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밭목 산장 떠난 민병태 산장지기
폐허 된 대피소 정비해 85년 정착
지리산 천왕봉(해발 1915m)에서 4㎞쯤 떨어진 치밭목 산장(해발 1425m).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전화도 없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하지만 31년간 이곳을 지켜왔다.
지난 1일로 국립공원관리공단과의 산장 임대계약이 만료돼 산장지기를 그만둔
민병태(60·사진) 대장 얘기다.
지리산 대피소(산장) 8곳 중 그동안 피아골·치밭목 산장만 민간인이 운영했다.
나머지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지킨다.
지리산에서 가장 오랜 기간 산장지기를 한 그는 ‘지리산 터줏대감’이다.
지금의 치밭목 산장을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넉넉하고 평온한 어머니 품 같아서”
지리산을 좋아한 그는 1985년 4월 산에 올랐다.
당시 치밭목 대피소는 철근콘크리트 뼈대만 남았을 뿐 폐허나 다름없었다.
71년 건립됐으나 72년부터 산장지기를 두지 않아 나무침상과 출입문, 창문틀 등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추위를 피하려던 등산객들이 목재를 하나 둘 빼내 불을 피운 때문이다.
그는 산악회 회원들과 청소하고, 페인트 칠을 하고 목재를 사들여 창문· 출입문 등을 달았다.
목재 등은 동료 회원들이 일일이 힘든 등산로로 져다 날랐다.
비용은 회원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했다.
제법 그럴듯한 모습을 되찾은 85년 11월 산장 개장식을 했다.
그 길로 산을 좋아하던 아내와 함께 그는 산장에 눌러앉았다.
산에 오르기 전 회사원·교사·직업군인 등을 한 그였다.
민씨는 “당시 등산로 입구의 아랫새재마을 집 한 채가 15만원 정도였는데,
동네를 사고도 남을 2000만을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 산장을 정비했다”고 기억했다.
조난객을 구조하고 등산객에게 음식을 팔거나 숙소를 제공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구조한 조난객만 100명은 된다.
구조된 등산객이 다시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할 때는 뿌듯했다.
매일 화장실 등 주변을 청소하고, 겨울철 새벽에는 샘물이 나오는 쇠 파이프를 녹여
물길을 뚫어 놓아야 했다.
폭우에 쓸려버린 등산로·이정표를 고치기도 했다.
주변 나무 등을 해치는 등산객은 가차없이 꾸짖어 ‘성질 더러운’ 산장지기로 소문났다.
“남들은 신선 같은 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고된 산 생활이었다”며 그는 웃었다.
라면 등을 팔아서는 생계가 막막해 아내는 결국 2년 만에 하산했다.
아내는 진주에서 직장 일과 장사 등을 하며 아이들을 돌봤다.
1년에 서너 번 하산해 가족을 만났을 뿐 그는 가족의 생계를 내팽개쳤다.
“산장이 평생 터전이 될 줄 몰랐다”는 그는 “나 혼자는 재미있게 살았을지 모르지만 아내와 두 딸은
나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고 털어놓았다.
하산 열흘이 안돼서일까 아직은 등산객이 걱정이란다.
“지리산은 연중 50% 이상 악천후가 생겨 조난 시 생존율을 높이려면 플래시, 비상식량과 물,
저체온 방지를 위한 방풍 재킷을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폐쇄된 치밭목 산장을 내년 1월 현대식으로 재단장해 문을 열 예정이다.
- '호남 항일의병들의 발자취' 산행 후 삼정마을 벽소령 촌부에서 '一丁 민병태' 대장님과 함께_2022년 6월 12일 -
첫댓글 내일 산행 시작 전에
민대장님을 중산리에서 만나
국립공원박물관에 전시될 사진을
전달하게 됩니다.
그 연장선에서
2016년 게시물을 다시 음미해봅니다...^^
옆어진골 잘단려오시고 긴지리을 우정으로 함께 하신 두분 멋집니다
글구 ㅡ귀중한 소장품
《지도》 전달되어 기쁘겠네요 ~^-^
@동부능선 대장님의
뜨건 응원덕분에!
국립공원박물관에 전시될
민병태 대장님께 지리산全圖를 전달하고서..
자빠진골로 시작해
일출봉에서 멋진 조망을 즐기고..
백운암능선의
어마무시한 산죽을 헤친 다음에
백운암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왔슴돠.
함께해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동부능선
@유목민
소중한 소장품을 기증하시니 좋은일이라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것 같습니다
● ㅡ멋집니다
@동부능선 그저!
허접한 것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서
각별한 뜻의 방점을 해주심에..
크게 감사드림돠,
동 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