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꽂이 피면 작은 감꽃을 엮어 목걸이 팔찌를 하고 주워서 먹기도 하고 빠끔살이(소꼽놀이) 할때는 밥이라고 했습니다.
감꽃이 지고 나면 감이 열려 한입 들어 갈 정도로 크면 작은 단지에 물을 부어 장독에 놓으면 3일정도 있으면 떫은맛은 사라지고 달작지근하게 우려지면 꺼내서 먹었습니다.
주먹만해지면 언니와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우리감은 물론 작은집들 감까지 주우러 다녔습니다. "나는 몇개 주섰응께 너는 그이상 묵으면 안된다" "성, 내가 성 데꼬 왔응께 따라온 값은 줘야 헐것 아니여!" "단재기를 니것 내것 따로 우려야 니가 내것을 넘보지 않겄지야!" "오메, 나는 성것 안묵을라네 성이 주순것은 성이 다 묵소" 단지를 두개로 우리면 서로가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단감은 익기도 전에 다 따먹어 버렸습니다.
가끔은 횡재도 합니다. 벌레를 약간 먹은 감이 홍시가 되어 온전하게 떨어지면 할머니나 아버지를 갖다 드렸습니다. 깨진것은 그 자리에서 발라서 먹으면 그 달콤함을 무엇에 비교 하겠습니까?
어머니는 운동회때나 추석이면 감을 큰 항아리에다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 씌우고 우리셨습니다.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었던 시절 우린감은 최고였습니다.
외갓댁에는 감이 한그루도 없어서 외할아버지 제사가 음력 9월인데 철이 이르면 우려서 늦으면 빨간 감을 한 석작씩 따서 이고 가셨습니다.
서리를 맞기전에 곳감을 깎아 꼬쟁이로 끼어 엮어 말려 설에나 제사대 쓰려고 시원한 광에 보관했습니다.
추수가 시작되면 감은 빨갛게 익고 감잎도 빨갛게 물들다 떨어지면 앙상한 가지에 서리를 맞은 감은 떫은 맛을 덜어 내고 우리지 않아도 먹기에 좋았습니다. 가을에 맛 없는 감은 눈을 맞고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 맛있는 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추수가 끝나면 감을 땁니다 감을 항아리에 차곡차고 쟁여둡니다. 꼭대기 못딴감은 깐치(까치)밥이라고 새들의 몫이었습니다. 항아리에서 홍시가 되면 겨울 저녁 간식으로 먹으면 꿀맛과 같습니다.
어느때부턴가 단감과 대봉을 집안 산밭에 심었습니다. 오빠들과 언니도 객지로 나가고 집에는 할머니 부모님 농사지을 오빠 한 분과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주먹만한 대봉이 떨어져도 줍지도 우리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느그 오래비 언니 어릴때 같으면 감이 남어 나겄냐! 둘볶에 없응께 운이 안단갑다."하시면서 어머니가 감을 우리시고 우려진 감을 먹으라고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객지로 나가고 혼인 시키고 두분이 계시면서 부모님은 어느 날 "감을 2백만원이나 받었다. 근디 감 장시가 약을 허라고 않허냐. 그라믄 땟깔이 좋아 더 많이 받는다고? 근디 농약을 허믄 쓰겄냐 잉, 껍딱(껍데기)조차 묵는것이 감인디, 전에는 농약 않해도 감이 벌어 지고 않허드만 신품종이라 그런갑서야, 우리 단감이 우게(윗부분)가 딱딱 벌어지고 꺼먼것이 앉인것이 약을 않해서 근다고(그렇다고) 않허냐 , 대봉값이 좋아야! 한개에 천원씩 나갔다. 그냥 심어논께 영감할멈 용돈은 된다"하시면서 좋아 하셨습니다.
