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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정석 시립대 교수 "인구감소 위기? 수도권 쏠림, 지역소멸로 우선 공멸"
지방도 한때는 찬란했다. 그 지방 원도심의 건물 곳곳에는 이제 임대 딱지가 붙어있고, 시골 마을에서는 어린아이와 청년은커녕 50~60대도 찾아보기 어렵다. 온 세상이 인구 위기라고 하는데, 적어도 대한민국의 인구 위기는 '감소'가 아닌 '쏠림'이 먼저라고 말하는 것, 과장 아니다. 수도권은 면적의 11.8%, 인구의 50.5%다. 불균형이다. 한쪽은 빈혈, 한쪽은 고혈압인 셈이다.
서울시립대학교 정석 도시공학과 교수는 ‘일백탈수 지역민국’을 외친다. 1년에 100만 명씩 수도권을 떠나, 지역에 우리가 주인인 ‘민국’을 세우자는 것이다.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소멸을 해소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처방은 듣기에 따라선 좀 셀 수 있겠다. '내가 살겠다는데, 너나 가라 하와이~'를 외칠 사람도 예상된다.
정 교수도 인정한다. 그래서 그는 우선 베이비부머부터 움직여보자고 제안한다. 정중하게 권한다는 그의 '탈수도권 지역살이'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 인구는 감소, 지역은 아예 소멸, 수도권만 복닥복닥, 불행 시작
✔ 균형발전 한다며 원도심 무시하고 신도시만 지어, '병 주고 약 주고'
✔ 멀리서 사람 찾지 말자… 지역에 자긍심 느끼는 이들이 진짜 '인재'
✔ 가미야마·아와지시마, 일본에서 배우는 지역 소멸 대응책
✔ 행복은 장소와 직결돼… 베이비붐 세대의 귀환이 희망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신혜선 메디치미디어 본부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백범선)
‘일백탈수 지역민국’
신혜선: ‘일백탈수 지역민국’, 무슨 뜻인가요?
정석: ‘1년에 100만 명씩 탈수도권해서 지역에 우리가 주인인 민국을 세우자’는 뜻입니다.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인구가 2600만 명 정도 됩니다. 1년에 100만 명씩 나갈 경우, 10년이면 천만 명 정도죠. 인구가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옮겨가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질 거예요.
신혜선: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요. 왜 그런 주장을 하십니까?
정석: 2019년 하반기에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기 시작했어요. 우리 국토 면적 중 수도권 면적은 11.8%, 그러니까 10% 조금 넘는 크기인데요. 1970년대에는 3분의 1이 채 되지 않는 31% 정도의 국민이 수도권에 살았어요. 수도권 인구가 계속 늘다 보니 부동산 문제, 교통 문제 등으로 수도권도 점점 고통스러워지고 있지요. 비수도권 지역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방 중소도시 원도심 지역, 농산어촌 시골 지역은 인구가 점점 빠져나가서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0년 뒤에는 사람이 없는 시골 마을이 부지기수로 나올 상황입니다.
신혜선: ‘공동화 현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지금은 아예 '소멸'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정석: 인구는 줄고 있어요. 그런데 수도권 인구는 여전히 늘죠. 인구 감소가 아니라 쏠림의 문제예요. 비유하면 피가 우리 몸에 골고루 돌아야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 수 있는데, 지금은 피가 한쪽에만 너무 쏠려서 여기는 터지기 직전이고 나머지 부위에는 피가 안 도는 겁니다.
수도권으로 모여드는 사람들…"피가 한쪽에만 쏠린다"
신혜선: 지역 소멸이 어느 정도 심각한가요?
