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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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유심시낭독회는 노혜봉 시인을 중심으로 16분의 시인이 달빛 아래 멍석을 깔았다. 유안진 선생을 주빈으로 모신 이날 낭독회는 김상미, 김연성, 노혜봉, 박무웅, 박재화, 윤정구, 윤종대, 이영식, 이정원, 정영숙, 최금녀, 최영규, 한이나, 황상순, 황인원 시인 등이 허물없는 친구들처럼 함께 모여 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한 좋은 시간이었다. 김상미 시인의 지상중계로 낭독회의 분위기를 함께 느껴보자. | |
시월의 초순이 깊어가는 6일 오후, 우리는 하나둘씩 ‘유심아카데미 세미나실’로 모였다. 보름을 며칠 앞둔 날이라 오늘은 달빛 또한 깊고 달달하리라. 그 달빛 아래에서 유안진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는 ‘유심시낭독회’를 펼칠 것이다. 유안진 선생님은 한국 시단의 큰누이, 우리가 시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이 끝나갈 무렵, 유안진 선생님은 《둥근 세모꼴》(서정시학)이라는 극서정 시집을 펴내 우리 가슴을 즐겁게 두드리고 시원하게 적셔 주었다. 시인 스스로 “이번 시집은 《거짓말로 참말하기》란 시집에서 한 발자국 더 진일보한 시집”이라고 말하는 《둥근 세모꼴》. 우리는 ‘유심시낭독회’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둥근 세모꼴》에 실린 시편들을 읽어보았다. 유안진 선생님이 직접 들려주는 ‘극서정시(난쟁이 시편들)’에 더욱 바짝 귀를 모으고 가슴을 적시기 위해서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지자 세미나실 여기저기 보이던 빈자리들이 거의 다 채워지고, 어느새 50여 명가량의 손님들이 서로 반갑게 눈인사를 나누고 있다. 정말 고맙고 고맙다. 우리는 손님들을 위해 한잔 술을 곁들인 조촐한 식탁을 준비했다. 드디어 시작종이 울리고 제1부 사회를 맡은 황인원 시인이 유안진 선생님을 소개했다. 단상 앞으로 나온 유안진 선생님은 기어코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강연을 하시겠단다. 평생을 서서 강의했더니 서서 하는 게 더 편하고, 또 키가 작아 앉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며……. 그 모습 또한 시인다운 것 같아, 아니 유안진 선생님만이 지닌 미덕 같아 죄송스러우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마도 강연을 하면서 선생님 스스로를 점검하고 싶으신 것일 게다. 우리는 모두 마음과 귀를 활짝 열고 유안진 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집중했다. (유안진 시인의 강연 내용은 309페이지 참조.)
유안진 선생님의 강연이 끝나고 이영식 시인의 사회로 제2부 ‘유심시낭독회’가 시작되었다. 시낭독은 시인의 호흡 속으로 청중을 끌어들여 시행 사이사이로 길을 내어 그 길을 함께 걸어보자고 청하는 일이다. 시낭독을 통해 시어와 시어들이 시인의 목소리와 충돌하고 듣는 이들의 귀와 충돌하여 시의 세계를 한층 강화하고 불가능했던 소통의 길을 열어 투명한 소통의 문으로 나아가고자 이끄는 일이다. 그 문을 열고 첫 번째로 필자(김상미 시인)가 자선시 〈때로는〉을 낭독했다.
아주 오래된 지도// 지구가 둥글다는 걸 몰랐던 시절의 지도// 때로는 그런 지도 위에서 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지구가 끝나는 곳이 두 눈에 보이고// 그곳으로 곧장 걷고 또 걸어가기만 하면// 그 끝에 가 닿을 수 있는// 그래서 다시는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는// 뛰어내리기만 하면//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하염없이 떨어지다// 결국// 무(無)가 되는// 무한이 되는// 때로는 그런 지도 위에서 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 김상미 〈때로는〉 전문
때로는 정말 이 지구가 둥글지 않고 네모나 세모였다면? 그래서 끝이 있다면? 그 절벽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지다 무(無)로 변할 수만 있다면. 그럴 때가 있다.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을 때가?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하염없이 떨어지다// 결국// 무(無)가 되는// 무한이 되는”. 2번째 시는 노혜봉 시인의 〈더늠〉. ‘더늠’은 판소리 명창들에 의해 노랫말과 소리가 새로이 만들어지거나 다듬어져 이루어진 판소리 대목. 제(制)라고도 한다. 노혜봉 시인은 신라 경덕왕 때 희명(希明)이 지은 향가 〈천수대비가〉(경주 한기리(漢岐里)의 여인 희명의 아들이 생후 다섯 해 만에 갑자기 눈이 멀게 되자, 희명이 분황사 좌전(左殿)에 있는 천수대비의 벽화 앞에서 아이로 하여금 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마침내 눈을 뜨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더늠’이라는 판소리 용어를 제목으로 차용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간곡함, 지혜로움과 신심함을 잘 살려내 보여주고 있다. 노혜봉 시인만이 지닌 독특한 서정시의 경지. 그 언어의 세계가 참 놀랍다!
