 허락할 리가….”
“배때기가 방탄으로 돼있지 않는 한은 허락할거다.”
…협박을 하시겠다? 물론 문어 대가리 배때기가 방탄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몇 천 명의 학업을 책임지는 학교의 교장으로써 고작 조폭의 협박에 넘어갈 위인…
이지! 그래, 그 인간이라면 일말의 고민 없이 허락할 테지.
제길, 꼼짝없이 미친 놈 하나 키우게 생겼네.
슬쩍 시선을 옮겨 열심히 교리를 퍼부어대는 놈을 바라봤다.
입가에 경련이 오기 시작한다.
하여간 복 없는 인간은 역시 뭘 해도 안돼.
제기랄…
역시 세상에 신은 없다.
그리고 곧바로 가게에서 나와서 칙칙한 낡은 담벼락을 주먹으로 미친 듯이 쳐서 부셔놨지.
물론 내 주먹도 같이 부서졌지만.
반창고가 여러 개 붙어있는 주먹을 힐끔 쳐다보고는 김치찌개 국물에 숟가락을 담갔다.
학교 가기 싫다, 제길.
“왜, 누나? 입맛 없어?”
있을 리가 있겠냐.
카...뭐시긴가 하는 광신교도 한 놈이 교무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텐데.
문어 대가리 성격에 분명히 우리 반에 넣어놨을 게 틀림없고,
이걸로 비정장적인 2학년 4반의 비정상수치가 더욱 더 높아지게 생겼군.
그래, 잘- 돌아간다.
밥을 한 숟갈 퍼서 입 안에 쑤셔 넣으며 답하듯 한숨을 내뱉었다.
강채은, 인생에 회의가 느껴진다. 제길….
"…These variations in character can be traced to different factors such as climate,
living conditions, and historical development.
…이처럼 다양한 성격은 기후나 생활조건, 혹은 역사적 발전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다.”
기다란 지문을 본토 발음으로 완벽하게 해석한 녀석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면서 녀석 쪽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몇 년 동안이나 영어를 배웠을 게 틀림없는데도
변변찮은 지문 하나 해석하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광신도,
아니 교-이름이 교란다. ‘이 교.’ 학교였으면 이도령보다 더 웃겼을 텐데 조금 아쉽다-는
상당히 신비스러운 인물로 느껴졌을 게 틀림없다.
“잘했다.”
내 목소리가 교실을 울리자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이내 잦아들었다.
녀석은 내 짧은 칭찬에 가볍게 눈을 감았다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역시,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이름을 입에 올렸다.
“카트라챠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럼 그렇지, 반의 다른 녀석들도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걸로 보아,
녀석의 교리에 말려든 놈이 한 둘이 아닌가보다.
저 녀석이 학교 보내달라고 여자한테 바가지 긁은 이유가
카트라챠의 교리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게 아닐까, 하는 내 예상이 거의 사실인 것 같다.
교실에 들어온 지 이제 3시간짼데도 불구하고 녀석들을 저 정도까지 만들 걸 보니
퍼뜨리는 속도도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가다간 며칠 안가 학교에 카트라챠 신교도 동아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딱딱하게 굳어있는 녀석의 살벌한 인상이 무섭지도 않은 건지
말 많은 녀석들이 다시금 소곤거리며 녀석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녀석은 자기 이름이 도마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딱딱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평상시에는 저렇게 아무것에도 관심 없는 듯한 무표정을 짓고 있는데도
왜 교리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인상이 살벌해지고 성격이 더러워질까.
내가 수업을 멈추고 녀석을 반히 바라보자 다른 녀석들도 힐끔거리며 교 녀석을 바라봤다.
그 중에는 약간 시니컬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윤서 녀석도 있었고,
흥미로운 표정인 호수,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듯 얼굴을 찌푸린 지원이 녀석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원이 녀석도 포함 되 있었다.
은희는 관심 없다는 듯 턱을 괴고 있었고
채하 놈은 아까부터 밀려오는 잠을 떨쳐내느라 투쟁중이다.