정석: (명절에) 고향 가는 사람은 잘 알 거예요. 비수도권 지역의 중소도시 같으면 한번 시내에 가보세요. 소위 원도심이라는 데, 옛날에는 그 도시에서 제일 잘 나가던 데잖아요. 원도심 지역의 가게들이 다 문을 열었는지, 임대 표시가 붙어있고 셔터가 내려진 가게가 없는지 살펴보세요. 지방 소멸 위기를 보여주는 좋은 예죠. 시골이 고향인 분들은 거기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고, 그분들의 나이가 어떤지를 봐보세요. 이대로 간다면 어떻게 될지 알 거예요. 원도심이 비는 이유는 원도심 바깥에 신시가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원도심에 있던 공공기관이나 주민들이 신도시로 다 옮겨가는 거죠. 원도시가 저절로 쇠퇴한 게 아니라 신도시 개발로 인해서 인구를 뺏기는 거죠. 이게 병 주고 약 주고라는 겁니다.
임대 안내문이 부착된 광주광역시 충장로의 빈 점포.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 연합뉴스)
신혜선: 지방분권화라는 단어가 나온 지 10년이 넘었죠. 정부가 노력을 안 한 건 아닌데 정부 정책이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국가 정책은 지역의 소멸을 중단시키고 지역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으로 가야겠어요. 지금 그렇게 가고 있나요?
정석: 처방도 해법도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방정부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또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떻게 하느냐 세 가지입니다. 국가 정책을 보면 박정희 정부는 다른 나라들과 좀 다른 정책을 펴요. 속도를 강조했고 성과를 중시했어요. 대한민국 개발 시대를 관통했던 철학이 성장 거점 개발론이에요. 국토를 골고루 키우기에는 너무 바쁘니 성장의 거점 도시를 서울과 부산으로 놓고 사이에 경부고속도로를 놓았죠. 그러다 보면 국가의 주요 이런 산업의 거점들이 한쪽에 몰리는 거죠. 비켜난 지역에서 “왜 그쪽에 투자합니까?” 그럼 뭐라고 했냐면 “기다려.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금방 데워질 거야.” 이런 논리였죠. 성장의 거점을 키운 다음 이 거점이 나머지를 먹여 살린다. 대도시를 키우고 그다음에 대기업을 키웠죠. 국가가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던 이유도 비슷해요. 낙수 효과를 전제로 한 거죠. 실제로 지금 낙수는 일어나지 않아요. 결국 성장 거점 개발론이 수도권이나 대도시를 키우고 중소도시, 농산어촌을 힘들게 했던 거죠.
정 교수는 박정희 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어쨌든' 국토균형 발전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중 가장 강력하고, 가장 열정적이었던 정부는 노무현 정부다. 후보 시절에 극약 처방으로 수도를 지방으로 옮기겠다고 했으니 시쳇말로 난리가 났다. 결국 수도 이전은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머물렀다.
여기까진 좋았다. 정 교수는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고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했던 다른 사업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인데, 안타까웠습니다. 100개가 넘는 공공기관을 지방에 옮길 때 그곳 원도심들은 텅텅 비어 있었죠. 거기로 옮기지 않고, 혁신도시를 세웁니다." 원도심 재생의 기회를 놓쳤을 뿐 아니라, 그나마 살던 사람들도 혁신도시로 옮겨가게 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이전 명분 하에 전국에 10개 혁신도시를 지었어요. 신도시를 지은 거죠. 거의 동시에 혁신도시뿐만이 아니라 기업도시를 전국에 7개를 건설했어요. 세종시까지 합치면 18개입니다. 신도시를 전국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건설한 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고 대한민국의 병을 더 악화시켰다. 명분은 좋았지만 방법이 나빴다고 봅니다."
신혜선: 18개 신도시를 전국에 동시다발로 지으면서 외려 지역 소멸을 가속화했다?
