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방은 신이 나서 말했다. 아운이 웃으면서 사자명을 보고 말했다.
“그렇다는 군.”
사자명은 코웃음을 쳤다. 언제 금룡대가 규칙을 따졌던가? 그리고 별 힘도 없는 대주가 어쩌겠단 말인가? 하극상에서 대주가 처리 못하면 장로회로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장로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장로원에서 북궁세가의 힘은 아주 미미했다. 반면에 자신에겐 아주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오히려 대주를 혼내주면 경쟁자인 호연란의 호감만 더 살 뿐이었다. 사자명은 마음껏 아운을 비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쩌겠단 말인데?”
“그래서 말이지…….”
아운은 터덜거리며 걸어가서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말했다.
“우선 네 놈의 입을 틀어막고…….”
“그게 네 놈……. 크억!”
아운의 신형이 움직였나 했을 대 이미 사자명의 코앞에 나타났고, 이어서 돌멩이를 사자명의 입안에 박아 넣었다. 앞니가 전부 부러져 나가면서 돌멩이가 그의 입속으로 들어가 박혔다. 보던 사람들이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라서 아운과 사자명을 바라보았다. 저런 무식한 방법으로 사람을 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그들이었다.
“야한!”
아운이 부르자 이미 준비 중이던 야한이 바람처럼 날아와서 도끼 자루를 건네주었다. 그 다음에 벌어진 것은 조금 전 금룡대 칠십여 명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떻게 힘써 볼 상황도 아니었다. 아운의 도끼 자루는 추호도 용서가 없이 얼굴만 가격했다. 부대주인 사자명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은 덤빌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칠보둔형의 절기를 등에 업은 아운의 도끼 자루는 천하무쌍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흑칠랑이 달려왔다. 그리고 흑칠랑은 가운데 손가락을 쫙 편 다음, 쓰러진 놈들이 코 구멍을 꼭 두 번씩 찔러댔다. 그리고 야한이 흉내를 내며 쫓아가는데, 야한은 가운데 손가락이 아니라 엄지 손가락을 쓴다. 길이가 안 되니까 굵기로 도전한 것이다. 인정사정도 없었다. 특히 사장명은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아운에게 거의 떡이 된 사자명의 코 구멍은 흑칠랑과 야한에 의해서 완전히 돼지 코가 되어 있었다. 뿐인가. 앞 이빨은 돌멩이가 전부 부수어 놓았고, 제법 영준했던 그의 얼굴은 완전히 파면이 되어 있었다. 다시는 제 얼굴로 돌아오긴 힘들 것이다.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보던 추운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나라면 죽는 것이 행복하겠다.”
이심방은 후둘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런 소리 말게. 저 놈들, 앞으로 숨 쉬기 편하겠다. 코 구멍이 뻥 뚫릴 테니…….”
그들의 말을 들은 무당의 운현검 우영이 나직하게 불호를 외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무량수불, 너무 잔인한 짓일세. 하……하지만 사자명은 좀 당해도 되긴 하지.”
우영의 말에 이심방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기도 하지만, 저런 식으로 확실하게 해 놓으면 앞으로 다시는 덤빌 생각을 못할 걸세. 오히려 저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지도 몰라. 그렇지 않은가? 몽진화상.”
몽진은 숨소리를 죽여 가며 말했다.
“아미타불. 아운 시주에게 잘못 보이느니 난 그냥 지옥으로 가겠네.”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는 몽진의 얼굴을 본 이심방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자신이나 운현검 우영이나 앞으로 감히 아운에게 도정하거나 대항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기엔 이미 그들의 가슴 속에 새겨진 아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은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대 정파 무림의 한 복판에서 보여준 아운의 모습은 강하면서도 화가 났을 땐, 뒷골목의 파락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정파 무인들이 적을 상대함에 단검에 죽이거나, 싸워서 패하면 보통은 그것으로 끝인 것이 이쪽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한데 아운은 다르다. 저렇게 무식하고 잔인하게 사람을 다루어 놓으면 아무리 강골인 사람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다시는 아운에게 대항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운은 상대의 신분과 체면을 고려해 주지 않았다.
‘앞으로 무림맹은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니 그건 오로지 아운 하기 나름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아운에게 선택된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심방이었다. 물론 아운이 좀 두렵긴 하지만 그거야 아운의 말을 잘 듣고 잘못을 안 하면 된다.
아운의 무자비한 폭력에 사자명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입안엔 주먹만 한 돌멩이가 들어가 박혀 있고 머리엔 도끼 자루가 날아다니는데 제 정신이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겠다. 처음 도끼 자루가 머리통을 내리 쳤을 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어진 아운의 구타 앞에서 사자명의 자존심을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무공.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던 사자명이었지만, 단 두세 번 대항하려 해본 다음,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우쳤다. 상대는 자신이 어쩔 수 있는 고수가 아니란 것을 처절하게 깨우쳤을 뿐이었다. 공포와 아픔 때문에 사자명의 정신은 혼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그 아픔은 정말 끔찍했다. 대항할 생각, 그것은 꿈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최소한 지금 상황에선 그렇다.
