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32분
배앓이 중이다.
상한걸 먹어서 그런듯.
먹자마자 누워서 그럴수도 있고.
배 아프고 토할것 같은데 가스만 배출.
배터리 충전 99%
3시 38분
고양이가 졸라게 우는 중.
영역싸움인가?
4시 3분
1차 설사 끝
19분
콜키퍼 등록
유료
유플러스는 밤 12시가 지나면 추가 데이터가 뜨던데 여기는 아직 리뉴얼 안된다.
4시 59분
해떴네.
5시 8분
창문 밖에서 왠 화장품 냄새가?
향수 쏟을듯이 뿌린 누가 서서 담배피나?
7시 31분
머지?
국세청에서 6만 4천원 입금.
8시 38분
해떴다.
비는 완전 그친건가?
9시 정각된까 문자로 머가 수두둑 온다?
이제사 가입 되었다고 뜨는데 로그인하면 그대로임.
9시 35분
8시부터 29도였네.
어쩐지 나가기 싫더라.
토요일까지 비가 왔다말았다 할 예정.
10시
푹 못자니까 계속 존다.
사타구니 가려움.
11시 9분
리브모바일 114에 전화
상담원이 초짜 같다.
계속 통화하니까 사투리 억양이 나오던데 전라도분 같다.
어제와 다르게 한국인이네.
전산오류로 확인이 안된다고 나중에 연락을 주겠단다.
얼굴에 왜 이렇게 개기름이 끼냐.
잘먹고 다녀서 그런가보다.
이불도 빨아야 하는데...
인근 코인빨래방은 이불빨래 금지.
이것도 돈 써야 하네.
윗층에 공용 세탁기가 남아 있으려나?
거기서 빨래만 하면 외노자들 한테서 나는 암내 비슷한 채취가 빨래에 스며들던데.
향신료 냄새 같기도 하고.
15분
전화 옴
이번달은 쓰는만큼 나올거란다.
다음달 1일부터 정상적용이라네.
12시 23분
마트오니 살것 같다.
하드 사자고 30분을 걸었다.
26분
뒤지겠다.
마트 나가기가 겁난다.
가자.
43분
집이다.
씻자.
49분
찬물로 땀만 훔침.
1시 50분
과자먹고 이빨닦읍시다.
3시 21분
30분 걸었다고 땀에 젖은게 생각나서 나가지를 못하겠다.
비는 더 안올듯.
구름 더 몰리면 몰라.
복지관에 쌀 갔단다.
20kg보내고 생색내는 느낌이라 부끄럽네.
33도네.
의심많은 놈이라 쌀을 선생중에 누가 들고갈지 복지관 밥할때 쓸지 궁금해진다.
4시 10분
숏츠 켜놓고 졸았다.
7기가 씀.
어제, 오늘 지금까지.
배터리 53%
폰 끄자.
5시 34분
낮 최고 33도
배터리 충전 93%
나갔다가 파스타랑 감자튀김 먹고 철봉 깔짝이다가 복귀.
이거 먹는데 진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첫끼를 먹는 느낌이 들더라.
신선한 채소를 안먹어서 상태가 안좋은건가 싶다.
다 익혀 먹는것만 샀으니까.
6시 1분
복지관에서 전화.
후원영수증 처리해 주겠다 해서 현금영수증 받았다 했다.
쌀 잘 쓰겠다면서 이름을 물어봐서 수고하시라 하고 끊었다.
감사 하단다.
정기적인 후원을 요청하는 코스로 갔을려나?
미국인 목사가 왔다고 다 해놓은 밥 두고 라면을 먹인다던지 하던게 떠오른다.
흑인 목사인데 영어로 설교, 기도 등등 예배.
미군부대에서 파티가 취소되었는데 먹을걸 버리기 아깝다고 준것도 기억이 나네.
입은 10개인데 음식은 6개 정도 가져왔고 밥을 안해서 그걸 조금씩 나눠 먹었는데
미국음식 맛이 이상해서 먹는게 고역이었던듯.
그때 먹은 체리씨앗이 네모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시중에 팔리는건 씨앗이 동그란거 말고는 없더라.
기억이 잘못된걸수도?
