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의 역사
민족혼에서 우러난 마라톤
열기
마라톤은 한국스포츠의 얼굴이다. 또한 마라톤에는 한국인의 얼이 담겨있다. 그러기에 마라톤은 오랜 세월을 두고
국민의 열화 같은 사랑과 성원을 받아왔고 최고,최강의 스포츠로 우뚝 선 것 이다.
1930년대의 올림픽 스타 김은배(金恩培),
손기정(孫基禎) 시대로부터 오늘의 황영조(黃永祚), 이봉주(李鳳柱) 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마라톤영웅이 탄생하고 불멸의 위업을 달성할 때마다
겨레가 환호하고 강토가 진동했다. 강인한 정신력의 소산인가, 아니면 체질적인 우수성때문인가. 어떻든 과학적인 이론으로는 풀기 어려운 저력을
마라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치 불가사의한 전설처럼-.
한국마라톤의 출발은 그 서막에서부터 열정이 넘쳐흘렀다. 일찍이
민족스포츠로 자리잡아 온 국민의 관심을 모은 것은 물론 고난을 이겨낸 불굴의 민족혼을 상징하듯 줄기찬 전진을 거듭하며 일본의 기를 꺾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동아일보가 중심이 된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 양정고보를 비롯한 학교의 적극적인 참여속에 마라톤열기는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1931년 동아마라톤의 모태가 된 경성-영등포(京永)마라톤대회가 첫 출발의 총성을 울린 지 어언 70년.우리 민족의
영광과 좌절, 환희와 분노로 점철된 칠순의 동아마라톤을 되돌아본다.
1회: 京永 가도50리-동아 대회의
효시
1931년 3월 21일.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과 함께. 대망의 레이스가 펼쳐졌다. 서울-영등포간을 왕복하는 14마일
반(50리)의 마라톤경주대회. 고려육상경기회 주최, 동아일보,조선체육회 공동후원으로 열린 이 대회가 바로 동아마라톤의 효시다. 이름하여 '제1회
마라손 경주회'광화문 동아일보 앞을 떠나 태평통, 남대문, 한강철교, 노량진, 영등포역전을 거쳐 같은 코스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첫 대회의 출전선수는 당시 국내 마라톤 왕으로 정평이 나있는 기록 보유자 이성근(李成根,백마구락부), 장거리 최강자
변용환(邊龍煥,진남포)외에 김은배를 위시한 양정고보의 주전6명등 총 14명. 당시 동아일보는 첫 대회의 장거를 소개하며 '장쾌 한
경영(京永)50리 경주, 과연 뉘먼저 다녀올가'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실었다.
조선체육회는 유억겸(兪億兼)회장 진두지휘하에 임원들이
모두 나서 이 행사를 준비했으며 각계의 지원속에 당시 서울장안의 비상한 관심을 모을 만큼 성대한 레이스가 벌어졌다.
그 결과 첫
우승의 영광은 양정고보의 간판 김은배에 돌아갔다. 기록은 1시간 22분 05초. 2위도 양정의 유해붕(柳海鵬)으로 1시간 26분 22초.
최강이라 했던 이성근은 1시간 27분 22초로 아깝게 3위에 그쳤다. 그 다음으로는 변용환, 최경락(崔慶洛), 조인상 (趙寅相)의 순. 경기가
열린 코스 연변에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나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2회: 신의주서 온 손기정, 첫 등장
2위
제2회 경영마라톤경주는 32년 3월 21일 첫 대회와 같은 코스에서 열렸다. 출전선수는 29명. 첫 대회 우승자인 김은배가
신병으로 당일 기권한 대신 멀리 신의주에서 원정 온뉴페이스 손기정의 출장이 눈길을 끌었다.
경기결과 경험이 많은 경성의
변용환(총독부)이 1시간21분54초로 대회 신기록을 수립하고 우승테이프를 끊었으며 20세의 신예 손기정은 1시간25분25초를 마크, 서울 장안의
철도국,체신국 맹장들을 물리치고 2위에 올랐다. 3위부터 6위까지는 백규복(白圭福,철도국) 황자동(黃慈童) 유준섭(劉俊燮)김병천(金丙天)이
차지했다.
3회: 손기정, 구간 신기록으로 우승
3년째인 33년의 마라톤경주는 경인가도의 보수공사로 인하여
종래의 코스를 바꾸어 광화문을 출발, 청량리를 지나 망우리에서 돌아오는 경춘가도15마일 경기로 치러졌다. 3월 21일 완연한 봄 날씨 속에
동아일보사 앞을 출발한 35명의 건각들은 새로운 코스에서 더욱 피치를 올린 끝에 지난해 2위였던 손기정이 맹장 유해붕과 끝까지 접전하다 마지막
스퍼트에서 유해붕을 따돌리고 대망의 첫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기록은 1시간 24분 03초로 구간 신기록. 유해붕은 손기정보다 27초늦은
1시간 24분 30초. 3위는 남승룡으로 1시간 26분 46초.4위부터 6위까지는 황자동 김계선(金桂善) 김두인(金斗仁). 이때 손기정은
양정고보에 스카웃되어 상급생인 남승룡 등의 리드아래 1년 가까이 체계적인 훈련을 쌓았고 마침내 정상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4회: 강한 바람을 뚫고 유창춘 1위
34년 제4회 대회는 다시 경영 코스로 돌아갔다. 3월 21일
전년도 우승자 손기정이 선수선서를 한 뒤 34명의 주자들이 강한 봄바람을 뚫고 달렸다. 레이스는 체신국 유장춘(柳長春)과 양정 손기정의 싸움으로
압축되었다. 사력을 다한 두 선수의 각축으로 모두 대회 신기록을 작성. 결국 유장춘이 1시간 20분 34초로 손기정을 25초차로 물리치고 1위로
골인했다. 3위부터 6위까지는 안삼진(安三鎭) 이종진(李鍾眞)김성학(金聖鶴)정원복(鄭元福)의 차지.