정석: 7개 혁신도시를 분석해봤습니다. 유일하게 서귀포 혁신도시의 인구만 절반 이상이 서울 수도권과 타지역에서 와요. 나머지 혁신도시들은 거의 70%가 소재 시군에서 와요.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참여했던 기업들은 분양이 된 후 이익을 챙겨가면 그만이죠. 그렇지만 국토를 보세요. 국토가 전체적으로 지금 이렇게 수축되어 가고 인구가 줄고 있는데 대규모로 어딘가를 새로 지으면 여기 채우느라 결국은 어디는 비게 되잖아요. 연쇄 악순환인 거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정 교수의 문제의식도 똑같다. 문 정부는 2017년 출범했고 2018년 초에 대통령은 “국토 균형 발전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해 말 국토부 장관이 수도권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저는 기겁했어요. 서울 강남에 부동산 광풍이 불기 전이었어요. 3기 신도시를 발표한 게 2018년 말이었고 수도권 과반 인구로 전환된 게 2019년 이듬해입니다."
그는 "돈을 덜 들이고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꼽히는 브라질의 꾸리찌바의 3선 시장 자이미 레르네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시 문제를 푸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도시 침술이다.” 정 교수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서 배를 가르고 장기를 다 꺼내고 새로운 것들을 집어넣는 수술식 해결법만 찾는다"며 답답해한다.
윤석열 정부 지방소멸 대책… 지역 자금지원 찬성 그러나 여전한 신도시 개발
신혜선: 말씀대로라면, 정부는 ‘여기가 지금 미어터지니 아우성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숨통 좀 틔워 주고 밀려드는 사람들도 받아주려면 도시가 필요해’처럼 단선적인 생각을 한 것 같네요. 며칠 전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참여한 지방시대 선포식이 있었습니다. 대통령 직속으로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했는데요.
윤석열 대통령이 9월14일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지방시대 선포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석: 보수 정부는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더 편드는 수밖에 없죠. 이미 수도권이 기득권인데 지방시대를 정말 열 수 있을까, 제 안에 (정부를 향한) 믿음이 약하네요. 그럼에도 기대하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방을 살리는 문제는 혁명적인 특단의 조치 없이는 불가능해요. 대학 서열화 없애고 지역 의료시설에 투자하고, 지역에서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가 대중교통입니다. 대중교통 확충해야죠.
중요한 기점이 수도권 과반 인구가 깨지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수도권 인구가 지금 50%를 넘었죠. 수도권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순간 대한민국 (변화)의 중요한 신호탄이 될 거예요.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는 시점이 될 거로 봅니다. 수도권의 자산을 정리하고 로컬로 오면 훨씬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죠.
제가 기대하는 ‘일백탈수’의 인구 흐름이 있는데, 가장 기대하는 게 저희 또래예요. 베이비붐 세대. 1955~1963년생들, 수도권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왔거나 수도권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열심히 일했다가 정년 은퇴한 분들. 대한민국의 쏠림 현상을 보고 나의 고향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여생을 어떻게 어디에서 더 행복하게 살까. 하나의 대안으로 한번 생각해 보시라는 거죠.
신혜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죠. 의미 있는 정책 기조 같은 게 나온 게 있습니까?
정석: 지방소멸 대응기금 같은 것들을 마련해서, 인구 감소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광역시나 지방정부에 재정 지원을 해주는 것들은 잘하고 있죠. 우려하는 거는 수도권 신도시 얘기를 계속하고 있고, 비수도권 지역에도 대규모 개발들이 계속 있는 것 같아요.
기초 지방정부들이 청년들이나 신혼부부들을 위한 착한 가격의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런데 그거를 하려고 자꾸 아파트 단지 개발을 해요. 우리나라에 이미 빈집이 100만 채가 넘었어요. 빈집뿐만이 아니라 빈 상가 또는 빈 사무실이 전국에 지금 엄청 많습니다. 그런 비어 있는 유휴자산들을 지방정부가 매입해서 신혼부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공동체 주택을 지어서 신혼부부들에게 좋은 가격으로 제공하라. 지방 중소도시 원도심 상가 건물 하나를 깨끗하게 리모델링하거나 미니재개발해서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으로 제공해주면, 거기에 학교 다 있고 시장 다 있잖아요. 비어 있는 곳을 채우고 고치는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인구 증대 아닌 지역 사랑 인재 확보해야… 줄어드는 인구에서 뺏기 경쟁 의미없어
신혜선: 가장 불안한 건 지자체 당사자들일 것 같은데요.
