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불청객(2)
“용문산이라……. 대단하군.”
끝도 없이 이어진 웅장한 산세 앞에서 경이로운 표정으로 서 있던 마대위가 중얼거렸다.
곁에 있던 북궁웅비도 마대위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천하에서 가장 긴 산맥이지. 여기부터 음산산맥이 시작되는데 산맥 남단을 따라 2달은 족히 가야 천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을 거네.”
순간 마대위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휴! 2달이라…….”
별안간 말에서 내린 마대위는 풀밭에 벌렁 드러누웠다. 이 모습을 본 북궁웅비가 실소를 흘리며 말에서 내렸다.
“벌써 쉬려는가?”
팔베개를 한 마대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툴툴거렸다.
“제길, 산길을 타고 2달이나 가야 할 생각을 하니 힘이 다 빠지는군. 술도 못 먹고 줄창 건량만 씹어대야 할 게 아닌가.”
북궁웅비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정주를 거쳐 감숙으로 갈까? 그곳에는 신강까지 관도가 뻗어 있으니 편히 갈 수 있을 거네. 대신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리지.”
여느 때 같았으면 당장 그쪽으로 가자고 소리쳤을 마대위였지만 시간이 두 배나 더 걸린다는 말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북해성녀를 만나 단전을 고치는 것이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출발하지.”
마대위가 다시 말에 오르려고 하자 북궁웅비가 갑자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잠깐.”
마대위는 의아한 표정으로 북궁웅비를 바라보았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슬쩍 둘러본 후 조용히 말했다.
“손님이 찾아왔군.”
흠칫 하던 마대위는 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디, 어디야?”
북궁웅비가 숲 한쪽을 가리켰다. 마대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북궁웅비는 기척을 분명히 느낀 모양이다.
실눈을 뜬 채 그곳을 바라보던 마대위가 입을 열었다.
“진주언가의 개들일까? 아니면 혹시…….”
마대위는 신독문을 공격했던 자들이 자신들을 쫓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다소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황의사내들 다섯 명이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아마도 진주언가의 인물들인 듯 보였다.
광서생 사강룡을 감시하던 자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궁웅비를 슬쩍 곁눈질하며 마대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진주언가의 놈들 같은데…….”
그러나 북궁웅비는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마대위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그들 중 마치 정파의 명숙처럼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이 내공을 담아 외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마도의 후예를 도와 탈출시켜 주었다는 놈들이 너희들이냐?”
마대위는 순간 얼굴을 굳히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언가의 사람인가? 씨펄, 징그럽게도 쫓아오네.”
고개를 살짝 끄덕인 북궁웅비가 포권을 취하며 조용히 말했다.
“언가의 선배님을 뵈오.”
순간 황의중년인이 두 눈에 이채를 띠며 북궁웅비를 훑어보았다.
무림에서 선배라 칭하는 경우는 같은 부류의 문파, 즉 정파라면 무림맹의 공인을 받은 같은 정파 소속의 문인들이 타 문파의 윗사람을 지칭할 때 주로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황의중년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어느 문파에서 나온 아이냐?”
북궁웅비가 막 대답하려던 순간 갑자기 마대위가 땅에다 침을 찍 뱉으며 중얼거렸다.
“명색이 명문세가라는 것들이 몰락한 문파의 후예를 핍박해 무공을 빼가다니…, 기가 찰 노릇이군.”
순간 황의중년인과 함께 왔던 황의사내 넷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놈이로구나.”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느냐.”
그들이 분노에 찬 모습으로 다가서려는 순간 북궁웅비는 마대위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포권을 취했다.
“북궁웅비라 하오. 운남에서 왔소이다.”
마대위가 눈빛에 이채를 띠고 북궁웅비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의 신분을 자진해서 밝히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황의인들 역시 흠칫하는 표정으로 북궁웅비를 바라보았다.
운남 출신으로서 북궁이라는 복성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때 천하제일가로 이름을 떨쳤던 운남 북궁가의 제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황의중년인이 슬쩍 눈짓을 하자 황의사내 넷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북궁웅비를 바라보며 확인하듯 되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운남북궁가의 사람이라는 말이냐?”
북궁웅비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황의중년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운남북궁가에서 언제부터 강호에 제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단 말인가. 그리고 하필 이런 일에 끼어들다니…….’
그때 북궁웅비가 준엄한 표정으로 황의인들에게 말했다.
“얼마 전 진주언가의 사람으로부터 암습을 받았소. 게다가 수라검문의 후예를 핍박해 무공을 빼가기까지 했다니, 그 저의가 무엇인지 모르겠소.”
황의중년인은 일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음침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북궁가의 제자라……. 이놈을 살려뒀다가는 본가의 일이 천하에 퍼지는 건 시간 문제겠군. 살인멸구를 해야 할 놈이로다.’
갑자기 팔짱을 끼며 근엄한 표정을 짓던 황의중년인은 오히려 북궁웅비를 꾸짖듯 말했다.
“북궁가의 사람이 어찌 수라검문과 같은 마도와 결탁하여 본가의 식솔을 헤쳤느냐? 내 당장 네놈들을 요절내고 싶으나 북궁가의 문인임을 감안하여 살길을 열어주마. 지금 그 자리에…….”
“개소리!”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대위가 버럭 소리 질렀다.
그리고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쌍룡을 빼들며 북궁웅비에게 말했다.
“제길, 더 이야기해 봐야 입만 아플 뿐이지. 뒤의 네 놈들은 내가 맡을 테니 저자는 자네가 좀 손봐줘.”
북궁웅비 또한 황의중년인의 태도를 보아 일전을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즉시 검을 빼들었다.
스르릉!
“진주언가의 강시권이 천하 일절이라고 들었소. 오늘 직접 견식해 보고 그게 사실인지 확인을 해야겠소.”
황의중년인은 북궁웅비가 검을 빼드는 것을 보고는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비록 세력이 많이 약화되어 오대세가에서 제외되었다고는 하지만 운남북궁가는 한때 천하제일가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위세를 떨쳤다. 그리고 그들의 대천강검법은 천하제일을 다툴 만큼 대단한 검법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황의중년인은 이내 냉소를 쳤다.
“흥! 북궁가의 대천강검법이 절전된 지 수십 년이 지났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복원이 되었는지 모르겠군.”
으스스한 미소를 짓던 황의중년인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쳐라!”
순간 네 명의 황의인들이 마대위와 북궁웅비를 순식간에 둘러쌌다.
북궁웅비는 이들 네 사람의 황의인이 마대위와 자신을 포위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만 보고도 보통 고수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만큼 그들의 신법은 표홀했고, 사방을 점하는 방위 또한 절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리 빛으로 번들거리는 그들의 육장은 철골보다 더욱 단단해 보였다.
‘강시권이로구나.’
비잉!
북궁웅비의 검이 가늘게 떨리며 실낱같은 검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와 네 명의 황의인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며 자신들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기와 기의 싸움이 시작되려던 순간이다.
그러나 마대위의 일갈과 함께 싸움은 뜻하지 않게 시작되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