5회: 무명 이태우, "나는
해냈다"
제5회 경영마라톤대회는 대표급 선수들이 불참한 가운데 35년 3월 21일 오후 4시 여의도비행장의 교통혼잡을 피해 하오4시
광화문을 출발, 신인들의 각축으로 벌어졌다. 결과는 제2고보의 무명 신인 이태우(李泰遇)가 1시간 22분 43초로 우승했고 오동우(吳東祐)가
1시간 23분 05초로 2위에 올랐다. 3위는 1시간24분27초 를 기록한 안삼진. 4위부터 6위까지는 이종록(李鍾錄) 민화식(閔和植) 황자동이
올랐다
6회: 오동우, 첫 우승 -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7,8회 대회 무산
1936년 4월4일 열린 제6회 대회는
철도국의 오동우가 1시간20분11초로 우승하고 2위는 1시간20분40초를 기록한 이종록에게 돌아갔다. 5회 대회에서 이태우에게 22초차로 뒤져
2위에 그쳤던 오동우. 그는 초반부터 역주를 거듭한 끝에 이종록을 29초차로 따돌리고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했다.3위는
안삼진, 4위는 조수룡(曺秀龍),5위는 김덕순(金德淳), 6위는 오용성(吳龍成).
이해 8월9일(현지시각)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2시간29분19초의 기록으로 우승했으나 이 통쾌한 기쁨은 바로 경영마라톤경주의 중단이라는 비보로 이어졌다. 그 유명한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총독부로부터 무기정간처분을 당했기 때문이다.
대회 주최측은 37년 봄 7회 대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무산됐고 다시 가을에 8회
대회를 준비 했으나 끝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9회: 총독부 탄압으로 다시 중단 위기
1938년
3월 19일 열린 제9회 대회.낮12시반 이종록(배재고보)의 선수선서 등 개회식 행사를 마친 23명의 건각들은 1시 정각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을 박차고 나갔다. 출발선 부근 광장에는 1천 여 관중이 몰려 선수들에게 열띤 성원을 보냈다.이 대회에서는 신예 유관흥(劉寬興,배재고보)이
1시간 29분 09초로 2위 김국배(金國培 경성 1시간 31분10초1)를 약 2분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2위까지 대회 신기록. 3위는 배재고보의
오창준(吳昌濬)으로 1시간32분34초 6. 손기정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한 경영마라톤경주는 38년 대회이후 체육단체에 대한 총독부의 통제로
주최자인 고려육상경기회가 해체의 비운에 직면, 다시 위기를 맞았다.
10회: 동아일보사가 주최로 나서
39년
제10회 대회는 동아일보사가 직접인수, 3월 21일 전 조선육상경기협회 후원 아래 광화문-의주통-서대문4거리-봉래교-한강교-남(南) 경성역전
광장을 반환하는 새로운 코스에서 열렸다. 이 레이스에서 배재중학의 지영룡(池永龍)이 1시간28분12초의 기록으로 1위, 정순명(鄭淳明)이
1시간31분01초로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김재억(金在億).
11회: 현정효, 1위로 골인 - 대회 다시
중단
40년 제11회 대회는 3월 21일 42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의주통-한강교-남 경성역전 광장을 돌아오는 코스에서
열렸다.
이경기에서 인천의 현정효(玄正孝)가 1시간29분18초2로 2위 김국배(金國培)를 2분 여 앞서 우승했다. 3위는 윤도헌(尹道憲)
대회시상식에서 주최사인 동아일보사의 백관수 사장은 선수들에게 불굴의 정신으로 정진해줄 것을 당부했으나 이 뒤로 당국의 언론탄압이 심해지고
체육활동에도 제동이 걸리면서 대회는 다시 중단, 무려 14년간의 긴 휴식에 들어가야만 했다.
25회: 14년만에 경영 마라톤
부활 - 10위까지 대회신
해방을 맞고 6.25동란을 거치는 격동의 와중에서도 마라토너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다.
특히
전란이 터지며 마라톤열기가 가라앉는 듯 했으나 54년 동아일보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47년과 50년 보스턴 대회의 제패를 기념하는 뜻에서
경영간 단축마라톤을 14년 만에 부활시킴으로써 빛나는 전통을 이어가게 되었다. 바로 25회 대회였다.
이해 4월 18일 70명의
신세대 건각들은 불굴의 민족정신을 살리듯 새로운 꿈을 안고 달린 끝에 1위부터 10위까지 종전기록을 돌파하는 좋은 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1위는
임종우(林鍾禹,신흥대)로 1시간 23분 43초. 2위는 장홍석(張弘錫),3위는 이기환(李基煥). 이때부터는 서울육상경기연맹이 공동
주최했다.
26회: 임종우, 대회 첫 2연패
55년의 26회 대회는 자유당 정권 아래에서 주최사의 정간 등으로 일정이
미루어져 5월8일 열렸다. 출전선수는 90명으로 늘어 육군, 공군, 신흥대(경희대 전신), 양정고, 숭문고 선수들의 각축장이 됐다. 이 대회에서
임종우는 자신의 기록을 1년 만에 경신하며 우승했다. 대회 첫 2연패였다. 17마일의 새 기록은 1시간 23분 16초. 2위는 한태봉(韓泰奉),
3위는 이중엽(李重燁).
27회: 신예 한승철, 화려한 신고
신기록행진은 이듬해에도 계속되었다. 56년 4월 23일에 거행된
제27회 대회에서 임종우는 대회 3연패를 노리며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였으나 새로운 강자 한승철(韓昇哲 해병대)과 이창훈(李昌薰 양정고)에 밀려
3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의 경쟁으로 3위까지 또 다시 대회신기록을 작성했다. 우승자인 한승철의 기록은 1시간 21분 42초.
28회: 이창훈 '2위 恨' 풀다
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2시간 28분45초로 아깝게 4위에 그쳤던 이창훈이 57년
4월21일 열린 제28회 대회에서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집념과 지구력이 뛰어난 이창훈은 27회 대회에서 2위에 머문 한을 풀기라도 하듯
초반부터 역주를 거듭, 1시간20분28초의 대회신기록으로 골인했다. 2위는 한태봉, 3위는 이영희(李永熙).
이날 새벽 열린
제61회 보스턴 마라톤에서는 임종우가 2시간24분55초의 한국최고 기록으로 3위에 올랐고, 한승철이 5위를
차지했다.
29회: 신인들의 약진 돋보여
58년 제29회 대회에서는 또 다시 상위그룹의 얼굴이 바뀌었다.
대표급들이 보스턴으로 빠져나간 탓도 있지만 의외로 신인들의 성장이 빠른 편 이었다. 4월 20일 열린 이 대회의 1위는 신예
오천택(吳天澤,홍익대)으로 1시간 21분 15초. 2위는 정천권(鄭天權),3위는 채정진(蔡正鎭).