많은 놈들이 교 녀석들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반장 녀석이었다.
슬쩍슬쩍 몸을 사리면서도 힐끔거리며 교 녀석을 바라본다.
반장된 입장에 새로 전학-전학은 아니지만 그렇게 알려놨기 때문에-온
전학생에게 말이라도 걸어야 하는데 인상 때문에 접근도 못 하고 있는 눈치다.
팔뚝 걷어서 문신이라도 보여주면 기겁을 하고 도망가겠구만.
뭐 어쨌든, 여자가 맡긴 광신도 이 교는 등교 첫날부터 확실히 눈에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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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가진 자는 추락이 두렵지 않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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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이교새끼 환율 형이랑 무슨 사이야?”
갑작스러운 채하 녀석의 물음에
아침 식사 반찬으로 알맞게 붉어진 김치찌개를 휘젓던 국자가 우뚝 멈췄다.
“사이라니?”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없는 한 그 둘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일 텐데?
이교새끼 얼굴은 나도 얼마 전에 봤는데 미국에서 온 환율 선배가 그놈을 알리가 있나.
멈췄던 손을 움직여 김치찌개를 휙 저으며 묻자 녀석이
흐응- 하는 의미심장한 소리를 내더니 가볍게 말했다.
다만 문제는,
“그자식이 누나보고 형수라고 부르던데.”
그것이 결코 가볍게 들을 만한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랄까….
학교에 오자마자 복장 검사니 소지품 검사니 뭐니 하며
열변을 토하는 문어대가리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고는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 곧바로 2학년 4반으로 올라갔다.
아침에 헛소리를 들어서인지 아까부터 귀 한쪽이 멍멍하다.
학굔지 정신병동인지 미친 척하고 복도에서 레슬링하고 있는 놈들을 지나
4반 팻말이 걸린 문을 한번 힐긋 바라보고는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세일기간 백화점을 연상시킬 정도로 복잡한 교실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자
구석 즈음에 여러 명을 모아두고 무언가 중얼거리는-카트라챠 신교의 교리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검은 영웅 건을 이마에 두르고 있는 교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서 말을 걸어오는 놈들에게 대충 대답해 주고는 뚜벅뚜벅 교 녀석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 희지 않은 적당하게 탄 피부 위로 쌍꺼풀 없는 날카로운 눈의 시선이
내 쪽으로 와 닿았다.
녀석을 턱짓으로 교실 밖으로 부르고는 어디로 데려갈까 생각하다가
가까운 상담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창문 쪽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자 녀석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앞에 앉았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새꺄, 내가 왜 니 형수냐?”
내 말에 녀석은 의외인 듯 잠시 의아스런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 꼬리를 얇게 접으며 웃었다.
하, 사람 마음 동하게 하는 눈웃음으로는 도령이 녀석이 한 수 위야 임마.
그놈이 눈웃음치는 것에도 끄떡 안 하는 이 몸인데 누구 앞에서 눈웃음을 살살 쳐?
내가 덤덤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은 잠시 그렇게 웃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형님 애인되는 분께 형수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릅니까?”
잘 어울리다 못해 이상하게 언밸런스하기까지 한 존댓말… 이 문제가 아니라, 뭐?
내가 녀석에게 다시 한번 말해달라는 시선을 담은 눈길을 보내자
녀석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지나치게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형님 애인되는 분께 형수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릅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 얘긴 확실히 들었는데 말이야.
그에 앞서 네놈 말에 뭔가 본질적인 오류가 좀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녀석을 한번 훑어보고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물었다.
“너 환율 선배랑 아는 사이냐?”
이렇게 밖에 설명이 안되는데 말이야.
아직 확실히 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내 애인이라는 선에 가까운 건 강환율 하나밖에 없거든.
네놈 형님애인이 나라면 그 형님이라는 인간은
환율 선배가 되는 게 그래도 적합한 거 아니냐?
하지만 이런 내 예상은 녀석의 짧은 대답이 산산이 부서졌다.
“누굽니까?”
