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하게 그윽한 사랑 – 정화진의 「그윽한 사람」
네이버블로그/ 그윽한 사랑의 향기
거국적인 선언이 있었던 1987년 초여름, 나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 자신을 위한 한 마디 선언이나 다짐도 없이 그저 그런 10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의 어느 토요일 오후, 민중서관 앞에서 오지 않는 친구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이윽고 바람맞힌 친구에게 전화를 걸려고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섰다가, 부스 안으로 들어서려던 나와 전화를 끊고 급하게 부스를 박차고 나오는 중형체급의 사람과 맞부딪쳤고 표준미달의 체급인 내가 넘어지고 말았다. 연이어 드는 낭패감 때문에 현장을 어서 뜨고 싶은 마음은 당연했다. 하릴없이 헌책방 골목에 있는 홍지서림으로 갔다. 그러니까 책을 좋아해서 서점에 간 것이 아니라 바람맞은 시린 목에 뭐라도 둘러 걸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후미진 곳에 자리한 시집 코너로 가서 아무 책이나 손에 닿는대로 펼쳐본 것이 (운 좋게도)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이었다. 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하지만, 새 책을 펼쳐볼 때는 오른손으로 책들을 쥐고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지탱하면서 뒷장부터 빠르게 넘긴다. 그러면 페이지마다 바람에 실려온 종이 냄새와 활자 냄새가 난다. 읽기보다는 맡았던 것. 그래서 처음 맡았던 시는 맨 뒤에 실린 시.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남해 금산』의 마지막 시는 「남해 금산」이었다. 징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나에게로 들어와 화석이 된, 시의 첫 문장이었다. 교실에서 「나룻배와 행인」에 나오는 수미상관법을 외우던 때였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날 나는, 시인은 되지 못하겠구나, 라기보다는 (시가 이토록 아름다운 거라면) 나는 시인이 돼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절망과 안도의 안락함이 뒤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흘러 남해에 가서 금산을 올려다봤어도 「남해 금산」을 떠올리지 못했다. 청춘의 시간은 웜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다 툭 튀어나온 애벌레처럼 얼떨결에 지나갔고 나는 진짜 에벌레처럼 굼뜨게 기며, 가장 더딘 완보동물의 권속으로 살았다. 어느 날인가는 지리산 세석산장에서 잠을 자다가 모래사장의 모래처럼 흩뿌려진 별을 보았다. 별과 별 사이 나와 별 사이의 촘촘하고도 멀리 떨어진 거리를 헤아릴 수 없어 나도 별처럼 눈을 깜박인 것 같았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내가 가여워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다. 내 몸이 쇠라의 그림 속에 찍힌 한 점 픽셀보다도 더 작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순간 분재처럼 늙은 기분이었고 박제보다 오래 산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을 깨닫는 것을 두려워한다. 깨달아도 곧잘 까먹고, 새긴다 한들 그것은 착 달라붙어 만성이 되기 일쑤였고 곧 낡아버렸다. 그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그러나 이것도 어쩔 수 없는) 나는 나에 대한 아무런 욕망도 열망도 없이,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나무늘보와 형제로 지냈다.
그러던 때에 시의 스승을 만났다. 이제 혹(惑)한 것을 보고도 겨우 무감각해질 무렵이었다.나의 스승님은 ‘시는 자유다!’라고 했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선언이었다. 1987년의 선언이, 세석산장의 별빛이, 이제야 도착한 것 같았다. 시 안에서는 실패도 절망도 아름다웠다. 악도 독설도 아름다웠다. 모두가 그토록 욕망하고 열망했던 것들이 시 안에서는 침대 밑에 쌓인 먼지 같았고, 추하고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것들은 절실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걸 안도현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여전히 시는 아득히 먼 데 있다. 첫 시집을 낸 밤에는 시집을 베고 자다가 악몽을 꾸었다. 지나치게 뜨거운 말과 드라이아이스처럼 착 달라붙는 차가운 말들이 책장 사이를 빠져나와 온통 어지럽혔다. 소용돌이 속에서 좌고우면하던 가운데에 만난 시가 정화진 시인의 「그윽한 사람」이었다. 속수무책이었다. 내게 좋은 시란, 알고 있었던 것을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시보다는 모르는 세계 앞에 쿵, 하고 던져 놓는 시이다. 그런 시 앞에서는 절벽을 본다.
