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수행자들에게 경험이 다양하게 오지만 지나고 나면 정리되지 않아서 그 상태가 사라지고 다음에 찾으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들기도 합니다.
수행의 진도를 늦어지게 하지요.
저도 그런 적이 많아서 이번에는 좀 정리를 해야 하겠다 하는 차원으로 체험담을 씁니다.
지난 겨울 보림과정에 들어와서 사띠를 증장하는 방법으로 여러 관찰을 배웠는데,
게으름으로 인해 대부분의 실천이 미뤄지고, 어쩌다 호흡보기와 경행을 조금 했었는데
근래에 호흡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생겨 어쩔 수 없이 호흡을 좀 오래 보았습니다.
요로결석이라고 통증이 극심한 병을 겪게 되었습니다.
만나본 통증 중에 최고더군요.
여담으로 지옥의 고통은 이것보다 더욱 심할 텐데 거기는 어떻게든 안가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생겼습니다.
통증이 처음에 급성으로 진행될 때는 몇 분 안걸려서 그냥 떼굴 떼굴 구르는 상태였는데, 응급실에 실려가서 마약 중에 제일 세다는 것들로 링겔을 놔주니까 가라앉더군요.
이때는 호흡을 지켜볼 엄두도 못 냈는데,
며칠 뒤 좀 만성으로 2번째 통증이 아주 극심하지는 않는 상태지만 그래도 심한 통증이 오락가락 할 때에 다른 응급실을 갔었고,
소변이 콜라색인데도 약한 마약 종류를 놓아주는지 통증이 잘 잡히지 않아 파도 형태의 통증으로 12시간을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고통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호흡을 지켜보면 좀 잊을 것 같아 주의를 호흡에 집중하니까 통증은 거기에 여전히 있지만 잠시 잊어버리게 되더군요.
그래서 살기위해 열심히 호흡하며 지낸 시간이 합해서 6시간은 된 듯합니다.
통증이 심하게 오면 호흡에서 통증으로 주의가 돌아가려 하지만, 다시 호흡으로 주의를 돌리면 통증을 많이 잊어버리고 하는 형태로 반복이 되었지요.
그러다가 오랜 애증을 가진 사람과 관계된 일이 연결되며
내부 언어가 올라오기를 ‘이제 용서하기로 하자’라고 하면서 계속되던 통증이 씻은 듯이 가라앉았습니다.
약으로도 12시간 계속 고생하던 것이 한순간에요.
참 희한한 통찰 경험이었습니다.
내 마음의 어떤 한가지 오랜 미움이 스스로 인정되어 녹는 것과 함께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그 뒤 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한번도 통증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
사유를 해보면
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의 반대 작용으로 생기는 화 중에
밖의 대상을 향한 적극적인 분노도 있지만,
그 분노를 내부의 미움으로 가지고 스스로의 인생을 저주하고 좌절시키는 분노에 해당되었습니다.
아직 많이 남아있는 다른 미움들을 녹이는 것도 호흡을 관찰했듯이 사띠를 닦는다면 통찰무더기가 더 생기고 한결 쉬워질 거라 여겨집니다.
그로부터 약 10일간은 결석치료용 마약의 여파라 여겨질 정도로 수행할 때 사띠가 있어서 마음을 향하고 싶은 대로 잘 향하게 조절이 되더군요.
얀트라를 재미있게 보게 되고 전신의 희열도 찾아오고요.
하지만 집안에 큰 일이 있어서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곤이 누적되면서 사띠는 사라졌습니다.
1달 정도 지나서 집안의 일이 가라앉은 후 다시 사띠를 찾기 위해 호흡을 자주 보기 시작했고
어느 날 피곤을 풀기위해 잠시 눈을 부친 후 그 자리에 앉아서 호흡을 지켜보던 중 가슴에서 시작된 희열이 머리를 빼고 전신으로 가득 차는 삼매 경험이 찾아왔습니다.
머리는 그냥 각성상태였고 의도하면 희열로 채울 수 있었으며 신체중에 조금 약한 희열이 있는 곳은 의도하면 강화할 수 있더군요.
