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과 교육
송진웅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3無3有의 나라
국제경쟁력으로 보자면, 우리나라는 ‘3무3유(3無3有)’의 국가다. ‘3無’의 첫 번째는 천연자원이다. 우리나라에는 석유, 천연가스, 광물, 목재와 같은 풍부한 천연자원의 축복이 없다. 두 번째는 관광자원이다. 유럽 같은 화려한 역사 유적지나 엄청난 규모의 자연풍광이 딱히 없는 게 현실이다. ‘3無’의 마지막은 ‘영어 어드밴티지’가 없다. 미국, 영국, 호주, 홍콩, 싱가포르처럼 영어를 모국어 또는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와 같은 언어적 장점이 우리나라엔 없다.
그럼, 우리에게 있는 ‘3有’는 무엇일까? 첫 번째, 전쟁과 분단으로 얼룩진 근현대사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한반도는 러일전쟁, 청일전쟁, 일제강점의 마당이 되어 크나큰 고통을 받은 바 있다. 해방 이후에는 6·25전쟁이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3有’의 두 번째는 불편한 이웃이다. 4대 열강(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은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패권 경쟁을 줄기차게 이어왔으며,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운명이다. 세 번째는 바로 사람(인구)이다.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인구밀도는 세계 3위이며, 그동안의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국민의 열정과 교육열로 극복해 왔다. ‘3無3有’의 환경 중에서 우리가 믿을 것은 오직 하나, ‘사람’이었다.
인구의 배신, 학교소멸
3無3有 중 유일하게 ‘기댈 언덕’이었던 ‘사람’이 이제 우리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되었다. 필자는 학창 시절 서울 화양동에서 성장했는데, 인근에 2곳의 대학이 있고 지하철 2호선도 지나는 곳이었다.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1983년 그곳에 모 초등학교가 개교했다. 그리고 개교 40주년인 2023년 올해 이 학교는 돌연 문을 닫았다. 서울 한복판의 주택가에서 벌어진 폐교 소식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뿐만 아니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라 2023년 서울시에서 고등학교 3개교가 추가로 폐교될 예정에 있다.
지방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올해 신입생이 ‘0명’인 초등학교가 전라남도의 경우 471개교 중 33곳, 강원도의 경우 368개교 중 17곳으로 나타났다. 강원도에서 재적 60명 이하의 ‘작은 학교’는 349개 초등학교 중 47.0%, 161개 중학교 중 41.6%이라고 한다(2022년 4월 기준). 이러한 사정은 대부분의 비수도권·비광역시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국적 현상이다. 바야흐로 지역의 인구감소로 학교소멸이 유발되고, 이는 다시 지역소멸을 가속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본격화된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학 진학 대상자인 18세 학령 인구는 2020년 52만 명에서 2030년 39만 명, 2040년 26만 명으로 급감할 예정이다. 2000년 이후 폐교된 전국 대학은 20개이고, 이 중 1개를 제외하고 모두 지방대학이다. 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42~2046년 국내 대학 385개 중 절반(49.4%)만 살아남고 나머지 195개는 사라진다고 한다. 최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2050년 전국의 20여 개 대학만이 이공계 대학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초·중·고·대학교를 불문하고 모든 연령층의 학생들이 급감하고 폐교는 다반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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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수 감소와 도시로의 인구 전출로 폐교가 늘어나자, 충청북도교육청은 폐교 자료 및 기록들을 디지털화한 '폐교 약사자료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 게티이미지뱅크 |
문제를 찾고 협업하는 교육
어느덧 ‘G7 Plus 국가’로 인정받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선진국으로 남는 일이다. 사람이 유일한 자원인 우리나라가 인구절벽, 학교소멸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결국 이 땅에 태어난 모든 미래 세대를 ‘세계 최고’의 인재로 길러낼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와 지속적으로 비교되는 국가는 핀란드,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이다. 이들 국가 중에서 인구 문제가 우리만큼 절박한 나라는 없다. 모든 수준의 학생들이 저마다의 소질, 적성, 포부에 따라 최대한의 창의성과 미래역량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AI와 챗GPT가 가져올 미래를 생각하면, 그 필요성은 더욱 시급하고 절박하다.
