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일시 2023. 1. 1. (일)
ㅇ날씨; 맑음(미세먼지로 특히 남쪽 조망 불량)
ㅇ홀로 탐방
2. 교통
ㅇ갈때
*아차산역; 전철 4호선 이용,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5호선 환승.
ㅇ올때
*사가정역-노원역; 전철 7호선 이용.
*노원역에서 전철 4호선 환승 귀가.
3. 진행경과
ㅇ이른 아침 전철을 이용, 흑토끼의 해맞이 산행길에 나섰습니다.
아차산역에 도착,역사 내외에 모인 인파에 놀라움이 ..........
ㅇ내친 걸음이라, 추위에 고생하는 교통 경찰들의 안내에 따라 아차산 생태공원에 들어 서서, 삼삼오오
여러사람들의 발걸음에 맞추어 낙타고개에 이를 즈음, "많은 인파로 사고 위험이 있어 해돋이 전망대
입산을 통제" 한다는 안내 멘트와 함께 요소요소 주변 경계에 임하고 있는 경찰들이 더 이상의 진행을
통제해 "해돋이 전망대" 오름을 할수 없었습니다.
ㅇ이런 일도, 코로나 여파로 통제했던 야외 행사가, 일부 해제와 동시에 일어난 "이태원 사고"의 여운
이로구나..............
ㅇ실망 스럽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낙타고개에서 구리방향 대장간마을 방향으로 내려 서서 적당한 자리
를 찾아 나무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ㅇ아차산에서 전에 찾아 보지 못한 "구리 아차산 3층석탑"을 돌아 보고 다시 범굴사로 돌아와, 범굴사 뒤
제 2보루 옆 전망이 탁월한 슬랩 위에서 천마산에서 남한산성에 이르는 파노라마와 구리시와 한강의
조망을 기대하였으나, 이마저 미세먼지의 심술로 좋은 그림은 볼수 없었습니다.
ㅇ진행코스
*아차산역-동의초교-아차산 생태공원 입구-낙타고개-해맞이언덕-고구려정-범굴사-구리아차산3층석탑-
솔밭공장-체육장-2보루슬랩지대-주능선합류부-전망대-아차산정상(3보루)-4보루-긴고랑길안부-전망대
-제2헬기장-제1헬기장-570계단깔닥고개(전망대 2곳)-깔닥고개안부-사가정 공원-사가정역.
ㅇ탐방거리
*gps측정거리; 8.89km(아래 개념도참조)
4. 아차산( 해발 295.7m, 아차산성 사적 234호)
1)위치; 서울특별시 광진구 영화사로 135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
2)아차산의 표기는 阿嵯山 峨且山 阿且山등으로 삼국사기에는 阿且(아차)와 阿旦(아단) 2가지가
나타나고 고려사에는 峨嵯가 처음 나타 납니다.
예전에는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 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 하였고 마을 사람들은 아끼산 아키산
에께산 엑끼산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봉화산을 포함 망우리 공동묘지지역과 용마봉등 광범위 한 지역이 모두 아차산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 됩니다.
특히 이성계의 諱(휘)가 旦(단)이기 때문에 이 글자를 신성히 여겨 旦이 들어간 이름은 다른 글자로
고치며 旦 대신 이와 모양이 비슷한 且자로 고쳤는데 이때 아차산도 음은 그대로 두고 글자만 고쳐
썻다고 합니다.
ㅇ전해오는 이야기;
조선 명종때 점을 잘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하였는데 그가 숫자를 맞히지 못하자 사형을 명하였습
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암쥐의 배를 갈라 보니 새끼가 들어 있어 "아차"하고 사형 중지를 명하였
으나, 이미 때가 늦어 홍계관이 죽었고, 이후 사형 집행장소의 위쪽 산이 "아차산"으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3)온달의 전설도 전해 오는데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 공기돌바위와 온달샘이 있고 아차산
성에서 온달이 전사 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4)예로 부터 3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고 고려때는 광나루와 함께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으며
銀石寺 범굴사 영화사등의 사찰이 있었습니다.
5)문화재; ㅇ아차산성(사적 234호1975. 5. 25. 지정) 아단성, 장한성, 광장성이라고도 함.
면적 10만3,375㎡.
ㅇ아차산 봉수대(서울특별시 기념물 15호)
ㅇ영화사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창건.
ㅇ고구려 시대 보루 사적455호.
ㅇ석곽분 다비터 강신샘 등
▲아차산 생태공원 입구
▲공기돌 바위(이상, 펌 사진 임)
*梵窟寺(범굴사,구 大聖庵)
1)위치;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 54-1
한국불교 태고종에서 조계종으로 변경
2)창건; 670년(문무왕10) 의상이 창건, 범굴사로 하였고 1375년(무왕1 )나옹이 중창후 이곳에서 수도함.
3)연혁; ㅇ임진왜란시 소실후 1750년(영조26) 방지성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였슴.