정석: 지방 정부들이 절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걸 다 알아요. 인구 확보를 위해 애씁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인구 관점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거예요. 인구는 어차피 줄어요. 인구를 유지하거나 늘리겠다를 목표로 세우면 옆에 있는 시군의 인구를 뺏어올 수밖에 없어요. 의미 없어요. 그래서 인구로 보지 말고 인재로 보자. 멀리 있는 인재를 초대하기 전에 집토끼부터 예우해드려라. 지금 여기 살고 있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분들, 이 지역이 좋아서 여기 사는 분들이 진짜 인재죠. 그런 분들이 지역에서 살면서 불편하고 필요한 게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거를 먼저 채워드려라. 그 지역에 있는 인재들이 행복해야 바깥에 있는 산토끼들도 그걸 보고 샘이 나서 오는 거죠.
신혜선: 좋은 사례가 혹시 있을까요?
정석: 대한민국에서 이 문제를 열심히 하고 있는 곳이 경상북도입니다. 경북이 가장 위기 지역이니까 ‘BYC’라고 하죠. 봉화, 영양, 청송. 경상북도 이철우 지사가 꽤 오래전부터 인구 감소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어요. 제가 관련 연구를 올해 초부터 하고 있어요. 경상북도가 잘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K-U시티’입니다. 경북의 작은 시군들을 지역 대학과 연결하는 거예요. 지역마다 수도권에 없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봉화는 산림자원이죠. 봉화군 춘양읍은 소나무 집산지거든요. 청정 지역의 산림 또는 임업 자원과 대학의 연구 기능이 함께 엮이는 거죠.
신혜선: 전라권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면요.
정석: 신안군이 잘한 게 많은데, 그중 하나는 버스 '완전공영제 대한민국 1호'입니다. 신안군은 천 개의 섬이 있다고 하죠. 섬에 사는 분들이 가장 어려운 게 이동입니다. 버스 공영제를 하게 된 계기는 날씨가 안 좋거나 버스 기사님이 감기가 걸리면 버스 운행을 안 해요. 대중교통이 들쭉날쭉한 거죠. 그래서 신안군이 전부 공영화한 거예요. 신안군 버스 기사님들은 공무원인 거죠. 그렇게 해서 지금 몇 년 운행을 해보니까 굉장히 좋아요. 65세 이상 그리고 청소년들은 완전 무료고요. 나머지 분들은 신안군 공영버스 이용료가 편도 3천 원, 왕복이 6천 원인데 1일권을 팔아요. 1일권이 5천 원이에요. 이 1일권 티켓을 끊으면 무한정 탈 수 있어요. 버스 시간표는 일정하니까 섬 여행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아쉬운 점은 신안 공영버스가 목포역 앞에서도 섰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작은 시군들은 연결을 잘해주면 경쟁력이 커져요. 무안, 목포, 신안이 대중교통으로 연결이 돼서 자가용보다 빨리 오갈 수 있게 해주면, 이 세 지역은 하나의 생활권이 되는 거죠.
정 교수는 하동 한 달 살기를 했다. 그 후 지리산 순환 BRT를 제안했다.
"지리산 주변에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5개 시군이 있어요. 연결이 너무 불편해요. BRT를 운행하면 한 바퀴 도는데 200km거든요. 버스전용차로 위를 버스가 막히지 않고 다니고 자가용보다 빠르게 갈 수 있는 거죠."
부울경 등 메가시티 얘기가 많다. 비수도권 지역 인근에 메가시티 만들면 다시 중심이 생긴다. "여기가 또 깡패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덩치 키우지 말고 작은 중소도시들의 대중교통 연결을 원활히 해주자는 거죠."
