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 노사나불에 얽힌 설화 (보물 제1292)
전설에 따르면 이 부처님은 약사삼형제불로 서역에서 석주(石舟돌배)를 타고 동해로 와 두타산에 앉았다는 것이다.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는 배였지만 스스로 미끄러지듯 뱃길을 따라 바다를 가르고 포구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정박했다. 배가 멈추자 선복에서는 잘생긴 육척장신의 대장부 세 사람이 내렸다. 세 사람의 얼굴은 모두 금빛으로 빛났으며 몸에는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 이들은 각각의 손에 연꽃을 한 송이씩 들고 있었는데 큰형으로 보이는 부처님은 손에 검은 연꽃을, 둘째는 푸른 연꽃을, 셋째는 금색 연꽃을 들고 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서역에서 온 약사불 삼형제였다.
약사불 삼형제는 각자 삼화촌, 지상촌, 궁방촌에 자리를 잡았고 포교하였다. 제자들은 각각 자기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약사불을 위해 절을 지었는데 큰형의 절은 흑련대, 둘째는 청련대, 셋째는 백련대라 했다.
이렇게 교화활동을 펴던 약사삼불은 사람들의 인심이 순화되고 불심이 깊어지자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날 때임을 알았다. 약사삼형제는 철불로 등신을 남기고 두타산을 떠났다. 약사삼형제가 갑자기 사라지자 이들을 따르며 가르침을 받던 사람들은 각각 스승이 있던 곳에 절을 지었다. 큰형이 있던 삼화촌 흑련대에는 삼화사를 짓고, 둘째가 머물던 지상촌 청련대에는 지상사를 지었다. 그리고 셋째가 머물던 궁방촌 백련대에는 영은사를 지었다.
삼화사 아랫마을에 사는 한 농부의 아내가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왔다. 온 마을에 전염병에 창궐해 남편이며 자식이 다 죽게 생겼으니 빨리 낫게 해 달라고 빌러 온 것이었다. 그녀는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을 올리고 남편과 식구들의 쾌유를 기원했다. 그러나 전염병은 좀처럼 퇴치되지 않았다. 평소에 약사불을 집안의 어른처럼 공경하고 지내 온 아낙은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이 어찌 내 정성을 몰라주나 싶었다. 그녀는 생각 끝에 부처님이 평소에 잡숴 보지 못했을 것을 가지고 가서 공양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부처님이 평소 쌀밥이며 과일은 많이 드셨겠지만 고기는 한 번도 못 드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태 한 마리를 사서 절로 가지고 갔다. 아낙은 스님 몰래 법당으로 들어가서 소원을 빌고 명태를 부처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그런데 아낙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남편이며 자식들이 벌떡 일어난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다른 집 부인들도 똑같은 방법으로 기도를 했다. 그랬더니 금방 온 마을에 전염병이 물러갔다.그런 일이 있은 지 한참이 지났다. 이웃 마을에 사는 어떤 새댁은 시집을 와서 아이를 갖지 못해 애를 태웠다. 그녀는 이웃 마을 어떤 아주머니가 삼화사 약사불에게 기도를 해서 영험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 절로 찾아가 기도를 했다. 그러나 좀처럼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댁이 아주머니를 찾아가 "어떻게 기도를 해서 소원성취를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웃으며 새댁에게 슬그머니 이런 귀띔을 해주었다.“부처님도 색다른 음식을 좋아한단 말일세, 그러니 명태를 한 마리 가지고 가서 공양을 올리게. 만약 그래도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삼화사 부처님이 고기만 받아 자시고 소원을 들어주지 않더라고 소문을 내버려. 그러면 부처님이 난처해서라도 어떻게 해줄 게 아닌가.”새댁은 아주머니의 말대로 명태를 실타래에 꿰어서 부처님 목에 걸어 놓고 소원을 빌었다. 이렇게 불공을 하고 나자 새댁은 정말로 임신을 해서 옥동자를 낳았다. 이 소문이 퍼지자 그때부터 소원이 많은 사람들은 스님 몰래 법당에 들어가 명태를 올려놓고 기도를 했다. 그러면 열의 아홉은 소원이 성취되었다.
실상 철조노사나불은 워낙 훼손이 심한 상태에서 발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는데 오래 걸렸다. 하반신도 없었고 두손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불상 배면에 돋을새김으로 남아있는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이중 판독이 가능한 것은 모두 140자에 불과했지만 이로 인해 이 불상의 비밀 몇 가지가 밝혀졌다. 제작 연대가 고려시대가 아닌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창건 설화로 인해 약사불로 알려져 왔으나 '노사나불' 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명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