잣집게를 들고 이승의 단단한 쇠틀에 단단한 잣 한 개를 끼운 다음 손잡이를 꽉 쥐었나이다./ 빈 탕, 빈 탕, 캄캄한 밤. 빈탕으로 잣 불을 켤 수는 없더이다./ 불끈 힘줄이 선 이마. 죽어라 진땀을 흘리며 손마디야 부서져라 이승의 마디야 부서져라 주는 힘은 무엇이오니까./ 텅 빈 방 가득 채워줄 실한 잣 한 알 나오지 않더이다./ 엄지야 집게야 풀어져라 빌고 또 비는 손가락 업보는 무엇이오니까./ 꼬깃꼬깃한 명주 속치마 잣 껍질은 보들보들한 번뇌의 꺼풀이더이다.// 무릎은 곧추고/ 두 손바닥 모으와/ 크고 토실한 잣 백 여덟 개를 골랐더이다./ 무릎을 곧추며/ 두 손바닥 모으와/ 중바늘에 잣을 똑바로 꿰어/ 천수관음전에 비옴을 두나이다.// 어화―――― 어화―――― 마음의 보자기를 뒤집어 펼치나이다./ 낳아도 낳아도 태어남이 아니라는, 보고지이다./ 죽어도 죽어도 사라짐이 아니라는, 후미지게 보고지이다./ 어화어화어화 실한 잣 한결같더이다. ― 노혜봉 〈더늠― 蒙恩寺 北壁畵를 바라보며〉 전문
3번째 순서는 박무웅 시인이다. 박무웅 시인은 탄탄한 중소기업 회사의 회장이다. 마흔 살에 시인으로 등단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시’를 믿으며 살고 있다. ‘시’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시 애찬론자이며, 시 500편 외우기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늘 자신을 ‘새로움을 찾아서 수시로 몸을 바꾸는 구름’이라며 ‘운천(雲泉)’이란 호를 사용하고 있다. “당신이 버린 사석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사석이/ 바로 나의 묘수였다”고 말할 수 있는, 티끌 모아 태산 같은 시인이다.
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바둑을 배웠다// 바둑은 두 집을 지어야 산다고 하셨다/ 이리저리 고단한 대마를 끌고 다녀도/ 한 집밖에 남지 않으면 끝이라 하셨다// 대마불사에 목을 걸고/ 집과 집, 길과 길을 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오궁도화가 만발하여 보기 좋아도/ 한순간 낙화하면 끝이라 하셨다// 세상에는 버릴 게 없다는 할아버지 말씀대로/ 사석을 모아들이며/ 한 집 한 집 키워 나갔다/ 길과 길을 만들어 삶을 이어 나갔다// 판이 끝날 때마다 모아들이는 사석이/ 당신이 버린 사석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사석이/ 바로 나의 묘수였다 ― 박무웅 〈사석(捨石〉 전문
4번째는 박재화 시인. 〈사람이 위안이다〉를 낭독했다. 아무리 사람이 밉고 싫어져도 그건 한순간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어찌 사람 없이 살 수 있겠는가. “사람에 무너지는 날에도/ 사람은 그립고/ 사람에 다치는 날에도/ 사람은 위안이다.”그리고 그 때문에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되고, 살고 싶은 곳이 되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곳이 되지 않겠는가?
살다 보면/ 사람에 무너지는 날 있다/ 사람에 다치는 날 있다// 그런 날엔// 혼자서 산을 오른다/ 해거름까지 오른다// 오르다 보면/ 작은 묏새 무리 언덕을 넘나든다/ 그 서슬에 들찔레 흔들리고/ 개미떼 숨죽이는 것 보인다// 그림자 없이 내려오는 숲속/ 순한 짐승들/ 어깨 비비는 소리 가득하여// 사람에 무너지는 날에도/ 사람은 그립고/ 사람에 다치는 날에도/ 사람은 위안이다. ― 박재화 〈사람이 위안이다〉 전문
5번째는 윤정구 시인의 〈너구동의 봄〉. 너구동은 어디에 있는 동네 이름일까? 주왕산 가는 길에 너구동이라는 동네가 있지만, 왠지 너구동은 지상에 없는 동네 같다. 나도 ‘천년을 기다린 돌멩이’처럼 너구동의 봄 햇살을 받으면 그 염력으로 병아리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을까? 윤정구 시인은 참 마음이 따뜻하고 맑은 사람인 듯하다. 발상 자체가 부활이며 환생이다.