환장하겠군. 하긴, 이 광신도 놈이랑 환율 선배랑 알고 있는 사이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 인간은 무교거든.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 이 놈이 환율 선배랑 모르는 사이면
이 놈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그 인간은 대체 누구야?
“네놈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놈이 누군데?”
내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녀석은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간단히 대답했다.
“정말 모르셔서 묻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후 형님이십니다.”
…….
뇌가 사라졌다.
게다가 그 발칙한 뇌 녀석은 사라지면서도 제 놈 혼자서 가기는 싫은지
그나마 내 생각을 정리해주던 머릿속의 사고회로 녀석까지 헝클어뜨리고 갔다.
제길, 다음에 다시 돌아오면 죽여 버린다.
지끈거리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천천히 녀석이 한 말을 곱씹었다.
녀석은 나에게 형님의 애인되는 사람이라고 했고,
녀석은 형님은 그 징그러운 여자 옆에 붙어있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후 녀석이고.
그렇다는 것은 저놈이 알고 있는 내 애인이 후라는 건가?
환장하시겠군.
대체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가 새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니로군.
그 여자, 그 여자 외에 누가 있겠어?
그 미칠 정도로 답답하고 무뚝뚝한데다가 눈치 없고 사람 숨 막히게 만드는 후 녀석과
날 연관시킬 인간이.
헛일 하는 군 그래, 몇 번 생각해도 나랑 그놈이랑은 안 맞아.
그 답답한 새끼랑 사귀다가 속 터져 죽을 일 있나.
한숨을 내 쉬고는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눈을 위로 들어올려 날 바라보는 교 녀석에게 말했다.
“뿌리도 없는 헛소문이니까 앞으로는 내 앞에서 형수소리 꺼내지 마라.
나는 후같이 답답한 새끼…”
쾅-!
…하, 돌아버리겠군.
어이없는 표정으로 녀석을 올려다봤다.
양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고 일어난 녀석은
나보다 10센티 정도 높은 곳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신장차이에서 오는 자존심 충격보다 먼저 내 머리로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눈빛.
녀석의 독기가 흘러넘치는 건방진 눈빛.
내가 가장 싫어하는 시건방진 눈빛.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니 험담은 삼가주시겠습니까.
솔직히 저도 당신 따위에게 형수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선택하신 분이라기에 하는 수 없이 맞춰주는 겁니다.
주제도 모르고 지껄이지 말고 얌전히 계시죠.
당신 따위보다 그분이 몇 배는 더 아까우니까.”
…….
하하, 기가 막히는군.
안 그래도 연합 놈들과 깔끔하게 끝나지 못해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친절히 불을 질러주시는군 그래, 건방진 새끼.
지금 하룻강아지 같은 새끼가 누구 앞에서 위협을 하는거냐?
채 자라지도 않은 젖니를 빼 물고 으르렁거리면 내가 벌벌 떨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 강채은이?
하긴, 위협은 몰라도 날 화나게 만드는 건 성공한 것 같구나.
덕분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게 상당히 좋아.
하지만, 네 놈이 화를 부추긴 만큼 뒷수습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으르렁대는 고양이가 귀여운 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아.
손을 뻗어 녀석의 멱살을 잡아채고는 강하게 끌어당겼다.
갑작스럽게 끌려온 녀석의 눈동자가 조금 커지고,
그 위로 녀석의 검은 색의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녀석의 멱살을 잡은 손을 좀 더 내 쪽으로 잡아당기고는
다른 손으로 녀석의 눈을 가린 앞머리를 위로 쓸어 올렸다.
독기를 가득 품은 녀석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내 입가에 작게 비웃음이 맺혔다.
녀석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진다.
“나 같은 놈 앞에서는… 그런 말 하는 게 아니다, 버릇없는 꼬마야.”
특히 이런 대엔 더더욱 말이야.
인간도 어쩔 수 없는 짐승이라 피 냄새는 금방 떨어지지 않거든.
핏속에 묻혔던 날부터 며칠 지나지도 않았으니 아직 흥분이 가라앉으려면 멀었어.
그 때까지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신경이 날카로우니 건드리지 말란 말이다.
