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天尋院壁(제천심원벽)
이인로(李仁老:1152~1220)
본관은 경원(慶源). 자는 미수(眉叟) , 호는 와도헌(臥陶軒).
왕가의 외척으로 고려 전기 3대 가문의 하나인 경원이씨의 후손이지만,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1170년 그의 나이 19세 때에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피신하여 잠시 불문(佛門)에 귀의했다가 환속했다.
1180년 29세 때 진사과에 장원급제, 1182년 금나라 하정사행(賀正使行)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수행하였다.
임춘(林椿)· 오세재(吳世才) 등과 함께 '죽림고회(竹林高會)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비서감우간의대부(秘書監右諫議大夫)를 지냈다.
저서로는 『은대집』 20권· 『후집』 4권· 『쌍명재집』 3권· 『파한집 』3권.
현재 『파한집』만 전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은 오지 않고
待客客未到 대객객미도
스님을 찾아뵈려 갔지만 스님도 계시지 않았네
尋僧僧亦無 심승승역무
생각해 보니 숲 밖에 새들만 남아서
惟餘林外鳥 유여림외조
술 한 잔 하고 가시라, 권하고 있네
款款勸提壺 관관권제호
*
어제 승합차 한 대로 여럿이 문상 가는 길
차 안이 시끌벅적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평소 왕래가 없던 사람까지
불러 모아 모처럼 옛이야기로 신이 났다
충남 서천까지 긴 거리가 한순간이다
야트막한 산속에 둘러싸인 장례식장은
1층 건물에 양쪽으로 손님을 맞는 단출한 구조였다
간단하게 조문을 마치고
이야기하다 보니 옆집 손님도 그렇고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다
몇 순배 술이 돌자
옆 사람들은 “누구누구 아느냐”로 시작해서
대화가 진지하게 오고 가자
서로 전화해서 서로를 바꿔가면서
전화로 인사를 하고
이런 기세라면 대통령까지 끌어들일 태세였다.
나는 이곳이 타향이라
마땅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묵묵히 술잔만 죽이고 있었다
이야기 자체가 재밌고
내가 모르는 새로운 사실까지
서로 자리를 뜰 생각도 없이
마치 누구의 장례식장에 온 느낌이 아니라
고향 친구들의 송년회 모임 같았다.
죽음이 아무리 흔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인데
요즘은 눈물도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현실이 되었다.
고인의 살아온 삶도 죽음도
바람처럼 가벼운 세상이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마시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음료수를 준다
각자 차를 주차한 곳까지 와서
대리를 부르고
밤새 반려견 누리와 같이 잤더니
자고 나니 옷에 개털이 수북하다
그래도 요놈과 같이 있으면 행복하다
첫댓글 옛 시조를 보면 참, 여유롭습니다.
시간을 칼국수 밀듯이 길게 만드는 듯합니다.
떠나면서 사람이 모이고
옛이야기들이 흐르고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젊지 않은 죽음은
일상이 되는,
작은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큰 댁, 작은 댁 사촌들이 다 모였을 때
사촌 큰 오빠가 들여주었던 말이 기억납니다.
"큰 아버님이 대문 앞에서 영숙이 너를 안고 우리 집 복덩이라고 하시며 얼굴이 좀 더 예쁘면 좋은데"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좋은 것은, 근동에서 예쁘기로 소문났던 큰 언니와 귀여운 둘째 언니를 키우셨으니
그러려니 이해되면서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얼굴이 예쁘지 않아서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대통령, 연예인, 작가, 종교인 등 많은 분들의 장례식에서 사진을 찍어도
눈에 띄는 얼굴이 아니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