…… 왜…… 그렇게…… 그럴까…… 그건…… 그렇지만…… 그래서…… 그렇다고…… 그토록 자주 아프면…… 글쎄요라니…… 시원찮게도…… 그러나……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도…… 그윽하게…… 그치지 않고…… 그려 놓은…… 그림…… 그 아래…… 그저…… 그냥 어쩌지도 못하면서…… 그게…… 글쎄…… 그러면…… 그 너머…… 그리운 그늘과 그림자…… 있지 그나마…… 그다지도…… 그지없이…… 그래야만 하는 건지…… 그렇지?…… 그렁거리는 그득함에…… 그을리는…… 그을음…… 그믐치 내리는…… 그런 그늘이…… 자, 그 그만 그만
―정화진, 「그윽한 사람」 전문
이 헐겁고 여백투성이인 말의 구조물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된다. 온통 표지판으로 가득한, 온전한 문장이 되지 못한 말들로 아득한. 의문부사로 출발하여 최선을 다해 질문하거나 최선을 다해 접속하여 접촉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상황을 뒤엎거나 최선을 다해 말하려 할 때, 할 말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애피타이저 같은, 그러나 궁극에는 맛을 볼 수도 없는 음식 앞에서 불가능한 말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머뭇거리고 생략된 말줄임표 안에서 말을 더듬는 발화자는 생각이 현실, 또는 문장으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상실하게 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밀고 나가 구축한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려 불을 붙이는 발화체(發火體)이다. 밖으로 간신히 나오는 말은 시너가 되어 표지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보려는 흔적이다. 따라서 여백은 더 분주하고 밀도가 높다.
버퍼링 같은 표식이 일러주는 화살표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떤 말들은 자학하기 위한 주저흔과 포획되지 않기 위한 방어흔들의 수많은 자국 안에 내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접속사 안에 접촉자들은 붐빈다. 통로가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 첫 번째 말의 서열에서 벗어난 주변부의 말, 단호하지 못하지만, 어떤 사태의 추이를 한발 물러선 두 번째 자리에서 재고해보는 것.
표지가 쳐놓은 그물망 안에는 우리가 뛰어들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연으로 가득하다. 모든 말들이 건너오고 건너갈 수 있다. 이 시는 그러한 모든 것들의 징검다리이다. 모든 이야기를 집어넣어 대응해도 조응하게 관통하고 만다. 오독해도 통한다는 말이 아니라, 다르게 읽을 수는 있지만 틀리게 읽어서는 정독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물망 안에 버벅거리는 것은 말하려하는 것에 최대한 가깝게 가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現實)과 실현(實現)은 앞뒤만 뒤바뀐 게 아니라 뜻도 다르다는 것, 우리가 현실에서 꿈을 이루거나 기대 따위를 실현하기는 요원하다. 꿈이 현실 때문에 실현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 모든 말은, 도대체 이 말이라는 것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얼마나 적은지, 말 앞에서 얼마나 골똘해야만 하는지, 그래서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많는 할 말 앞에서 이 시는 우리가 열을 올리며 하는 말들이 얼마나 가벼운지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이 시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말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수도. 그윽하기 그지없는 시인은 깊숙하고 은근하고 아늑하여 고요한, 이 말 앞에서 언제나 한 발짝 늦게 도착하는 진실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 그 그만 그만’하라고 종용하는 순간에 새롭게 사랑이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이란 ‘우리’의 말이지, ‘나’의 말이 아닌 것이다. 시인은 발명에 관한 한, 영원히 짝사랑하는 사랑으로만 남는다. 그래서 다시 사랑하라고 한다. 내가 너에게 한 말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말들이었는지, 의심의 여지없이 얼마나 닳고 닳아빠진 말들이었는지 생각 좀 해보라고. 그래서 「그윽한 사람」은 그윽한 사랑을 더듬더듬 망설이며 계속해보겠다고, 그것이 시가 할 일이라면. 이다지도 무던하게. 그윽한 사랑을 계속해보겠노라고. < ‘그 시를 읽고 나는 시인이 되었네, 내 영혼을 뒤흔든 41편의 시(이종민 편저, 모악, 2021.)’에서 옮겨 적음. (2024. 6. 2.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