‘살려주세요.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흑흑…….’
그러나 그것도 속으로만 들린다. 입안에 돌멩이가 말문을 막은 것이다. 거의 걸레가 되도록 매를 맞은 사자명을 아운은 미련 없이 바닥에 쳐 박아 버렸다.
“네 놈들은 이쪽으로 모여라!”
별로 큰 소리도 아니었지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자명의 수하들이 덜덜거리며 일어서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코피가 줄줄 흐르고 콧구멍이 돼지 코처럼 벌어지고 팅팅 부운 그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불쌍하기에 앞서 우습기조차 했다. 그것을 본 아운의 눈썹이 다시 곤두섰다.
“셋을 세겠다. 그때가지 다 모이지 못하면 오늘 네 놈들을 전부 죽여 버리겠다. 하나…….”
번개보다 빠르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디든지 죽을지 살지 모르고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골통들이 있게 마련이다.
유범석은 점창파 장문의 셋째 제자였다. 그는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이런 구타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뼈를 아리는 아픔과 함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유범석,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의 끈질긴 독기는 금룡대 뿐이 아니라 무림맹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점창파에서 그의 사부조차 두 손을 들 정도겠는가? 또한 금룡대에서 부대주인 사자명조차도 꺼리는 인간 말종이 바로 유범석이었다. 사람을 죽여도 가장 지저분하게 죽이고, 여자를 간음해도 가장 변태적인 인간이 유범석이다. 그리고 지독하게 끈질겨 한 번 그에게 잘못 보인 사람은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백이십의 금룡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용맹한 다섯 명의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고, 누군가와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팔다리가 부러지고, 바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인간이 바로 유대석이다. 그의 이 질긴 성격과 무대포적인 기질은 다른 사람이 쉽게 따를 수 없는 재능이기도 했다.
점창의 장문인인 유운무적검 사운한은 만약 유범석이 폭력적이고 작은 일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남모르게 여자들을 납치 강간하는 성격만 고칠 수 있다면 점창의 대들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탄했었다. 유범석이 강호에서 저지른 추악한 죄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점창파의 힘 때문에 몇 번이나 그 위기를 벗어났다. 지금도 사운한은 유범석이 무공에만 전념한다면 대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 유범석인 만큼 다른 사람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오히려 이를 갈고 원한을 키웠다. 대 점창파의 제자를 이렇게 패는 놈이 있다니 생각할수록 분했다. 능력이 모자라서 맞았지만, 그것은 두 번째였다. 반드시 스승에게 말해서 점창의 힘으로 버릇을 고쳐 놓고 말리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다시 셋을 셀 때까지 모이라고 윽박지르는 아운을 보자 그의 기질이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야! 이 개자식아. 차라리 여기서 날 죽여라. 흐흐, 난 절대 네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 이제 어쩔 테냐? 네가 정말 날 죽이기라도 하겠느냐? 그렇게 되면 점창파에서 네 놈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흐흐, 나는 점차의 유범석이란 말이다.”
유범석은 그 자리에서 옷을 벗더니 아예 바지와 속옷까지 전부 벗어던지고 주저앉아서 고함을 질러 댔다. 모든 시선이 유범석에게 모아졌다. 점차의 제자. 구대문파 중의 한 곳이다. 그런 인물이 죽일 테면 죽이라고 덤빈다. 누구라도 난감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유범석이 그렇게 나서자, 금룡대에서도 골통으로 유명했던 세 명의 인물들이 더 일어섰다. 그들은 유범석과 가장 친한 자들이었고 가장 악종들이기도 했다. 그들 역시 아래 위로 옷을 전부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유범석 근처로 모여 들었다.
“흐흐, 범석이 멋져. 나도 합류한다. 난 절강성 오가장의 오승이라고 한다. 나 역시 죽어도 네 놈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
오가장은 절강성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무가였다.
“난 모산의 손장순이다. 네 놈은 어쩔 테냐? 흐흐, 나를 죽일 테면 죽여라.”
모산파는 비록 구파일방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절대로 뒤지지 않는 세력을 가진 대문파였다. 그들에 이어 합류한 또 한 명의 청년은 입고 있던 천을 다 벗어 던지고 스스로 자신의 몽에 지닌 검으로 핏줄을 그어대며 고함을 쳤다.
“칠 테면 쳐라. 이놈, 난 겁 안 난다. 내가 죽으면 네 놈은 나의 사문인 황룡표국과도 원한을 져야 한다.”
황룡표국은 복건성의 패자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모두 쟁쟁한 가문이나 문파의 제자들이거나 후예들이었다. 이렇게 되자, 금룡대의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모였다. 그들은 모두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만큼 나선 인간들이 얼마나 독종들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는데 언제나 앞장서서 싸우는 자들이었고 언젠가는 합이 열세 대의 화살을 맞고서도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던 자들이었다. 사자명조차도 그들에겐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은 잘만 다스리면 보석이 될 거라고 칭찬하던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문파에서는 누구도 그들의 자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고 알려진 자들. 강화 무림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무림맹의 독종 사공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무림에서는 따로 무림맹의 사흉이라고도 부르는데 아운 역시 이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칫하면 금룡대 전부가 가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기마자세를 하고 있던 금룡대원들마저도 긴장한다. 여차하면 반기를 들 기세다. 북궁명을 비롯한 열세 명이 금룡대원들의 얼굴에도 긴장한 빛이 떠오른다. 그러나 흑칠랑이나 야한은 오히려 히죽거리고 웃고 있었다. 아운이 유범석에게 다가섰다. 그러나 유범석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알몸의 가슴을 활짝 펴며 고함을 질렀다.