6시 45분
마감 ㄱㄱ
6시 46분
딱히 수정할건 없지?
끝
7시 40분
과자랑 음료수도 끝
점심때 루테인과 탈모약을 먹었다.
이빨닦자.
8시 44분
이빨닦고 불끄고 누웠다.
10시 42분
자자.
혹여나 계속 숨김 글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망상이려니 하고 치울 것.
본인이 불쌍하다 하는 놈 치고 진짜 불쌍한 사람은 드물다.
11시 반쯤 집을 나서서 마트
쌀 20kg짜리가 최고 용량.
더 커봤자 가격이 부담되어서 안샀겠지만.
식당을 일반인에게 개방해서 싸게 파는 복지관에 배달.
혼합미 6월달 도정한 최고 싼거 20kg
5만원이 안되는데 배달 된단다.
생수까지 사서 돈 맞췄더만.
들고 가려다가 이날씨에 무리다, 가다 터진다는 계산 하에 유턴.
배달 맡기고 생수만 챙겨서 식당.
밥먹고 집.
생수두고 무작정 걸었다.
카페하나 망하고 리모델링중.
노가다 아재들도 이날씨에 하려니까 딘갑다.
빙 돌다가 먼 마트가서 바나나맛 하드 2개 삼.
이것도 말랑카우가 맞더라, 디자인이 바뀜.
식감 다른거 같던데 바나나 1% 빠졌나?
갈수록 쫀득한 식감이 사라짐, 지금이 낫다만.
롯데 이것들은 맛있게 잘 만든 아이스크림이나 하드를 테스트로만 잠깐 팔고 왜 접었을까?
커피맛이 좋았는데.
고급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런칭하려다가 포기한건가.
아무튼 식당 가서 식판들고 정량배식.
옛날 생각난다.
이렇게만 먹고 딴거 안먹고 버티면 살 빠질듯.
홍보가 안된건지 그것도 비싸서 그런지 진짜 힘든 사람들은 안보이고 먹고 살만한 사람들만 보이더라.
등산복 입고 오가는 증노년층 사람들이 많음.
나머지는 여기 직원들이 먹나보다.
버리는거 줄이게 정량배식 한다고 배부르게는 못먹는다.
고아원에 처음들어갔을때가 할배가 오후 3시쯤에 고모들 숙식하는 곳에 찾아와서 세수하고 나를 봉고차에 태워서 타고 저녁에 도착.
고모들은 공장에 일하러.
고모가 먼지도 몰랐고 퍽하면 팼다.
장발이 주로 패고 단발은 주로 말리고.
장발이 첫째고모, 단발이 둘째고모.
패다가 울기도 했다.
교회 봉고차였고 운전자겸 고아원 주선자가 교회 목사였을 것이다, 교회 세운 사람.
쫄쫄 굶으면서 기다렸다가 밤 9시에 입성.
다들 누웠는데 잘 대해줘서 배개 가지고 신나게 놀다가 짜증내서 곱게 누움.
아침에 깨워서 일어나니까 다들 둘러싸서 보고 있음.
큰언니(큰할머니)랑 큰누나(ㅎㅅ이 누나)가 계속 팼다.
울어도 못도망가게 손으로 잡고 죽어라 패던데 악의가 느껴졌었다.
그리고 굶겼다.
여기 오기전에도 밥을 먹어본 기억이 많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다.
흙도 먹어봤고 나뭇잎이나 풀도 뜯어 먹었고.
남들 먹는데 굶으니까 군침이 돌았는데 그게 먼지도 몰랐다.
배고픈게 먼지 몰랐다, 항상 배고파서.
배부른것도 몰랐고.
밥먹으면 배부른건줄 알았다.
이사가고 배부름을 알았다.
밥은 초등학생 몇학년 까지만 줬다가 중학생까지 주는걸로 바뀌었을거다.
고딩들이 있었나 모르겠는데(고등학교 안보내줬었을걸? 다니는 사람도 있기는 했던듯) 나이 차면 알아서 밥해먹었어야 하고 그래서 상납을 받았을 것이다.
쓰레기 매립장 가서 음식물을 찾거나 팔수있는걸 찾았다.
