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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해외 답사후기 스크랩 일본 두서없는 일본 여행기 ^^
설악산 추천 0 조회 125 07.11.27 12: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삶이란 무엇인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여러 형태가 있을 것이다.

질병으로 인해 돌아가시는 분은 고통 없이 살다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보편적이지 않지만 선진외국에서는 호스피스 제도가 보편화되어 고통받는 환자가 기계에 의해 불필요한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면서

고통없이 지내다 이 세상을 행복하게 마감할 수 있다.

일본이 이 호스피스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 견학하기 위해 일본을 갔다.

3개의 기관을 방문하였는데 모두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빨리 이 제도를 정립하여 죽음을 맞이한 환자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동경은 서울의 3배 크기라고 한다.

전에 다녀온 분은 안 그렇다는데 우리 눈에 비친 동경은 색깔이 너무 어둡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본 것은 일부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 지도 모르겠다.

거의 3일 내내 차를 타고 다녔다.

동경은 강과 운하가 발달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동차 도로는 폭이 서울보다 좋은 것 같았고 대신 지하철, 전철이 아주 발달된 것같았으며 모두 14개 노선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의 숙소는 품천(시나가와)이었는데 한자로 품천이고 일본말로는 시나가와인데 일본말은 들어도 기억이 잘 안된다.

길가의 대부분의 표시판이 한자로 되어있어 한자로 읽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한마디로 일본의 식사는 먹을 만 했다.

우리하고 식생활이 비슷하니까 어려움이 없었다.

아침은 일식인데 밥을 죽으로 먹었다.

옷 차림은 우리나라나 비슷해서 옷 입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와 구별이 안되는 것같았다.

초등학생들은 우리 1960년대 메고 다니는 각진 가죽가방을 메고 다니고 있었으며 여중학생은 스커트에 흰양말을 장단지에 걸치듯이 신고 다녔다.

차는 우리보다 약간 소형인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도요다, 혼다,닛산 등의 차가 굴러다녔으면 간혹 외제차도 굴러 다녔는데 우리나라 차는 발견할 수 없었다.

아파트는 이상하게 눈에 잘 띠지 않았다 변두리에 있다고 하는데 간혹 보이는 아파트가 복도식이 보이고 에어콘 실외기가 베란다 위 벽에 걸린 곳도 있었다.

철로가 강을 지나가는 곳은 대부분 트러스트 교가 많았다.

도시 순환도로 옆은 벽을 쌓았는데 가끔은 곡선으로 벽이 된 곳도 있었다.

버스는 모양이 거의 같은 녹색으로 보였고 택시는 회사 이름이 우리나라 택시라고 위에 있는 곳에 붙은 것 같았다.

차의 넘버는 소형차는 노란 바탕이고 나머지는 주로 흰색으로 보였으며 위에 지역명과 번호를 아래에는 일본말에 번호 2개와 대시(-)를 하고 번호 2개를 적는 형태였다.

지역명을 붙이는 것은 우리나라 과거의 방식이다.

그런데 지역명은 동경에서는 7개를 붙인다고 한다.

동경은 역사적 영향을 많은 받은 것같았다.

운하와 매립은 네덜란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고 자동차 핸들과 자동차가 좌측통행하는 것은 영국의 영향을 받은 듯했다.

일본 사람들은 비만이 많지 않았다. 소식을 하는 덕분이란 이야기도 있었는데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담배는 엄첨 피우는 것같았다.

암으로 30만명이 죽는다고 하니 우리 6만5천명보다는 인구 비율로 보더라도 높은 편이며 3명중 1명이 암으로 죽는다고 한다.

이 모두가 담배를 많이 피우는 때문인 것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역주변 광장 한 귀퉁이에는 재떨이 여러개와 구역을 설정한 철재형 구부러진 기둥을 경계로한 흡연지역을 운영하고 있는 점이다.

일본 사람들은 결혼은 주로 신사에서 하고 메이지 신궁같은 곳은 비용이 일반 신사에 비해 10배인 100만엔이라고 하는 것같았는데 그래도 몇 달이 밀린다고 하였다.

죽으면 화장해서 절의 납골당에 모시고 49제도 지낸다고 하였다.

일본은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도 쉬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신 천황의 생일인 12월 23일은 쉰다고 하였다.

일본의 물가는 우리의 대략 3내지 4배 정도로 보면 된다고 하였다.

일본 글에 한자가 많지만 문명율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

일본은 호텔에서 자고 일어나도 우리나라처럼 침대에 팁을 놓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장애인 편의시설인 점자블럭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했고 화장실 소변기에도 장애인이 기대어 소변을 볼 수 있는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일본은 영국의 영향으로 런던 브릿지 같은 것이 있었으며 런던아이 같은 대형 회전 놀이차가 있었다.

일본은 나름대로 전통을 살릴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같았다.

음식점 종업원은 기모노를 많이 입고 있었으며 종업원이 거의 할머니 같은 분도 있었는데 아마도 그 식당은 아주 전통있는 식당 같았다.

