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 인구는 최초로 감소했다. 2019년 전조현상인 자연감소(출생-사망)가 발생한 후 1년 만의 일이다. 인구수급의 역내역전을 뜻하는 데드크로스는 주요 선진국의 공통분모로, 특별할 건 없다. 고성장이 일찌감치 끝난 대부분의 서구사회는 1980년대 전후에 인구유지선(2.1명)이 무너졌다. 지금은 얼추 ±1.6명대로 수렴한다. 그럼에도 총인구는 증가세다. 국내인구는 줄어도 역외공급(국제유입)이 떠받쳐 준 결과다. 한국은 다르다. 불과 1년 만에 총인구가 줄면서0.78명까지 내려앉았다. 총인구 감소 1호국인 일본마저 1.3명 전후인데, 한국은 독보적인 인구급감의 반복으로 충격적인 저점 기록을 세웠다. 덕분에 세계 이목도 단번에 끌었다. 저성장·재정난·인구병의 트릴레마(trilemma)를 끝낸 한국의 현재 대응이 그들의 미래 전략에 상당한 힌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면교사vs.벤치마킹’ 중 하나다. 인구가 감소해도 번영이 지속되는 초유의 모범 모델을 엮어낼지 관심사다. 추격모델이 사라진 한국의 선택지는 별로 없다. 문제해결·지속성장의 의지와 능력을 한껏 끌어내 사고 저편의 기획력, 상상력으로 남다른 혁신모델을 실현·축적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에 섰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돌아갈 길이 없을뿐더러 머뭇거릴 시간도 없다.
왜 0.78명의 세계 신기록인가?
0.78명은 한국의 급격한 인구 변화를 상징하는 숫자다. 인구위기선(1.3명)을 밑돈 2002년(1.17명)부터는 매번 세계 꼴지의 출산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운다. 2018년(0.98명) 정상 국가에선 전무후무한 1명까지 하향돌파하는 기염(?)마저 토했다. 비교군조차 없는 압도적인 신기록의 자체 경신 사례다. 올해도 확정적이다. 1분기(1~3월) 출산율(0.81명)이 전년(0.87명)보다 0.06명 줄어들었다. 역대최저치다. 하반기로 갈수록 더 떨어지니 기록 경신은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초저출산은 느닷없는 현상일까? 아쉽게도 한국은 1983년 인구유지선(2.1명)을 깼다. 인구감소 경고등이 켜진 지 40년째란 얘기다. 그간 시간을 허투루 썼다는 건 ‘20년·380조 원’ 예산낭비 논란에서 확인된다.
체감되면 늦었다는 인구학적 관성효과를 보건대, 40년 상황 방치의 누적 충격이 0.78명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그나마 2019년 자연감소(출생-사망=마이너스)에 뒤이어 1년 만의 총인구 감소(2020년·세계 2호)까지 위험수위를 넘고서야 인구충격의 후폭풍은 공감·확산되기 시작했다. 0.78명의 인구급변은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한국적 특수사례다. 한국보다 2.1명을 일찍 깼지만 대부분 ±1.6명 선을 지키는 서구사회와 구분된다. 그들이 지금 한국의 행보와 선택을 주목하고 있다. 자국에 앞서 저성장·재정난·인구병의 트릴레마 모두가 중첩된 최초 국가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예고된 인구병이 이미 현실화된 한국 사회의 대응모델이 ‘벤치마킹vs.반면교사’일 수밖에 없어서다.
주술적 표준 모델과 혁신적 대응실험
한국은 과연 인구변화발 시대 난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뒤따를 선진국이 채택함 직한 인구감소형 지속사회를 제안할 수 있을까? 더는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럼에도 시간은 없고 반향은 크다. 즉, 당위론이 아닌 방법론에 집중할 때다. 그렇다면 정확한 문제인지·상황분석이 먼저다. 일찍 낌새가 시작된 서구사회가 추계조차 못한 0.78명의 초저출산을 한국은 왜 만들어 냈을까? 저성장·가치관 등 복합변화가 빚어낸 출산 하락은 선진국도 똑같이 겪은 일반론에 가깝다. 한국은 여기에 추가변수까지 투입된다. 한국만의 특수론이 전대미문의 0.78명까지 끌어내렸을 혐의가 짙다. ‘저밀도(고출산)→고밀도(저출산)’의 과도·급격한 인구이동(사회전·출입)이 그렇다. 즉, 농산어촌이 출산을 끌어올려도 서울·경기가 평균을 갉아먹으며 하향세를 띠는 형태다.
