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관한 시모음 28)
2월의 숲 /김형태
골마다 자욱한 고요
칼바람이 사체들의 사이로 남은 영혼을 실어나르고 막 도착한 소소리바람은 왕버들 잎눈에 들숨을 부어준다
표정을 잃은 숲은 살아있지 않은 듯 보였지만 박새 몇 마리가 드나들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아직 맥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고목의 씨앗은 새로운 봄을 만들고
켜켜이 쌓인 허물이 거름이 되어
죽은 것이 산 것을 일으켜 세우나니
들어보라!
창백한 바위에 흐르는 실핏줄의 맥박소리를...
다람쥐가 먼저 깨어서 종을 두드린다
이월의 마감 /임재화
어느새 삼월이 다가오네요
흐르는 세월을 그 뉘라서 막을 수 있을까요
돌이켜보니 한순간인데
또다시 이월을 마감하는 오늘입니다.
요즘처럼 하루 또 하루가
이런저런 사연을 보듬어 안고서
그저 아무런 말 하나 없어도
쉼 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느껴집니다.
이 땅에서 누구나 원치 않아도
버거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서민들은
날마다 전해지는 소식에 감염된 지식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모처럼 마음을 추스르고
하던 일 잠시 멈추고 쉬는 이 시간
또다시 새로운 용기가 샘솟습니다.
이월이 /自我 진태원
다리 짧은 2월이
찬 겨울 길을 외로이 홀로 걸어서
손끝 놓지 않고 봄을 데리고 오는 2월이
시간이 걸려도 노록(勞碌)한 종종걸음
디딘 자국마다 흰 설 녹이며 포근히 밟는다
마중 나간 길목에 얼음아
아무리 얼어봐라. 이렇게 나
2월이 오는 길, 미끄러지지 않게
정 하나 들고 깨뜨리려니 시린 손이 얼겠는가
땀내가 배어들며 추위에 견디어 지친 다리 털썩
2월이 내 곁에 와닿을 때 내 남은 눈물 쏟으며
손이 발이 되고 발이 손이 되어 서로
'고생했다' 사랑스레 포옥 얼싸안으리.
미미-2023년 2월 4일의 일기 /김상미
창문을 연다. 입춘이다. 오늘은 미미를 만나는 날. 미미는 어릴 때부터 함께한 유일한 내 친구. 미미는 나에 대한 모든 걸 알고, 나는 미미에 대한 모든 걸 알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걷다, 걷기, 걸어 다니는 것. 그 단어에 환호하며 그 단어에 심호흡하며 우리는 함께 행복의 나라, 슬픔의 나라, 분노, 그리움, 공포의 나라 등등 안 가본 데가 없지.
그 길은 마음 먹기에 따라 기분에 따라 아주 멀기도 하고 아주 가깝기도 하지.
오늘도 우린 무작정 걷기 위해 만났어. 끊임없이 걷는다는 건 여행과는 달라. 여행은 자신을 그 장소에서 부재시켜야만 풍성해지지만 걷는다는 건 자신과 장소가 함께해 대부분 편안하고 풍요로워. 우린 걸으면서 가슴에 간직한 질 좋은 예술들을 서로 나누기도 하고 자연으로 되돌려주기도 해. 때로는 말없이 신나게 달리기도 해. 하지만 요즘은 나이 때문인지 헉헉헉 가빠지는 숨소리가 너무 가엾어져 많이 달리지는 못해.
저 오동나무 아래서 잠깐 쉬자. 미미가 가방에서 커피 보온병과 컵 두 개를 꺼냈어. 우리는 커피에 살짝 계핏가루를 뿌렸어. 달콤한 계피 냄새는 우리의 덧없음과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산 책들의 비밀스러운 풍경을 떠올리게 해주거든.
오늘이 입춘이니 곧 봄이 오겠네.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라일락이 차례 차례로 피겠네. 매일매일 새롭게 떨리는 기대와 놀라움과 다정함. 그 새로운 갈망의 즐거움을 아직도 우리가 함께 나눠 가질 수 있다니, 건배! 우리는 커피잔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었어.
그래, 미미야! 내게는 네 이름만큼 큰 감동, 아름다운 봄날은 없을 거야. 우린 쌍둥이좌. 우리 너머에 우리가 걷는 이 길 너머에 헤아릴 수 없이 좋은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나라가 있다 해도, 나는 너에게 눈이 먼 채로 이곳에서 용감하게 죽고 싶어. 네가 없으면 함께 걷는 길도 없어지고, 모든 길 위에서 길도 없이 나는 얼마나 슬프고 공허해질까? 생각만 해도 으스스해져 나는 미미의 손을 꼬옥 잡았다.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그 안에 모두 내밀히 포개어져 있는 소중한 내 친구의 손!