창의성과 미래 역량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수능시험의 방식이다.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제2외국어의 모든 과목의 평가가 오지선다형 상대평가로, 단 하루 만에 진행된다. 각 문제에는 절대로 틀릴 수 없는 정답 하나와 절대로 맞을 수 없는 오답 4개가 제시되며, 평균 2분의 풀이 시간만 주어진다. 대학 공부나 이후의 직장생활에서 평생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가 단 한 번이라도 존재할까?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비교육적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빨리 가는 것’보다 ‘멀리 가는 것’이다. 개인의 성장 측면에서도, 사회의 경쟁면 측면에서도 그렇다. 특히 AI가 가져다준 새로운 세상을 보자. 이제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거나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찾고 정의하는(finding & defining problems) 능력이 더 필요하다.
학교의 내신 평가는 어떠한가? 학생들은 수시 전형을 위해 고교 3년을 전쟁처럼 보낸다. 특히 내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1학년 때 낮은 등급을 받게 되면, 좌절의 시간만 남아 있게 된다. 2~3학년 내내 학교 수업은 포기한 채 수능 준비에만 집중하거나 아예 자퇴하기도 한다. 내신 평가는 상대평가이기에 우리 반, 우리 학교의 친구들이 경쟁자가 된다. 내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친구들보다 얼마나 높은 등급을 받느냐만 중요하다. 상대적 패배감은 불가피하고 친구들과의 협업은 요원하게 된다. 학생들이 행복할 수 없다. 인터넷으로 촉발된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서 동료와의 협업과 글로벌 경쟁은 필연적인데, 외톨이로 친구들과 경쟁하는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작은 학교’는 또 다른 기회
보통 ‘작은 학교’는 6학급 이하 초등학교, 3학급 이하 중학교, 또는 60명 재학생 이하의 학교를 말한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인구절벽과 학교 소멸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유지되어 온 ‘1면 1교 원칙(1개의 읍면 단위에 최소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을 최대한 지키려 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인구급감으로 이를 지키기 어려운 지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웃하는 초등학교, 중학교끼리 통합하고 통학버스를 제공해 등교를 돕기도 한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엄격하게 구분해 온 교육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병설 유치원을 초등학교에 세워 유-초 통합학교를 실시하고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역의 초-중, 중-고 통합학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학습 피라미드 이론에서 볼 수 있듯이, 가르치기 위해 배우는 활동(learning to teach others)이 가장 효과적인 공부법이다. 통합학교가 만들어지면, 상급반 학생들이 하급반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볼 기회가 훨씬 많아질 것이다. 학생들의 학교 및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학습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초연결사회에서 작은 학급, 작은 학교의 규모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인터넷으로 세계의 모든 학교와 학생들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고 창의적으로 학습하기 위한 학교문화와 시설 기반이 마련되면 된다. 교사만 발언하고 학생들은 듣는 데 집중하는 교실 침묵(classroom silence)의 전통적인 학교 모습도 작은 학급에서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 기반 수업, 문제해결 수업, 융합 수업 등 학생들의 주도적인 역할이 훨씬 더 많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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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로 운영되는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동초등학교 © 게티이미지뱅크 |
교육혁신의 방향
2022년 새로운 국가교육 과정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가 2025년부터 도입될 예정이다. 서·논술형 평가와 절대평가가 학교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적용될 것이고, 창의적 학습과 역량 중심 교육에 긍정적 기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가 더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혁신은 ‘수능시험의 서·논술형 도입과 절대평가화’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결국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은 보다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학습경험을 지닌 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도록 체제를 유연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여러 지역교육청에서 주목하는 국제바칼로레아(IB)와 같은 새로운 교육방식에 대해서도 문호를 넓히자. 또 세계 각국의 유능한 유학생들이 우리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해 대학 교육 혁신의 계기로 삼자. 이러한 바탕 위에서, 교육부가 2025년 도입 예정인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및 글로컬대학30 사업이 신입생 감소로 위축된 지역 대학은 물론 전체 대학교육의 질적인 도약을 이끄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