눈을 뜨거나 움직이면 없어 질까봐 조심스럽게 행동해 보았는데 말하고 움직이는 속에서도 한동안은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 뒤에 호흡하던 것을 사유해 보았더니
처음에 시작 때는 들숨 날숨을 의도적으로 하면서 집중하여 지켜보고 나중에는 의도적이지 않은 편안한 호흡을 하지만 놓치지 않고 지켜보다 보면 내부에 표상이 보여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단은 재미가 있어서 저절로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희열이 오기도 하고 그냥 편안한 가벼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얀트라를 볼 때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집중하고 나중에는 의도적이지 않으면서 얀트라를 편안하게 보지만 놓치지 않고 지켜보다 보면 기이하고 선명한 얀트라가 보여지는 과정과 비슷하더군요.
유지하면 희열이나 가벼움이 오지요.
남방 위빠사나는 잘은 모르지만
표상을 코끝의 공기를 감지하기 좋은 곳에 생기게 한다는 기법이 있는데 저의 경험으로는 내부의 표상이 더 효과적일 듯합니다.
처음에 호흡을 하면 공기의 들고 남이 공기의 통로에서 인식되지만 나중에 호흡이 미세해지면 내부의 이미지만 남더군요.
표상을 생기게 한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표상이 보여진다는 말이 더 어울릴듯합니다.
기공과 다른 점은
단전호흡 등이 인위적인 호흡으로 아랫배까지 깊은 숨을 쉬어 신체에너지를 늘리며 자아수준을 강화한다면
호흡보기는 오히려 얕고 미세한 숨으로 귀결되어 뇌의 산소공급을 최소화하며 자아를 약화시켜 본성의 에너지가 직접 발현하게 한다 여겨집니다.
또 하나 사유가 된 것은
들숨에 포인트를 맞추면 초선에 해당하는 머리에서 희열이 생기고
날숨에 포인트를 맞추면 2선에 해당하는 가슴에서 희열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들숨이 힘을 사용하는 집중이라면 날숨은 힘을 푸는 놓음과 비슷하고
들숨이 일으킨 생각이 있고 라면 날숨은 일으킨 생각이 없고 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의학적으로도 숨을 들어 마실 때는 근육의 힘이 필요하지만
숨을 내쉴 때는 근육의 힘을 그냥 풀면 되는 원리와도 통한다고 여겨집니다.
개인적인 내부 표상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공기가 들어가고 나가는 방향과는 반대로 들숨 때는 올라가며 채워지고 날숨 때는 내려가며 놓아지는 이미지가 일치합니다.
또 하나의 단초는 숨의 들고 나는 어느 곳에도 포인트가 없어질 때 숨이 더욱 미세해지면서 허정한 곳에서 숨이 사그러지려는 상태가 있고, 희열보다 편안한 가벼움이 증가하는 느낌이 있는데 수행이 더 진보되어야 사유가 정리될 듯합니다.
호흡은 인체에서 유일하게 누구나가 의도적으로 조절이 가능한 생존유지 영역입니다.
표면의식과 무의식이 같이 관여하는 곳이지요.
수행에 잘 이용한다면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개인적인 체험이라서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조언해 주시고
같이 수행하시면서 도움 나누어주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 무무명님]
오래 전에 무무명님이 순일선원 홈피에 올린 글을, 자재법사님이 어제 개인블로그에만 치사빤스하게 올린 것, 참괴 퍼옴. ^0^~
첫댓글 무무명님, 이런 좋은 글, 감사드리고
카페에도 자주 좀 올려주시면 더욱 감사에 감사.
이 글을 왜 못봤을까? 아직 더 살펴봐야 할 것이 있나..,
어쨌튼 자재펍사님도 캄쏴~
저도요 감쏴
이런 경험담을 카페에 올려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도 열공해서 삼매체험담을 올릴 그 날까지 앗싸!!!
아유~ 저도 새롭습니다 ㅎㅎㅎ
그래도 이렇게 써놓았으니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네요
더 진보한 부분보다 퇴보한 부분이 많습니다ㅠㅠ
이치적인 것은 더 알아졌지만 수행시간의 부족으로 인해서 ㅠㅠ
참고가 되신다니 저도 기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조회수가 가히 폭발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배움에 갈증이 많다고나 할까요.
물론 사람마다 경험이 다를 수도 있고, 또한 이러한 경험담에만 관심두고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초보 수행자들이나 열심히 정진중인 사람들에게는 조그마한 충고 한마디, 글 한 구절이 수직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수행함에 있어, 수행이 더딜 때 이런한 주변 고참 도반님들의 도움으로 더욱더 정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니
앞으로도 좋은 글, 충고, 경험 등 무무명님을 비롯한 여타 선배 도반님들께도 부탁드립니다.
나무석가모니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