시건방지고, 버르장머리 없는 꼬마.
녀석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지만
녀석은 굳었는지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독기를 머금은 눈으로 날 노려봤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두고 선전포고를 하는 표독스러운 표범 새끼처럼.
입 꼬리를 말아 올려 피식- 웃었다.
녀석의 미간이 꿈틀거리며 일그러졌다.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눈을 다시 한번 보고는 뒤 돌아 상담실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앞으로, 조금 시끄러워 질지도.
하긴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것보다는 의외로 그게 활력을 돋우는 데엔 나을 지도 모르지만.
심하게 화가 나지 않는 한은 말이야.
교무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데 주머니에게 약하게 진동이 울렸다.
눈살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꺼내 들고 귀에 가져가자
스피커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맹이 가르치는 재미는 좋나?]
한 순간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지만
꾹꾹 눌러 참고는 입을 열었다.
“꼬맹이가 상당히 시건방져서 좋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지금도, 앞으로도. 그리고 참, 허튼 소리 뿌리고 다니지 마.”
이런, 금방 반말이라니.
그래도 요즘 인내심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 기뻤는데 아직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건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데 핸드폰 너머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좋다고 처 웃는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 화만 부치길 거면 빨리 할 말 하고 끊어줬으면 좋겠는데.
나로썬 내 핸드폰이 바닥에 부딪혀서 산산 조각으로 망가지는 꼴은 보기 싫으니까 말이야.
[허튼 소리라는 건 잘 모르겠고, 뭐 아직까진 별 일 없는 것 같군.
앞으로도 잘 해보라고. 간간히 전화로 상황보고도 좀 해주면 좋고.
될 수 있는 대로 그놈한테서 시선 안 떼는 게 좋아.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니까. 그럼 수고.]
뚜- 하고 일정하게 들려오는 신호음에
정말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눌러 담으며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내 화를 부추기려고 전활 한 건 아니겠지? 제길.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욕지기를 다시 꾹꾹 말아 입 속으로 넣고는
교무실 문을 열려는데 기다란 손 하나가 어깨 위로 내려왔다.
“뭐야?”
이번엔 또 뭔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뒤로 돌리자
가장 먼저 녀석의 트레이드마크인 젤로 올려놓은 짧은 앞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은색의 반 무테안경에 살짝 가려진 날카로운 눈과 높은 코.
그리고 적당한 입술과 깎은 것 같은 턱.
그리고 샤프하게 빠진 가슴.
이대로 가다간 얼마 안 있어 학생 성희롱으로 신문에 나겠군.
“무슨 일이냐?”
화가 다 가시지 않은 티가 역력한 내 짧은 물음에 녀석은 약간 의아한 눈빛을 띄더니
이내 눈을 가리는 반 무테안경을 벗어 주머니 속에 넣으며 피식 웃었다.
얼굴에서 안경이 사라지자 지적인 이미지 대신에 와일드한 이미지가 보태졌다.
녀석은 날 잠시 바라보더니 곧 얼굴을 굳히며
한 손을 가슴에 대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 밤 제 파트너가 되 주시겠습니까, 아가씨.”
…….
“지랄한다.”
간단명료한 내 대답에 녀석은 슬쩍 내 눈을 바라보더니
그다지 길지도 않은 제 놈의 앞머리를 헤집었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뱉어냈다.
“분위기 좀 맞춰주시면 안됩니까.”
분위기는 무슨 얼어 죽을 분위기.
머리 속에 열이 뻗쳐 냉수로 식혀도 모자랄 판에.
녀석은 금세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는지 약간 얼굴 표정을 굳히더니
무슨 일 있냐는 듯 날 바라봤다.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내 젓고는 녀석에게 물었다.
“파트너라는 건 무슨 소리냐?”
녀석은 내 물음에 미간을 왕창 일그러뜨리더니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오늘 밤에 꽤 큰 규모의 사교파티가 있는데
집에서 선생님 데리고 참석 안 할 거면 얼른 선보라고 난리에요.
애인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해도 막무가내예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왕 도와주신 거 한 번 더 도와달라는 거죠.”
