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고함을 쳤다. 나도 모르게 악을 바락 썼다.
며칠 전의 일이다. 어머니가 새댁일 때 당신이 직접 팠다던 샘. 샘(우물)의 나무 뚜껑 위에는 백합줄기 이십여 포기가 축 늘어져서 반그늘에서 말려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바깥마당 화단에서 백합줄기를 뜯었다는 물증이다.
어머니는 멀뚱히 서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고함을 내지른 불한당같은 자식한테 그 이유조차 묻지도 않았다.
어머니의 뻔한 대답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나중에 어머니한테 여쭈었다.
'나물 먹으려고 뜯었다'라며 원망 섞인 눈초리로 나를 힘없이 바라보셨다.
그런 병약한 어머니가 싫었다. 애처로워 하는 눈길이 나를 정말로 힘들게 했다. 섣달그믐이 생일인 아흔두 살의 어머니한테는 가벼운 치매기가 진행 중이다. 그 예가 바로 푸성귀 모으기이다. 산채나물 등의 먹을거리로 장만하는 습벽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원추리 잎사귀, 골담초 꽃망울, 흰 연산홍 꽃망울, 루드베키아 순, 뚱딴지 잎새, 개망초 잎새, 심지어는 수선화 잎사귀까지 손으로 뜯었다. 눈에 띄는 것 모두가 푸성거리가 되었다.
도라지 순이며, 양배추 꽃대이며,....
'왜 꽃망울까지 따느냐? 꽃이 피면 예쁘지 않느냐'의 내 질문.
'꽃보다는 먹을 것이 더 소중하지 않느냐?'라며 반문해서 내 말문이 턱 막히게 했다.
꽃을 키우려는 나와 먹을거리를 장만하려는 어머니의 잦은 실랑이로 모자간의 관계가 무척이나 소원해졌다.
아들이 하나뿐인 나한테서 지청구 먹고, 구박받는 게 서럽다고 살짝 눈물을 지울 때가 잦았다.
나도 왜 그리 화를 쉽게 내는지 모르겠다. 요즘 부쩍 화를 내고 있었다. 총명했던 어머니가 나이들 수록 점점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에 더 역정을 낸다고 보았다.
오늘은 서울 송파구 잠실 서점에서 '원색수목환경관리학'이란 책을 사다가 어제 헤어진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까짓 꽃이 뭐라고 꽃잎과 꽃대를 꺾는 어머니한테 큰 소리를 냈는지 자식인 내가 참으로 옹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점 파리해지며 쇠약해지는 어머니한테 내가 참으로 불효한다고 자각했다. 어머니가 제아무리 쥐어뜯어도 꽃나무, 풀은 하찮은 것이다. 설령 그들의 잎새, 꽃대, 꽃망울을 뜯고, 꺾고 뜯어내도 근본인 뿌리는 아직도 남아있을 터인데도 내가 조급하게 화부터 냈는지 반성하고 싶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하고 남한테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불손하게 대하고 있었다.
일제치하인 1920년 2월(섣달그믐)에 태어나서, 어려운 시대를 용케도 버티며 살아남은 어머니가 2010년인 지금까지도 먹을거리만큼은 지악스럽게 장만해서 보관하려는 습벽을 자식인 내가 이해해야 했다. 그 어떤 꽃나무와 꽃잎새를 뜯고 꺾어도 나는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풀은 풀에 지나지 않고, 나무는 나무에 지나도 않는데도 나는 이를 지나치게 아끼며 소중하게 여긴 것이 잘못이다.
집나이 아흔두 살의 어머니는 치매기가 진행 중이기에 어머니의 생체 나이가 자꾸만 어려진다. 이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참으로 못난놈이다'라면서, 이 글을 쓰면서 반성한다. 내가 식물을 제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내 어머니만큼은 절대로 아니다.
"어머니. 반찬거리 만드셨어요? 잘 하셨군요."
능청 떠는 연습이라도 오늘밤부터 해야겠다. 내일 시골로 내려가거든 은근슬쩍 사과 드려야겠다. 눈치채지 못하게 짐짓 모르는 체를 해야겠다. 또 내가 키우는 식물한테도 양해를 구해야겠다.
'내 어머니가 뜯어도 꾹 참고 그저 살아만 있어라. 뿌리가 살아있기만 하면 나중에 더욱 많이 번식시키며 잘 키우겠다'라고 약속해야겠다.
2010. 5. 13. 목요일. 바람의 아들. 최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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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 3. 26. 화요일.
내 어머니가 2015. 2. 25. 돌아가셨기에 나는 서울로 올라왔고, 그 뒤부터는 텃밭 농사를 짓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농업, 과수목, 조경수 관련 등의 카페에서는 장기간 활동하지 않았기에 지금은 카페 활동을 접은 카페가 많다.
어떤 카페에서는 활동이 미흡한 회원에 대해서는 회원 신분 그 자체를 삭제하거나 회원이 올렸던 글을 깡그리 모조리 삭제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내가 보기에는 인심 야박한 카페들이다.
오늘 밤에 우연히 들른 <귀농귀촌 특사모 카페>에서는 내 글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고맙습니다'라고 속으로 감사 드린다.
이를 퍼서 <국보문학카페>에 올려서 글 다듬고, 또한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로 대조해서 오탈자 등을 바르게 고쳐야겠다.
이런 류의 일기를 더 다듬어서 문학지에 올렸으면 싶다.
내 삶이 들어있는 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