너구동의 봄 햇살은/ 돌멩이도 움을 틔우나 보다/ 따끈해진 돌멩이 속에서/ 삐약! 삐약!/ 병아리 소리가 들렸다/ 딱딱한 돌멩이의 부화(孵化)라니!/ 천년을 기다린 돌 속의 병아리가/ 마침내 부드러운 부리로/ 돌 껍질을 두드리다니!/ 무심(無心) 속에 저리 유정(有情)한 명(命)줄을 심는/ 햇살의 염력(念力)으로/ 돌멩이 하나씩 깨어난다/ 너구동 골짜기 가득/ 햇병아리 소리다/ 날아라, 돌멩이들! ― 윤정구 〈너구동의 봄〉 전문
6번째는 아주 오랜만에 모습을 보여주는 윤종대 시인. 참 반갑다.
땅에서/ 땅을 벗어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 성분이 있다면/ 소나무는 굽이굽이 허공의 길을 오르지 않을 거다/ 새들은 다시는 땅으로 내려앉지 않을 거다/ 봄날 떨어져 바람에 뒹구는 마른 꽃잎들을 보면/ 누구도 날아서 땅을 떠날 수 없음을 알겠다/ 아무도 저 연약한, 작은 목숨을,/ 저와 같은 모습을 보고 뿌리칠 수 있는 가슴은 없다/ 내 할아버지의 메마른 꽃상여는/ 기어코 꽃으로 돌아가 한 줌 먼지로 날리는 증표였다// 봄날/ 나를 닮은 꽃잎이 하늘하늘 날린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쏟아져 나오는 화장한 얼굴들/ 다시금 뿌리로 녹아들어 비상하기를 억겁/ 아무도 이 땅을 떠날 수가 없어서/ 누구는 꽃이 되고 누구는 무지개가 된다. ― 윤종대 〈이카루스〉 전문
이카루스는 미노스(Minos) 왕의 명공 다이달로스(Daedalus)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밀랍 날개옷을 입고 태양을 향해 너무 가까이 날아올라 밀랍이 녹아내려 바다로 추락한 인물이다. 윤종대 시인은 그 이카루스처럼 아무리 날아오르려 발버둥쳐도 “누구도(아무도) 날아서 이 땅을 떠날 수가 없어서” “누구는 꽃이 되고 누구는 무지개가”될 뿐이라고 말한다. 7번째 시는 이정원 시인의 〈방사선이 띄운 달〉이다.
달빛이 흐벅졌어요// 보따리 속에 토끼뿔 감춰두었었거든요// 아무도 몰래/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밤마다 몰래 끌러보곤 하던 보따리 속에서 토끼뿔 혼자 외롭게 늙어가고 있었거든요 거미가 쳐놓은 망사커튼 뒤 대궁도 없이 꽃잎만 툭툭 뱉어내는 달꽃을 아세요? 검붉은 달꽃 꽂은 토끼뿔 본 적 있으신지/ 그 오리무중/ 달빛이 훔쳐보곤 했어요// 달빛이 얼마나 흐벅진지/ 오늘은 아예 보따리를 붙들고 놔주질 않네요// 어찌 알았을까요/ 토끼뿔 감춰둔 거/ 깊고 깊은 분화구 속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그대// 달빛이 보따리를 뒤져 기어이 토끼뿔 가져가겠다네요/ 캄캄한 뼛속을 깡그리 뒤집어놓고 마네요 ― 이정원 〈방사선이 띄운 달〉 전문
누구든 온몸에 방사선을 비추면 그 안에 사람 하나씩 숨어 있을 것이다. 이정원 시인은 그것을 방사선이 띄운 달 속의 토끼뿔에 비유하고 있다. 달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토끼뿔 형체. 시인의 가슴에 방사선을 비추면 그 안에 혼자 외롭게 늙어가고 있는 사람.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그대”. 우리는 그런 ‘그대’를 하루에 몇 번씩 꺼내보고, 집어넣고, 울고, 웃을까? 때로는 인간의 몸이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이 아닐까? 깊고 깊은 분화구 속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그대, 나 자신만이 아는 나의 분신! 8번째는 정영숙 시인이다. 정영숙 시인은 독일 베를린에서 슈프레 강을 바라보며 마신 맥주 이야기를 한다. 낯선 도시에서 마시는 맥주의 맛은 향수 때문에 회색빛이고 아리고 집시의 선율처럼 쓸쓸하다. 그래도 모두가 뒤로 되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막막한 회색빛이기에, 필쯔 맛을 찾아 슈프레 강가로 몰려든 낯선 사람들은 이미 낯선 사람들이 아니다. 회색빛은 회색빛에 섞이듯 서로의 외로움 안에 녹아들어 밤새도록 슈프레 강이 되어 서로를 위안하며 흔들린다.