사교 파티라면 돈 많은 재벌집 사람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모여서
무슨 서양 귀족들처럼 액세서리 꿰어달고 드레스자락 나풀대면서
춤추고 먹고 마시고 떠드는 걸 말하는 건가?
나보고 지금 그런 옷을 입고 거기 서 있으란 거냐?
어이없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이 더운 듯 단추를 하나 끄르며 다시 말했다.
“싫으시면 안 오셔도 괜찮아요. 그다지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뭐, 어차피 허영뿐인 사람들만 가득 있는 곳이라
제가 잘 막는다고 해도 무슨 일로 트집잡힐지도 모르고….”
난처한 듯한 표정의 윤서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퍼뜩 연합 녀석들을 상대할 때 이 놈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만약 이 녀석과 이 녀석 집안 도움이 없었다면 그곳에 있던 모두가 경찰서 행이었겠지.
수없이 많은 딜레마로 가득 찬 머리를 꾹꾹 누르며 슬쩍 녀석을 바라봤다.
여전히 난처한 표정이다.
뭐, 어쩔 수 없는 건가.
그 동안 그렇게 give and take를 외치고 살았으니.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녀석에게 물었다.
“…몇 시냐?”
난처함이 가득했던 녀석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왜 당했다는 느낌이 스믈스믈 드는 걸까?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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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가진 자는 추락이 두렵지 않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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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에 시작이니까 7시, 늦어도 반까지는 저희 집으로 오세요.
옷이나 다른 장신구들이야 전화 한통이면 엄마가 난리를 치며 해 두실 테니까”
“OK.”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구만. 뭐 그래도 한번 내뱉은 말을 번복할 수는 없는 일이지.
윤서 녀석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교무실 문을 열었다.
교실로 올라가려는 건지 비스듬히 한쪽 어깨에만 걸쳐놓은 가방을 고쳐 매며
걸어가는 윤서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교무실 문을 닫았다.
좀 의외의 일이긴 하지만 특이한 경험 한다고 생각하지 뭐.
비싼 음식들도 널려있을 테고 말이야.
후유증이 크게 남았지만 그래도 맛있었던
윤서 녀석 집에서 먹은 프랑스 정식을 생각하며 씨익 웃는데
저번에 소철이 녀석 소주 사건 때문인지
한 동안 안 좋은 눈으로 날 바라보던 학주가 말을 걸었다.
“오늘 H․R 시간에 2학년 머리 검사하는 거 알고 있나?”
“아, 예.”
오늘 아침에 문어대가리가 열심히 떠들어댔었지.
요즘 놈들은 머리가 떡이 질 정도로 젤을 바르니,
처녀귀신이 언니 할 정도로 머리를 기르느니 하면서 말이야.
확실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녀석들 상태가 좀 심각하긴 하지.
다른 반보다도 특히 우리 반 녀석들 말이야.
남자 놈들은 머리칼에 젤 안 바른 녀석들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고
흡사 선인장처럼 머리카락을 세우고 다니는데다
여자 애들은 어깨 아래로 10센티고 뭐고 무시하고 허리까지 기르고 다니지.
솔직히 지금까지 안 걸린 게 신기하다니까.
그런데 복장 검사니 소지품이니 뭐니 떠들어 대더니 끝내 두발검사만 하기로 한 건가?
“그런데요?”
내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학주는 방금 전까지 굳어있던 표정이 무색하게도
피식- 하며 상당히 보기 안 좋은 비웃음을 날리더니 비스듬히 돌며 말했다.
“가장 많이 걸린 반은 담임, 부담임 통틀어서 특별한 조치가 있을 예정이니
기대나 해두라는 거지.”
…….
얄미워하라고 돈을 쥐어주고 부탁하지 그러십니까.
결론적으로 네놈 반에 두발불량학생이 제일 많으니까 고생 좀 해라, 이거 아냐?
우리 반 녀석들 두발상태 안 좋은 거
나도 인정은 하지만-솔직히 많긴 많지, 채하 놈부터 시작해서-고작 그런 거 가지고
심하게 걸고 나오겠어?