산에서 들에서 나물캐고 반찬했었다.
ㅇㅇㅍ원장 오기전에는 총무가 식자재를 빼돌려서 집에 가져가고 팔아 먹는다는 소리도 있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었나?
흔하지는 않았을거다.
장독대를 묻어서 김치를 보관했는데 겨울에는 장독대가 깨진다고 건물 안에 뒀나 모르겠다.
얼은 땅을 파다가 장독대도 깰판.
김치에 흙이 섞여 있기도 했고 삭은게 아니라 썩은 느낌이라 안먹는 사람이 많아서 재활용을 많이 했다.
벌칙게임 느낌의 김치?
메주를 만들고 간장, 된장, 고추장을 직접 만들었을거다.
원생 누나의 엄마가 갈곳이 없다고 주방 일 도우면서 숙식.
사실은 할매자리 뺏으려 한거.
무급인거 알고 안되니까 식당 찬모자리 찾아서 떠난듯.
쌀이 모자라다고 어린것들 먹이자니까 누나형들이 먹으면 뒤진다고 협박해서 같이 굶다가 형누나들도 먹으러 오라해서 그때서야 먹었다.
쌀 따라서 하루 한끼>두끼>세끼로 바뀌었을거다.
할매가 도둑고양이가 먹을걸 훔친다고 싫어하다가
쥐를 잡으니까 이뻐했다.
맨날 도망가기 바빴던 검은 고양이가 할매가 태도를 바꾸니까 몸을 허락하더라.
새끼들 낳고 사라짐.
동네 개들에게 죽은건지, 광견병 걸려서 입에 거품 물고 덤비는 개들이 있었다.
학교가면 굶었을걸?
나중은 몰라도.
딴애들은 도시락을 챙겨줘도 나는 안주더라.
알고봤더니 어머니가 찾으러 온다 구라쳐서 금방 다시올줄 알고 있어서 그랬던거.
후원자도 지원금도 없는 애였으니까.
병원도 딴사람 건강보험증을 들고 갔었다.
그러다가 애 학교는 보내야 안되냐 해서 길에서 주워온걸로 서류 꾸며서 호적 등록 하고 학교.
한글을 몰라서 1학년으로 보냈다.
한글만 알았으면 3학년쯤 보내려고 했는데
한글도 몰랐고 형들도 누나들도 반대했다.
나이가 벼슬인 곳이었으니까.
돈 없어서 못찾아가나 싶었음.
총무가 니가 커서 나가면 돈 벌어서 돈 줘야 한다는 식의 말도 그때 했었으니까.
원생이 줄어들어서 애들 하나하나가 돈이니까 지원금 줄어들까봐서 그랬을수도 있겠다.
몇십명 이하면 지원 안되었을테니까.
애들 납치해서 앵벌이로 부려 먹고 고아원 등록해서 지원금과 후원금 받던 단체도 동네 애를 납치하고 안돌려줘서 경찰에 신고(인맥 통해서, 기존에 안잡혀 간건 상납받고 뒤 봐주던 인간이 있었다는 말) 해서 잡아가고 애들은 각 고아원에 흩어져서 입소.
고아의 정의가 엄빠 없는 애들인데 엄빠 있는 고아들이 꽤 있었다.
왠 아줌마는 자기 집에 고아들 받고 후원금 받다가 신고 당했는데 고아원에 와서 보증인 같은거 서달라 했었을 것이다.
3인인가 3곳의 인증된 단체인가에서 보증해주면 정식으로 운영된다 했던가?
거기 애들도 흩어지기 싫어하던데 뒷조사 들어가고 비리 관련되어서 구속 이야기가 나오니까 손 털어서 거기 있던 애들도 각 고아원에 흩어져 입소 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교회에서 운영하는 중학생과정 야간학교 졸업하고 거기서 눈맞은 아버지가 결혼을 약속했다가 애 생기니까 내애인지 어떻게 아냐, 부정한 여자라고 팽.
여차저차해서 고아원에서 지냈고 야간학교 은사님이 치매에 걸려 왔는데 이름도 못외워서 철수 찾으러 왔다치면 애들이 수박 찾으러 왔냐고 하면 그래, 수박 그랬다.