“흐흐, 그래 요 개자식아. 어서 와서 나를 죽여라! 죽여!”
다른 세 명은 그 자리에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운의 명령에 따르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표현이었다. 그들 주우 오승이 유범석과 보조를 맞추어 고함을 쳤다.
“이 씨발 놈아! 얼마든지 패라. 하지만 우린 절대 네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 우리를 때릴 순 있어도 명령을 따르게 하진 못할 것이다. 으하하…….”
코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악을 쓰는 유범석과 오승 일행을 바라본 아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법이군. 좋아. 인정은 하지.”
아운의 말을 들은 유범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적당하게 타협을 하려 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운은 그런 유범석을 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난 우서 네 놈부터 죽이기로 결정했다.”
“뭐……. 뭐…….”
유범석이 놀라서 아운을 본다. 설마 자신이 잘못 들었겠지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똑똑하게 들었다. 처음엔 놀랐던 유범석이 노골적으로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멍청한 새끼, 네가 나를 죽이겠다고 죽여봐라. 그럼 그 다음엔 점창이 가만히…….”
그 다음 말이야 뻔한 거지만, 아쉽게도 유범석은 그 다음 말을 다 이어가지 못했다.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아운의 주먹이 그의 어깨를 쳤고, 어깨뼈가 모조리 부서져 버렸다.
“크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유범석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운은 그 자리에서 사정없이 유범석의 왼쪽 정강이를 걷어찼다. ‘빠각’하는 소리가 다시 한 번 시원하게 들린다. 그 소리를 들은 이심방이 질린 얼굴로 우영을 보며 말했다.
“저 소리는…….”
우영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뼈가 완전히 부서졌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지. 무량수불. 다시는 고치기 불가능할 것 같은데…….”
“끄으윽…….”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비명이 유범석의 입을 타고 넘어왔다. 그런 유범석을 보면서 아운이 느긋하게 말을 했다.
“네 놈이 여기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네 놈의 명성은 아주 잘 듣고 있었다. 한 마디로 넌 죽어도 싼 놈이다.”
유범석은 어깨뼈와 다리뼈가 부서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며 아운을 노려보고 말했다.
“나는 점창…….”
“점창, 좋지. 네 말대로 점창이 나를 적으로 돌리면 점창을 강호 무림에서 아주 지워주마.”
아운의 태연한 말에 금룡대원들이 표정이 질리고 말았다. 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거란 말인가? 이 세상에 저런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은 처음 알았다. 물론 그들은 아운이 정말 점창파와 정면충돌하거나 멸문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운의 정체를 아는 열세 명이나 그들보다 더욱 아운을 잘 아는 흑칠랑과 야한, 우칠 등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단지 그들도 아운이 유범석을 죽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유범석의 협박을 무시할 거란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니만큼 어떤 식으로 아운이 유범석을 다룰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운의 무자비한 기세에 땅바닥에 대자로 누웠던 세 명이 불안한 표정으로 상체를 들어 올릴 때였다. 아운은 어깨벼와 정강이뼈가 부서진 고통으로 덜덜 떨고 있는 유범석의 턱을 올려 차 버렸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일장이나 솟구쳤던 유범석이 대자로 누워있는 세 명의 옆에 털썩하고 떨어졌다. 입에서 거품을 물고 유범석의 눈동자가 돌아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세 명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어디 그들뿐인가? 서있던 열세 명이나 우칠, 그리고 왕구의 표정마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아운이 다시 유범석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사람들은 정말 아운이 유범석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때 이심방은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지금 권왕은 유범석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렇지만 점창의 힘을 감안하고 앞으로 무림맹에서의 입지를 생각한다면 죽이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나서야 한다. 나서서 권왕에게 물러설 수 있는 명분을 준다면 내게 고마워할 것이다.’
빠르게 머리를 돌린 이심방이 재빨리 나서며 권왕에게 말했다.
“대주님께 아룁니다.”
“말해라!”
“지금 이들을 죽이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차라리 잘 다스려서 쓴다면 상당히 재질을 가진 자들입니다. 대주님께서 마음을 크게 가지시고 목숨만을 살려 주십시오.”
이심방의 말에 아운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제 넘는 놈이군. 역시 잔머리가 잘 돌아간다. 하지만 그건 네 놈도 명문의 제자이기 때문에 하는 개소리다. 나는 이 자식을 죽일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죄에 대한 대가를 받으며 아주 고통스럽게 죽일 것이다. 인재라고 죽일 짓을 한 놈을 살려주고 명문의 자제라고 여자를 강간해도 벌을 주지 않는다면 세상의 법은 있으나 마나다. 이 개자식들은 모두 죽을 죄를 수십 번 이상 저지르고도 제 입으로 자랑하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자체가 금룡대를 모욕하는 것이고 무림맹이 어떤 곳인지 인증하는 것이다. 당연히 죽어 마땅하다. 네 놈이 다시 한 번 주둥이를 놀리면 너도 죽이겠다. 빨리 꺼져.”