몇 번 잘라라, 잘라라 하고 말겠지. 몇 대 때리고 말이야.
훗- 하는 웃음을 흘리며 돌아서는 학주 뒤에서
보란 듯이 주먹을 올려주고는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이교 녀석 때문에 오자마자 내팽개쳐둔 보통 사이즈의 가방이
쓰레기통 바로 옆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게 상당히 보기 좋은 그림이다.
쓰레기통 안으로 안 들어간 게 다행이로구만.
가방을 올려 책꽂이 앞에 두는데 다시금 이교 녀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카트라챠 신교의 교도라….
가만히 턱을 문지르다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작은 버튼 하나를 꾹 눌렀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녀석 폰 번호의 단축 번호가 아마 이게 맞을 거다.
잠시 기다리자 역시 컬러링도 없는 단조로운 신호음이 울렸다.
그리고는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형이냐?”
내 물음에 녀석이 작게 대답했다.
귓가로 작게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한창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피아노를 치는 듯 듣기 좋은 리듬으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하나 부탁할 게 있어서 말이야.”
요즘 이런 일로 전화한 게 드물어서인지 상대 쪽으로 타닥거리던 소리가 멈췄다.
아마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거겠지.
“카트라챠 신교라는 종교에 대해서 좀 알아봐주라.”
망설임 없이 새어나간 내 물음에 태형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작게 숨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끊은 것 같지는 않아
통화비가 나가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고 있는데
태형이 녀석이 피식 웃으며 물어왔다.
[너 무교 아니었냐?]
무교다 임마. 그래도 좀 가깝다 싶으면 기독교라고나 할까.
어렸을 땐 심심해서 자주 교회에 놀러가곤 했으니까.
아무래도 산 속 깊은 곳에 처박힌 절 보다는 교회가 가까웠지.
뭐, 어쨌든 나는 확실한 무교라고.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이놈이.
“내가 그 신교의 교도라는 게 아니고, 제자 놈 중 하나가 그 종교에 미쳐있다.
어떤 건지 좀 알아봐달라고. 그냥 교도라고 보기엔 좀 심각하거든.”
[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가 다시 연락할게. 참, 할 말이 있는데 언제 시간 나냐?]
할 말이라, 태형이 녀석이 진지하게 할 말이라면 8호성에 관한 얘기겠지.
“밤이라면 언제든 괜찮아. 시간 잡아서 연락해.”
알았다는 말을 끝으로 녀석의 목소리가 끊겼다.
달칵거리는 소리를 끝으로 폴더를 닫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었다.
어쨌든 천하의 서태형이 알아봐준다고 했으니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구만.
다리를 꼬고 앉아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안히 앉는데
옆구리에 교과서를 끼고 있는 사회 선생이 가까이 다가왔다.
젤을 바른 듯 깔끔한 머리칼과 하늘색 체크무늬 니트 형의 브이넥 나시와
베이지 톤 면바지가 꽤나 잘 어울린다.
“선봐요?”
뭔지 모르게 신경을 많이 쓴 듯한데 말이야.
여자로 치면 생전 맨 머리에 맨얼굴 가지고 다니던 여자가
돌연 머리 세팅하고 화장한 느낌이랄까.
심드렁하니 묻자 사회 선생은 시원하게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 나이에 선은 무슨. 참, 4반은 벼룩장터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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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데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자
순간적으로 사회 선생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물어왔다.
“아침 조회시간에 졸았어요?”
“아뇨, 머리 검사한다는 건들었는데.”
이교 녀석 생각에 타오르고 있을 때 다른 얘길 한 건가?
제길, 앞으로는 아무리 복잡한 생각이 쌓여있어도
조회 시간엔 두 눈 번쩍 뜨고 있어야겠구만.
그게 뭔데 그래요? 라는 물음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자
사회 선생이 꽤 커다란 손으로 입가를 문지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주 목요일에 1, 2학년이 벼룩장터라는 걸 한대요.
그러니까, 반별로 장소를 정해서 하는 건데, 대부분 교실이라네요.