30회: 이상철, 작은
고추 매운맛
신인들의 파이팅은 놀라웠다. 59년 제30회 대회 역시 신인 중심의 레이스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키가 자그마한
이상철(李相鐵 홍익대)이 1시간20분12초로 1위를 했다. 역시 이창훈의 대회 기록을 다시 1분여 앞당기는 신기록이었다. 2위 채정진, 3위
김학균(金學均)도 모두 대학 선수들이었다.
31회: 대학강세 - 중앙대 차대만 패권
이즈음의 대학 팀은 홍익대외에
중앙대, 동국대, 신흥대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4.19의거가 일어나던 60년의 31회 대회에서는 중앙대의 차대만(車大萬)이 1시간 20분
17초로 지난해 우승자 이상철 기록에 5초정도 뒤진 채 우승했다. 2위 강용태(姜龍泰 양정고)에 이어 정천권이
3위.
32회: 홍익대 '전성시대'
마라톤의 명문 양정고의 강용태는 이듬해 홍익대에 진학,
32회(61년)대회에서 첫 우승의 꿈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강력한 선배 이상철을 2위로 밀어낸 데다 최초로 1시간 20분 벽을 돌파한
1시간19분 55초의 대회신기록을 세운 것은 대단한 성공이었다. 3위는 훗날 조폐공사 등에서 감독으로 활약한 이경환(李暻煥)이 차지했다.홍익대가
4위까지 독점할 만큼 막강했다.
33회: 1백50명 참가 - 한재덕 우승
강용태의 15마일 대회기록은 1년 만에 또
깨졌다. 33회(62년)대회에서 전년도 4위였던 한재덕(韓在德,대한중석)은 1시간 18분 54초를 기록, 종전기록을 1분1초 단축하고 우승했다.
2위는 박정래(朴正來), 3위는 이영환(李英煥). 이 해의 참가 선수는 무려 1백50명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95명이 완주했다.
34회: 김복래 1위 - 63세 유정채 마지막 골인
63년에 열린 제34회 대회에서는 상위권의 얼굴이 또 한번
바뀐다. 4월20일 열린 이 대회에는 1백40명이 참가한가운데 신인 김복래(金福來 춘천농고)가 1시간 21분 53초의 다소 쳐지는 기록으로
1위에 올랐다. 그 다음으로 강희규(姜熙奎), 차대만이 들어왔다. 74명의 완주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골인한 유정채(劉正采)는 당시 63세의
고령으로 노익장을 과시, 감투상을 받았다.
35회: 본궤도의 동아마라톤 - 풀코스 대회로
그 동안
경영(서울-영등포간)코스 등에서 단축경주로 열려온 이 대회는 64년에 이르러 국민적 여망에 부응, 국제대회와 같은 풀코스(42.195Km)로
바꾸고 명칭 또한 동아마라톤대회로 바꿨다. 지난 31년 첫 출발이후 많은 스타를 배출한 등용문, 그보다도 한국마라톤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온
‘신기록의 산실’로 자리잡으며 국내최고,최대의 대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이해는 마침 도쿄 올림픽 파견 후보 선발전까지 겸하여
그야말로 대표급이 총출동한 명실상부한 최고수준의 대회가 되었다. 4월 19일 광화문을 출발, 경인가도에서 펼쳐진 레이스에서 백전노장
이창훈(한전)은 2시간 27분 13초8의 기록으로 당당하게 우승했다. 기록은 비가 내려 다소 저조한 편. 93명의 출전선수가운데 완주자가
33명에 지나지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이 대회 선두그룹은 20km지점에서 10명, 25km지점에서 5명으로 줄었고 마지막엔 3명만
남아 끝까지 순위를 다투었다. 이창훈에 17초차로 뒤진 이명정(李明廷,단국공고)이 2위, 한재덕(한전)이 3위로 각각 골인했다.한재덕은
이명정에게 1분15초뒤졌다. 이 대회 상위 6명이 도쿄 올림픽 최종 선발전 참가자격을 얻었다.
36회: 이명정, 한국
최고기록 작성
전년도 첫번째 풀 코스 대회에서 2위에 오른 18세의 신예 이명정은 65년에 열린 이 대회에서 더욱 놀라운 스피드를
보이며 2시간 21분 21초6의 한국최고기록을 작성하며 우승, 세대교체를 예고했다. 2위인 무명 유명종(劉明鍾 춘천농고)은 당시 한국
기록(2시간21분25초)에 0.6초모자라는 아까운 기록으로 2위에 그쳤으나 새로운 기대주로 떠올랐다.63년과 64년 한국기록을 거푸 경신했던
이상훈(李尙勳 한전)은 3위로 예상보다 부진했다.
37회: 김복래, 숙원의 20분 벽 돌파
66년 제37회
대회의 패권은 다시 김복래에게 넘어갔다. 3월 13일 동아일보 앞~소사 농촌진흥청 앞 왕복코스에서 벌어진 이 대회에서 김복래(석탄공사)는 2시간
19분07초의 대기록을 수립하며 이 대회 최고기록(이명정)은 물론 그가 갖고있던 한국기록(2시간 20분 19초2)을 한꺼번에 깨뜨리며 숙원의
20분 벽을 돌파했다. 47년과 50년 보스톤대회 제패 이후 한 동안 침체했던 한국마라톤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갖게 해준 쾌거였다.
38회: 기록 경쟁 불붙다
제38회 대회에서 다시 2시간 20분을 뛰어넘는 호 기록이 나왔다. 이번에는
유명종(한전)이 수훈을 세웠다. 67년 3월에 열린 이 대회는 광화문~오류동 코스에서 열려 유명종이 2시간 19분 44초로 우승, 한국기록에는
조금 못 미쳤으나 단연 두각을 보였다. 2시간 21분 05초로 2위를 차지한 박봉근(朴奉根,해외개발)은 또 새로운 얼굴로 기대를 모았으며 3위는
이상훈이 차지했다. 무엇보다 이 대회가 풀 코스로 바뀐 뒤 해마다 새 얼굴이 나타나 기록 향상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 특기할 만 하다.