ㅇ1882년(고종19)에 소실 폐사 되었으며 1912년 정념이 중건 하였고 1928년 백용성의 제자 보광
이 대웅전과 나한전등을 건립 한뒤 "대성암"으로 이름을 바꾸었슴.
ㅇ1936년 보광이 중성전을 중건 하였고 1942년 극락전을 중수 하였으나 6.25때 다시 소실됨.
ㅇ1954년 주지 석하와 신도 광명심이 법당과 요사채를 재건하였고 1968년 삼성각을 1979년
주지 태웅이 중건하였슴.
ㅇ2006년 대성암을 "범굴사"로 개명 하였슴.
4)전해오는 이야기;이 절 법당 뒤의 바위 천정에서 창건 당시 天供米(천공미)가 나와 이를 먹으 면서
수도하였는데 侍者(시자)가 많은 쌀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구멍을 넓히자 타버린
쌀과 뜨물이 7일 동안 흘러 내린 뒤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옵니다.
*고구려정
1)위치;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3
2)아차산 낙타능선에 위치한 정자로 일출은 물론 서울의 화려한 야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명소임.
3)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의 태자 거연(394년-491년)이 413년 10월, 20대왕으로 즉위 하였는데
이분이 장수왕 임.
4)장수왕은 중원 전투에서 증조부(16대 고국원왕)를 전사시킨 백제 왕실을, 473년(장수왕 63) 9월
침공하여 아차산성 전투에서 개로왕을 참수 하였는데 이 참수한 장소가 아차산 중턱인 고구려정
터로 사학계는 비정하고 있슴(松風水月 글, 인용)
*아차산 삼층석탑(경기도 문화재 제205호)
1)위치;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54.
2)가람의 일부로 존재 한다기 보다 석탑 자체가 독립적으로 별도의 자리에 위치함.
3)시대; 모양과 제작 수법으로 볼때 고려 전기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성행한 백제계 석탑임.
4)1952년 무너진 것을 1996년 복원 하였슴.
5)구조; 단층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임.
5.풍광사진
1)흑토끼해의 해돋이 풍광
▲여명
2)낙타고개-범굴사 구간의 풍광
▲고구려 정
▲범굴사 종각
▲범굴사 대운전
▲범굴사 대웅전 뒤 전설의 석굴
▲범굴사 삼성각과 대웅전
▲건너다 본 아차산성 발굴 현장
▲범굴사 가는 길
3)구리시 아차산 3층석탑과 그주변 풍광
▲이상, 아차산 3층석탑
▲이상, 범굴사와 삼층석탑 중간 지점의 소나무 광장
4)체육장-제 2 보루 구간의 풍광
▲제2보루 옆의 조망처 슬랩지대; 조망이 아주 뛰어 난곳임.
▲롯데타워, 올림픽대교, 천호대교, 광진교등이 역광과 미세먼지로 희미하게 보인다
▲암사대교 강동대교 사이에 건설 중인 현수교가 역시 희미하게 보인다
▲위에서 본 슬랩 조망 바위
▲제2보루
▲등로의 명물 송
5)아차산 주능선 합류부-제4보루 구간의 풍광
▲아차산 주능선 전망대에서 건너편 용마산 조망
▲남쪽으로 미세먼지 속의 롯데 타워
▲오늘 미세먼지 농도는 남쪽이 보다 짙다(뚝섬 방향 시가지 모습)
▲제3보루 능선 길
▲제3보루 정상이 아차산의 정상이다
▲능선 길 곡선미
▲제4보루 건물지
▲제4보루의 치
▲제4보루에서 건너편(서쪽)의 제2헬기장 오름 데크길과 전망대 줌인
▲제4보루의 소나무자태
6)긴고랑길 고개 안부-제2헬기장 구간의 풍광
▲긴고랑길 고개안부의 데크 길
▲제2헬기장 전망대에서 아차산 제4보루 조망
▲제2헬기장 아래 전망대에서 암사대교와 신설 현수대교 조망
▲아차산 뒤로 역시 희미하게 보이는 롯데 타워
7)제1헬기장-570계단 깔닥고개 구간의 풍광
▲제1헬기장
▲570계단 깔닥고개 제2전망대에서 암사대교 신설중의 현수교 강동대교와 하남시 뒤로 희미하게 예봉산과
검단산 조망(오후 들어 조망이 조금 좋아졌다)
▲북쪽으로 불암산과 수락산 조망
▲구리시가지 뒤로 백봉과 천마산 능선이 역시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570계단 깔닥고개 계단 길
8)570계단 깔닥고개 안부-사가정역 구간의 풍광
▲사가정공원 방향 데크 길
▲정겨운 오솔 길
▲사가정 공원 상단 산책로 데크길
▲얼음폭포
▲사가정; 조선조 세종때의 뛰어난 문신 서거정의 호를 딴 명칭의 공원
▲사가정 공원 풍경
9)트랭글 궤적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