아무튼 고아원에서도 못대려가게 했고 누나들도 따라가면 죽인다고 은근히 협박을 했다, 사주 받은건지.
길이 들대로 들었고 거기가 내 세계관의 전부였고 띨빵해서 그냥 겁먹고 시키는대로 안갔다.
돈 내고 대려가라 했었을걸?
다른 고아원에서도 그러다가 뉴스타고 감사나오고 하면서 사라진듯.
어머니가 어머니 같지 않았고 나를 싫어했고 또 어디 던져 놓고 사라질지 믿음도 안갔다.
직접 찾아오지 않고 은사라는 사람을 보낸것도 그렇고.
진짜 은사인지 어떻게 아나, 고아들도 납치하던 시대인데.
고아원에도 도둑이 들고 재능기부한다고 그림판 들고 구설하다가 돈내라 하던 인간들도 있었다, 사기꾼들도.
봉사동아리에서 사기꾼이 많았지.
퍽하면 돈 먹튀하고 봉사 동아리 잘 깨졌음.
어머니는 전라도 사람이라는데 고향을 모름.
부산남자랑 결혼했을건데 그 남자가 재혼인지 초혼인지 모르겠다, 목사.
아버지랑은 결혼 안하고 혼외자로 낳은게 나.
러시아 가서 애들 낳고 키웠다.
여기 부부의 여자가 내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
러시아에서 선교하다가 죽겠다는 포부가 있던데
한국에 거의 안들어 오더라.
내가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건지 인터넷 뒤져서 나올만한것도 다 삭제.
사진이나 글 같은거.
선교일지 같은 책 발간한거 사서 보관중.
확실한 증거는 없다, 추정할 뿐.
그래서 아닐수도 있다.
길잃은 미아를 고아원에 보낸걸로 등록하고 국가 지원금 받고 후원자가 붙었다.
편지 써야 하는게 고역이었다, 진짜 싫었다.
고마운줄 알라는데 해택을 받고 느꼈어야 고마운걸 알지 유대감도 없고 답장도 없고 복사하듯이 배껴쓰는 편지에 무슨 의미를 부여?
소풍때도 빈손.
김밥한줄을 신무지에 말아주는 애들과 차별.
먹는걸로 차별하면 서럽다.
쌤한테 이쁨 받고 싶고 불우이웃 돕는다는 식으로 자기들 밥먹는 곳에 오라는 애들도 있었는데
평소 태도도 있고 가정집 애들은 적이라고 세뇌 되었고
자존심에 굶었다.
어느날은 방전되어서 죽을것 같아서 식당에 숨어 들어서 의자에 누워서 밥시간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찬밥을 훔쳐 먹으러 온 누나들이 나를보고 깨워서 같이 먹었다.
밥 먹었으면서 거짓말 치는거 아니냐고 계속 의심.
맞더라도 먹고보자 싶어서 밥 못먹었다하고 몇술 얻어먹고 나중에 맞았다.
먹이고 패니까 고맙더라.
식은밥은 정량배식하고 남는거, 밥 퍼는거 실패하면 밥이 모자람, 남은밥은 다음 밥시간에 줌.
가마솥에 밥 했었음, 이사 전까지.
누릉지라도 얻어 먹으면 다행.
누릉지는 할매가 가져감.
가끔 맛보게 해줌.
누가 꼬불쳤다가 까먹고 발견한 2년지난 누릉지를 먹는 사람도 있었음, ㅇㅇ형, 나도 먹고 싶었음.
개미가 잔뜩 붙었던데.
늘상 머리가 어지롭고 팽 했는데 그게 영양실조 같은건지도 몰랐다.
쓰러지거나 눈이 노래져야 그런줄 알았는데 안쓰러지고 버텼으니까.
약한 모습은 ㄴㄴ
밟힌다.
1년에 한번 고기기름이 뜬 멀건 국을 줬었는데
이사가고 모든게 바뀌었다.
이사장 집이 있어서 식재료 빼돌리고 장난질 치는걸 못해서 그런건지 모든 연령에게 다 밥을 제공.
