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대 과학기술 정책 집행을 앞둔 조언 - (上)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사를 되돌아 본다
권석준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12대 국가과학기술’에 대한 법 제정이 완료되고 9월 말 발효된다. 전 정부에서 추진되고 현 정부에서 확정된 이 정책에 대해, 일선 과학기술계는 R&D 예산의 감축을 두고 반발하고 있다. 반도체 정책 전문가인 권석준 필자는 ‘전략기술 육성이란 이름으로 기초과학을 무시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권 교수가 제기하는 정책 수정 방향을 ‘미국의 체계적 과학기술 진흥 75년사’(上), ‘지난 세기 한국이 과기진흥에서 후발주자로서 잘했던 이유’(中), ‘응용 중심 과기의 허약체질론’(下)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 루즈벨트 대통령과 MIT 학장 간의 지성적 문답
✔ 전쟁 중 성취한 과학기술을 어떻게 국민에게 돌려줄 것인가
✔ 과학기술은 일자리·안보·국민건강·삶의 질 개선의 필요조건
✔ 전담 기관 설치, 경쟁의 도입, 자유로운 탐구 보장, 재정과 인센티브 지원
✔ 75년 전 문답이 오늘의 과학기술 IT 강국으로 이어져
‘12대 국가과학기술’에 대한 법 제정이 완료되고 9월 말 발효된다. 권석준 교수가 제기하는 정책 수정 방향을 ‘미국의 체계적 과학기술 진흥 75년사'를 통해 살핀다. (사진: 셔터스톡)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국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실존 인물이자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 Oppenheimer, 1904~1967)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다.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역사적 소재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미국의 비밀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계획이다. 맨해튼 계획은 2차 대전 중 미국의 모든 전략 및 군사 과학기술 획득에 필요한 연방정부 연구개발 프로그램의 본산인 ‘과학연구개발부서(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OSRD)’에서 관장하는 거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과학적 성과를 민간에 응용할 방법을 찾다
당시 OSRD 책임자는 MIT 전기공학부 교수, 공대 학장, 그리고 부총장까지 역임한 엔지니어이자 아날로그 컴퓨터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기도 한 버니바 부시(Vannebar Bush, 1890-1974)였다. 맨해튼 계획에서 개발된 원자폭탄 두 발이 일본에 투하된 직후, 일본은 항복했고 이로써 2차 대전은 마침내 종전되었다. 독일과 일본의 패망 분위기가 짙어지던 1944년 11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 기간 중 과도할 정도로 규모가 팽창한 군사적 목적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성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즉, 민간 분야로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OSRD 책임자였던 부시에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을 담은 서신을 보냈다.
1) 전쟁 중 성취된 과학적 성과를 최대한 신속히 전파하기 위한 조치는 무엇인가?
2) 질병 퇴치에 있어, 의학 및 관련 과학 분야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조치는 무엇인가?
3) 민간 연구와 상호 교류 및 협력을 지원하는 데 있어 연방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4) 과학계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편지를 받은 부시는 장고에 돌입했다. 일본에 대한 원폭이 결정된 시점인 1945년 7월, 그는 ‘과학: 그 끝없는 개척지(Science: The Endless Frontier)’라는 제목의 보고서 형식으로 대통령에게 답신을 보냈다. 부시 교수가 보고서에 담은 내용은 상당히 방대하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과학의 진보는 양질의 일자리 증가, 국가 안보의 증진, 새로운 치료법과 신약 개발, 국민의 기대수명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한 필요조건임.
2) 과학 전반에 대한 효율적, 전일체적 기반의 범국가적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할 전담 기관과 위원회가 필요함.
3) 과학의 진보는 자유로운 지성의 자유로운 활동으로부터 기인하며 과학 지식 확장을 위해 건전하고 경쟁적인 과학 정신과 개인의 지적 호기심에 근거한 자유로운 탐구가 중요함.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왼쪽)와 OSRD 책임자였던 버니바 부시 (사진: 위키백과)
부시의 솔루션, 제대로 된 '시스템'의 신설
애초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질문이 전쟁 중에 개발된 과학기술 연구개발 성과의 활용임을 고려할 때, ‘국가적 관점’에서의 성과 활용에 대해 부시가 고민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부시가 방점을 찍은 것이 이러한 성과의 활용 자체가 아니라, 그를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스템의 신설이라는 점이다. 국가 안보든, 질병의 정복이든, 삶의 질과 노동 환경 개선이든, 일단 그 성과의 창출과 관리, 그리고 민간 분야로의 적용을 위해 안정된 연방 정부기관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부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연방 정부의 책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은 자세한 제안도 했다.
