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 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 스님의 팬클럽 회원 등과 8월 정기법회를 개최했다. 스님은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마친 후 성동구민회관, 청담동
벙커 등을 옮겨 다니며 법회를 열고 있다.
조계종 측은 이날 스님에게 대관을 승낙하면서 스님이 정부‧종단을 비판하면 마이크를
꺼버리겠다고 통보했다.
명진 스님은 “마이크가 언제 꺼지는지
보겠다”면서 동국대 이사장 일면 스님의 문화재 절도 의혹과 수원 용주사 주지 성월 스님(명진 스님은 성월 처사라고 했다)의 처자식 문제만큼은
종단이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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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명진 스님이 말한 인생 최대 부끄러움 에서 이어집니다)
부의 재분배
이뤄져야
오늘 법회 주제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롯데그룹의
재산 쟁탈전이 신문을 도배하고 있다. 뉴스를 보면 돈 앞에 부모형제도 없다. 원수지간이 따로 없다. 롯데뿐 아니라 현대그룹도 정주영 회장 작고
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삼성도 형제간 재판다툼이 있었고, 두산그룹도 그랬다. 후손들이 피터지게 싸우길 바라면서 돈 모으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
싸움이 그치지 않다.
돈을 잔득 갖고 있으면서 부모형제도 몰라보는 것이 낫겠나? 가난하더라도 화목한 것이 좋겠나? 물질이 우리를
행복케 못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수없이 증명돼 왔다.
그렇지만 돈 없어 배고프고, 집 옮겨 다니느라 고단하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것만큼 불행한 것이 없다. 의식주(여기서 ‘의’는 의료를 말한다.)와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 줘야한다. 이는 국가가 부의 재분배를 통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가난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도록 빈부격차가 고착돼 있다. 옛날에는 태어난 신분에 따라 귀천이
나뉘었지만, 지금은 돈이 있고 없고가 귀천을 구분하는 기준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도 안 되는 사람이 국토의 60%를 소유하고 있다. 이는
정상이 아니다. 편중된 부를 재분해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국가지도자는 끝없는 자비와 연민 갖춰야
한다.
마이크 끈다고 했는데
우리는 지난
2007년 사기꾼을 국가지도자로 뽑았다. “MB는 전두환보다 더 나쁜 단군 이래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
내 말을
두고 광주 지역에서는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어떻게 광주시민을 죽인 전두환보다 나쁜 대통령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런데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
이명박이 가장 나쁜 대통령에 꼽혔다고 한다. 내 말이 맞다는 것이 증명됐다. (하하하하)
MB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나라에 도덕이
무너졌다. 오늘 이 법회에서 정부나 종단을 비판하면 마이크를 끈다고 했다. (관계자들이) 어디쯤에서 마이크를 끌지 시험을 좀
해봐야겠다.
MB는 각종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다녔다. 국가지도자는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요구가 아니라
스스로 존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장 큰 죄악이 거짓말이다. 거짓말 한 것을 덮으려고 계속 거짓말을 하고 나쁜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도둑이 용서를 구하면 그만이지만
도둑질을 덮으려하다보면 살인을 저질러 강도가 된다.
누구나 알게 모르게 허물이 있을 수 있다.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이 있을 때 바로 드러내고 사과해야 한다. 이를 카톨릭에서는 고해성사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발로참회라고 한다.
일면 스님, 성월 스님은 밝히시라
조계종도 마찬가지이다. 잘못 허물 있다면
드러내고 용서 구해야 한다.
(마이크를 끈다고 했으니) 오늘 이 자리에서 종단 비판은 않겠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자기가 주지로 있는 절에서 일직‧월직 사자 탱화 2점을 바깥으로 빼돌려서 아는 비구니 절에 뒀다가 들통이 났다. 이것을 두고
본인은 분실됐다고 한다. 분실했다는 탱화가 청계천을 돌아다니다가 주지와 아는 비구니절에 들어갈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동국대 이사장 일면 스님은
이 사건의 전말을 반드시 대중에게 밝혀야 한다.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면 스님의 허물이 가려진다면 나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거짓이라면 이 사건을 처음 알린 혜문 스님 등을 고소‧고발해야 하지 않겠나?
또 하나의 조계종
허물은 수원 용주사 주지로 있는 승려의 탈을 쓴 성월 처사이다. 쌍둥이 아빠 소문이 돌던 사람을 용주사 스님들이 누군지 밝혔다. 이런 문제는
총무원이 나서서 국민과 대중에게 납득이 가도록 해결해야 한다. 덮어놓을 일이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다 저렇다 다른 것은
말하지 않겠다. 동국대 이사장 일면 스님과 효행 근본도량 수원 용주사 주지 의혹에 대해 명확한 사실 확인과 국민이 납득할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보살과 악귀 사이, 당신의
선택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사자는 사냥을 하고나면 배가 고플 때까지
다른 사냥을 하지 않는다. 배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 배가 부를 때는 다른 동물은 쳐다도 안 본다.
살생은 이유 없이 재미로 사냥,
낚시 등으로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다. 나를 비롯해 이 자리의 많은 이가 어려서 메뚜기 잡고 뭐하고 살생의 씨앗을 싹 틔우지 않았나. 반대로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은 보살의 씨앗을 틔우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관세음보살과 악귀 사이를 오간다. 어느 심성을 더
많이 썼는가가 다음 생을 좌우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내가 행한 행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
부처님은 “악업은 그림자처럼
선업은 메아리처럼 따라 다닌다”고 했다. 자신의 과보는 어디서 돈을 내고 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악한 것을 해결하는 것은
선한 일을 많이 해서 물타기를 하는 것뿐이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 선업인지 악업인지 살피고 또 살펴서 살얼음 딛는 매 순간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도 닦고 수행정진 하는 것이다.