2월 편지 /윤보영
고맙다 2월!
네 존재를 잊고
바쁘게 지냈는데
벌써 오늘이 2월 마지막 날
아쉬워 돌아보니
2월 너는 역할 다 했다
입춘과 우수가 2월에 있었고
설날도 2월에 있었다
갑자기 내린 눈으로
고생도 했고
추위로 사람들이 힘들어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봄으로 가는 과정
2월 너는
눈과 추위로 산과 들에
새싹이며 꽃눈을 만들었겠지
이제 잠시 후면
네 역할이 꽃으로 피는 3월!
그 꽃을 미리 들고
고마움을 전한다
잘 가라 2월!
내년 2월에는
좀 더 성숙한 나를 보여줄게
그때 다시 보자
안녕!
여보 2월에는 우리 /박의용
여보
2월에는 우리
이렇게 살아요
다른 것보다 오직
우리 둘만을 생각하는 달이 되어 봐요
세상 살 만큼 살아 보니
뭐니뭐니 해도
나를 진정으로 끝까지 위하고 함께 할 이는
오직 당신뿐 이라는 생각이 드오
자식도 품 안의 자식이고
부모도 먼저 가시니
남은 건 우리 둘 이잖아요
여보
2월에는 우리
이렇게 살아요
젊을 때의 불 같은 사랑은 아니더라도
그동안의 정으로
서로를 위하고 품어주는 그런 따스함으로
2월의 꽃샘 추위를 견디어 가요
사랑은 세월이 가면 식어 지기 마련이지만
정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법
여보 우리
사랑보다는 정으로 우리 사이를 훈훈하게 채워가요
여보
2월에는 우리
이렇게 살아요
젊을 땐 치약 꼬다리까지 짜고 파며 쓰듯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이젠 여유로움을 갖고 살아요
가진 것 비록 적지만
자식에게 이웃에게 나눔을 주는 훈훈함으로
우리 자신도 훈훈함을 느끼도록
마음 따뜻하게 살아요
여보
2월에는 우리
이렇게 살아요
말 한마디가 상대의 기분을 좌우하니
따뜻한 말
격려가 되는 말
위로가 되는 말
그런 말들로 나와 관계되는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요
그래요
추운 2월에도 우리 맘의 훈훈함으로 따뜻함으로
우리 그렇게 살아요
2월을 보내며 /윤보영
2월 한 달
무얼 하며 보냈지?
뚜렷이 기억나는 게
없는 걸 보면
한 달 내 바쁘게 보낸 것이 분명해.
하지만 다행인 건
바쁜 12월도 그랬고
더 바쁜 1월도 그랬듯
그대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
그 생각에
바쁜 일상이
바쁜 줄도 모르게
웃으면서 지나갔다는 것!
고맙다 2월 /윤보영
내 앞에 웃고 다가선 2월!
늘 그랬듯 한 달내내 바쁘고 힘은 들겠지만
지치지 않고 멋진 시간으로 채우겠지요,
저절로 나오는 웃음으로 의미 있는 한 달이 되어
내 멋진 1년을 만들 주춧돌이 되겠지요.
그런 2월을 보듬고 2월 속으로 들어섭니다.
사랑한다 2월
고맙다 2월!
내 친구 2월 /윤보영
2월이 가고 있습니다
가고 있는 2월을 다시 보니
억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3월을 불러오겠다며
기분 좋게 가고 있습니다.
비록 짧은 달이었지만
봄 맞을 준비로 분주 했고
설날까지 있어 바빴을 2월!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손잡아 주었습니다.
이제 곧 3월이 되면
2월이 있었기에, 튼튼한
3월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더 의미 있게 보내겠습니다.
2월이 가고 있습니다
가는 2월에게
다시 한번 잘 가라고 인사했더니
곁에 다가와 깃속말을 합니다
“나 친구 해도 되지?”
그래
내 친구 2월!
잘 가라.
2월의 시 /김형태
기별은 있었지만
드는 기척조차 없다
고드름도 낙수 되어
대지를 적시는데
갈까 말까
재 넘는 꽃 바람
산등성이에 걸렸구나
흰 눈을 머리에 이고
동백,
시린 가슴에 핏물이 든다.
2월의 햇살 /여니 이남연
어린아이 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2월을 맞는다
아직도 찬바람 때문에
옷깃을 여미지만
마음속에는 벌써 봄이다
햇살이 가득한 낮 시간에
햇볕을 쬐는대
아지랑이와 함께
봄 내음이 코 끝을 유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