가을 저녁 슈프레 강을 바라보며 마시던/ 맥주 맛은 회색빛이다/ 집 잃은 사람들의 안개 낀 눈빛이다/ 싸늘한 바람에 웅크리고 마시던 맥주 맛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고향의 하늘빛이다// 그 빛들이 알 수 없는 도시의 바람이 되어/ 슈프레 강에 배를 띄운다/ 마실수록 강물 빛이 점점 깊어지는 베를린의 저녁/ 검은 눈동자에 빠져 누룩 내 나는 필쯔*를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 회색빛이 된다/ 뒷맛의 여운이 오래 남는 필쯔처럼 가슴에 아린 사연을 지닌다/ 뒤로 되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막막한 회색빛이 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집시의 애잔한 선율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필쯔 맛을 찾아 슈프레 강가에 모여든다/ 안개 빛 눈빛의 슈프레의 밤은 깊어가는데/ 흐느끼는 집시의 기타 선율은 다리 난간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르고/ 따듯한 하늘 한 조각 찾을 수 없는 나는/ 검은 빛 슈프레 강이 되어 부서지는 유람선의 불빛을 안고/ 밤새도록 흔들린다
*필쯔(pilz) : 버섯을 재료로 만든 맥주. ― 정영숙 〈흔들리는 슈프레의 저녁〉 전문
9번째 시는 최금녀 시인의 〈물드무〉이다. ‘물드무’는 물이 귀한 곳에서 물을 저장하는 용기, 항아리 같은 것이다. 시인은 몇십 년 만에 무위도를 찾아간다. 물드무엔 늘 물이 가득 차 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시인은 퍼내도 퍼내도 또 채워지는 물드무에서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또 한 번 실감한다. 그 사랑은 물이고, 물이 가득한 물드무이고, 언제나 물길을 열어 놓고 기다리는, 내가 놓친 수평선까지 물을 재우고 있는 물 항아리 같은 섬이라는 것을.
물드무엔 늘 물이 가득했다/ 자식들이 오면 물이 모자라지 않게/ 옹배기로 길어다 부으시던/ 어머니,// 한 생애, 가없는 수평선만 넘실거렸을/ 수심 깊은 물살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볼 겨를이 없었다// 몇십 년 만에 무위도를 찾아간다/ 수평선 가득 물을 품어 안고/ 한평생 외로이 떠 있는/ 물 항아리 같은 섬,// 물길을 열어 놓고 기다리며/ 내가 놓친 수평선까지/ 물을 재우고 있는/ 섬,// 어머니를 향해 떠난다. ― 최금녀 〈물드무〉 전문
10번째는 최도선 시인의 〈이사〉이다. 시인은 눈 오는 날 고향에 아버지를 묻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이사를 했다. 아이들에겐 이사도 작은 축제일 수 있으나, 홍수로 논밭이 수몰되어 떠나는 이사는 슬픈 유랑이나 진배없다. 해를 넘기지 못한 새들이 아칸소에 가서 유성처럼 떨어져 죽었듯이. 그 이사는 수상하고 때가 없고 무겁고 제멋대로다. 시인의 눈은 그 심사를 흐르는 풍경에 담아 몇 컷의 사진처럼 예리하고, 뭉클하고, 적절하게,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담담하게 잘 포착해내고 있다.
눈발이 좀 수상하다/ 철없이 이삿짐을 싸고/ 그리고는 한랭전선을 앞질러가고/ 가서는 턱없이 짐을 풀어 놓고/ 실밥 같은 눈들이 남쪽하늘로 풀풀 풀려가 쌓이고/ 눈을 처음 본 아이들은 맨발로 성스럽게 눈을 밟는다// 바람도 손이 풀렸는지 제멋대로다/ 남회귀선을 지나는 철새들이 휘청거린다는 소식이다/ 해를 넘기지 못한 새들은 아칸소에 가서 유성처럼 떨어져 죽었다// 홍수로 논밭이 수몰되고도 아버지는 그 자리를 뜰 줄 몰랐었다/ 얼마 후 우리는/ 고향이라는 그곳에 아버지를 묻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났다// 수상한 것은 눈발만이 아니다/ 때 없이/ 개미들도 등에 하얀 짐을 지고/ 새까맣게 줄을 서서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 최도선 〈이사〉 전문 11번째는 최영규 시인. 최 시인은 산악인이다. 시편들도 대개가 등반 체험을 깊이 있게 다룬 시들이 많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안데스 산에서 쓴 연작시로 문학상도 받았다. 부드럽고 친절한 외모로 어떻게 그 험난한 에베레스트 산을 올랐는지……. 최영규 시인을 볼 때마다 산 하나를 오르는 듯 즐겁다.
