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진돗개 쫑
동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타고나는 천성이다. 나는 어릴 적 말을 무척이나 좋아하였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에는 말과 개들이 있었다고 한다. 말은 아버님 청년 시절 할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았던 것으로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마구간 바닥을 발로 차 알려 주었다는 옛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는데 총사냥을 하셨던 아버님에게 개들은 반려 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사람도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방앗간에서 쌀겨, 시장에서는 야채, 정육점에서 고기 부산물을 구하여 끓어 주셨으니 개들은 항상 건강하였고 최상의 컨디션을 가졌을 것이다. 엽총을 몇 자루 손질하시면서 산탄 총알을 직접 만들어 가죽 탄창에 꼽아두실 때면 아버님이 서부 영화의 주인공 같아 보여 뿌듯하기도 하였다.
<사진출처: 인터넷 서부 영화의 한장면>
환갑이 지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얼마 안 있어 LA 폭동이 일어났다. 미국에서 동생이 전화를 하여 아버님 한국으로 모시고 나가라고 하는데, 아파트 옥상에서 권총을 들고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면 지키겠다고 보초를 서신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관으로 평생을 사셨으니 사명감이 발동하신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신지 오래지만 사냥을 다니실 때 400근 정도의 멧돼지가 정면으로 달려오는데 모두 피하는데 아버지만 총을 들고 섰다 20~10m 까지 접근한 멧돼지를 한방의 총성과 함께 쓰러뜨리고는 달리던 가속도에 발밑 까지 밀려 온 멧돼지를 확인 사살한 후, 돌아 서더라는 이야기는 아직도 춘천인근의 연륜 있는 포수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침착하고 사정권에 들어 올 때 까지 기다리시던 담력과 자신감이 전설이 된 것이다.
쌀 한가마니에 4천 원 할 때 장사 밑천으로 80만원이란 거금을 할아버님께 융통하여서는 얼룩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들어 오셔서 한동안 할아버님과 의절하고 살았던 이야기를 어머님께서 들려주셨는데 그 강아지가 바로 포인터였으며 아마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수입 포인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두 마리가 잘 성장하여 사냥도 다니고 새끼를 낳아 비싼 값에 분양되어 할아버지께 돈을 갚고 용서는 받으셨지만 아버님과 할아버님 사이에서 입장이 난처하였다는 당시를 회상하실 때의 어머니 표정은 아버지를 여전히 원망하는 눈치였다. 이후로도 독포(독일 포인터), 영포(영국 포인터) 하시면서 후배 포수 분들에게 밤을 세워가며 사냥과 사냥 개 고르는 노하우를 들려주시던 모습을 졸린 눈 비벼가며 듣던 10살 때 이전의 기억이 오늘 내가 진돗개를 기르며 강아지 고르는 노하우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꿩 사냥 개인 포인터나 쉐터는 점박이 개들이다. 얼굴에 반쪽 특히 눈에 반쪽만 점이 있는 개들은 꿩들이 놀라 날아가기에 안 좋다, 하시던 말씀. 지금 생각하여 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진돗개 선배님들처럼 나름의 선택 기준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으며, 수도권 일대에서는 비싼 돈을 내고 아버님의 개들을 사갔으며 역시 사냥을 잘 한다는 소문을 전해 듣기도 하였다.
앞에 글을 길게 쓴 것은 조만간 등장할 똥개(^^*) 진도산 황구 암컷 쫑 때문이다. 이렇듯이 우리 집에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개들이 늘 함께 살았다. 어느 날, 1군단 포사령부 사령관으로 계셨던 고모부님이 차에 황구 두 마리를 태우고 서울에서 내려오셨다. 보리 색의 48cm정도 크기의 꼬리가 좌로 말려있었던 누렁이 쫑과 색이 더 붉고 짙었으며 키가 45cm정도 되는 작고 앙칼진 황구 암컷으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적구였다. 이 암컷의 성품은 정말 대단하였던 것으로 기억되며 두 마리의 황구들은 진해에서 군복무를 하시던 고모부님이 진도로 작전을 나가셨다 두 마리 선물로 받아 키우시다 서울로 올라오시면서 우리 집으로 데려오신 것이다. 이중 적구는 인제군 작은 아버님이 데려가셨고 쫑이 함께 살았는데 마당개로 살면서 쥐를 고양이보다 더 잘 잡았고 충성심은 가히 최고였다. 이렇게 만난 쫑이 내가 맺은 첫 번째 진돗개 인연이며 지금도 진돗개의 롤 모델로 기억하고 있다.