39회: 김복래, 두번째 정상 정복
동아마라톤의 영웅은 김복래. 그는 동아대회 최고의 행운아다. 단축경기
우승(63년)에 이어 풀코스에서 두 번이나 우승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68년에 열린 제39회 대회에서 그는 18분 벽 돌파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2시간 19분42초9의 기록으로 2위 이명정을 40초차로 앞서 2년 만에 다시 우승했다. 3위는
신상옥(申相玉).
40회: 중거리 스타 송금용, 마라톤에서 두각
기록 단축의 꿈은 69년의 40회
대회에서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 대회 우승자는 송금용(宋金龍 대한중석). 기록은 2시간 20분 28초였다.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도 컸지만 중거리 스타였던 송금용 같은 신예의 출현에 만족해야만 했다. 2위는 유명종으로 2시간 24분대, 3위 강명광(姜明光)은
29분대로 저조했다.
41회: 국제대회로 새 출발 - 김차환, 한국 기록 작성
동아일보 창간50주년을
맞은 1970년. 동아마라톤은 처음으로 외국선수를 초 청함으로써 국제대회로 발전했다. 이러한 비약은 지난날의 화려한 전통을 살려 다시 한번
한국마라톤의 중흥을 꾀하려는 여망에 따른 것.
처음 초청된 외국선수는 캐나다의 윌링포드와 일본의 가네유키(金行光測),
요네시게(米重 操) 등 3명. 이들은 물론 한국최고기록보다 2∼3분 빠른 한수 위의 선수들이었다. 코스도 국제 레이스에 맞게 서울운동장~의정부
왕복의 평탄한 코스로 기록단축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출전선수는 34명.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4개월 전 홍콩국제대회 우승으로 자신감을
얻은 김차환(金次煥 한전)은 일본선수를 막판에 따돌리고 40km지점이후 스퍼트, 2시간 17분 34초 4의 한국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한국마라톤이 대망의 2시간 17분대에 진입한 것이었다. 2위 송금용, 3위 조재형(趙宰衡 한일은행)도 2시간 20분 안에 들어와 한국마라톤의
희망을 부풀게 했다. 우승후보로 꼽혔던 일본의 두 선수는 14,15위였다.
42회: 조재형, 역주 1위 - 기록은
부진
71년 제42회 대회는 '신기록 산실'이라는 기대에 못 미친 제자리걸음으로 끝났다.
88명의 국내 선수들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조재형은 2시간19분15초8의 기록으로 우승했으며 2위 강명광, 3위 유명종은 22분, 23분대에 그쳤다. 이에 따라
한국최고기록 수립자를 보스턴 대회에 출전 시키려던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43회: 뮌헨 올림픽선발전
겸해
72년 봄의 제43회 대회는 뮌헨 올림픽 파견 1차선발전을 겸하여 서울운동장~의정부 왕복 코스에서 열렸다. 우승자는 41회
우승자 김차환. 그러나 그는 17분 벽을 깨지 못한 채 2시간19분34초4에 그침으로써 그의 최고기록에 2분 여 뒤떨어지는 후퇴를 보였다.
2위는 박봉근으로 24분대, 3위 박창렬은 29분대였다.
44회: 김차환, 자신의 한국 기록 경신
한국마라톤은
73년 44회 대회에서 다시 한번 도약했다. 김차환은 한국마라톤의 대들보답게 무서운 투혼과 저력을 과시했다. 그는 3년 전 작성한 자신의
한국최고기록(2시간 17분 34초4)을 훌쩍 뛰어넘는2시간17분01초F으로 그의 세 번째 우승을 장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2위 문흥주(文興柱
건국대), 3위 이종하(李鍾夏)등 신인들이 20분의 벽을 뚫고 최고기록에 접근하여 동아마라톤의 전통을 빛냈다.
45회:
문흥주, 2시간 16분 15초- 한국최고기록 수립
74년의 제45회 대회는 서울시내의 도로공사와 교통혼잡을 고려, 종암동~주내역을
왕복하는 코스로 바뀌었다. 이 대회에서 문흥주는 50여일전 조재형이 제6회 교토마라톤에서 세운 한국기록을 11초앞당긴 2시간16분15초F의
기록으로 국내 최초의 16분대 진입에 성공했다. 이 대회에서 조재형, 김차환 등 대표급 선수들이 부진, 레이스를 리드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15분대 진입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2위 김차환에 이어 우경모(禹京模)가 3위에 올랐다.
46회: 문흥주,
감격의 대회 2연패
44회 대회에서 2위, 45회 대회에서 한국 기록으로 우승했던 문흥주의 기세는 3년째에도 수그러 들지 않았다.
그는 75년의 46대회에서도 강풍으로 악전고투하는 가운데 끝까지 페이스를 잃지않고 역주, 2시간21분09초6으로 우승,대회 2연패를 이루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체구에서 무서운 파워와 스피드가 나올 수 있었는지 믿기 어려운 분투였다. 2위 황신연(黃信淵)은 23분대, 3위 우경모는
24분대.
47회: 18세 박원근, 신인 스타 탄생
76년 47회 대회는 또 한명의 신인스타가 탄생했다.
마라톤 풀코스에 처음 나선 18세의 박원근(朴元根 조폐공사)은 문흥주의 한국최고기록을 깨지는 못했으나 2시간18분20초라는 기대이상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 대회에는 일본에서 초 청된 야마다 등 총 1백27명이 참가, 성황을 이루었으며2시간40분 이내에 완주한 선수만도 19명이나
되었다.
48회: 외국선수 첫 우승
동아마라톤의 우승이 77년 48회 대회에서 처음으로 외국 선수에게 넘어갔다.
우승자는 일본의 마스다(益田豊一). 기록은 2시간 18분 40초. 2위를 한 노장 조재형이 2시간20분18초, 3위 황신연이 22분대의 부진을
보임으로써 선두를 내어준 것이다. 다만 10대 신인들의 진출이 두드러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49회:
박원근 2년만에 정상 복귀
78년의 49회 대회는 한독약품 정문을 출발, 주내 철도 건널목을 돌아오는 새로운 동일로 왕복코스에서
열렸다. 여기서 박원근은 일본 선수 3명의 견제를 뚫고 2시간19분15초8을 기록, 이 대회에서 두 번째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박원근은 일본
선수들과 신경전을 벌였으며 무엇보다 후반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기록 단축에 실패했다. 야마모토(山本)에 이어 이명호(李明鎬)가 3위를 했다.