매일같이 내 속에는 자꾸 山이 생긴다/ 오르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 금세 山이 또 하나 쑥 솟아오른다/ 갈곳산, 육백산, 깃대배기봉, 만월산, 운수봉……/ 내 안은 그런 山으로 꽉 차 있다/ 그래서 내 안은 비좁다/ 비좁아져 버린 나를 위해 山을 오른다/ 나를 오른다/ 간간이 붙어 있는 표식기를 찾아가며/ 나의 복숭아 뼈에서/ 터져 나갈 것 같은 장딴지를 거쳐 무릎뼈로/ 무릎뼈에서 허벅지를 지나 허리로/ 그리고 어렵게 등뼈를 타고 올라 나의 영혼에까지/ 더 높고 거친 나를 찾아 오른다/ 기진맥진 나를 오르고 나면/ 내 안의 山들은/ 하나씩 둘씩 작아지며 무너져 버린다/ 이제 나는/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다/ 나를 비울 수 있다. ― 최영규 〈나를 오른다〉 전문
12번째는 한이나 시인. 한이나 시인에게도 ‘가시’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가시’일까? 나무 가시로 사람 몸속 독가시는 물론 마음속 독가시까지 치료해준다는 발상이 참 재미있고, 재치 있고, 설득력 있다. 그리고 그것만큼 명약도 없을 듯하다.
독으로 약이 올라 한숨이 화가 되고 한이 되어 몸이 주저앉는 깊은 병이 들거들랑 생가시 나뭇가지를 가마큰솥에 오래오래 삶아 보라 아들 먼저 앞세운 스물 셋 청상 어머니의 한숨이 깊고 푸르다 누구든 그런 고질병엔 엄나무 강한 가시가 약인즉 그대여 증류된 맑은 물 같은 소주를 한 컵씩 물 마시듯 매일 마셔 보게나 세상의 가시에 찔려 죽을 만큼 아플 때는 가시나무의 가시가 약발 기가 막히게 먹혀 그대 곪은 상처 요기조기 찔러 터트려 주는 명약일진대! ― 한이나 〈가시〉 전문
13번째 낭독은 황상순 시인의 〈형상기억합금〉.
선풍기를 켜놓은 채 아내가 잠들어 있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가 브래지어 속으로 쓰윽―손을 넣다가 멈칫하고 만다/ 어라,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손이 허공을 맴돈다/ 내 젖이 어데 가고 없다! 화드득 놀라 뚜껑을 열고 살펴보니/ 삼복 날 찰떡처럼 유방은 퍼져 있고 그 위에 까만 팥고물 둘 얌전히 얹혀 있다/ 내 빵, 속 빈 봉지가 되어 버렸다! 그만 정신이 아뜩해진다/ 누가 다 먹어 버렸나, 뻥이었나 공갈이었나/ 아내는 언제부터 형상기억합금 뽕브라를 하고 있었을까/ 마른 걸레로 빈 독을 닦는 가난한 아낙처럼 허물어져 내리는 가슴 쓰다듬다가/ 허공에 형상기억합금 구조물을 세우고 시침 뚝 떼고 있었을 터,/ 뚜껑 여미고 끝내 보여주지 않았을 터/ 집에 빈 독만 덩그러니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어줍잖이 외식도 즐기고 고봉밥에 반찬 투정을 하였구나/ 열었던 뚜껑을 슬며시 다시 덮는다/ 아내가 고래처럼 푸우 숨을 토하며 두 개의 빈 단지, 소중히 안고 돌아눕는다/ 나는 황급히 형상기억합금 로봇으로 변신하여 조용히 아내 옆에 새우등으로 눕는다. ― 황상순 〈형상기억합금〉 전문
하하하, 재미있는 시다. 재미있지만 서글프다. 서글프지만 귀엽다. 뽕브라를 한 아내도, 그걸 발견하고 놀라는 남편도. 부부의 정이란 무엇인가? 물으면 이 시를 읽어 보렴, 권하고 싶다. 물론 맛있는 파전에 소주 한잔 곁들여 줄 수도 있고. 14번째는 황인원 시인이다. 황인원 시인은 《CEO 시를 알면 성공한다》와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의 저자이며 지금도 경제경영과 시를 접목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다. 모든 시 창작학과에서 시 표현법만 가르치지 말고 시 생각법도 가르치면 좋겠단다. 시는 상상력의 보고, 무한한 아이디어와 영감의 원천이므로.