연민 일으키지 못한다면 절 다녀
무엇해
어려운 사람을 보고 연민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은 절, 교회 등을 다녀도 소용이 없다.
먼 길 떠난 아들을 둔 노파가 정안수를 떠놓고 북두칠성에 간절하게 비는 기도와, 봉은사 같이 큰 절에 벤츠를 타고 오더니 비
온다고 기사에게 불전함에 넣고 오라고 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영험이 있겠나? (장독대 기도요) 그럼 우린 뭐 먹고 살아요?
(하하하하)
무엇을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말씀은 비슷하다. 나쁜 짓 하지말고 착한 일 하라는 말씀을 아무리
들으면 무엇 하나. 실천을 않는데. 절이나 교회를 안다녀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진짜 수행자이다.
사랑과 배려 연민 느꼈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어떻게 알아보고,
실천할까
누가 내게 돈을 빌리러 왔다. 가만히 보니 야무지게 혼내면 재기할 수 있을 사람이다. 이를
악물 수 있게 모지게 대하는 것과 그저 아쉽다는 소리를 하는 것대로 그를 돕는 것 어떤 것이 이로운 행동인가? 이를 어떻게 알아보고 자비를
실천할 것인가?
베트남전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초기에는 베트남전쟁을 찬성하더니, 나중에는 실패한 전쟁이었다고 회고록을 썼다. 우리가
옳지 않는 것을 옳다고 인식하는 상태가 얼마나 될까?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이다.
무엇도 옳다고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옳다고 하는 순간 그것이 오해, 잘못된 것이 된다.
이명박은 이명박대로 4대강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에서 했다. 국가예산 20여 조를
쓰고서도 4대강을 악취가 풍기는 똥구덩이로 만들어놓고도 자기신념에서 한 것이라 후회하지 않는다. 반대로 4대강 반대자들도 신념에 의해서
반대했다. 먼 미래에 4대강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늘
의심하고 돌이켜봐야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사유의 틀이 옳은 것인지 항상 회의하고 돌이켜 봐야한다.
이것이 성찰이다. 내가 믿는 부처님 가르침이 올바른 것인가 의심해야 한다.
“부처가 오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오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은 부처라는 틀, 조사라는 틀에 갇히지 말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은 허망하다”고 했다. 당신의 말조차 “강을 건너는
나룻배와 같다”고 했다. 부처님이 한 말도 버려야하거늘 다른 것은 어떻겠는가? 불교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자신도 부정하고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매력, 가르침이다.
인간이라면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 자유도 가져야 한다. 우리를 묶고 있는 사상 이념, 종교가 나를
구속하고 있지 않는가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나를 좋은 쪽으로 묶이는 것은 곱게 짠 명주실로 나를 묶는 것이다. 나쁜 쪽으로 나를
묶은 것은 가시철망으로 나를 속박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내가 가르친 것으로부터도 벗어나라는 것이다. 자유를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나?
선입견 내려놓고 모름의
세계로
내가 알고 있던 익숙하던 모든 것 조차도 한번 부정해 볼 수 있는 자세를 가져봐야 한다. 해탈은
벗어나는 것이다. 나 명진을 본보기로 들어본다. 나는 승려라는 틀, 대한민국 66세 남자라는 틀, 운동권 좌파다 규정지어진 틀 등이 있다.
이것들을 내려놓자는 것이다.
남을 따라서 하지 말고 거꾸로 한번 가보자. 앎에서 해방된 모름으로 가보자는 것이다. 이는 선입견을
내려놓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나를 비워야 한다. 비워진 사람을 공의 이치를 터득했다고 말한다.
운동도 몸에서 힘을 뺀 사람이
고수이다. 골프도 힘이 빠져야 스윙이 정확하다. 나는 골프를 안치지만 골프 강의를 한다. (하하하)
불교의 화두, 참선은 나를
비우는 방법이다.
조주 스님은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이것이 화두이다. 아무리 물어봐라 대답은 안
나온다. 열심히 물을수록 더욱 더 몰라진다. 나는 누구인가 수없이 물어봐라. 누군지 알 수 있나.
부처님이 별을 보고 깨달아?
깨달음은 사기이다. 온전히 알 수 없어진 상태에서
부처님은 별을 바라봤다. 완벽히 비워짐의 상태에서 별을 본 것이지,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다. 나는 비워진 상태에서 봉암사 계곡 물소리를
들었다. 한참을 깨달은 줄 알고 미쳐서 다녔다.
성철 스님을 찾아가 “스님의 목을 단칼에 쳐서 마당에 던졌다. 그 죄가 몇
근이냐”고 당돌하게 묻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나를 돌이켜보게 됐다. 나는 그때의 내 상태가 비워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거지 완벽히
비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불교는 완전히 비워짐으로 가는 것이다. 격투기 선수도 힘이 빠져 있어야 상대의 힘을 이용해
제압할 수 있다. 이것이 몸의 지혜이다. 마음의 지혜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 믿지 말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끊임없이 물어서 알
수 없는 상태가 돼 모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과 내가 하나가 돼야 한다.
지혜로운 삶도 마찬가지이다. 지혜롭게
살려면 온전히 비워야 한다. 자비 연민 친절 배려를 위해서는 스스로 비워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