1) 대학에서 수행하는 기초연구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
2) 국가 안보와 관련된 과학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민간 조직을 신설하고 지원
3) 연구원 채용, 분류, 보상 체계를 개선하여 우수한 인재를 과학 연구로 유치
4) 정부 내 중복되는 과학 관련 업무의 조율과 자문 제공을 위한 상임 과학 자문단 신설
5) 연구개발 비용에 대한 세금 면제를 보장하는 세법 개정
6) 특허 제도의 강화를 통해 연구자 몫을 강화하는 인센티브 제공
7) 기초연구의 우연한 발견이 향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응용되는 전례를 감안하여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재량권 부여
부시가 제안한 솔루션이자 정부에 대한 요구 조건이 바로 채택된 것은 아니었다. 루스벨트 이후 트루먼 정부 들어, 새로운 국가 연구기관 설립에 대해 정부, 국회, 그리고 과학기술계는 운영 주체와 방식, 예산 규모와 지원 범위, 프로그램의 지속 가능성 등에 대해 5년간 지루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결국 치열한 고민 끝에 1950년 5월, 연방정부기관으로서 미국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이 신설되었는데, 형식상으로는 연방정부기관이지만 의회와 법에 의해 독립기관으로 보호되는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랜 고민을 거쳤기에 NSF가 해야 하는 역할은 분명했다. 이미 MIT 부총장과 OSRD 총책임자를 역임한 유능한 과학행정가이기도 했기에, 부시가 정의한 NSF에 대한 역할과 임무(R&R) 역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제정되었다.
•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을 통해 장기 연구 프로그램의 실행 가능성 확대
• 과학연구 및 교육 분야의 유능한 인사를 능력만을 기준으로 영입하여 재단의 주요 업무 수행
• 외부 연구 주체와의 협약을 통해 연구비를 공여하고 자체 연구소는 운영하지 않음
• 지원 대상 연구 주체의 정책, 인사, 연구의 방법 및 범위는 해당 조직에 일임
• 대통령 및 국회 직속기관으로서 행정 및 회계감사에 있어 규정 및 절차 완화
독립성 유지한 NSF, 미국 기초과학에 지대한 기여
국가 R&D 지원과 관리를 감당한다는 역할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NSF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상호 견제 속에 성립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NSF의 총재이자 CEO는 대통령이 상원의 자문을 받아 임명하되, 상원의 동의 없이 임의로 면직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반면 NSF의 비상임이사 24명은 6년 임기로 연임이 가능하고, 상원의 자문과 동의 하에 대통령이 임명하되, 대통령이 면직하지 못하게 설정되었다. 이사회는 NSF의 예산의결권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사회 구성과 총재에 대해서는 행정부가 주도권을, 운영과 예산에 대한 부분은 의회가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호 견제 하에 NSF는 독립적인 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NSF를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정책실이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과는 확연히 구분하게 해 주는 특징이었다. 즉, 정권이 바뀌어도 NSF의 프로그램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국립과학재단 (사진: NSF 홈페이지)
NSF는 1952년 2월, 암연구소(The Institute of Cancer Research)에 연구비 1만300달러를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0년 넘는 세월 동안 미국의 주요 과학기술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원하며 그 성과를 관리하고 민간으로 이전하는 기관으로 훌륭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NSF는 수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지구과학, 천문학 같은 기초 학문은 물론, 공학과 컴퓨터·정보 과학, 그리고 최근에는 사회과학 같은 응용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학문 분야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더해 NSF가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는, 설립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항상 예산의 일정 부분을 이공계분야 연구자를 육성하기 위해 할당하여 조성한 장학 사업이다. 이를 통해 연구개발에서 비롯된 직접적인 지적재산(IP) 창출은 물론, 학계와 산업계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NSF의 지원을 받은 대학, 병원, 연구소, 기업과 스타트업 등이 창출한 지적재산과 산업응용기술은 우주 탐사, 정보 과학, 심해 탐사, CAD/CAM의 개발, DNA 중합효소(DNA polymerase) 발견,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개발, CDMA 원천 기술 개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 우주 가속 팽창의 발견, 라식 수술 기술 개발, 광유전학 도구 개발, 힉스 보존 발견, 중력파 관측, 그리고 블랙홀 이미지 촬영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그 범위와 종류를 헤아릴 수 없다. NSF의 지원을 받은 과제의 책임자 중, 노벨과학상 수상자만 2022년까지 총 258명이 배출되었을 정도로 기초과학 분야에서의 NSF의 기여는 탁월했다. 2022년 기준 88억 달러 규모의 예산으로 NSF는 1,700여 건에 달하는 연구 과제를 지원하는데, 이중 15% 정도는 신규 과제에 할당된다. 또한 전체 연구 과제의 75% 정도는 기초과학 분야에 할당된다.
NSF는 설립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관의 독립성에 큰 위기를 겪지 않았으며, 트럼프 정부 시절 기초과학 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사태가 생기는 와중에도 미국의 기초과학 연구력 진흥, 주니어급 연구자의 정착과 커리어 개발, 산업 분야로의 전문 인력 양성 및 공급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의 든든한 지원군으로서의 R&R을 고수하고 있다.
글쓴이 권석준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MIT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광(光) 컴퓨터, 양자 컴퓨터 등의 차세대 IT소자 원천 기술 등을 연구 중이다. 현재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금까지 60여 편의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다. 최근에 한·중·일 반도체 산업에 관한 저서 <반도체 삼국지>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