어쨌든 반별로 장소를 정해서 집에서 가져온 못 쓰는 물건 같은 걸 파는 거예요.
그럼 우리 학교 학생들만이 아닌 외부인 들도 돌아다니면서 사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그런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장사 같은 것도 하나 봐요. 음식이라던가.
매상이 가장 좋은 반은 같은 학년 전교생이 벌어들은 돈의 삼분의 이를
수학여행 때 쓸 수 있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2학년 담임, 부담임 선생님들 아주 눈에 불을 켜던데요.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저번 환경미화도 그렇고
이 학교는 돈으로 학생들 유혹하는 짓 많이 하네요.”
가만 있어봐, 그러니까…
이것저것 말은 많아도 간추리면 벼룩 장터에서 1등을 하면
수학여행 때 거금이 생긴다, 이거 아냐?
그냥 평범한 벼룩장터라고 해도 2학년 전체 8개 반이면
벌어들이는 돈이 만만치가 않을 텐데 그 액수의 삼분의 일이라.
게다가 그런 좋은 먹잇감이 있으니 각 반마다 돈 많이 벌려고
있는 발악 없는 발악 다 할 테고,
결론적으로 돈을 불어날 대로 불어나서 마지막에 일등 한 반에 도움을 주는 격이 되겠지.
이거, 잘하면 수학여행 가서 최고급 호텔로 따로 잡아도 되겠구만.
시원시원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사회 선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얼떨떨하게 바라보는 사회선생의 어깨에 턱, 손을 얹었다.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모든 진실을 안 이상 1등을 뺏길 수야 없지.
사회 선생의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르려 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교무실을 나왔다.
역시 나는 인생 편하게 살 체질은 못된다니까.
벌써 경쟁을 할 생각을 하니까 몸이 바싹 달아오르는데.
두고 보라고,
인간 강채은이 이렇게 타오르고 있는 이상,
나를 제치고 누구도 위로 올라가지 못할 테니까.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노린다.”
비장한 내 대사에 반 녀석들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어폰을 끼며 주워있던 이원이 녀석까지 무슨 소리냐는 듯 이어폰을 빼며 날 바라봤다.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고는 흰색 분필로 칠판을 툭툭 치며 다시 말했다.
“우리 반의 이번 벼룩장터 목표다, 알았냐?
어차피 학교에서 주는 운영자금이야 몇 푼 되지도 않을 테니까
돈 드는 작업을 하면 우리 돈이 나가야 하는데,
우리가 돈 싸서 벌어봤자 본전. 최대한 자본 없이 간다.”
내가 자세히 설명을 하자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지
근육을 풀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자식들이, 영 감이 없구만.
웬만큼 나랑 부대끼며 지냈으면 인간 강채은이 두발 벗고 나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아야지.
“매상이 가장 많은 반은 2학년 전체가 벌어들인 돈의 삼분의 이를
수학여행 때 쓸 수 있다는 문어대가리의…”
“우와아아아! 돈이다!”
“아싸, 얘들아 1등-! 돈다발이야!”
짐작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 씁쓸하구만.
우리 반엔 돈에 환장한 놈들뿐이냐.
칠판을 두드려 소란스러워진 교실 분위기를 다시 누르고는
칠판 정 중앙에 벼룩장터 계획서. 라고 커다란 글씨로 적었다.
“우선 겉모습은 따라야 하니까 벼룩장터 할 때 필요한 물건들 집에서 알아서 챙겨 와라.
집에 필요 없는 물건들이나 옷 많지?
그리고 정석이니까 음식장사도 이왕이면 하고, 다른 거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한번 대봐라.
우리 학교 학생들만 하는 게 아니라 돈 많은 외부인 들도 듬뿍 들어오니까
최대한 뜯어낼 수 있는 걸로.”
말을 마치자 조용했던 교실분위기가 금세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서로 이것저것 물어가며 상의를 하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나도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유진이 녀석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선생님! 저희 반에 가장 큰 장점이 뭡니까! 바로 얼굴 아닙니까, 얼굴!