일본의 생활용품 백화점을 갔었는데 가방 등 각종 용품을 살 수가 없었다.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싼 것같았기 때문이다.

식료품 가계에 들렸는데 가지가 둥그런 것이 있고 마늘은 얇게 썰어서 말린 것 같은 것을 포장해서 팔기도 했으며 토마도는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동그란 것같았다.

배는 우리나라 돌배 같았는데 맛은 아주 좋다고 하였다.

혼다쉬, 미소 된장, 카레가 살만하다고 해서 기념으로 사왔다.

그리고 선물은 영양크림, 썬크림, 손톱깍기, 귀휘비게, 핸드폰 고리 1개, 쌀 줄 귀거리 1개 샀다.

나머지도 사라고 면세점 종업원이 호객행위를 했으나 사지 않았다.

주유소 기름값은 전광판 형태로 되어있어 눈에 아주 잘 띠었다.

전철 입구 근처에는 전철의 노선도가 표시되어 이용에 아주 편의성을 주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철은 거의 대부분 자판기를 이용하는 것같았으며 1인분, 2인분, 3인분 표시가 있었고 자판기 위에는 노선별로 역마다 가격이 붙어 있었다.

JR전철을 탔었는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깨끗하고 환하게 보였다.

우리나라처럼 광고가 많았는데 전철 위에 광고TV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호텔이 있던 품천 지역은 돌출 간판이 보이지 않았는데 신주꾸에는 밤에 보니까 돌출 간판이 아주 많았다.

일본의 약국은 약외도 잡화를 파는 것같았으며 이상하게 치과는 많이 보였는데 의원은 잘 보이지 않았다.

미용외과라는 간판을 하나 보았는데 성형외과와 병행해 쓴다고 하였다.

품천에는 보행자 신호등에 빨간불에 빨간 막대가 내려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보통 파란불에 파란 막대가 내려오는데 신기했다.

동경시청 청사는 45층인데 무료였다.

엘리베이터가 아주 성능이 좋은 것같아서 살펴보니 미쓰비시 것이었다.

동경청사 전망대에도 빠리의 에펠탑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번호대로 건물 이름을 알려 주고 있었으며 거기에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동경만 매립지에 파레트타운을 갔었는데 그곳은 쇼핑몰이었다.

젊은 사람이 구경을 많이 왔었고 비너스 분수대가 있었으며 그곳은 비너스 포트라고 하였다.

물건의 디스플레이가 돋보이는 곳이었으며 옛날 차 전시, 기념품 판매 등 각종 물건을 화려한 장식으로 팔고 있었다.

맞은 편에는 도요다 자동차 상설 전시를 하고 있었다.

에도도쿄박물관에 갔었는데 에도시대의 모든 생활과 개화기, 관동대지진 등의 내용이 전시되어 있었다.

에도시대에는 장군이 집이 서민 전체의 지역 면적과 맞먹는 것을 보고 그 당시 무식한 무사들이 얼마나 서민을 착취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 해설가는 무사와 서민이 사이좋게 살았다고 하나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거기 입장료는 600엔인데 도쿄청사에서 안내판 책을 얻으니 거기에 120엔 할인권이 있어서 1인당 480엔을 주었다.

그런데 주차비가 2,000엔이었다.

구경비보다 주차비가 더 비쌓다.

동경의 나무는 은행나무라고 하였다. 그래서 도심의 가로수는 은행나무라고 하였으나 변두리는 이름모를 활엽수가 많았다.

가끔 순환도로 가운데는 화단과 함께 네모나 철망판이 세워져 있었다.

일본에는 시내에도 까마귀가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언젠가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길조라고 하는 말은 들었는데 안내하시는 분 이야기는 일본도 까마귀는 흉조고 우리처럼 까치가 길조라고 한다.

동경도는 도웁도자를 쓰는데 시내에 23개 구가 있고 외곽에 27개의 시정촌이 있다고 하는 것같았다.

일본지하철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어로 subway 였다. 영국은 undergraund 인데 이것은 미국식인가 보다.

동경에서 눈에 띠는 외국기업은 스타벅스, 맥도날드, 아웃백, 베스킨라빈스, 패밀리마트 등이었다.롯데리아도 보였는데 그것은 우리것인지 일본것인지 모르겟다.

길가다 시각장애인용 벨을 발견했는데 모양의 형상이 시각장애인이 맹인용휜지팡이를 집고 있는 모습이었다.

경찰 닭장차를 길가다 보았는데 우리나라 것과 아주 비슷했고 주정차위반에 대하여는 우리처럼 제복을 입은 여성분들이 단속을 하고 오토바이는 차에다 실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전철에는 우선석이라는 것을 운영하면서 아이데리고 있는 엄마, 임산부, 지팡이든 노인, 장애인 형상을 표시하고 있었다.

가끔 주유소 표시에 네덜란드 정유회사인 조개모양의 쉘의 표시가 있었는데 이 쉘이 진출한 것같다.