50회: 일본선수 1,2위 차지 - 여자부 신설
동아마라톤은 79년으로 반세기를 맞았다. 제50회 대회에서도
신기록의 꿈은 무산된 가운데 2시간 17분 18초를 기록한 일본의 마쓰사키(先岐 誠)에게 1위를 내주고 말았다. 2위도 일본선수 쓰치야마가
차지했다. 한국 대표인 남인규(南仁圭)는 2시간20분52초의 기록으로 3위를 마크하는데 그쳤다.
한편 50회 대회부터 여자부를
신설, 여자10km에서 문기숙(文基淑)이 우승했고 남자고교 10km에서는 정만화(鄭晩和)가 1위에 올랐다.
51회: 마라톤
한국, 또 다시 일본에 무릎
80년대 들어 동아마라톤은 한일간의 자존심을 건 기록경쟁으로 가열되었다. 이미 70년대이후 한국마라톤이
침체기에 빠져있는데다 일본은 과학화의 성과로 한단계 앞서가고 있었다. 따라서 동아대회에서 한일의 대결 또한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80년 51회
대회를 앞두고 한국대표 1진이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갖는 등 오랜 동안의 준비로 2시간 15분대 진입 전망이 밝아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지난대회에
이어 또 다시 일본선수의 우승. 일본의 사토 스스무(佐藤 進)는 2시간16분46초인데 반해 2위인 한국의 신인 배은환(裵銀煥
2시간19분33초)과 3위 남인규는 19분대로 큰 격차를 보였다.
52회: 여자마라톤 임은주 발굴
최고 기록
경신을 기다리는 육상계의 간절한 소망은 이해에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81년 52회 대회의 참가 선수는 2백3명. 여기에는 미국, 일본에서
각2명, 여자선수 9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대회에서 신인 이홍렬(李洪烈 진로)은 2시간21분23초40의 기록으로 일본 후지와의 각축전에서
승리, 1위를 차지했으나 기록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2위 이명호 역시 21분대. 박원근의 부진(5위)이 안타까웠다.
이 대회
최대 수확은 여자부 임은주(林殷珠 조폐공사)의 발굴. 그는 국내 최초 의 30km레이스에서 예상을 깨고 2시간02분08초로 우승했다.
53회: 21개국서 40여명 참가 - 마스터스포함 7,426명 뛰어
53회 동아마라톤은 82년에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레이스로 격상되었다.53회째의 이 대회는 3월28일 KBS가 주최하는 서울국제마라톤과 함께 열렸다. 모두 21개국에서 40명의
외국선수가 초청됐으며 여기에는 탄자니아의 마송, 미국의 빌 로저스, 뉴질랜드의 금발미녀 앨리슨 로 등이 참가했다. 총 출전 선수는 국내 마스터스
부문을 포함, 7,426명이나 되는 매머드 대회였다. 경기결과 남자부 3위까지는 외국선수의 차지가 되었고 한국 대표 김종윤(金鍾允
육군3사관학교)이 2시간16분58초 로 4위(국내 1위)에 올랐을 뿐 한국선수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1위 로리 위티(호주)는 2시간 14분
33초, 2위 마송, 3위 페르손(스웨덴)은 15분대였다. 여자부도 우승자인 앨리슨 로를 비롯 4위까지 모두 외국 선수였고 한국의
안춘자(安春子)가 3시간01분50초로 5위(국내1위)를 마크했다.
54회: 잠실~성남간 전원코스 개발
규모가
커지면서 서울시내 코스에는 무리가 따랐다. 교통난도 큰 장애 요인이었다. 이에 따라 육상연맹은 83년 54회 대회부터는 잠실경기장을 출발,
성남시 운중동 정신문화 연구원을 돌아오는 전원코스를 개발했다. 그러나 새 코스에서도 신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수확이라면 22살의 신인
채홍락(蔡鴻洛 건국대)이 2시간 16분 33초로 우승한 것이다. 역대 4번째의 16분대기록을 세웠으나 18초차로 아깝게 기록경신에 실패한
것이다. 2위 조재룡(趙在龍)은 19분대, 3위 김주룡(金周龍)은 20분대. 처음으로 열린 여자부 풀 코스에서는 임은주(2시간48분13초)가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55회: 이홍렬, '마의 15분벽' 깨고 10년 한 풀다
84년은 LA올림픽의
해. 그래서 동아마라톤이 대표 선발전을 겸했다. 82년 코오롱 이동찬(李東燦) 회장이 내걸었던 한국최고기록 포상금이 여전히 유효했다.14분대에
진입하면 5천만원, 9분대 진입은 1억원. 국내 실업팀들은 겨울 내내 강화훈련에 열을 올렸다. 그 효과가 있었는지 이 대회에서 이홍렬(李洪烈
경희대)은 10년 숙원이었던 ‘마의 15분벽’을 무너뜨리고 2시간 14분 59초의 한국최고기록으로 두 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이로써 이홍렬은
마라톤 훈련기금 5천만원을 비롯 후원금 4백여만원을 받는 행운을 얻었다. 2위 채홍락도 2시간15분16초의 한국최고기록. 3위는
김원식(金元植). 여자부 1위 임은주의 기록은 2시간 39분 48초로 대회 2연패.
56회: 유재성, 아깝게 기록경신 실패
기록단축의 비결이란 따로 없다. 선수들의 결의, 그리고 상금이라는 당근과 강훈의 채찍이 있을 뿐. 85년 13분대 기록에 다시
7천만원이 걸렸다. 11분대의 일본을 따라잡기는 그만큼 힘겨웠다. 갈 길은 먼데 쉬어가는 한국마라톤. 서울아시아경기를 1년 앞두고 마음만
급해졌다. 이해 56회 대회에서는 유재성(柳在聖 한국체대)이 혼신의 힘을 다해 도전했으나 50초차로 아깝게 기록 경신에 실패했다. 우승기록
2시간 15분 48초. 2위 허의구(許義九 제일제당)는 16분대, 3위 반영만(潘永滿 진로)등 6위까지는 18분대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여자부에서는 임은주가 독주 끝에 2시간45분06초로 대망의 3연패를 달성했다.