이심방은 아운의 살기 앞에 기가 죽어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각에 걸쳐 아운은 유범석의 뼈를 하나씩 분질러버렸다. 아주 천천히, 모두 입이 얼어붙어 말을 하지 못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세 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덜덜 떨고 있었다. 이미 무공이 전폐되고 척추가 부러진 유범석은 사실상 살아도 산게 아닐 것이다.
“이제 지옥으로 가라!”
아운의 주먹이 그대로 유범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유범석의 머리가 박살 난 채로 죽어버렸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심방이 덜덜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정말 죽였다.”
몽진은 침착하려고 바둥거리며 말했다.
“죽을 짓을 수없이 한 자니 죽어서 마땅하지만, 정말 죽이다니 아미타불. 마…만약 내가 권왕에게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자네들이 먼저 죽여주시게.”
몽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마음이 그랬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직된 표정으로 아운을 볼 때 아운은 더 없이 개운한 표정이었다. 정말 사람을 죽인 것 맞나 싶은 모습이었고 그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 강한 공포심을 심어 주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해서는 지옥의 악마가 있다면 바로 아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이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을 때도 있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이젠 새로 온 단주가 설마 이것은 못하겠지 하는 생각은 전부 지웠다. 이제 단주가 무림맹에 불을 지르겠다고 하면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고도 많이 남을 인간이란 것을 깨우친 것이다.
“네 놈은 언제고 만나면 반드시 죽이고 싶었던 쓰레기 중 한 명이었다. 아주 시원하네.”
아운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오승을 비롯한 세 명의 얼굴은 더욱 창백하게 질렸다. 이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멍청한 객기를 부렸는지 알았던 것이다. 그들이 엉거주춤 서 있을 때 아운이 다가왔다. 상체만 일으킨 채 앉은 자세로 있던 알몸의 세 금룡단원들은 기겁을 해서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아운의 신형이 흐릿해 지면서 이미 그들 앞에 다가와 있었다. 칠보둔형의 보법이 펼쳐진 것이다. 아운은 나타나자마자, 사정없이 오승의 사타구니를 발로 밟아 버렸다. 추호도 망설임이 없는 동작이었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꺼억’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면서 오승의 눈이 돌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이심방이 목소리까지 떨며 몽진을 보았다.
“서…설마?”
몽진이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이미 이심바이 물으려 하는 말을 짐작하고 있었던 몽진이었다. 역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미타불, 터진 것 같습니다.”
서 있던 열세 명의 금룡대와 우칠 그리고 왕구는 숨소리마저 멈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한은 아운의 행동을 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권왕 아운님은 멋지지 않습니까? 선배님. 흐흐, 저 박력이며 베짱하고 역시 남자는 저래야지. 암 그렇고 말고…….”
물론 흑칠랑에게 물으면서 한 말이었다. 흑칠랑은 자신도 모르게 오싹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가 야한이 묻다 당황했다.
“그…그게 그렇지만, 뭐 저 정도의 베짱은 나도 있지. 아암. 그렇고 말고…….”
흑칠랑의 말에 야한의 표정이 아주 묘하게 변했다.
“선배님, 나중에 조심하십시오. 자칫하다가는 죽는 것은 둘째 치고…….”
야한의 시선이 흑칠랑의 거시기를 내려다본다. 흑칠랑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그곳을 감싸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야한은 아주 안 됐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쯧, 그러게 그냥 제자리에서 만족하지. 무슨 제일씩이나……. 에휴, 불쌍해라!”
흑칠랑의 안색이 검게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흑칠랑이 누구인가? 절대 기죽지 않는다. 그는 야한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역시 권왕을 꺾을 자는 나 밖에 없을 것 같군. 이건 운명이다.”
흑칠랑의 말에 야한은 정말 찬탄한 표정으로 흑칠랑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을 보면서 흑칠랑은 어깨를 쭉 폈다. 아주 늠름하게…….
“근데 선배 목소리는 왜 떨고 그러슈.”
흑칠랑의 펴진 어깨가 좁아지면서 표정이 구겨진다. 그리고 야한의 이어지는 말.
“그러고 보니 선배, 거기 터져도 별 상관 없지 않나? 어차피 쓸 데도 없는데……. 흠, 그래서 당당했나?”
흑칠랑의 코 구멍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야한이 슬그머니 도망간다. 아운은 느긋하게 우칠을 보며 말했다.
“우칠, 왕구와 함께 금룡각의 대문을 지켜라.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기 말라!”
“옙!”
우칠과 왕구가 동시에 대답을 했다.
“그리고 어떤 여자가 물건을 전해 주면 지체 없이 가져와라! 이제 올 때가 되어 가는군.”
