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이학권-단편
https://www.youtube.com/watch?v=qoRQRRPeUU4 류양순
https://cafe.daum.net/rnjstlgur/9oZC/535 권시혁
다글로
안녕하세요. 하나임교회 유양순 성도입니다. 하나임교회가 자체 건물이 없을 때는 장소를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은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이학권성도님이 던진 질문 한마디가 지금도 제 기억 속에는 남아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교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했을 때 대부분의 성도님이 교회는 예배드리는 장소라고 대답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같은 대답을 하시는 성도님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보라고 하면 좀 막연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 땅에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00:5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충만이지요. 그러므로,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인격이 나타나는 것이고.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이 있기 때문에 부족한 우리 죄인이 이 교회에서 얼마든지 그 하나님과의 인격 사랑과 교제하고 관계함으로 더욱더 새로워지고 자랄 수 있죠.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기독교 단체이지요. 조직 제도 법으로 되어있고, 그것 때문에 파워 게임이 말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 제사장 희생 제사를 모두 패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인격화시켜서 성전은 내 몸이다. 01:50
그리고 제사장은 너희 모든 믿는 성도들이다. 그리고 희생재산은 너희가 몸으로 사는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랬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의식 설교 성직자 성만찬 제도화된 11조 이것은 전부 5~6세기에 콘스탄틴 기독교가 만든 것입니다. 콘스탄틴은 4개로 갈라져 있는 로마를 통일하고 나서 그 한 로마를 지키기 위해서 한 황제 한 법률 한 종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독교를 사용한 것이지요 그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태양신을 섬겼고 임종 때 영세를 받았지만 그건 제스처였죠 그리고 사도 공동체 때 종교의 껍질이 깨어지고 생명이 부화됩니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부로와 안디오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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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직도 종교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그런데 그중에 구부로와 구례 내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예손을 전파했습니다. 드디어 종교를 넘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그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심에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죽게 돌아왔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안디옥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이 교회의 핵심이 하나됨입니다. 그 시작을 보면 바나바 시무원 루기오 마나엔 사울 등이 이 교회의 인도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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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람들은 유대인 흑인 구례내 헤롯 바리세인 전부가 그 시대에 절대로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온전한 하나를 이룬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갈라디아서 3장 28절입니다. 다 함께 공독하겠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 이것의 주 동력은 고넬류가 구원받은 것을 베드로가 예루살렘교에 보고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무한례자들과 같이 먹었다고 그러니까 고넬료가 하나님께 받기를 너와 내 온 집이 구원받을 말씀을 베드로를 초청하면 너에게 일러줄 것이다.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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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드로가 내가 말을 시작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그런 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에게야 하나님을 능히 맞겠느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해결을 주셨도다 이렇게 종교의 단단한 껍질이 깨어지고 드디어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는 그런 시간을 맞이합니다. 이때로부터 종교와는 완전히 결별을 합니다. 바울을 쓰시고 베드로와 바나바는 훨씬 나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제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예루살렘 공예의 증언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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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그 후에 바나바와 바울은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에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부로로 가고 바울은 신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의 부탁함을 받고 떠났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안디옥에서 야구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옴에 극의 한례자들을 두려와 떠나 물러감에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함으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다. 여기에서 보면 베드로와 바나바 이 훌륭한 분들이 아직도 종교의 껍질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베드로와 바나바는 사라지고 하나님이 이제는 신약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이제는 바울을 사용하는 모습이 중심적으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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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례가 끝나버려요 유대 종교의 중심이자 생명이지요 이들은 전쟁 때에도 할례를 받아 가지고 앉아서 순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내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내 할례는 무할래가 아니냐 무릎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지 표면적 육신의 할래가 할래가 아니지 할래나 무할래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우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것이 바로 2가지입니다. 떡과장과 코이노냐 그런데 바울은 주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는데 주님께 받은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 첫 번째가 고린도전서 11장 23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죽게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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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죠 바로 떡과 잔을 행하라 그래서 26절에 보면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코이노냐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조를 보면 바울이 가장 사랑하고 오래 사역한 앱에서 교회를 떠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범사의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바울은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는 것이 받는 곳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모범을 보여준 바는 자신이 벌었지만 필요한 사람과 나누어 쓰는 코이노냐를 말하는 것이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은 어떠한 윤리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서로 통하는 코이노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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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도바올이 말하기를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 이것은 주님께서 계시로 바울에게 알려주신 것이죠.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도 알 수 있을 텐데 이것은 분명히 아라바 사막에서 계시 받은 것을 말하는 거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지요 바로 뒤에 나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한 자나가 되는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나는 이 복음을 위해서 그의 능력이 역사하신대로 내가 섬긴다 이것이 바로 바오리 계시록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교회는 마태복음 18장입니다. 