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와 갱년기: 깐부와 살다
김영신
1.
“요즘은 아들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가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들어보셨어요. 아빠가 조용히 집을 나간다 하더라고요.”
학교 엄마들과 차 한 잔 마시다 나온 이야기다. 모두 마시던 찻잔까지 내려놓으며 박장대소한다. ‘어휴, 깜짝이야. 어제 우리 집에 왔다 갔나.’ 벌렁거리는 속으로 남은 커피를 털어 넣는다. 뭐지. 커피 맛이 떫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니 다행이라고 넘겨도 좋으련만, 마음은 이미 천근만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종종 발걸음과는 달리 나의 머릿속은 느리게 돌아간다. 온라인 게임으로 해야 할 일을 미루다 못해 손 놓은 아들. 그런 아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기진맥진한 나. 정작 남은 시간을 함께할 동지인 남편에게는 소홀했음이 확 밀려온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온 집안에 한랭전선뿐이다. 거기에 온난 고압부의 엄마와 만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토네이도급의 기상이변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걸까. 더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으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적기 시작해 본다. 과거 조카들과 씨름하던 언니들을 볼 때면 ‘왜 저러나.’ 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 아들의 사춘기와 아내의 갱년기 사이에서 가장은 언제부터 꼬이기 시작한 걸까.
아들에게는 갓 지은 밥을 먹일 때, 아빠에게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전자레인지에 식은 밥을 돌려 주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들은 대개 우리, 아니 정확하게는 아빠의 몫이었다. 아빠는 초딩 입맛이라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했지만, 아토피 질환이 있던 아들을 위해서는 집밥으로만 상을 차렸다. 라면은 아들이 없는 시간대에만 허락되었고, 배달 음식은 꿈도 꾸지 못하게 했다. 이게 다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위대한 일이라 굳게 믿었기에 나를 ‘철의 여인’이라 놀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들이 사춘기임을 자처하며, 사사건건 반기를 들거나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기본도 거부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같은 남자라는 이유로 이 상황을 나에게 이해시켜야 했다. 나도 예전 같지 않은 몸을 데리고 사느라 적응이 안 되는데, 매일이 처음인 엄마 역할을 도전받게 할 때면, 아빠가 중재를 서야 했다. 일 년 사이에 훅 커버린 아들의 덩치에 목소리마저 기어들어 가니 애꿎은 가장한테만 목소리를 높였다.
답답한 마음에 TV 육아 상담 프로그램 ‘금쪽이’도 찾아서 보고, 유튜브 강의도 들어본다. 하나같이 사춘기 자녀의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입을 닫으라고 한다. 방문을 세게 닫아도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방문을 걸어 잠가도 두드리지 말고 그냥 두라 한다.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그 시기를 견디라고 한다.
막막한 마음에 울컥해진다. 아들의 사춘기에 맞춰 급발진 버튼이 자주 눌러진다는 것은 내 갱년기도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신호이리라. 불안도가 높아지고, 누군가 내 규칙을 깨면 격분하고,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나잇살은 오르고, 한번 찐 살은 절대로 안 빠지고. 빠지면 안 되는 머리카락만 빠지고···. 시시각각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을 빼고 팩트만을 이야기할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한숨만 나온다.
하나같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해가 되면서도 억울한 마음에 또 울컥해진다. 결정적으로 아들의 사춘기에 맞춰 나의 갱년기 급발진 버튼이 눌러질 때면 주방의 불은 켜지지 않았다.
모노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닌데 종이 한 장을 들고 혼자 울고불고했더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다. 적고 보니 고해성사가 따로 없다. 폭풍이 몰아치는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가장의 자리가 가슴을 친다.
그래, 오늘 저녁은 아들의 사춘기 아래에 나의 갱년기를 내려놓자. 툭하면 집 나가겠다고 선언하는 나의 깐부, 가장부터 달래놓자. 시간이 흐르면 오늘의 기상이변을 웃으며 추억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남자들의 갱년기도 인생의 한고비일 터, 술 한 잔의 낭만에 그간의 무심함을 녹여보자. 배달의민족 앱을 켜고 할인 쿠폰을 챙겨 이리저리 안줏거리를 검색한다.