10년 먼저 고민한 일본… 가미야마, 냇가 발 담그고 일하는 워케이션
신혜선: 해외에서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좋은 사례가 있을 거 같습니다.
정석: 우리하고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데가 있죠. 일본이 우리보다 지방 소멸 위기를 한 10~15년 일찍 느껴요.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국가 차원에서 또는 지방정부들이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잘하고 있는 데가 많습니다. 도쿠시마현 가미야마는 30년 동안 인재 초대를 위해서 애써온 곳입니다. 인구가 한 6천 정도 되는 작은 산골 지역인데 처음에는 예술가들을 초대했어요. 다음에는 첨단, IT, 컴퓨터, 방송 이런 회사의 위성 사무소를 유치해요. 도쿄, 오사카에 근무하던 직원들은 정장 차림에 1시간씩 출퇴근을 했는데 가미야마에 와서는 반팔, 반바지, 슬리퍼에 냇가에 발 담그고 앉아서 노트북으로 본사와 교신하고 점심때는 상추도 키우고 고양이도 돌봅니다.
워케이션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거다. 가미야마는 올해 4월, 고교 3년에 전문대 2년인 5년제 학교를 열였다. 200명 정원이고 무상 교육이다. 이 학교는 5년 동안 대입 교육을 안 한다. 그럼 뭘 배울까. "고등학교 1학년 학생 때부터 ‘내가 뭐 하고 살면 가장 행복하게 일하며 살까’ 그걸 찾게 하고 그걸 준비하게 합니다."
지난 4월 일본 가미야마에 문을 연 '가미야마 마루고토 고등전문학교'. 학생들은 대학 입학을 준비하지 않는다. 이들의 주요 공부는 '내가 무엇을 하고 살면 가장 행복하게 일하며 살까'이다. (사진: 神山まるごと高専)
신혜선: 성장해 도시로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고민을 한 청년들이라면 머무를 가능성도 아주 높겠네요.
정석: 그렇죠. 우리나라 지역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봐요. 다른 사례로 효고현 아와지시마인데, 여기는 수산물도 농산물도 엄청 풍요로워요. 그런데 대학이 없어요. 그러니까 아와지섬 사람들은 고등학교 졸업하면 다 이제 섬을 떠납니다. 그래서 야마구치 구니코라는 분이 작심을 하고 본인이 섬에 귀항해서 사람들을 모아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모아 예술축제를 해마다 열어서 사람들을 모은 다음, 후생노동성이 지역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사업에 신청하도록 해서 뽑아요. 2년 동안 국비 지원으로 창업하고, 성과가 좋으니까 추가 2년, 4년 동안 일본 정부의 예산을 계속 지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일자리 만드는 게 좀 달라요. 그 프로젝트 이름이 ‘아와지 일하는 형태 연구섬 프로젝트’입니다. 일자리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을 찾게 하는 거죠.
수도권 떠나는 이들, 모여서 내려가자… 시민이 만드는 '지역민국'
신혜선: 해외 사례까지 살폈어요. 국가나 정책 당국이 할 일이 굉장히 큽니다. ‘일백탈수 지역민국’ 이야기를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직접 만드신 말인 거죠?
정석: 2021년에 연구년 당시 봄에 하동에 가서 한달살이를 시작했어요. 그다음에 목포로 갔고, 이어 전주, 고향 전주에서 살았고, 연말부터 2022년 새해 초까지 강릉에서 한 달을 살았습니다. 1년 동안 ‘대한민국 로컬은 참으로 넓고 깊구나. 그리고 구석구석 매력덩어리구나’ 느꼈습니다.
수도권 떠나는 사람들이 흩어지지 말고 모였으면 해요. 어디에 모이느냐면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지역에 모이자. 예를 들면 지금 우리나라 가장 큰 고질적인 문제가 저는 양당 정치라고 생각해요. 당에서 공천해 준 사람들이 단체장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의원도 되고 교육감도 되고 하는 거죠.