문법도 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그녀를 버리고/ 홀로 돌아 온 밤이었다// 돌아 와 숨 돌리기도 전에/ 몸을 덮었던 비의 살점/ 무수히 쏟아지고/ 집안은 비의 시체로 가득한 그런 밤이었다// 고백하건대 그녀는 내 삶의 8할이었다// 세상을 거느린 푸름이/ 알몸으로 몰려와/ 아침 햇살 스며드는 이불 속으로/ 내 머리를 툭툭 건드릴 때도// 그녀의 피부는 가볍게 나를/ 감싸 안으며 거기 있었다// 작고 가볍게, 그러나 포근하게/ 밤 속의 밤으로 다가와/ 속울음의 비밀마저 지켜주곤 했다/ 그/ 슬픔 한 알// 이제 없다 ― 황인원 〈슬픔 한 알〉 전문
문법도 없이 내리는 비는 어떤 비일까? 아마도 엉망으로 내리는 비일 것이다. “그녀를 버리고/ 홀로 돌아온 밤”이니, 시인의 마음 또한 비처럼 엉망이리라. “그녀는 내 삶의 8할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2할, 과연 그것으로 남은 나날들을 잘 살 수 있을까? 그녀와 함께한 부드러운 밤은 없겠지만 하루빨리 또 다른 슬픔 한 알이 또르르 굴러 와 시인의 곁에 함께하기를! 15번째 시는 김연성 시인의 〈모르는 곳에 산다〉.
내가 모르는 곳에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슬퍼질 때/ 오랜 지병(持病)이 찾아오고/ 외로움의 본적(本籍)은 짐작할 수 없는 곳이다/ 혼자 가난해지면/ 돌아갈 주소(住所)를 찾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별의/ 푸른 심장을 향해 교신할 주파수는/ 점점 희미해지고/ 메니에르증후군으로 자꾸 눕고 싶어지는 날/ 지랄 같은 생존을 위해/ 오늘은 어떤 항체를 구해야 하나/ 최후에 뜯어먹을 한 점 빛의 혈육(血肉)도 없는데// 어두워지는 가슴 안의 적소(謫所)이거나/ 얇은 바람이 후다닥 지나간 공터 위/ 희끗한 별 하나 돋는 날이면/ 생의 바깥쪽으로 걸어가는 당신이 기우뚱 보인다// 내일 밤 폭설이 내린다/ 헛디딘 발자국소리 지워지지 않는다/ 흰 눈을 뒤집어쓰고/ 눈 속의 풍경이 가장 무거워지는 한낮,/ 별이 녹는다 설맹(雪盲)의 시야 속에/ 한 마디 전언(傳言)도 남기지 않은/ 별빛은 더 이상 지상으로 흐르지 않는다 ― 김연성 〈모르는 곳에 산다〉 전문
모두가 세상 좋아졌다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는 ‘슬픔’과 ‘지병’ ‘외로움’과 ‘가난’이 “지랄 같은 생존” 앞에서 어두워지고 기우뚱대고 발을 헛디디고…… “최후에 뜯어먹을 한 점 빛의 혈육(血肉)”도 없이 지워지고 있다. 한마디 전언도 남기지 않은 채……. 김연성 시인은 그곳을 ‘내가 모르는 곳’이라고 말하고 ‘별빛’도 흐르지 않는 곳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시인은 불분명한 시간과 중심이 아닌 후미진 불모의 변방에서 겪는 소통의 단절을, 그 단절이 주는 차가운 폭력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을 장식한 16번째 시인은 이영식 시인. 이영식 시인은 시낭독을 하기 전에 짧은 시극을 먼저 보여주었다. 〈공갈빵이 먹고 싶다〉는 이 시는 이영식 시인의 등단작이다. 참 오랜만에 읽는 시. 반갑다. 그리고 덕분에 맛보는 오랜만의 공갈빵. 속이 없어서 공갈빵이 된 빵. 하지만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며” 으름장을 놓는 이영식 시인. 공갈빵이 맛있는 건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한 덩이”때문임은 분명한 것 같다. 슬픈 것은 모두 다 그 속에 꿀 한 덩이를 지니고 있다!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해 보이는/ 빵, 반죽 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 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쪽 떼어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며/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공갈빵이 먹고 싶다〉 전문
10월의 달빛 아래에서 16명 시인들의 시낭독이 다 끝나고, 우리는 모두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시여! 시인들이여! 수고 많았습니다.