동경에서도 까르푸가 버티기 어려워 철수 할려다가 1개가 남아있다고 하였고 월마트같은 것은 까르푸가 고전하는 것을 보고 안 들어왔다고 한다.

우리와 같은 이마트등 대형마트는 구경하기 어려웠고 PC마트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형전문점이 있는 것같다.

지나가다 우리나라 노량진수산시장같은 수산시장을 보기도 했다.

우리가 일본을 떠나기전에 이용한 전문식품점은 아래층은 전문식품점이고 위는 뷔페식 식당이었다.

나리타를 떠나기전에 그곳에서 식사를 하니 식사하고 떠나는 것이 교통상 아주 편리하였다.

나리타는 한자로 成田이었다. 파자풀이를 해보니 어차피 나리타는 공항이 될 운명이었다. 공항은 활주로와 건물 때문에 밭전 모양을 하게 되고 이룰성이니 활주로가 있는 공항이 될 운명이었다.

우리가 신주꾸에서 시나가와까지는 전철요금이 190엔이었다.

교통요금은 우리와 비교할 때 비싼편이나 물가를 실질적으로 3내지 4배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동경에는 LA처럼 코리아타운이 있어서 지나가다 간판을 보니 한글 간판이 보이는 것이었다.

떠나기 전날인 9월 5일 저녁은 나폴레옹이란 우리나라 음식점에서 김치찌개와 함께 먹었는데 아주 좋았다.

우리 안내선생님이 흥정을 해서 식사비에 추가로 1인당 3천엔을 주고 거기서 우리가 가져간 소주도 마시고 거기서 준 맥주도 마시며 노래방 기계가 있어서 노래까지 했으니 1석3조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곳에서 저녁에 술까지 마시니 마음이 편했다.

거기가 신주꾸니까 거기서 품천 시나가와까지 20분이 걸려서 호텔로 왔는데 오면서 일본의 지하도와 전철의 풍경을 구경하였다.

너무 늦으면 안되니까 10시에 노래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다.

일본의 강은 이상하게 물이 어둡게 보였다.

그래서 수질이 우리보다 안좋은 것같다고 했더니 그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떠나기 전에 공항에서 면세점을 구경했는데 가이드 선생님 말처럼 물건값이 시내의 면세점보다 약간 비싼 것같았다.

떠나기 전에 직원이 보온물풍을 산 것을 보고 나도 살려고 갔더니 파는 물건은 다 떨어지고 전시품만 있어서 그 전시품을 1,950엔에 샀는데 시간이 없어서 전시품을 깍을 수가 없었다.

집에 사오니 마눌님이 반신반의 하더니 며칠 지나니 보온이 아주 잘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유명한 코끼리 보온통인데 외형이 풀라스틱이라 가벼워서 산에 가지고 다니기가 적격이었다.

일본에는 살 것이 거의 없었는데 그게 제일 잘 산 것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면세점에서 종업원이 세라믹칼을 사라고 했는데 우리가 독일에서 쌍둥이 칼을 샀다고 하니 그것보다 좋다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에서는 쌍둥이칼이, 일본에서는 세라믹칼이 누구말이 맞는 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하면서 웃었다.

참 우리 딸 생각이 나서 향수1개를 3,180엔에 귀걸이 4,200엔에 샀는데 향수는 우리 마눌님이 압수하고 귀걸이만 주었는데 아주 좋아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행했던 제품이라면서 나중에 A/S를 위해 영수증을 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주 짝퉁을 잘 만드니까 영수증 없으면 A/S를 안해준다는 것이다.

일본의 양변기들은 우리나라 양변기와 달리 대개다 비데가 있었다.

일본의 차도와 인도 사이에는 거의 대부분 사람을 보호하는 난간이 있어.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에도 초등학생들이 타는 버스는 노란차였다.

오토바이는 고속도로를 주행해도 된다고 하고 헬멧은 우리나라 모자처럼 창이 있었다.

일본 여성들은 양산으로 대개 검은색과 휜색을 쓰고 다녔고 우리처럼 화려한 양산은 발견할 수가 없었으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지나가다 보니 절 같은 것이 있어서 물어보니 시내에 절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시내에 절이 많았다고 한다. 그 후 조선시대에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시내에 있는 절이 없어진 것이다. 신자들을 위해서는 원래 절이 시내에서 신자 가까이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일본에는 천태종이 융성한다고 하였다. 대각국사 의천스님이 창건한 천태종이 일본에 많은 영향을 끼쳤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서 호텔에서 팁은 없었으나 가이드와 운전기사에게는 팁을 주었다.

운전기사 분도 3일동안 같은 분이셔서 우리에게는 아주 친숙했다.

하여간 정신없이 3일동안 정확히 말하면 도착도 오후 가던날도 오후에 왔으니 정확하게 2일하고 낮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차를 타고 돌아다녀서 모든 것을 다 볼는 없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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