밥도 풍성해졌는데 밥남기는 애들이 많더라.
예전이면 뒤지게 맞는건데 희한.
밥한톨 안남기는건 나밖에 안남았다.
간식은 과자를 줬는데 나중에는 1주일에 한번씩 줬던가?
선생들이 여자뿐이라 그런지 여자들만 챙겼다.
남자애들이 10명이면 과자를 7개만준다던지 했고 여자들은 보지도 않고 막 퍼주던데 10명이면 18봉지를 주는식이었다.
남자방에는 유통기한 지난 라면이나 구더기가 나오는 기한 지난 것들을 줬다.
남자선생들어오면 머슴노릇하다가나갔다.
이사장이 여기저기 나다니고 별 간섭도 안하니까 대놓고 푼돈들을 착복.
여자들은 후원자들이 찾아와서 용돈이라고 돈도 주고 먹을것도 많이 사줘서 먹을게 항상 풍족했다.
남자방에는 후원자x
보고 놀랬다, 없어서 못먹는걸 먹기 싫다고 투정하는걸 보고.
예를 들면 치킨.
누가 안시켜주면 구경도 못할걸 지들 돈으로 사 먹고 그것도 지겹다 함.
밥하는 할매가 은퇴하고 아들하나, 딸하나 있는 아지매가 들어왔는데 힘들어 하더라.
이걸 혼자 어떻게 다 했냐고.
이 아지매는 돈 받고 일함.
먹는 입이 줄었을때 왔음.
고아원 나와서 10여년뒤에 찾아가서 수박 10통 정도 사고 밥 얻어 먹는데 애들이 없더라.
아지매가 애들이 돈도 많고 먹을게 풍족하니까 밥을 안먹어서 항상 밥을 버린단다.
후원금이 어디 쓰이는지도 모르고 채감하는것도 없었는데 시대가 바뀐듯.
그래도 불신감이 깊어서 돈으로는 안함.
ㄱㅎ누나, ㄱㅎ쌤이 여기 보육원에 쌀 산거보면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곳은 외면한다고 머라할걸?
여긴 그냥 계산기 두둘겨서 쌀 산거다.
항상 밥 모자란듯이 말하길래 쌀 샀고
2일 더 먹는다 치면 8일 먹었다 치고 6천원이라 치면 대략 쌀값이 나온다.
밥값 낸거다.
밥값으로 환산하면 한끼당 8천원 조금 넘게 쓴듯.
후원금은 못믿어서 못내겠다.
ㄷㅅ이형이 할머니 밑에서 컸는데 소년가장 그런거였나?
홍보모델중에 하나여서 지원 빵빵하게 받아서 좋은거 먹고 비싼 메이커 옷 입고 신발도 좋은거 신고 다녔다.
철없었지, 할매가 돈관리 살뜰하게 해서 성인이 되고 줬을 것이다.
그 ㄷㅅ이형에게 듣기로는 후원금이 2만원이라 하면 여기저기 거치면서 자기한테 오는게 몇백원에서 몇천원이라 하더라.
아, 자립금도 고아원에서 꿀꺽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립금 존재 자체를 모르다가 세월이 흘러 알게 되었다.
ㅅㅎ이 형이 자립할적에 자립금 절반을 고아원에 내면 신청해 주겠다했고 절반은 고아원에서 먹고 절반은 챙겨갔다.
나는 선생과 싸우고 나갔는데(그 선생 때문에 가출하는 애들도 있어서 선생이 쫒겨남) 좋게 풀고 돈받아 나왔다.
이사장 며느리가 원장으로 막 취임한 시기였는지 장난질 안치더라.
고아원에서 자립금도 운영자금으로 쓰는게 아니라 누가 먹어도 먹었다.
ㅅㅈㅎ이 어머니 친구가 부자집 딸에 학부모 리더였고 장학회 이사장이었나 그런데 우연히 ㅈㅎ이를 보고 반가워하다가 부모님 소식 모르고 고아원에 있다니까 애가 똘똘하고 공부 잘한다고 장학금을 줬다.
그거주고 연락 끊었나?
모른다,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걸 고아원에서 꿀꺽.