1980년 쯤 은빛 여우 털이 일본으로 수출되어 큰돈이 생겼기에 아버님께서 여우를 십여 마리 키우셨다. 하루는 새벽녘에 어머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와 깨었는데 여우 한마리가 망에서 탈출을 하였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랜턴을 가지고 여우 장에 들어 가 사실을 확인하시고는 쫑을 데리고 다시 여우 장에 들어가신 후 목줄을 풀어주시는데 의아한 생각에 여쭤보니 여우가 나간 흔적으로 보아서 1시간 정도 되었고 오후 해질녘 되면 돌아올 거라 하시며 방으로 돌아 가 다시 잠을 청하신다. 당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였기에 어머님과 온 동네와 주변 산을 뒤지며 다녔는데 아버님께서 얼마 후 일어나서는 아침 식사를 하시자며 어머님을 부르시고 식사 중에 쫑만 풀어주고는 태평스럽게 계시는 이유를 아버지께 여쭤보았다. 쫑이 쫒아갔으니 분명히 돌아 올 거라 장담하시는데 그럼 사냥개를 풀어야지요? 아니다. 저 개들이 사냥개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안 돼! 라고만 하신다. 더 묻지 않고 시내에 나와 일 좀 보고 쫑이 궁금하여 일찍 들어갔더니 아버님은 동네 친구 분들과 내기 장기를 두고 계신다. 뭐야! 개도 여우도 모두 잊어버린 거 아냐?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있는데 오후 4시쯤 되어서 집으로 오신 아버님이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차에 오르시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나도 얼른 차에 따라 탔다.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가 정상에서 차를 세우시고는 커피한잔 마시며 이곳저곳을 살펴보신 아버님은 이제 내려가자. 한두 시간이면 오겠네! 하신다. 천천히 차를 몰아 집에 도착하니 여우 장에서 개와 여우가 짖는 소리에 동네가 들썩거리며 이웃 분들이 구경을 하고 계신다. 아버님은 태연한 걸음으로 나는 빠른 달리기로 여우 장을 가보니 쫑이 여우를 몰아넣고 대치중이다. 뒤이어 오신 아버님은 여우 장을 다시 닫고는 쫑을 데리고 나와 차에 태워 정육점으로 가 돼지고기 한 근을 그 자리에서 포상으로 주시고는 친구 분들께 개 자랑하시며 쫑 목줄을 내게 건네주시고는 내기장기를 이어 두시는데 돌아오는 길에 평소 똥개로만 보았던 진돗개 쫑이 왜 이렇게 멋져 보이고 자랑스럽던지...^^
<20년 전 우리 집 호순이 직자의 산행길>
평소 진돗개는 사냥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아버님의 말씀은 포수로서 분명한 개의 용도를 말씀하셨던 것 같다. 당시에는 멧돼지 사냥개가 없던 시절 이였고 아버지도 사냥의 포획대상물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포인터, 세터와 같은 개들이 사냥 개였던 것이며 진돗개는 그자체가 사냥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꿩 사냥이나 멧돼지 사냥개로 활약하기에는 어중간한 견종이란 말씀으로 해석된다. 결국 사람이 우선되는 수렵이 아닌 개가 우선이 되는 자연 속에서 동물로서의 본능적 사냥 기질을 간직한 개가 진돗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쫑을 풀어주고 추적경로를 예측하셨던 아버지는 포수로서 오랜 산행으로 터득하신 산새와 짐승의 이동 흔적을 가늠할 수 있는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시간대 별로 짐승이 어디에 있으며 현재 어디까지 이동하였을 것이란 아버지의 사냥 경험과 진돗개로서의 탁월한 성품을 잘 간직하였던 쫑. 서로의 믿음이 우리 고장에서는 명견 쫑이 진돗개로 널리 알려지게 된 사건이 되었으며 수많은 견종을 뒤로하고 지금까지도 내가 진돗개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진돗개가 아닌 쫑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나기를 소원하면서......!
<나에게는 최고 명견이였던 호순이의 산행 모습>
첫댓글 먼저 올렸던 글을 사진과 함께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어린시절 부터 멋진 부모님 밑에서ᆢㅎ
포인터와 세터를 키우셨으면 아마도
최최의 수입견이 되겠습니다
멋진 사진과 귀한 자료 감상합니다
잼난글 읽고보니 참멋진생활 하셨네요
아버님 생각이 많이 .........
늘 그렇지만 큰일에 닥치면 가장 먼저 생각나지요.
아버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구요...^^
한 편의 재밌는 단편소설" ㅎ ㅎ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