제가 진안에서 희망을 봅니다. 진안은 전라도 지역이니까 민주당 공천 후보들이 대부분 군수가 됐는데 몇 년 전 선거에서 팽팽했어요. 공천받은 후보가 흠결이 있었고 나머지 후보들이 단일화를 해서 1대 1로 겨뤘는데, 2% 차 454표 차로 무소속 후보가 떨어집니다. 진안 인구는 지금 2만 4천 정도입니다. 탈수도권 한 사람 중에 5천 명만 진안에 온다면 진안 인구는 3만을 넘길 테고 진안을 우리가 원하는 ‘민국’으로 만들자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51%를 안정적으로 넘어간다면 진안은 민국이 될 거예요.
정 교수의 논리는 이렇게 흘러간다. 유권자의 과반수를 안정적으로 점하면 그때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군수로 교육감으로 뽑을 수 있다는 거다. 그 힘으로 지역의 기초단체도 ‘민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제 고향 전북이 민국이 됐으면 좋겠어요. '전북 민국'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북 BRT입니다. 전라북도 14개 시군을 어디든 쉽게 오갈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두 번째는 ‘우리는 전북 시민’이라는 마음가짐입니다. 시군이 14개가 있지만 ‘우리는 전북 사람이다’라는 마음으로 전북이라는 땅을 넓게 쓰자."
이어 정 교수는 일백탈수의 인구이동을 세 갈래로 기대했다. "앞서 얘기한 베이비 부머들의 지역 이주, 지역 내 청년 창업 그리고 학부모 역할입니다. 이제는 산촌, 농촌, 어촌 유학도 많이 합니다. 아이를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키우는 게 최선일까? 지역도 아이들 키우는 데 좋은 대안일 수 있습니다. 이런 세 갈래의 흐름으로 사람들이 지역으로 모이기를 기대합니다."
어디서 살까, 수도권 외 대안 진짜 없을까?
신혜선: 교수님도 내려가실 곳을 고향으로 정하셨나요?
정석: 고향을 제1로 생각하고 있어요. 정년퇴직하면 전라북도 어딘가에 가고 싶고. 중요한 건 혼자 안 갈 겁니다. 마음을 함께하는 친구들 네다섯 명 함께 살 집을 찾고 싶어요. 시골의 농가일 수도 있고 원도심에 건물을 한 채 사서 고쳐서 살 수도 있죠. 한 가구 부부만 내려가면 얽이게 되죠. 강아지를 키우거나 닭을 키워도 어디 오갈 수가 없죠. 너덧 가구가 함께 내려가면 공유할 수 있고요. 전국에 이런 형태의 공동체 주택을 만들면 서로 오고 가면서 구장을 넓게 쓸 수 있겠죠.
신혜선: 지금 수도권 거주자들, 다시 생각해 볼 기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너나 가세요’ 하실 수도 있겠죠.
정석: 그렇죠. 정중히 권해드리는 거예요. 행복은 장소와 직결돼 있거든요. 수도권으로 청년들이 몰려오고 중장년들 여전히 수도권에 머물러 있는데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은 행복할까? 집부터 턱턱 숨이 막히죠. 로컬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특히 두 번째 일자리를 찾는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어요. 대학 졸업하고 첫 일자리는 서울 수도권에서 찾을 수 있어요. 일해보고 살아보세요.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해 보세요. 대안은 없을까? 더 나은 대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백탈수 지역민국! 로컬로 오세요. 저는 베이비붐 세대의 귀환을 기다립니다.
'일백탈수 지역민국'이 쓰인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한 정석 교수. 그는 ‘1년에 100만 명씩 탈수도권해서 지역에 우리가 주인인 민국을 세우자’인 '일백탈수 지역민국'을 주장한다. (사진: 백범선)
대담 = 신혜선 미디어사업본부장/정리 = 김동희 에디터/사진 = 백범선 영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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