성인이 되면 준대놓고 그런적 없다, 돈 받은적 없다 오리발.
어디서 장학금 준다하고 경시대회 같은 곳에서 1등해서 받은 상금 같은것도 꿀꺽.
대신에 고아원에서 성인이 되고도 안쫒겨나고 오래 있었다.
지 학교 후배가 선생으로 왔는데 애취급해서 열받아 하던데 나가야 될 놈이 버티고 있었으니.
20대 중반인가 후반까지인가 있었을거다.
ㅎ자돌림인지 ㅇ자 졸림인지 막내만 돌림자 안쓰는건지 아직도 햇갈린다.
원생들끼리 연애 금지.
초딩들을 휘어잡고 몇살은 더 많은, 비실거리던 나도 이겨먹던 애가 같은 초딩 원생이랑 연애.
소문 다남.
으슥한 곳에 가서 ㅅㅅ하는거나 키스하는것도 소문 다 남.
임신하면 어떻게 할거냐고 뒤지게 맞고 계속 감시해서 끝났을거다.
ㄱㄷㅅ인가? 그놈이 계속 질척댔음.
고아원 도망쳐도 경찰에 잡혀서 인계되거나 목격자 정보 토대로 잡으러 다님.
여자애 이름은 생각이 안나는데(ㅇㅇㅁ인가?) 감수성이 뛰어나고 예술적 기질이 있었는데 성인이 되고 화장하고 꾸민거보고 몰라보겠더라, 연애인급.
화장이 사기.
성인이 되고 바로 연애하고 바로 임신해서 결혼.
다른 고아원은 여기에 비해 프리한듯.
고아원끼리 모일 일이 있으면 남자여자끼리 질척대고 꽁냥거리는거 많이 봄.
큰형들끼리 정보 공유하는거 들으면 연애는 금지지만 생까고 다들 만난다고 들은듯.
내가 있던곳이 기형적이었다.
형들도 적대시하던 가정집 애들, 친구들이 생기고 태도가 바뀌었다.
세뇌된 나만 바보됨.
애들이 따시키고 거지라 놀리고 엄빠없다고 놀리고 기타 등등, 그런 태도가 벽을 만들었을 것이다.
어느 놈은 옷을 버릴때 일부러 이니셜을 남기고 버렸는데 그 옷을 내가 학교에 입고 왔다고 소문 다 냈다.
버린 옷을 고아원에 보낸다는 소리를 어디서 듣고 실험 했다나?
옷수거한거 트럭에 실어서 고아원에 쫙 펼쳐서 입을거 골라가라 했었으니까.
그땐 옷 한번 입으면 최소 1주일은 입었고 세탁기 생기기 전까지는 손빨래를 했었다.
사람은 보상이 있어야 한다.
길거리에서 주운 10원짜리를 들고 은행가서 입금하고 몇년을 모았는데 돈이 없음.
선생이 빼가도 모르지, 통장 비번도 다 똑같았고.
그렇게 한번 무너지고 또 모았더니 날 왕따시키던 놈이 털어먹고 나중에 갚아 줄테니까 떠들고 다니지 말고 조용해라 함.
결국 못받음.
그 후로 돈을 못모으겠음.
몰래 신문배달하던 사람들도 돈을 다 뺏김, 형들에게.
그러니 멀 할수가 있나.
싸움 시키고 이기면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보상 없음.
싸움 진 사람이 죽도록 맞는데 덜패던거?
싸워도 싸워도 계속 싸움 시키니까 그냥 손놓고 맞았다.
똑같은 놈 되기도 싫었고.
끝이 안보였다.
그냥 죽고 싶었다.
놀이터에서 목이 걸렸을때 죽었어야 하는데 어떻게 빠져나온적이 있었네, 기구에 목이 걸렸었는데.
대충 여기까지 적자.
복사하든 안하든.
대충 끝.
같은 경험을 한 원생이면 내가 누군지 알듯.
누워서 할짓이 없다보니, 쓰다보니 길어졌다.
누구는 몇년살고 누구는 어리시절을 거기서 다 보내고 다 각기 다른 삶, 시간대를 기억할듯.
첫댓글 3줄요약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일기
끝
@며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