이유는 간단·명쾌하다. ‘고학력·대기업’의 유교적 입신양명을 주술처럼 믿고 따르는 철 지난 성공모델 탓이다. 중앙집권·사농공상이 합작한 수도권으로의 자원집중은 교육·취업의 절대강자를 낳았고, 우수자원일수록 계층이동의 실현공간인 서울로의 사회이동은 상식처럼 지켜졌다. 문제는 서울의 낮은 출산율이다(2022년 0.59명). 모든 걸 갖췄지만, 역설적이게 출산만큼은 가장 낮다. ‘고분업→고밀도→저출산’의 딜레마다. 결혼해도 출산은 어렵다. 가뜩이나 출산 카드는 ‘고비용·저위험’인데, 서울 공간의 스태그플레이션(물가↑·소득↓)은 부모 찬스 없는 후속청년의 가족분화를 가로막는다. 출산해도 ‘남성전업·여성가사’의 역할분리는 시대 흐름에 맞서며 독박육아를 강요한다. 엄마육아의 대체·보완재조차 없는데 더 똑똑해진 예비엄마가 눈물·한숨의 출산행로를 택할 리 없다. 기꺼이 가족·출산을 택함직한 혁신적 대응실험 없이 상황반전은 어렵다.
인재혁명과 생산성혁명을 통한 완전연소
시대가 변했다. 몸과 옷을 맞추듯 시대변화는 구조개혁을 뜻한다. 언어·문법이 어긋난 MZ세대라고 폄하하기 전에 시대변화를 못 읽는 기성세대부터 ‘현실=구조=준칙’의 뉴노멀을 맞춰주는 게 먼저다. 시대변화에 맞는 기본값(디폴트)의 조정 과제다. 당장 축(Pivot)의 전환으로 고학력·대기업의 성공 모델부터 손볼 때다. 산업화·민주화의 다음은 다양화다. ‘더’를 키운 ‘빨리·많이’가 행복한 시절은 지났다. 교육된 모범인생과 현실의 행복 품질이 삐걱대는 건 다반사다. 때문에 ‘고학력·대기업’의 주문은 유통기한이 끝났다. 유령인구(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 비일치)를 감안하면 수도권에 전체인구의 60%가 몰려 사는건 비정상·불균형의 끝판왕이다. 가장 덜 낳는 곳에 가장 많이 몰리니 0.78명은 당연지사다. 하다못해 지금은 지역 환자까지 서울행 이삿짐을 싼다니 설상가상이다. 대학입시 한번에 모든 게 결정되는 과거 방식은 설 땅이 없다. 이는 인구증가일 때나 먹혀들던 얘기다.
대량 인구가 성장 속도를 높여줬던 인구 보너스는 끝났다. 여기에 맞춰 설정된 세대부조형 교육·조세·산업·복지·행정 등 사회질서는 대개혁이 불가피하다. 계속해 엇박자면 후속세대와의 바통 연결은 완전히 거부된다. ‘인구 오너스(onus)→인재 보너스’를 검토할 때다. 기본값은 인구감소다. 줄어든 인구가 ‘노동공급→자본축적→고속성장’을 계속해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구감소를 대전제로 신질서를 짜는 게 맞다. 당장 희소자원이 될 후속인구의 완전연소가 시급하다.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인구’를 통해 단 1명도 실업이 되지 않는 전체 활약이 중요하다. 그래야 인구감소에도 1인당 고부가가치로 지속성장이 일궈진다. 독일(Industry 4.0)과 일본(Society5.0)의 장기 비전이 인재·생산성혁명임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인구=인재=청년’부터 시작한 혁신적 생산성을 담보할 때 선진국형 지속성장도 기대된다.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은 대학 진학률(±75%)을 보건대 준비된 우수인재는 많다. 미래 주역이 웃도록 사회질서만 바꿔줘도 인구변화는 ‘위기→기회’로 전환된다. 인구 보너스를 추동한 노동·자본투입형 고속성장의 뒤는 인재 보너스를 실현할 과학·기술투입형 지속성장이 유력하다. 주인공은 미래·가족의 바통 터치를 반갑게 맡아줄 후속청년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