정리 / 김상미(시인)
“나는 야생 시인, 시가 좋아 시를 썼고 시인이 되었습니다.
나의 절대적인 꿈 또한 계속 시를 쓰는 것입니다.”
―유안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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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달하》 《다보탑을 줍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알고》 《둥근 세모꼴》 등 14권, 시선집 《세한도 가는 길》 등을 냈다.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다수. 소설집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다시 우는 새》 등 다수. 정지용 문학상, 한국펜문학상, 소월문학상특별상, 유심작품상, 구상문학상 수상.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내가 처음 ‘시’라는 말을 접한 건 어릴 때 할아버지께 《천자문》을 배웠을 때입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시는 이치에 맞게 써야 한다”며 두 소년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옛날에 두 아이(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가 한 촌장에게서 글을 배웠는데, 어느 서리 내린 날, 촌장이 두 아이에게 서리 상(霜)자를 주며 시를 지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부잣집 아이는 “아무리 서리 내리고 눈이 내려 봐라. 둥지가 따뜻한 새는 알을 까서 새끼를 친다.”라고 짓고, 가난한 집 아이는 “서리 오고 눈까지 내리니 집이 없는 어린 호랑이는 밤새도록 산 속에서 백수의 왕이 될 기량을 키웠다.” 라고 지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할아버지는 천자문의 한 구절인 “운등치우 노결위상(雲騰致雨 露結爲霜: 수증기가 올라가 구름이 되고, 찬 기운을 만나 비가 된다. 이슬이 맺어 서리가 되니 밤기운이 풀잎에 물방울처럼 이슬을 이룬다.)”을 언급하시면서 “시는 이치에 맞아야 한다.
두 아이의 시 중 부잣집 아이의 시는 시가 아니다. 이치에 안 맞는 시다. 새들은 절대 가을에는 알을 까지 않는다. 모든 새들은 봄에 알을 깐다. 그래야만 날씨도 따뜻하고 먹거리도 풍부해 새끼들을 잘 키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에 새끼를 낳으면 추위와 먹거리 등 모든 자연 여건이 새끼를 키우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부잣집 아이의 시는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시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 아이의 시에는 ‘초년 고생은 금을 주고 사서라도 한다’는 이치가 들어 있어 이치에 맞는 시다. 집이 없는 어린 호랑이는 얼어 죽지 않으려고 밤새도록 왔다 갔다 움직여 자기 몸에 열을 내어 겨울을 난다. 호랑이의 특성도 잘 살리고 또한 이치에도 맞아 이 시는 이치에 맞는 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할아버지의 그 말씀(시론)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우리 시들이 너무 이치(논리)에 맞지 않는 시들이 많고, 그런 시들을 좋은 시라고 평하는 평론가들이 많아 걱정스러운 데다 어딜 가나 젊은 시인, 젊은 피 타령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시는 혼자만 즐기는 작품이 아니라 다수와 만나야 하는 예술작품입니다.
예술작품으로서 ‘시다운 시’가 나와야 하는데, ‘시적인 시’를 예술성을 지닌 시라고 여기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저도 한때는 이치에 맞지 않는 시가 새로운 시라고 생각해 이치에 맞지 않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이치에 맞으면서 새로워야 합니다.
《둥근 세모꼴》은 그 위(《거짓말로 참말하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간 노력의 소산입니다. 한 개의 말 안에 두 개 이상의 중복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는 야생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론을 시 쓰기에 접목시켰습니다. 〈둥근 세모꼴〉과 〈아직도 꿈꾼다〉가 그 대표적인 시입니다.
비트겐슈타인만큼 펄펄 끓는 정오 켄터키 프라이드 인간이 되는 중이다 메밀베개 베고 엎어졌다 일어났다 시원해질까 하고 메밀꽃 메밀꽃 하는데 이효석의 메밀밭이 제 발로 달려온다 까만 세모꼴 속에 시침떼고 들어앉은 동그랗고 하얀 알갱이까지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나물까지 군침 돌더니 이마머리 자욱 핀 메밀꽃밭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가 뛰어온다 삼복여름―메밀밭. ―〈둥근 세모꼴〉 전문
춘궁기 구황식물인 메밀은 몸뚱이가 붉고, 겉은 세모꼴이지만 속에 든 알갱이는 둥글고, 성질은 차서 열을 내리게 합니다. 그리고 거친 땅에서도 잡초처럼 잘 자라고 대궁이 빨갛게 자라나는데(속은 텅 비어 있다) 그 끝에 새하얀 꽃을 피웁니다. 그 생리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시인의 생리와 너무 닮아 시집 제목을 《둥근 세모꼴》로 붙였습니다.
