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성화에 옛다! 곶감하나 더 빼주는셈치고 무리를 하자..
우선 3둔 5가리를 알아야 실마리가 풀리는데...
조선시대의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에 십승지지(十勝之地) 이야기에서 비롯되길..
전쟁(亂)이나 전염병, 흉년 등에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는 명당으로 추천하는 전국의 길지(吉地)를 말하며
그밖에 피난처로 강원도 인제 산골짜기의 '삼둔 오가리'이야기가 나온다.
요 대목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정감록(鄭堪錄)을 잠시 짚고 안 넘어갈 수 없다..
본인 항상 주장하는 바 아는 것 같아도 막상 물어보면 흰소리 하는게 우리네다.
그래서 누가 알든 모르던 목소리 크게 이야기 하면 깨갱하게 마련인데
요때 조목조목 근거를 대고 이야기 해야 진짜다.
어떤 넘 정감록(鄭堪錄)이 고려시대부터 비롯 되었다고 목울대 세워가며 이마에 핏줄드러내며
빡빡 우기면 '그런가?"하고 슬며시 꼬리 내릴지도 모르는게 우리다.
그런데 아니다.
중 3 학원학습지에 간단 요약 설명되어지길..
‘정감록(鄭堪錄)’ 이 책은 정감(鄭堪)과 이심(李沁)이라는 두 인물의 대화 형식으로 서술돼있는데...
내용은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현실부정과 체제 변혁을 선동하는 것으로 돼 있다.
특히 "정(鄭)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이(李)씨성의 조선왕조를 멸망시키고 새 세상을 열 것" 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따라서 나라에서는 이를 금서 1호로 지정해 소지를 금지하고 있으며 발견하면 즉시 불태워버리고 있다.
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요대목에서 상기해야 할게 중학교 공부까지만 열심히 다 해도 꽤나 상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한 세상 살 수 있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공부가 대학을 가기 위함이거나 시험성적이 아닌
세상을 건전한 상식 인으로 한 세상 살 수 있는 방편으로 인식 시켜 줄 수 있음이 필요하다는 게
강력한 본인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우리 수준울 웃도는 중딩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애들한테 갑빠를 들이댈 수 있도록 쪼금 더 심도 있게 조사해 부연 설명해 보면..
내용은 비슷허다.
‘정감록(鄭堪錄)’은 조선의 조상이라는 이심(李沁)과 조선 멸망 후 일어설 정씨(鄭氏)의 조상이라는 정감(鄭堪)이
금강산에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엮어져 있는데,
조선 이후의 흥망대세(興亡大勢)를 예언하여 이씨의 한양(漢陽) 도읍 몇 백 년 다음에는
정씨의 계룡산(鷄龍山) 도읍 몇 백 년이 있고, 다음은 조씨(趙氏)의 가야산(伽倻山) 도읍 몇 백 년,
또 그 다음은 범씨(范氏)의 완산(完山) 몇 백 년과 왕씨(王氏)의 재차 송악(松嶽:개성) 도읍 등을 논하고,
그 중간에 언제 무슨 재난과 화변(禍變)이 있어 세태와 민심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차례로 예언하고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이 두 사람의 문답 외에
의상(義相) 도선(道詵), 무학(無學) 박자초(朴自超), 낭선자(浪仙子) 어무적(魚無跡),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격암(格庵) 남사고(南師古), 두사총(杜師聰), 정북창(鄭北窓), 서산대사(西山大師),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 등의
예언도 있다.
요 대목에서 이 사람들 이름 밤새 다 외우고 있으면 시험으로 치자면 당연히 성적은 나쁜거다.
큰 개념을 꿰어야지.. 그냥 조선시대 민심이 흉흉해서 떠돌던 예언서.. 이정도면 충분한거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 이런거 이야기 나오면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거 있었다 그정도다.
아마도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어느나라나 다 있지 않았겠냐 싶다.
재미있으니까..꿰어 맞추다가 어찌 그럴싸 해지면 재미있고 아니면 말고......
나도 여러분 미래 그럴싸하게 다 말해 줄 수 있다.. 꿈 해몽도 할 수 있다.
대학로나 미아리에 가서 자리피면 어눌한 점쟁이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바탕에 깔린건 같다. 아니면 말고....
누구나 보편 타당성한 이야기 많이 주저리 주저리 늘어놔서 비슷하게 맞으면 그럴싸 해 할거고..
우선 복채는 받았겠다.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난 정감록(鄭堪錄)의 참 의미는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는데 그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최소한 민심을 존중 할 시대적 견제 구실도 했었을거고...
이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1785년(정조 9) 홍복영(洪福榮)의 옥사사건 기록에서 나온다.
정권에서 물러난 소론(少論) 및 남인(南人)들이 이용하였다.
아마 허균 옥사(許均獄事)(서기 1618년)가 아니면 선조 6년(1573년) 정여립(鄭汝立) 사건(事件) 때
만들었을 것으로 사료(思料)된다.
비록 허무맹랑한 도참설, 풍수설에서 비롯된 예언이라 하지만,
당시 오랜 왕정(王政)에 시달리며 조정(朝廷)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있던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실제로 광해군, 인조 이후의 모든 혁명운동에는 거의 빠짐없이 정감록의 예언이 거론되기도 하였다.
연산군 이래의 국정의 문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당쟁(黨爭)의 틈바구니에서 도탄에 허덕이던 백성들에게 이씨가 망한 다음에는 정씨가 있고,
그 다음에는 조씨, 범씨가 일어나 한 민족을 구원한다는 희망을 불어넣으려 한 점에서 이 책은 높이 평가될 수는 있다.
그러나 반면 우매한 백성들이 이 책의 예언에 따라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피란처를 찾아 나서는 웃지 못 할 희극을 수없이 연출시킨 것은
이 《정감록》의 악폐였다. 신흥종교의 원전(原典)으로 되기도 하였다.
정치 사회적인 혼란을 초래할 것이 두려워하였기에 조선 왕조의 집권자(執權者)들은
『정감록』의 소지(所持)나 유포(流布)를 범법(犯法) 행위로 간주하였다.
정감록은 요정도로 해두고...
다시 3둔 5가리의 내용은...
투 비 컨티뉴드...
원점일쎄...인생이 그런거여..... 空手來 空手去..
그렇지만 소풍이 아름다웠노라는 기억은 가지고 가야하는거니
어차피 와 있는 소풍 재미나게 보내야 하지 않겠냐는게 본인 주장이다.
이건 또 뭔말여 밤 중에 봉창두드리는 소리여? 라고 하는 사람은 뜻이 그렇다는 이야기니 새겨듣자.
첫댓글 봉창이 밝았느냐... 후기 끝은 어디메냐
아침가리 긴계곡 언제 가려 하나니
ㅎㅎ
자다가 남의 다리 글냐?.....김밥 옆구리 터진소리 하냐...같은말..인감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