아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칠과 왕구는 금룡각의 대문을 향해 뛰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운이 돌아서서 남아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제 남은 두 사람은 다급했다. 여기서 더 이상 태연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미친놈뿐일 것이다. 모든 금룡대원들의 자세가 반듯해졌고, 알몸의 두 청년은 기겁을 해서 일어서려 했다. 둘의 얼굴은 이미 공포에 질려 있었다. 죽여보라고 베짱을 부릴 담력이 더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아운은 정말 죽일 것이다. 이젠 그들도 그것을 알았다. 자신들이 자신 있게 내세웠던 가문이나 문파에 대한 믿음감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점창파 장문인의 제자를 죽인 인간이다. 그들의 배경이 구대문파의 하나인 점창보다 뛰어날 순 없었던 것이다. 아운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는 오승을 발로 차서 밀어 놓고 두 사라에게 다가서자, 손장순과 강환은 그 자리에서 엉거주춤하고 말았다. 엎드려서 살려달라고 빌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그렇다고 덤비자니 그런 너무 무모한 것이란 것이 증명되고 난 다음이었다. 하지만 둘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운이 허리에 찔러 차고 있던 도끼 자루를 빼어 들은 것이다.
두 사람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젠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둘은 빠르게 바닥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빌 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엎드리자 참으로 때리기 좋은 자세가 되었다.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말보다 아운의 도끼자루가 먼저 모산파 손장순의 머리에 작렬했다. 이어서 아운의 발이 황룡표국의 둘째인 강황의 갈비뼈 두 개를 분질러 놓았다. ‘으허헉’, ‘꾸에엑’하는 이상한 비명소리와 함께 둘의 신형이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일각동안 그들은 다시 한 번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해야 했다. 말을 할 틈도 없었고, 용서를 빌고 싶어도 받으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제야 아예 작정을 했다는 것을 깨우치고 공포에 오줌까지 지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저 자신들이 아니란 사실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운은 그들의 팔다리를 분질러 놓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다음 오승에게 다가섰다. 이미 깨고 일어나서 인고의 고통을 참으며 공포에 질려 있던 오승은 아운이 다가오자 필사적으로 도망가려 했다.
“자꾸 움직이면 허리뼈를 분질러 놓겠다.”
아운의 말 한 마디에 신기하게도 오승이 동작을 딱 멈췄다.
“자, 이제 지금부터 네 놈들이 호연란의 명령으로 한 짓거리를 하나도 빼지 말고 다 말해라. 혹시 말을 빼 먹거나, 허튼 짓을 하고 싶으면 해 봐라.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더 끔찍할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말을 하면 아주 깨끗하게 끝내 주마.”
아운의 말을 들은 오승의 얼굴이 참혹하게 변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쪽에 몰려있던 사자명의 수하들 얼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도 입에 돌멩이를 물고 있는 사자명은 바둥거리며 무엇인가 말하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아운이 웃으며 야한과 흑칠랑을 복 말했다.
“아직도 팔팔하군.”
흑칠랑과 야한은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얼굴이 불게 윤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개종자들이 자꾸 사람 피곤하게 만드네.”
흑칠랑과 야한이 그들의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들리는 가운데 아운이 다시 한 번 오승을 내려다보았다.
“나…난 잘 모릅니다.”
“그렇군. 그럼 할 수 없지.”
아운의 발이 오승의 턱을 걷어찼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오승의 턱이 부서져 날아갔다. 그 충격에 뒤로 삼장이나 날아간 오승은 그 자리에 눈을 뒤집고 숨을 거둔다. 죽었다. 정말 죽은 것이다. 턱이 깨져서 날아간 시체가 거짓말 일리는 없었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운은 미련없이 돌아서서 나머지 두 사람을 보고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 안 해도 된다. 네 놈들 말고도 죽일 놈은 많으니까…….”
절대 안 된다. 반드시 말해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이미 깨우치고 있었다. 그것도 아운이 행동하기 저에 서둘러서 말을 해야만 했다. 이젠 아운이 무섭다 못해,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둘은 급했다. 조금만 늦으면 죽을 것이다. 자신들이 호연란의 명령으로 중소문파들을 멸문시킬 때,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것처럼 아운은 자신들에게 사정을 두지 않았다. 물론 자신들은 그래도 된다는 특권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림맹의 당당한 금룡단이고, 그들은 버러지 같은 삼류무사들이나 정말 그저 그런 가문과 문파들일 뿐이었다. 헌데 지금은 반대가 되고 나자 새삼 자신이 잔인하게 죽였던 사람들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벌레처럼 죽어 감녀서 두려움에 떨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자신이 그렇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그들의 심성을 파괴해 갔다. 손장순과 강황은 정말 그렇게 죽기 싫었다.
“우리는 호연란 령주의 명령으로 호연세가에 반하는 문파들을 제거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내린 것은 북궁연 총사가 한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다른 금룡대원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어었던 듯 모두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그래, 그럼 거기에 가세했던 놈들이 누구누구냐? 지금 저기 네 놈들 패거리들 말고 또 누가 가세했었느냐?”
아운의 물음에 손장순과 강황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없습니다. 그건 사자명 부단주가 책임을 지고 우리들이 한 짓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사…살려주십시오.”