2학년 전체에서 저희 반만큼 물 좋은 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점을 100% 살려서 호스트나 티켓 데이트, 노예팅 같은 거 어떨까요?”
“시작도 하기 전에 관두고 싶냐?”
“…….”
우선 말은 좋은데 말이다, 호스트에 티켓 데이트, 노예팅.
문어대가리한테 말했다가 줄초상 치르라고?
다른 거라면 억지라도 쓰거나 말발로라도 눌러보겠다마는
그런 몸 파는 일은 씨알도 안 먹힐걸.
그리고 티켓 데이트나 호스트, 노예팅, 다 제 몸 파는 짓인데
변태 같은 놈들한테 잘못 걸려봐라.
그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유진이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앉자
방금 전까지 퍼 잤는지 비몽사몽한 도령이 녀석이 턱을 괴며 말했다.
“원터치 배틀 같은 거 어때요?
돈 내고 신청해서 한대씩 때리고 버티는 쪽이 이기는 걸로.
신청자가 이기면 신청할 때 낸 돈의 10배주기.”
원터치 배틀 이라, 꽤 재미있는 아이디어긴 한데 말이다.
“한명 신청할 때마다 한대씩 맞고 전원 입원할 일 있냐?”
무슨 네놈들이 일당백의 엄청난 맷집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한두 대 맞고 비틀거리는 놈들도 허다한데 원터치는 무슨 얼어 죽을 원터치.
게다가 만약 조폭이나 전문 무도인 이라도 들어오면 어쩔래.
신청한 돈의 10배씩 물어주고 파산할 일 있냐?
도령이 녀석이 수그러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은희 녀석이 말했다.
“물장사는 어때요?
코요테 어글리처럼 단 같은 걸 만들어서 몇 명은 위에 올라가서 음악 깔아서 춤추고,
몇 명은 음료수나 도수 낮은 칵테일 같은 거 팔고.
우선 돈을 비싸게 부르고, 또 팁도 받…”
“다방이냐?”
내가 말을 끊자 은희는 그런가,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인원이 이렇게 많은데 기발한 발상이 하나도 안 나오나,
작게 한숨을 내 쉬며 머리를 헤집는데
반장 녀석이 안경을 스윽 밀어 올리더니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인간 두더지를 하는겁니다!”
…….
여기서 휘이이잉- 하는 효과음만 추가되면 딱인데 말이야.
한 순간 얼어붙은 냉기가 교실을 휩쓸고 지나가고
몇몇 성질이 급한 놈들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반장 녀석에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야, 새꺄! 환경미화 꼴 날래? 인간 두더지? 여기가 유아원이냐?!”
“아주 그냥 롯데월드를 하자고 해라, 새꺄."
빗발치는 비난에 반장 녀석은 슬금슬금 꼬리를 내리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환경미화 때부터 시작해서 정말 맞을 소리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군.
새삼스럽긴 해도 우리 반 정말 반장 잘못 뽑았어.
인간두더지라니, 우리가 무슨…….
잠깐, 인간 두더지?
인간 두더지라….
인간 두더지…….
아!
머릿속을 엄청난 세기로 강타하고 지나가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무의식중에 교탁 위를 세게 내리쳤다.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소란스럽던 교실 분위기가 금세 잔잔해졌다.
머릿속을 맴도는 아이디어에 씨익- 웃고는
날 바라보고 있는 수십 쌍의 눈들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이번 벼룩시장 메인은… 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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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연재]
[2부]★〓날개를 가진 자는 추락이 두렵지 않다〓★[6][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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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1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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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님~>//< 보고싶었어요~!
너무 재밋어요 ㅜ.ㅜ 팬카페에서 보고 또 보네요! 히히! 열심히 연재하세요! 정말 너무너무 존경해요 반님!♥
슬픈소녀™님, 하핫, 오랜만입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소설 재미있게 봐 주세요.
수줍은나리님 과찬 감사드리구요. 앞으로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반님, 아아악,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반님, ㅜ_ㅜ 보고싶었답니다, 닉..닉을바꿔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