2.
“수박을 먹을 때는 씨 발라 먹어.”
가수 싸이의 'I Luv IT'이 온 집안을 뒤흔든다. 방문 꼭 걸어 잠그고 밖으로 소리가 들리든 말든 목청껏 노래하는 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 사춘기는 언제쯤 끝나려나.”
어렸을 때부터 까칠했던지라, 농담 반 진담 반 태어나면서부터 사춘기라 하곤 했는데, 말이 씨가 되려나 보다. 혹여나 고민 나눌 상대가 없어 힘들까 봐, 엄마지만 나름 친구처럼 공감대를 만들며 키웠다. 하지만 방문이 잠기는 횟수는 늘어만 간다.
“몰라.”
“내가 알아서 한다고!”
“왜!”
사춘기 대화 삼박자가 모두 나올 때면 내가 가졌던 공감대라는 자부심은 흔적도 없다. 십삼 년이란 시간을 공들여 온 자부심이 있기에, 혹여라도 그 자부심마저 사라질까 두려울 때는 일명 ‘지랄 총량의 법칙’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이 법칙의 요지는 인생을 펼쳐놓고 보면, ‘지랄 총량’은 불변의 양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한때 총량을 채우면 나머지 인생에서는 평탄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에 사춘기를 사춘기답게 보내지 못하면, 인생 후반부에 그 못 채운 총량을 다른 것으로 채우게 된다는 인생 총량의 법칙 이론이다. 그때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들의 얼굴에 여드름이 날 때, 나의 얼굴에는 기미가 찾아왔다. 아들의 키가 훌쩍 클 때, 나의 키는 슬쩍 줄어들었다. 아들은 더벅머리가 되어가는데, 나는 민머리가 되어가고 있다. 아들은 친구 찾아 삼만 리인데, 나는 아들 찾아 삼만 리다.
문제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엄마인 나에게는 사춘기 같은 갱년기로 찾아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딱히 사춘기라는 것이 없었다. 오빠와 언니들의 유난스러웠던 사춘기 물레방아가 나의 사춘기 시절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1남 5녀의 막내였으니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아들의 얄미운 지랄 총량 사춘기가 부럽다.
식은땀까지는 아니지만 홍조가 느껴지고, 자고 일어나도 자고 싶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거 같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고, 누군가 살림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면 살림이 더 하기 싫다. 또 찾아서 먹던 옛날과는 다르게 딱히 입에 당기는 것도 없다. 집에서 나를 찾으면 괜스레 짜증부터 나고, 그냥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아졌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직함으로부터 훨훨 날아가고 싶다. 모두 내가 원해서 달았던 직함이었지만 그 감사함도 어느 날은 원망이 된다.
지금 내가 만사가 귀찮듯이 아들도 딱 그런 심정인가 보다. 집안일 얘기만 나오면 신경이 곤두서는 것처럼, 게임이나 공부 얘기만 나오면 짜증이 나나 보다. 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하고 싶지 않은 때인 거다. 내가 산더미같이 쌓여가는 집안일을 앞에 두고 있을 때의 그 심정인가 보다.
인생 그래프를 그려 놓고 X축에서 보면 아들과 나는 서로 대칭의 형국이다. 아들은 왼쪽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승곡선’이라면, 나는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하향곡선’이다. 그러나 Y축에 점을 찍고 가로로 쭉 연결하면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가 만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서로 으르렁거려야 할 적군이 아니라, 서로 품어줘야 할 아군이었던 거다. 심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도 그렇고, 육체적으로 찾아오는 급격한 변화도 똑같으니까. 그렇게 놓고 보니 한결 마음이 차분해진다.
세대가 다른 인생의 좌표에서 보듬을 동지로 만났으니, 분명 보통의 인연은 아닐 것이다. 이젠 아들이 아니라 ‘깐부‘라고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