아운은 잠시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손장순과 강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호연란의 밀령을 이행하면서 살려달라는 사람들을 살려준 적이 있나?”
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손장순은 마음이 다급했다. 자칫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인해 정신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와는 신분이 다른 천한 것들이라 죽어도 세상에 티가 안 나는 것들입니다. 만약 우리를 살려 주신다면 충성을 다할…….”
“닥쳐.”
아운의 한 마디에 손장순은 입을 다물고 아운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별 볼 일 없는 파락호 출신이다. 하지만 세상에 함부로 죽어도 되는 자가 있단 소리는 못 들었다. 진짜 죽어야 한다면 바로 네 놈들이다.”
아운은 그 자리에서 도끼 자루를 휘둘러 손장순의 머리통을 쳐 버렸다. ‘퍽’하는 소리가 들리며 머리가 터져 나간다. 이어서 아운은 강황의 배를 걷어찼다. 강환이 뒤로 자빠지자, 다시 한 번 발로 차서 굴려 놓고 허리뼈를 바로 밟아 버렸다. ‘빠직’하는 소리가 들리며 허리가 꺾어진다.
아운은 손을 탁탁 털면서 이심방과 열세 명의 금룡대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모두 숨이 빳빳하게 굳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별로 크지도 않은 아운의 모습이 금룡각 전체를 꽉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아운이 걸음을 멈추고 열세 명의 인물들을 죽 훑어본 다음에 북궁명을 보며 말했다.
“인원이 좀 적군. 혹시 추천할 만한 인재들이 있나?”
아운의 물음에 북궁명은 힘차게 대답을 했다.
“있습니다. 모두 두 명이고 여자도 한 명이 있긴 합니다.”
“여자라고 안 되는 법은 없겠지. 상관없다.”
“그럼 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정도면 되었다. 그 세 사람에 저기 우칠과 부호법을 합하면 열여덟이군. 그 외에 몇 명 더 보충하면 되겠군. 그들을 오늘 중으로 내 앞에 데려오도록…….”
“충.”
“좋아. 그럼 그 정도로 인원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명이는 부단주, 그 외에 너희들이 앞으로 금룡단이다. 그리고 저들 중에서 쓸 만한 인간들만 골라서 금룡단을 축소 개편할 것이다. 부단주는 다서 추천한 자들을 데려오도록…….”
“충.”
북궁명은 구호를 외친 후 뛰어 나갔다. 그가 나가자 아운은 이심방을 보면서 말했다.
“거지.”
“옙.”
“넌 다른 사람과 함께 이 자식들 두 명을 담벼락에 걸어 놓아라! 천천히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갈 것이다. 그냥 죽이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이들의 죄 값이 너무 헐하다 안 그런가?”
“단주님의 말씀이 백 번 지당하십니다.”
“흠, 맘에 드는군. 그리고 도사.”
“옙.”
운현검 우영이 능라자락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날아왔다.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어 사방에 전해라. 이들이 죽어야 할 타당성을 제대로 적어놓도록……. 단, 사자명을 비롯한 그들이 한 일은 적지 마라. 대신 그 부분은 따로 적어서 나에게 주도록…….”
“옙, 명대로 하겠습니다.”
“서두르도록…….”
“옙.”
우영은 고함을 치듯이 대답을 하고 서둘러 글 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심방을 비롯하여 십여 명의 금룡단원들은 아운이 시킨 일을 빠르게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왕구가 종이 뭉치를 들고 뛰어왔다. 아운은 왕구가 전해 준 종이 뭉치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금룡단 단원들의 신상명세서가 적혀 있었고, 그 동안 소홀이 조사를 해둔 그들에 대한 많은 정보가 적혀 있었다. 북궁가의 정보력은 어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금룡단 단원들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정확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운은 종이에 적힌 글을 읽으면서 종이를 두 개로 나누었다. 이윽고 그 안의 내용을 전부 훑어 본 아운은 기마자세를 취하고 있는 금룡단 칠십이 명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자들은 모두 일어서도록…….”
아운은 종이 뭉치를 넘기면서 이십팔 명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된 인물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아운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아운이 그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참으로 재수가 좋다. 원래 금룡단의 하인으로나 쓸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아주 나쁜 놈들은 아니라기에 봐준다. 너희들은 금룡단으로 남는다. 저쪽에 가서 서도록…….”
새롭게 호명된 이십팔 명의 인물들이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짓고 한 쪽으로 우루루 몰려가자 아운은 나머지 인물들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너희들은 저것들과 함께 서라!”
호명 되지 못한 금룡단의 인물들은 얼굴이 굳어진 채 한쪽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아운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원래부터 있던 사십사 명과 사자명, 그리고 그의 수하들 34명을 합해 총 칠십팔 명이었다. 그때까지도 사자명은 입안에서 돌멩이를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네 놈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놈들이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금룡단의 하인이다. 하인으로서 본분을 잃지 말도록……. 만약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는 자가 있다면 모두 팔다리를 분질러 놓겠다. 혹여라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네 놈들에게 지금부터 특수한 제재를 가해놓을 것이다.”