"엄마! 그 때는 단감을 익기도 전에 다 따묵어서도 그러려니와 농약들을 않친게 병충도 없었는디 갈수록 농약을 강허게 친께 그러제, 엄마는 부자 되겄네, 논은 곡수 받어서 묵고 밭에서 깨털고 콩 털고 퐅(팥) 털고 녹두 털고 감은 해마다 큰께 더 많이 받을 것이고 오빠 언니들이 돈주고 작은 오빠가 십일조 허고 내가 주고 얼마나 모태 (모아)났는가?" "입식 허고 ㅇㅇ유학간디 1500줬시야" " 으응! 머시라라고 !" " 느그들은 못 갈쳤다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유학을 가야 헌갑드라, 배운놈이 났제 안그러냐. 그래도 5백 남었다" "엄마 인자 주지 마소 큰 오빠가 애들 많다고 죽는소리 해도 절대 주지마소! 따라서 산다고도 안험시로 큰 오빠가 그렇게 좋은가? 엄마가 헌일인께 어쩔 수 없지만 엄마랑 아부지랑 옷도 해입고 맛난것도 묵고 허소" "만난것도 없드라, 소화도 않되고 그래서 두 끄니(끼)만 요새는 묵는다. 옷은 죽도록 입어도 못다 떨치겄다"
감은 봄부터 겨울까지 간식을 제공 했는데 지금 우리 애들을 홍시감도 잘 안먹고 단감도 별로 안먹습니다. 어릴적 추억 떠 올리면 감이 귀했던 남편은 떫은감을 잘도 먹습니다. 지금 고향엔 감이 쑥쑥 크고 있겠네요. 저의 시부모님 보관이 오래 간다며 새파란 단감 따서 부치실 날 얼마 안남았네요. 봉옥과 함께~~~~~~~시부모님의 사랑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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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꽃 따서 목걸이 맹글어 목에걸고,,,,,어린시절에요,,,,,ㅎㅎ울 친정집에 감은 누가 딸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까치밥이 되어불어요,,ㅎㅎ따박솔님 글~~ 따박~따박 ,,,잘 보았습니다..
실감나는 글입니다. 저 어렸을 적에도 소금에 우린 감을 먹곤 했었습니다. 특별하게 맛나게 먹었다는 생각은 없습니다.ㅎㅎㅎ....시댁에 제법 오래된 감나무가 두그루 있는대도 우리지도 않고 따지도 않고 그냥 둡니다. 식구들 모두 그 감에는 관심이 없는 듯싶습니다. 먹을거리가 넘쳐나서겠지요?.... 작년인가 평생교육원 한시반에 수업 받으러 갔었는데 어르신인 회원 한분이 감을 우려 가져오셨더라구요. 옛생각하면서 먹어봤는데...... 참말, 맛나더라구요~
"옷은 죽도록 입어도 못다 떨치겄다" 늘 정겨우신 어머니.... 그 살뜰한 마음에 머뭅니다. 감에 얽힌 따박솔님의 글을 읽다보니 어쩜 그리도 옛생각이 나는지요~ 정말 단감도 잘 먹지 않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아이들 아빠가 홍시를 좋아해서 시골에 부탁하여 반 접 정도씩 사먹곤 하였지요~~ 우린 감 이야기에 추억따라 잠겨봅니다..
다녀가신 님들의 댓글을 보며 미소 짓습니다.모두가 잼잇어요.
ㅎㅎㅎ 댓글 보시며 웃으실 라라님이 그려져서 저도 따라 미소짓습니다.
빠금살이가 소꿉놀이군요...이처럼 생소한 말들이 참 재미있네요. 주석을 달아주신 따박솔님 마음마음이 꼭 따박솔님 어머님 닮은 것 같아 푸근해보여요. 언니것과 따로 담아 서로 함께 먹었다는 따박솔님...그런 추억이 사람의 심성을 곱게 만드는가 봅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러게요~ 전 빠끔살이가 더욱 익숙하답니다^^
떫은감의 추억이 나도 있어요...옛날 무전여행가다가 현충사에 들렀는데...하도 배가 고파서 감나무의 시퍼런 땡감을 따서 한입 물었는데..입에 턱하니 붙는 느낌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어요 ㅎㅎㅎㅎ 재미나게 읽었어요
그냥 읽고 가려다 한마디 거듭니다 참으로 정겹고 평화로와 보입니다 저도 감나무가 무성한 시골에서 자라서 나에 어린시절로 돌아간것 같군요 오쩜 그렇게 생생하게 그리셨는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