유일하게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어 18장이 예수님의 교회론인데 그 시작이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여기서 돌이켜는 어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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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법과 제도와 조직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안에 살고 있죠. 그런데 어린이들은 중심이 공감입니다. 신빠띠 그래서 이 어린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식당에서 서로 모르는데 한 아이가 울면 따라옵니다. 그리고 10번을 싸웠어도 돌아서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즐겁게 눕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슴으로 통하는 이것이 바로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것이고. 그와 대칭되는 부분이 21절에서 35절의 용서 부분입니다.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의 비유가 나오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용서받은 후에 그 자세가 이 사람이 진짜 용서를 받았는지 아니면 용서를 받지 못했는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용서받은 자는 자기가 죄인이니까. 용서를 받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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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국률과 자비를 받았고 그것이 밖으로 흘러나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가 마치 자기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혜택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의인 종교인들은 용서받은 후에도 자기의 이익을 조금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용서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다음에 5절에서 20절은 본 내용인데 교회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작은 자를 싫 좋게 하면 연자 멧돌을 목에 달고 물에 빠져 죽는 게 낫다 그리고 실족해 하면 화가 있다. 그러므로, 범죄하는 지체는 잘라버리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는 말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은 자와 주님을 동일화했습니다. IDENTIVE 한 것이죠. 그러므로, 1사람 1사람의 신성이 존중된 곳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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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절에서 14절은 하늘 가족의 생명가치가 나타나죠. 여기에서 보면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 고자 앞에 그들의 천사들이 있다. 그러니 작은 자들이 하늘에서 더 중요하다 이 말이죠. 작은 자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그러면서 가운데 길 잃은 양 1마리 찾으러 99마리 산에 두고 그래서 그 양을 찾으면 99마리보다 더 기뻐한다. 이것은 현상적으로 말이 안 되지요 1마리를 찾기 위해서 99마리를 산에 둔다는 것은 버린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생명 가치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16년 전에 저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전체 성도 수가 50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갑자기 한국으로 가시는 바람에 저희 교회 성도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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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와중에 하나인 교회와 합치자는 그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당시 하나인 교회는 500명 정도 되는 성도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성도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러자 이약혼 성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러분이 만약에 주님의 교회와 합치는 것을 반대한다면, 나는 여러분을 포기하고 주님의 교회 정도를 섬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현상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죠. 500명을 포기하고 50명을 택한다는 게 어떻게 모은 500명인데 그런데 결과는 하나님 교회 성도들과 주님교회 성도들이 합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500명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갈 데 없는 50명을 품는 거 생명 가치가 아닌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떠오르는 묵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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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5절에서 17절 가족된 사랑 안에 쓰러지는 죄 권세 죄 권세가 어떻게 소멸되는지 잘 보십시오. 죄 지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만 상대해서 권고합니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으면 2~3증인으로 날마다 확증합니다. 여기서 2~3증인 확증은 소문이 아니라 증거를 가지고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때는 이방인과 세리같이 여기라 그런데 만약 이런 대접을 배척하는 자가 있다면 이런 사람은 인격파탄자 아니면 스스로를 버린 자겠죠. 그래서 교회에서 죄가 나타났을 때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 대접을 해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죄의 권세가 소멸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요즘 교회에서는 그렇지 못함을 보게 되는데 우리 각자가 성찰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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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8절에서 20절은 하늘복 권세 누리는 하늘 가족을 말해줍니다. 마귀의 권세를 다스리는 단절의 저주를 넘어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18절은 진실로 진실로 이게 나오죠. 땅과 하늘이 통하고 2사람이 합심하여 한마음이 된 곳에는 한올아버지가 함께한다. 그래서 교회론의 총 결론이 20절입니다. 인제 안에서 2~3 가정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이 바로 하늘 가족이다. 우리 하나인교에서는 이것을 1820 데일리 브레드라고 부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 데일리 브레드 파워게임이 무력화되면 그때는 일용할 양식으로 삽니다. 쌓아놓고 재워두고 힘 자랑하는 것이 더 이상 삶의 목적이 되지 않죠 그래서 교회는 한마디로 가슴 통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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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해야 되고 많이 통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그래도 서로의 가슴이 통하는 그래서 부부 사이에 가슴이 온전히 통해서 사랑을 느끼고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 남편이 아내의 그 작은 마음 하나하나를 알아주고 느끼고 공감할 때 그때 행복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교회라는 명칭은 오직 마태복음에만 쓰여져 있습니다. 다른 복음소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유대인 즉 종교인들에게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에다 스네각이라는 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없애버리고 카할 에클레시아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카알은 반상회로 모였든지 소풍 가서 모였든지 아무튼 사람의 모임을 카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사람의 모임으로 그냥 모인 것이지. 종교 조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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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죠 그래서 골로세서 2장 16절에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문제는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의외에 목말라서 하나님을 믿은 게 아니라 복 받으려고 시작했잖아요.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기 때문에 이 종교가 깨어져야 되는데 깨어지지 않으면 내가 복 받아야 된다는 그 에고만 날로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역기능이 조직에 순응시키고 평생 교인을 미성숙하게 만듭니다. 평생 교회를 다녀도 말씀을 잘 모르고 성화 성령의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신앙의 사촌이 아니라 원수입니다. 우리 모두 깨어지고 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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