아운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여 칠십팔 명의 형을 점해 버렸다. 그들은 모두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네 놈들의 무공을 전부 막아놓았다. 하인들한테 내공이 필요 없을 테니까. 혹여 불만이 있는 놈은 앞으로 나와라. 아주 죽여 줄 테니까…….”
아무도 없었다. 모두 얼굴이 검게 변한 채 공포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지금 아운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은 그들이 감히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답이 없군.”
“충. 명심하겠습니다.”
고함소리가 하늘을 찢어놓을 것 같았다. 금룡단의 담장을 중심으로 음성을 차단하고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진법이 펼쳐져 있지 않다면 고함 소리에 무림맹이 떠들썩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나마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아운으로부터 더 이상의 구타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앞으로 모든 명령의 대답에 대한 구호는 충으로 통일한다. 그 자리에서 모두 뒷짐을 지고 기마자세로 대기한다. 이상.”
“충.”
칠십팔 명이 그 자리에서 기마자세를 취하자, 아운은 이심방 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약 반시진이 지났을 대 모든 서신이 완성되었다. 아운은 우종이 쓴 내용을 주욱 훑어 본 다음에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설이 너무 많군. 앞으로는 간단하게 쓰도록…….”
“충.”
우종이 벌떡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아운은 우종에게 붓을 빼앗아 들고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본 우종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아운은 그것을 대충 접은 다음, 우종이 손장순과 강환이 자백한 내용을 적은 글을 집어 들었다.
“거지.”
“추웅.”
이심방이 고함을 지르며 화살처럼 날아왔다.
“이것을 호연란에게 주고 오도록…….”
“충.”
이심방은 두 개의 서신을 들고 호연란이 있는 곳을 뛰어 갔다. 우종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운을 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여러 가지로 복잡했다. 감탄과 함께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이 세상에 서신을 그런 식으로 쓰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호연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녀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새로 금룡단의 단주란 자가 보내온 서신은 그냥 종이쪽지에 대충 써서 보낸 것 하나와 금룡단의 사대독종이 자백한 내용이 적힌 서신 하나였는데 문제는 단주란 자가 직접 써서 보낸 서신이었다. 그 내용은 정말 후안무치였고, 뒷골목의 파락호나 할 말투였다.
<호연란 계집 보아라! 네 년이 심어 놓았던 금룡단은 내가 하인으로 잘 써먹겠다. 그리고 사대독종이라고 불리던 쓰레기들은 내가 아주 치워버렸다. 모두 죽여서 무림맹 담장에 걸어 놓았으니 알아서 찾아가게 해라! 그들은 하극상에 도저히 인간으로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그것을 시킨 것은 네 년이니까 알아서 책임져라. 단, 내가 조금이라도 귀찮게 되면, 네 년에게 따로 보낸 서신이 무림맹 안에 모두 나붙게 될 것이고 나는 정식으로 장로회의에 그것을 상정시키겠다. 바로 네 년이 시킨 일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몸 잘 간수하고 있어라. 네가 네 년의 목을 비틀고 머리통을 부셔 놓을 때까지…….>
호연란이 치를 떨만한 내용이었다. 입에 거품을 물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설비향은 글 내용을 전부 읽어 보곤 안색이 침중해졌다. 새로운 단주란 자가 보낸 내용은 둘째 치고 따로 보낸 서신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고 분란이 일어날 소지가 많았다. 우선 그 내용을 변명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글을 쓴 자가 무당의 운현검 우종이고, 서신을 전한 자라 개방의 이심방이었다. 또한 그 자리엔 소림의 몽진도 있었다고 했다. 잠시 여러 가지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가슴이 섬뜩해진다.
‘이 자 굉장히 영리한 자다. 막무가내로 일을 처리한 것 같지만, 정확하게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다.’
서류를 관찰하면 할수록 새로 단주가 된 자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무림 명문의 자제들 중에서도 중량감이 있는 자들을 금룡단으로 끌어들였다 그들로 인해 금룡단은 더욱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고,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믿을 수 있는 증인들을 지니게 된 것이다. 우종이 직접 사태에 대해서 해명을 했고, 이심방이 서신을 가져 온 것은 절대 우연일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심방이나 몽진 같은 자들이 금룡단에 가입하게 된 이유였다. 그들 정도라면 명분뿐인 금룡단에 있을 리가 없었다.
사실 이심방과 몽진이 금룡단에 온 것은 가입을 거절하러 왔었던 것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아운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 이유로 감히 가입 불가 선언을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종은 거기에 휩쓸리고 만 상황이었고……. 무당의 제자와 개방의 제자라면 그것만으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호연세가가 이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려면 먼저 그들과 싸우거나 호연세가로 끌어 들어야 하는데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개방이나 무당이 만만하지도 않거니와 그들이 심성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소림의 몽진 화상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 정도의 인물들이 새로운 단주의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라면 새 단주는 이미 금룡단을 완전히 자신의 수중에 넣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불과 금룡단주로 임명 된 지 한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면 천하에 그 누구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사대독종의 사문들도 감히 금룡단주에게 따지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그들의 죄목이 낱낱이 공개 된다면 따질 명분도 없거니와 따지러 온다고 해도 눈 하나 까딱할 인간이 아닐 것 같았다. 문제는 아무리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이렇게 베짱대로 밀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존재할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 이런 자가 또 있다니, 가만 또 라고?’
