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신은 언제나 변한다.
신은 상호 교환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어가 있고, 그것이 '변화'다.
우리는 신을 재규정하고 있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신을 제대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신의 본성과 특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따라서 신성을 더 많은 곳에서 보고,
그래서 분리와 소외감을 치료하고,
신과 합일할 수 있게 할 좀 더 미묘한 뉘앙스를 포함하기 위해 신에 관한 규정을 확장하고 있다.
'필요'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환상이다.
하지만 인류가 가고 싶다고 말하는 곳과 체험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것을 전제한다면,
이렇게 신에 관한 규정을 확장하는 것은 유용하고 이로울 것이다.
신은 그 자체를 매순간에 맞추어 항상 현존하고 항상 변화하여서,
너희가 그 순간에 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체험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한다고 나는 이전에 말했다.
나는 또한 삶이라는 단어와 상호 교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너에게 해두고 싶은 말은 삶은 변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신'과 '변화'가 동의어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너의 이해에 또 다른 도약이 일어난다.
어제의 신은 결코 변하지 않는 신이라고 했다.
그 신은 심지어 부동의 동인이라 일컬어져왔다.
그래서 어제의 신과 내일의 신 사이에 여섯 번째로 중요한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모든 생명은 움직이는 에너지다.
그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 어떤 것도,
우주의 어떤 단 하나도 정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고, 움직임이 변화다.
우주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같은 속도나 주파수(또는 너희가 같은 의식 수준이라 부를 수도 있는 것)로
진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는 에너지는 다름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 빠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반면에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에너지는 매우 느리게 움직이며,
전에 존재했던 것과 거의 같은 패턴을 반복하다가,
결국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신의 모습을 변경한다.
물론 우주는 그런 패턴으로 회전한다.
너희 은하계는 수십억 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회전했었고,
앞으로도 수십억 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회전할 것으로 믿어도 된다.
그것은 모두 자기 인식의 수준과 관계가 있다.
모든 것이 자기 인식을 하지만, 자기 인식의 수준은 다르다.
자기 인식의 수준이 높은 에너지는 항상 더 자기를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일단 하나의 에너지가 점차 자기를 인식하게 되면,
그것은 점점 더 자기를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에너지가 자기 인식을 하지만,
모든 에너지가 자기 인식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건 아니다.
모든 생명이, 가장 작은 세포, 분자, 미립자까지도 지능이 있다.
이 기본적인 지능은 내장되어 있다.
그것은 세포의 DNA 염색체다.
그러하니, 이런 작은 입자들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들의 움직임은 예측 가능한 결과를 낳는다.
이런 결과를 삶이라 부른다.
내일의 신 P8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