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턴 맬키얼(Malkiel·87)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1973년 펴낸 ‘시장 변화를 이기는 투자’(원제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는 지금도 대표적 투자 입문서로 여겨진다. 그는 이 책에서 “원숭이가 눈을 가린 채 신문 금융면에 다트를 던져 기업을 골라도 월가 펀드 매니저와 성과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펀드 매니저가 제아무리 기업의 옥석을 가려내도 장기적으로 시장 평균 수익률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긴 매우 어렵다는 점을 빗댄 것이다. 설령 소수의 펀드 매니저가 일정 기간 평균보다 높은 수익을 내더라도, 일반인에겐 그런 펀드 매니저를 고르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기에 차라리 시장의 큰 흐름에 따라 수익률이 오르내리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는 게 맬키얼 교수의 오랜 주장이다.
버턴 맬키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Mint 인터뷰에서 "특정 주식에 돈을 넣었다 뺐다 하는 투자는 재앙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라며 "주가지수 상승률만큼 수익을 내는 인덱스 ETF에 투자하는 것이 최선의 투자법"이라고 말했다. /은퇴투자연구센터
최근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20~30대 밀레니얼 세대의 종목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과연 똑똑해진 개미들이 이번엔 원숭이를 이길 수 있을까. 맬키얼 교수의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오’였다.
―지금도 인덱스 펀드 투자를 권하는가.
“40년 전보다 나의 믿음은 더 강해졌다. 게다가 지금은 예전보다 인덱스 ETF의 수수료도 더 싸졌다. 일부 인덱스 ETF의 수수료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테슬라 등 일부 종목에 거액을 투자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박을 하고 있다. 스포츠 도박의 대체재쯤으로 보인다.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도 예전에 경마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투자와 완전 정반대라는 점만은 명심했으면 한다. 급등주에 거액을 투자해 지금 당장 높은 수익을 낼 수는 있다. 몇 개월간 수익률이 매우 높을 수 있다. 그러나 테슬라 등과 같은 모멘텀 주식(변동성이 큰 주식)은 언제든 폭락할 가능성도 있다. 수개월간 쌓아온 수익을 단숨에 잃게 된다. 내년에 30%쯤이 살아남는다 쳐도, 후년까지 시장을 이길 투자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위기에서 진정한 실력이 발휘된다는 의견도 있다.
“종종 듣는 얘기다. 그럴 때마다 과거 데이터를 항상 살펴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매년 S&P주가지수의 상승률과 펀드 매니저의 수익률을 비교한 보고서를 낸다. 데이터를 보면 거의 매해 약 66~70%의 펀드 매니저가 연간 시장 수익률을 넘지 못했다. 특정 한 해에 잘했어도 그다음 해 성적이 초라한 경우도 많다. 당장 코로나 위기 때 빛났더라도, 이듬해에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맬키얼 교수 프로필
―개인 투자자도 돈을 벌지 못할까.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미국 시장에선 전업 투자자 10명 중 9명이 돈을 잃는 것으로 추산된다. 브라질에선 전업 투자자들이 최저임금도 못 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시아 지역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돈을 벌지 몰라도 5년 이상 장기 투자에선 대부분이 돈을 잃는다. 오히려 개인 투자자들이 예전보다 시장 수익률을 넘어서기가 더 어려워지는 추세다.”
―전업 투자자의 투자를 부정적으로 보는가
“코로나 확산이 국민 건강과 경제 활력을 둔화하는 한편, 금융 시장에 마니아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다.집에 갇혀있거나 재택근무로 시간 관리가 용이해진 개인들이 사회 활동과 스포츠 시청 및 내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아 주식 당일 매매로 눈을 돌리고 있다. 수수료가 싼 주식 거래 플랫폼을 활용하는 밀레니얼과 Z세대들이 극심한 증시 변동성을 유발했고 있으며 데이 트레이더를 신중한 투자자로 착각하면 안된다.”
―지금 주가가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주가 예측을 물어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전지전능한 신(神)도 적정 주가수익비율을 알지 못한다. 주가 수준이 상당히 오른 것은 맞는다. 그러나 단기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 거품이 껴있다고 생각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미국 국채 금리는 매우 낮고, 일본·유럽 금리는 심지어 마이너스다. 국채 금리가 낮아지면 주가의 기대 수익률은 높아지는 게 과거 금융시장의 움직임이었다.”
―투자할 때 보통 어떤 지표를 주로 참고하는가.
“경기 조정 주가 수익비율(CAPE· Cyclically Adjusted Price-to-Earnings ratio)을 주로 참고한다. S&P500 등 주요 주가지수에 속한 기업 주가와 물가 수준을 감안한 10년 평균 수익을 비율로 나타내는 지표다. 이 비율이 높아질수록 주식 투자 수익률이 낮아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비율은 아직 20년 전 나스닥 버블 때보다는 낮다. 얼마나 주가가 더 오를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향후 미래 투자 수익률을 예측하는 데는 유용하다.”
대표 인덱스 ETF 가격과 CAPE의 추이
―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빚내서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일반 투자자는 절대로 빚내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헤지펀드 투자자 레이 달리오의 리스크 패리티 전략(빚을 내서 여러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이 인기를 얻으면서 너도나도 이를 따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금리 하락기에는 이 전략이 먹혔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마이너스 부근까지 떨어진 지금은 다르다. 주가의 변동성에 휘둘려 자칫 큰돈을 잃을 수 있다. 또한 향후 금리가 오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초저금리가 끝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이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코 단정 지을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정부의 재정 지원과 중앙은행의 막대한 돈 풀기로 인해 물가가 빠르게 치솟을 수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