상황을 정리하던 설비향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상에 이런 인간이 둘일순 없다. 그렇다면 금룡대를 간단하게 무력으로 제압하고 이 정도의 머리를 쓸 수 있는 자는 정말 무림 어디에서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만약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것은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 권왕이라면 이러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라면 호연세가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홀로 광풍사를 전멸시킨 인간이니까…….’
몸이 떨려왔다. 천하에 설비향도 권왕은 두려웠다. 연구를 하고 알면 알수록 두려운 자가 바로 권왕 아운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머리로도 예측할 수 없는 자.
“이 자는 권왕일 지도 모릅니다.”
분에 못 이겨 몸을 떨던 호연란의 얼굴이 다시 한 번 굳어졌다. 권왕이란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설비향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만약 상대가 정말 권왕이고, 그가 북궁연의 약혼자가 맞다면 정말 상황은 최악입니다. 빨리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던 호연란이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궁연, 이 창녀 같은 년, 혼자 고고한 척 하더니 몸으로 권왕을 꼬여 자기 편으로 만들었구나.”
오해가 잇을 만도 한 일이었다. 그러난 설비향은 북궁연의 성격으로 보아 그러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단순한 도움을 청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분간 북궁연과 연인처럼 행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권왕의 행보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렇다면 권왕이 북궁연의 미모에 반해서 그녀를 돕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해도 북궁연의 성격으로 보아 아직 서로 아무 관계도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
설비향의 눈이 빛났다.
무림맹이 만들어지고 지금처럼 생기있게 돌아간 적이 몇 번이나 될까? 거의 없었을 것이다. 북궁연 총사의 연인이 나타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무림앵이 뒤집어지기 직전인데, 뒤이어 터진 금룡단의 사건은 무림맹 전체를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거뿐이 아니었다. 이미 무림맹 금룡단에서 벌어진 일은 무림맹 밖을 향해 맹렬하게 번져 나가는 중이었다. 호연란이 금룡단을 이용해서 북궁세가를 궁지로 몰려고 했던 이야기가 아주 구체적으로 번져 나갔다. 물론 이는 아운이 이심방을 이용해서 밖으로 퍼트린 소문이었다.
무림맹의 외성. 무림맹의 무사들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담장 위해 네 명의 시체가 걸려 있었고 그들의 죄목에 대해서 적힌 방문이 여기 저기 붙어 있었다. 그 방문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분통을 터트렸고, 당연히 죽어도 싸다고 한 마디씩 했다. 그들의 행실에 대해서 적힌 글 중에 이미 밖으로 번지기 시작한 소문과 조합을 하면 기가 막히게 떨어지는 부분이 많아서 일의 연유를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로 인해 호연세가는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고 그동안 북궁세가에 대해서 오해를 했던 일부 일들이 시원하게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무림맹에서 각 지역을 향해 수십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갔고, 맹의 장로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대책을 강구하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무림맹의 일반 무사들은 여기저기서 환호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대독종이라면 이를 갈던 무사들이 많았고, 그들이 악행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참이라, 알게 모르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면 대외적인 체면이란 게 있게 마련이라 장로들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일이란 터지기 전에 막아야지 지금처럼 세상에 전부 알려지고 난 다음이라면 방법이 없게 마련인 것이다.
당장 상황이 난처하게 된 것은 사대독종의 사문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금룡단주에게 이를 갈았지만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호연세가에서 설득을 했고, 그들의 설득이 아니라도 죄가 너무 명백했다. 금룡단의 증인들 중엔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자들이 여럿 있었기에 우기지도 못했다. 그 외에 장로원에 올라간 보고서엔 무당의 우종과 소림의 몽진 화상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음으로서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게 했다.
점창파 장문인은 자신의 제자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세 명의 장로들과 함께 급히 무림맹으로 행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그 외에 사대독종의 사문에서도 사람들이 무림맹을 향해 출발했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이미 무림맹에 있던 그들 사문의 존장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금룡단주에게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갈았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금룡단주는 단 한 번에 무림맹 무사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최고의 여자를 연인으로 둔 자. 금룡단에서의 박력. 그 엄청난 무위. 매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모든 시선은 금룡단의 단주에게 모아졌다.
과연 북궁연을 사랑하는 이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대독종의 사문은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이고, 호연세가와 북궁세가의 대결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무인들에겐 생각만 해도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이렇게 무림맹의 대풍운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권왕을 아는 몇몇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차후 무림의 역사는 권왕이 무림맹에 들어온 시기부터 새롭게 써야 했다고 전한다.
첫댓글 시원시원^^
후련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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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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ㄳㄳ하무니다ㅎㅎㅎ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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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갑니다,
잘읽었음니다
잘 보고 갑니다
사람을 지나친 폭력으로 다스리면 언젠가 반작용이 따를수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