내 고향은 안동입니다. 나는 초등학교까지 안동에서 살다가 그 뒤 대전으로 이사와 그곳에서 여중과 여고를 다녔습니다. 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우연히 헌책방에서 《소월시초》를 사서 읽었는데 그 시들이 아주 좋아 외우고 다니면서입니다.
그러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는 왜 계절이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갈(가을) 봄”으로 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한참 생각하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김소월이 그렇게 쓰고 싶으니까 썼겠지” 하시며 무안을 주었습니다.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그때부터 질문하는 게 두려워져 모든 걸 혼자 해결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내심 이를 갈았어요. 꼭 나중에 시인이 되어 그 선생님께 복수할 거라고. 그 때문에 혼자 시를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어요. 김소월의 시 〈산〉을 읽을 때도 왜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라고 했을까 그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방귀 뽕뽕 뽕나무, 칼에 찔려 피나무, 마당 쓸어 싸리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 하시는 걸 듣고, 아! 김소월이 거리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서 ‘십리 절반 오리나무’를 썼구나 하고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나는 그렇게 자급자족, 혼자서 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하느라 시를 멀리하다가(그때는 시인보다 여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가장(家長) 역할을 해야 했으므로) 등록금이 없는 서울사대에 입학(졸업하면 초등학교 교장이 된다는 말에 현혹되어), 재학 중에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그때 박목월 시인은 “시 몇 편 좋다고 시인 시켜줄 수는 없다”라고 하시며, 이 사람이 평생 시를 쓸 것인지, 돈을 많이 벌어도 시를 버리지 않을 것인지를 판단하신 다음 등단을 결정하시는 분이셨어요.
다행히 박목월 시인께서 “유 군은 숙맥이니 시는 제대로 쓰겠다”고 하셔서, 1965년 《현대문학》에 초회 추천을 받은 뒤, 1966년 2회, 1967년에 3회 추천을 받아 시인이 되었습니다. 등단하기까지 3년이 걸린 셈이지요. 그때는 시인이 되려면 그만큼 오랜 자기 갈등과 고뇌를 거쳐야 했지요. 요즘처럼 시 10편 정도로 손쉽게 등단시키지 않았어요. 저는 10년, 15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1회 등단제도보다는 예전의 3회 추천제도가 더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 당시 박목월 시인과의 추억이 담긴 시 한 편이 〈서울살이〉라는 시입니다.
서울 천리를 와서 가랑잎 하나 줍다
*이 외줄 시는 고 박목월 시인의 일행시집에 들어 있다. 선생님께 시 공부를 하던 대학 3~4학년 때였을 듯. 한 줄짜리 내 시가 무척 당돌하다고 여기실까 봐 조마조마 가슴 조이던 내게, 오히려 선생님의 일행시집에 넣고 싶다고 하셔서, 나는 어쩔 줄 모르게 황송했는데, 출간된 시집을 주시면서, 내 시 끝에 내 이름자를 넣었더니, 출판사에서 어색하다며 지웠다고, 《나중에 유군이 외줄시집을 낼 때 빼가거라》라고 하셨다. 원효로 4가 5번지 선생님 댁과 대님도 안 맨 한복바지 차림에 흰 고무신을 끌고 나오시던 원효로 로터리의 심정다방에서, 내 습작시를 보아주시던 선생님이 그립고, 선생님 기대에 못 미치는 오늘 내가 너무 죄송스러워져, 이 짧은 시 모음집에 넣는다. ―〈서울살이〉 전문
어느새 시력 50년이 되어 가지만 나는 어릴 때 되고 싶었던(생계 책임감 때문에) 여성 판사나 교장 선생님보다 시인인 것이 좋습니다. 문창과나 국문과를 나온 ‘만들어진 시인’이 아니라 시가 좋아 시인이 된 야생시인인 것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극서정시(짧은 시)를 쓰고자 하는 것도 ‘거짓말로 참말 하려 하고, 부정함으로써 긍정하려 하고, 패배함으로써 승리하고 싶고, 넘어짐으로써 일어서려 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강인해지고 싶고, 어리석음이 지혜라고 믿고 싶고, 게으름이 중요한 일 하는 거라고 믿고 싶고, 꿈꾸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시집 맨 앞장의 시 〈운명, 조롱당하다〉와 맨 마지막 장의 시 〈아직도 꿈꾼다〉처럼, 나는 내 운명과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결코 끝나지 않을 나의 꿈, 그 절대적인 꿈은 계속 시를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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