57회: 유재성 등 3명 무더기 한국 기록
작성
서울아시아경기를 앞둔 86년 봄의 제 57회 대회. 한국마라톤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하는 풍성한 기록이 쏟아졌다. 3위까지
2시간14분대의 한국최고기록. 이러한 기록을 이끌어낸 선봉장은 바로 유재성. 그는 14분06초로 이홍렬이 세운 종전기록을 53초단축하고 2연패를
이루는 기염을 토했다. 그를 뒤쫓던 정만화(건국대)와 반영만도 역시 한국최고기록. 이로써 한국은 14분대 선수를 4명이나 갖게 되었고 13분대
진입도 시간 문제였다. 유재성이 7초차로 13분대 진입에 실패했으나 5위까지 15분대를 기록할 만큼 선수층이 두터워졌으므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세계가 7분대를 달리는 상황에서 14분대에 만족할 일은 아니었지만 유재성의 경우 12분대까지는 해볼만하다는 평가였다. 세계와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이러한 집념과 노력이 있었기에 다음해 2시간 12분대로 올라서고 5년 후 올림픽 금메달이 나온 것이 아닐까.
세계최고기록 로페스가 7분대, 일본의 나카야마가 8분대이니 한국은 하루빨리 10분대선수를 만들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러나 단숨에 3∼4분을
줄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중간목표가 12분대. 여자부에서는 김미경(金美敬 한전 2시간40분41초)이 임은주의 아성을 깨고
우승.
58회: 이종희 12분대 진입
87년 3월에 열린 제58회 대회는 마침내 12분대 진입의 기염을
토했다. 이종희(李鍾熙 제일제당)는 이 레이스에서 팀 동료 허의구(許義九), 건국대의 김원탁(金元卓)과 함께 등위가 아닌 기록경쟁을 벌인 끝에
2시간12분21초의 최고기록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3위까지 12분대, 5위까지 한국최고기록을 세우는 사상초유의 대성과를 거두었다. 불과 1년
사이에 이처럼 한국기록이 1분45초나 큰 폭으로 앞당겨진 것도 드문 일이다. 신인돌풍, 스피드시대를 맞은 한국마라톤은 10분 벽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로써 한국마라톤 상위 기록들은 거의 동아마라톤에서 작성된 것으로 훗날 올림픽 우승을 일구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자부 우승은 안영옥(安寧玉 제일제당)에게 돌아갔다.기록은 2시간41분50초.
59회: 상위 3명 10초차 승부
한국마라톤 고속화시대의 견인차 동아대회는 대망의 88년 59회 대회에서 등위가 아닌 기록위주의 선발원칙을 세워놓고 한강변 올림픽
코스에서 3월20일 일전을 펼쳤다. 그 결과 지난대회 3위였던 김원탁(동양나일론)이 최고기록에 20초미달하는 2시간12분41초로 우승하고
유재성(제일제당)은 1위와 8초차로 2위, 또 무명의 권성락(權星洛 대구은행)은 2위와 2초차로 3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되고 상위권과의 격차가 줄었음을 말해주었다. 여자부에서는 이미옥(李美玉 산업기지)이 2시간33분14초의 대회기록으로 첫 우승하면서 대회
5연패의 시동을 걸었다. 김원탁과 유재성은 이 해 서울 올림픽에 나가 세계의 벽에 도전했으나 18위(김원탁 2시간15분 44초)와
31위(유재성)의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60회: 기록 부진 '늪' 못 벗어나
대회 환갑을 맞은 89년에는 올림픽
쇼크 탓인지 기성 선수들이 부진했다.유재성 김원탁 이종희 등 베테랑들이 출전했으나 유재성만 겨우 3위에 입상, 체면치레를 하는데 그쳤다.한가지
위안거리를 든다면 신인 임정태(林政泰 2시간15분18초 )와 이경식(李慶植 한국체대)이 각각 15분대의 기록을 보이며 1,2위를 차지한 것
정도다. 여자부에서는 이미옥(수자원공사)이 2시간39분27초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61회: 김완기, 11분대 진입 -
기록경쟁 촉매제
침체의 늪에 빠진듯하던 한국마라톤은 90년 신인스타의 탄생과 함께 부활했다. 마라톤 풀코스에 처음 도전한
김완기(金完基 코오롱)는 61회 대회에서 한국기록을 3년 만에 47초앞당기며 처음으로 12분 벽을 넘어섰다. 2위 김원탁, 3위 허의구도
11분대 진입에 성공했다. 이들의 마지막 각축은 드라마틱했다.골인지점을 앞두고 김완기는 4번이나 선두를 주고 받으며 마지막 3백m를 남겨 놓고
추월에 성공, 2시간11분34초로 우승했다. 김완기의 등장은 한국마라톤의 기록경쟁에 촉매제가 됐고 결국 92년 황영조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우승의
밑거름이 됐다. 여자부에서는 이미옥이 88년 이후 내리 3연패했다. 기록은 2시간 37분16초.
62회: 황영조, 풀 코스
첫 도전 3위 입상
91년 62회 레이스는 김재룡(金在龍 한전)이라는 새 스타를 탄생케 했다. 기록은 다시 1분을 후퇴, '마의
10분 벽'을 넘는데 실패하고 말았지만 2위 이창우(李昌雨 코오롱), 3위 황영조(黃永祚 코오롱) 역시 12분대의 좋은 기록을 냄으로써
판도변화를 예고했다. 특히 여기서 주목을 받은 신인은 단연 황영조였다. 훗 날 올림픽, 아시아경기를 제패한 90년대 최고의 마라토너로 평가되는
황영조는 이때부터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 대회의 1위와 2,3위의 기록은 1초차로서 박빙의 명승부가 연출됐다. 여자부에서는 이미옥이
2시간41분43초 로 대회 4연패에 성공.
63회: 김재룡 김완기 1초차 명승부 - 9분대 진입
동아마라톤은
92년 들어 기록 작성을 촉진하는 자극제로 공식 상금제를 도입, 총상금 5천만원을 걸었다. 이미 코오롱이 14분대 5천만원, 9분대 1억원을
내건 뒤 또 하나의 보너스였다. 또한 이 대회부터는 서울의 교통혼잡을 피해 장소를 춘천 의암호 순환코스로 바꾸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의 운영이
효과를 보았는지 이 대회에서 국내 첫 9분대진입이라는 열매를 거두었다. 여기서 김재룡과 김완기는 각각 2시간9분30초와 31초의 1초차 승부로
1,2위를 차지,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4위까지 11분대의 대회신기록. 김재룡 김완기는 이 대회에서 올림픽 출전 티켓을 획득,
한국최고기록(2시간 08분 47초) 보유자인 황영조와 함께 그 해 8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리고 황영조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2시간 13분 23초 로 일본 모리시타를 제치고 대망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6년 손기정 이후 두번째, 해방 후 첫번째의 마라톤 제패였기에
그 감격은 각별한 것이었다. 이러한 쾌거야말로 동아마라톤과 같은 오랜 전통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여자부에서는
이미옥(2시간36분44초)이 5연패의 위업을 일구어냈다.
