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박사와 ㄱ박사 두 가족과 함께 1박2일간의 나들이를 다녀왔다.
ㅇ박사는 나와 같은 중대에서 생도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람이다.
포병장교가 되었다가 내가 정훈장교로 근무 할 당시에 그는 통신병과에서 열심히 근무를 하다가 대령으로 전역을 하였다.
천성이 부지런했던 그는 전역을 하고도 조용히 있지를 못하고 열심히 근무하고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하고 지금까지도
대학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 뿐이랴 군사 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많은 군사관련 연구실적을 올리고 있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다.
ㄱ박사 역시 정말로 자수성가를 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 역시 나와 같이 임관한 동기생이기도 하지만 화학병과에서 대령으로 전역한 그는 군 시절에 미국유학을 하고 온,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국내 ㅂ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으로 박사학위를 하여고 평택에 있는 ㅂ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오랫동안 강의를 하고 지금은 쉬고 있는 나와 격의없이 지내는 몇 안되는 지기중에 한사람이기도 하다.
지난해 연말 세부부가 만나서 송년회를 하자고 ㅇ 박사이 제안이 있었지만 ㅅ로 연말 일정들이 많아서 일치시키는 얼이 쉽지 않아서 신년으로 연기를 했는데 가급적이면 1월 초순으로 날자를 정하기로 했던터라 겨우 1월 4일과 5일로 정했다.
4일 11시경에 세종호수가바라다 보이는 대통령기록관 앞에서 만나서 견학을 하기로 했는데 ㄱ박사와 는 얼추 게획된 시간에 만났는데 ㅇ박사는 아침일찍 사무실에들렸다가온다며 좀 늦게 도착을 할것이라해서 ㄱ박사부부와 같이 세종호수를 한바퀴를 돌았다. 12시가 좀넘은 시각에 도착한 ㅇ박사부부와 함께 대통령기록관을 견학하면서 각각 부부단위로 기념촬영도하고 공주가는 쪽에 있는 식당으로 안내를 하면서 날마다 달라지는 세종시의 골목을 잘못들어서서한참동안 헤매기도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세부부가 동학사견학을 하러갔다. 단풍도 다지고 쓸쓸한 사찰진입로에는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보였다. 파리를 날리고 있는 입구의 식당가들이 안타까웠고
주차장으로 걸어오다가 군밤을 한봉지사서 셋이서 먹으면서 걸었다. 신도안에 근무하던 시절 수요일마다 전투체육의 날이라고 하면서 계룡산을 가로질러서 등산을 하던 시저르이 회고담으로 한참을 보냈다.
오후 5시가넘어서 게룡스파텔로 가서 여장을 풀고 다시 저녁을 먹으려고 유성시내로 나왔다. 여기저기 엣날을 회상하면서 걷다가 식당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했다.
숙소로 들어가서 다시 ㅇ박사가 포항에서 주문하여 가져온 과메기를 안주삼아 술한잔을 하면서
세 부부가 함께 모여서 저녁에는 스라이드 영상을 보면서 지난 해를 회상하고 다가오는 한해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우리들의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영위해 나갈 것인가를 밤새 깊이있게 논하면서 하루밤을 보냈다. 방을 두개를 예악하여 남자들 셋이 한방을 쓰고, 또 다른방은 여자들이 셋이쓰기로 했다.
각각 다로 살던 50년지기 임관동기 셋이모여 같은방에서 하루밤을 같이보내면서 밤새도록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만남을 위하여 방 두개를 미리 예약을 했는데 육군 본부 인사사령부에 근무하고 있는 ㅇ박사의 아들 덕분에 잠도 편하게 잘잤다. 세부부가왔으나 방은 두개를 에약하여
여자들끼리 한방을 쓰고, 우리 세명의 남자들이 같은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밤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느라 자정이 넘어서 잠이들었다. 이른아침에 전주식 시레기 해장국으로 아침을 하고 10가 넘어서 체크아웉을 하고 1박2일간의 3 가족 신년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작별을 했다.
두쨋날 오후에는 ㄱ박사부부와 같이 운동을 하려고 미리 예약을 하두었던 계룡대로 갔다. 소한이라는 한겨울인데 날씨가 푸근하여 운동도 잘하고
저녁은 다시 동학사 입구에 있는 청국장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길지 않은 우리들이 삶속에 이틀동안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기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한 일이리라
임관일로부터 어언 46년 간을 살아 온 세월동안 萬古 風霜을 다 겪으면서
아직도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
< 계룡대>
산이 닭의 벼슬을 닮았다고
계룡산이란 이름을 얻었구나
수많은 세월 유유자적하였는데
三軍 本部 가 내려와서
싞ㄹ벅적하였지만
삼천리 금수강산을 돌보는
5군 본부가 있는 곳 신도안
이성계가 도읍터로 살피다가
물이 부족하다고 중도에 그만두었다지
대청댐처럼 물을 공급할 방안이 없었던탓에
아득한 그 시절에 이루지 못한 도읍지로의 꿈이
살아날듯하였는데 다시 또 무산되고
행정중심 복합도시라
유구한 세월 역사의 부침속에
백제의 멸망도 낙화암의 애련
천년 세월 속절없고
이성계의 꿈도 부엉이 바위 이야기도
600년전이나 지금이나
계룡산은 그대로 인데
그 품에 깃든 부생들의 삶
백년도 못 채우건만 천년 꿈을 꾸고
그 산자락에 아기 자기
인가와 식당들이 즐비하고
세종호반을 거닐며
동학사를 돌아보며
수요일마다 오르내리던
계룡산의 추억
장군봉,연천봉 진달래고개
다시 찾아온 50년지기 세부부
<월출산을 갔다가 저녁에 들렸던 목포쪽의 해병으로 야간 샌책을 나갔다가...>
첫댓글 멋찌십니다!
함께 하시는 동기분들도 부럽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