64회: 김완기, 경주 코스에서 대회신
동아 마라톤
대회는 93년 춘천에서 다시 경주로 코스를 옮겼다. 한국기록은 물론 세계 최고 기록 경신을 목표로 오르막이 적고 주변경관이 뛰어난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국제육상경기연맹도 표고차가 거의 50m이내인 이 환상의 코스를 공인했다. 첫 경주대회에서 김완기가 대회신기록이자 국내대회 최고기록을
수립하며 3년만에 패권을 되찾았다. 기록은 2시간 09분 25초. 후반 경쟁자가 없어 더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2위 형재영(邢在英)은
12분대, 3위 허의구는 13분대. 여자부에서는 정영임(鄭英妊 코오롱 2시간45분52초)이 첫 우승했다.
65회: 본격
국제대회 - 국내 첫 마스터스부문 신설
대회 장소를 천년 고도 경주로 옮긴 주최측은 94년 제65회 대회부터 국제 규모로 대회를
승격, 세계 유수의 마라톤 이벤트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94 동아국제마라톤대회 겸 제65회 동아마라톤대회에는 93년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인
마크 플라체스(미국)를 비롯 베를린 마라톤우승자 호릴리 야와(남아공) 등 세계적 선수들을 대거초청, 12개국 97명이 참가했다. 동아마라톤의
국제대회 승격은 동아마라톤 꿈나무재단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경기 결과 마뉴엘 마티아스(포르투갈)가 2시간 08분 33초로 김완기(코오롱)를
1초차로 앞서 우승했다. 김완기는 한국최고기록을 작성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3위는 이시드로 리코(멕시코)에게 돌아갔다. 국내대회
여자부에서는 이미경(李美京 코오롱)이 2시간35분44초로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마스터스 부문(하프 코스)이 신설돼
1백74명이 참가했다.
66회: 이봉주, 외국 강호 꺾고 스타 반열에
이 대회가 국제대회로 정착한 95년
66회 대회에서는 차세대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이봉주(코오롱)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8개국 95명이 참가한 이 레이스에서 이봉주는
2시간 10분 58초로 2위인 네루카(영국)를 5초차로 제쳤다. 3위는 94년 세계랭킹 2위인 에스피노자(멕시코), 4위는 마티아스(포르투갈).
여기서 세계 강호들을 따돌림으로써 자신감을 얻은 이봉주는 이듬해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예상을 뒤엎고 은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봉주
시대는 95년을 시발로 하여 96년 올림픽 준우승과 98년 아시아경기 우승, 그리고 2000년 2월 한국최고기록 경신까지 이어져 또 하나의
스타로 각광받았다. 국내대회 여자부에서는 이미경(2시간38분08초)이 2연패했고 마스터스 부문(풀 코스)에는 1백62명이 뛰었다.
67회: 마틴 피즈, 시즌 세계 최고기록 수립
96년 세 번째의 동아국제마라톤대회는 시즌 세계 최고기록
수립의 성과를 거둔 가운데 '95세계육상선수권대회 우승자 마틴 피즈(스페인)와 이봉주가 1초차로 1,2위를 가리는 명승부를 펼쳤다. 이봉주는
2시간 08분 26초(대회신)로 한걸음 뒤져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3위는 9분대의 마티아스(포르투갈)에게 돌아갔다. 올림픽2연패에 도전하려던
황영조는 발가락 부상 등으로 부진, 29위에 그쳤다. 황영조는 이날의 충격으로 끝내 은퇴하고 말았다. 김완기, 김이용(金耳鎔 건국대)이 각각
4,5위를 마크. 이 대회 국내 상위 3명인 이봉주 김완기 김이용은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했다. 국내대회 여자부에서는 오미자(吳美子 쌍방울)가
2시간30분09초로 9년 만에 한국최고기록을 갈아 치웠다. 함께 벌어진 마스터스 부문(풀 코스, 10km, 5km)에는 77세 노인부터 9살
꼬마에 이르기까지 일반인 7백81명이 출전, 고도 경주를 원색의 물결로 수놓았다.
68회: 아벨 안톤, 악천후 속 1위에
올라
'97동아국제마라톤에서는 6위까지 모두 외국선수가 차지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악천후 속에서 아벨 안톤(스페인)은 2시간
12분 37초의 기록으로 우승했고 스페인, 포르투갈, 케냐 선수들은 이봉주(13위) 등 국내 선수들을 완전히 제압했다. 국내대회 여자부문에서는
방선희(方善姬 울산시청)가 2시간43분40초 의 저조한 기록으로 1위에 올랐다. 이 대회 마스터스 부문은 풀 코스, 하프 코스, 10km,
5km 등 4개 분야로 확대한 결과 1천8백82명이 참여, 본격적인 매스 마라톤 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다.
69회: 7천여명
참가 - 본격 매스 마라톤 시대 개막
94년부터 국제대회를 치러온 주최측은 97년 12월에 닥친 IMF의 한파로 대회를 국내
규모로 축소해야 했다. 98년 3월29일 경주에서 열린 제69회 대회에는 국내 선수들만 참가, 김이용(코오롱)이 2시간12분24초로 1위에
올랐고 백승도, 장기식이 2, 3위를 차지했다. 여자부 1위는 오미자(익산시청)로 기록은 2시간37분16초 . 이날 경주는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운 날씨여서 선수들이 기록단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대회 마스터스 부문에는 풀 코스, 하프 코스, 10km, 5km 등에 모두
6천9백31명이 참가, 공전의 성황을 이루었다.
70회: 참가자 1만명 돌파 - 형재영 대회 첫 우승
99년
3월21일 열린 제70회 대회는 마스터스 부문에 한국 스포츠사상 단일종목 대회로는 처음으로 참가자가 1만명을 돌파, 1만1천3백3명(풀코스
1,413.하프 1,576. 10km 3,314. 5km 5,000명)이 뛰었다. 이 때문에 대회의 안전 등을 고려, 출발과 골인지점을
경주시민운동장에서 98세계문화 엑스포 행사장 앞 도로로 옮겼고 코스도 경주 도심을 통과하도록 재조정, 국제육련의 공인을 받았다. 남자 83명
여자 22명이 참가한 등록선수 부문에서는 형재영(조폐공사)이 2시간11분34초 로 남자부 1위로 골인했고 오성근(코오롱 2시간12분00초)과
장기식(한전 2시간13분28초 )이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여자부에서는 오정희(吳貞嬉 코오롱)가 2시간35분11초 로 우승했고
윤선숙(도시개발공사 2시간41분58초)과 박용애(구미시청 2시간42분18초 )가 뒤이어 골인했다.
71회: 새천년 맞아
서울 도심서 개최
동아마라톤 70년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대회였다. 새로운 천년의 시발점인데다 동아일보 창간 80주년,
동아미디어센터 준공 등을 기념해 코스를 서울로 옮겼고 3년만에 국제대회가 부활됐기 때문이다. 2000년 3월19일 오전10시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을 떠나 잠실 주경기장에 골인한 이 대회는 99년 세계선수권에서 대회 2연패를 한 스페인의 아벨 안톤 등 67명의 등록선수가 참가했으나
21세의 신예인 정남균(丁南均 한국체대)이 뜻밖의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기록은 2시간11분29초 . 2위는 스페인의 디에고
가르시아(2시간11분48초)가 차지했다. 15명의 국내선수가 참가한 여자부에서는 박고은(朴高恩 한국수자원공사)이 종반 오미자(익산시청)를 추월,
2시간33분06초로 우승했다. 마스터스부문은 풀 코스와 하프코스 2개 부문만 개최했는데도 8천5백18명(풀코스 3,058,하프코스 5,460)이
참가, 마라톤에 대한 일반의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72회: 무명의 벰베 3초차 대역전 우승... 여자부도 국제대회 승격
2001 동아 서울 국제마라톤 겸 제72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는 무명의 조시아 벰베(남아공)가 예상을 깨고 2시간11분49초로
우승했다. 3월17일 전년도에 이어 광화문~잠실 주경기장 코스에서 벌어진 레이스에서 벰베는 결승선 2백여m를 앞두고 96애틀랜타 올림픽 우승자인
조시아 투과네(남아공)를 추월, 3초차의 대역전극을 펼치며 1위로 골인했다.3위는 2시간11분55초를 기록한 일본의 미키 히로시(三木
弘).한국은 김이용이 2시간12분19초로 6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2001년부터 국제대회로 승격, 한국 일본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참가한 여자부에서는 한국의 윤선숙(尹善淑 도시개발공사)이 2시간32분09초로 1위에 올랐으며 에티오피아의 아베바 톨라는 2시간32분58초로
2위를 차지했다.
마스터스 부문은 국내 처음으로 선착순 마감 시스템을 도입, 10,786명(풀코스 4,433 하프코스 6,353)이
참가했으며 풀코스는 제한시간(5시간)내에 3,589명(남 3,462 여 127)이 완주했고 하프코스도 제한시간(2시간30분)내에
4,754명(남4,316 여 438)이 골인했다.
73회: '월드컵 성공 기원' 마라톤 축제 .. 후지타(일본),
웨이야난(중국) 남녀부 우승
2002년 3월 17일 열린 2002동아서울국제마라톤대회는 월드컵 축구대회 개최를 기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32개국 대표 등 국내외 1백2명(남88, 여21)선수들이 참가, 남자부에서는 아시아 최고기록(2시간06분51초) 보유자인 일본의
후지타 아쓰시(藤田敦史 25 후지쓰)가 2시간11분22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2위는 2시간11분42초의 카멜 지아니 후아시시(30
스페인), 3위는 자신의 최고기록을 4초 앞당긴 한국의 임진수(林眞洙 24 코오롱 2시간12분41초)에게 돌아갔다.
여자부에서는
중국의 웨이야난(魏亞楠 21 인민해방군 소위)이 2시간25분06초의 기록으로 국내 대회 여자부 최고기록을 세우며 1위로 골인했다.
2위는
한국의 오미자(吳美子 31 익산시청 2시간33분13초).
3위는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한 신예 정윤희(鄭允喜 19 도시개발공사
2시간33분22초)가 차지했다.
이 대회는 한국 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TV 아사히와 중국 CCTV 등 외국방송사가 실황을
중계했다. 마스터스 부문은 풀코스에만 12,075명(남11,371명 여704명)이 참가, 제한시간 5시간이내에 7,317명(남 6,971명
여346명)이 완주했다. 하프코스는 72회 대회를 끝으로 폐지했다.
74회 : 가슴 졸였던 1초의 승부... 거트
타이스(남아공), 장수징(중국) 남녀부 우승
막판 1초가 아쉬웠던 한판이었다. 3월16일 봄비 속에 열린 2003 동아서울
국제마라톤 겸 제74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한국마라톤의 차세대 유망주 지영준(池永駿 22 코오롱)이 2시간08분43초를 기록, 남아공의 거트
타이스(32 2시간08분42초)에 이어 아깝게 2위에 머물렀다. 역대 국내대회에서 2시간 8분대의 기록이 나오기는 94년과 96년
동아국제마라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3위는 케냐의 지미 무인디(29 2시간08분53초)가 차지했다.
여자부에서는 중국의
장수징(張淑晶 23)이 2시간23분18초로 대회최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 중국의 이 대회 2연패를 이끌었다. 2위는 이디오피아의 워르크네시
톨라(23 2시간25분42초), 3위는 한국의 최경희(崔慶姬 21 경기도청 2시간30분57초)에게 각각 돌아갔다.
13개국
113명의 건각이 참가한 가운데 대회사상 처음으로 오전8시에 출발한 이 대회는 한국의 KBS, 중국의 CCTV, 일본의 TV도쿄가 중계에 참여,
2년 연속 3개국이 중계하는 아시아 유일의 마라톤 이벤트로 기록됐다. 한편 8,219명(남7913, 여306)이 참가한 마스터스 부문에서는
남자부의 김형락(金炯洛 40 창원마라톤클럽 2시간25분34초) 여자부의 문기숙(文基淑 45 주부 2시간50분02초)씨가 각각 이 부문 국내
최고기록을 세우며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4시간30분의 제한시간 내 완주자는 6,972명(남6725,
여247).
출처 : 동아마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