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애기가 아니고요 대단하신 분인거 같아서 글올려봅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군에 입대.
그때 제 나이 20 살 이었습니다.
그당시 아버지 ( 아니. 가족모두의 재산이라고 해야 옳겠군요 ) 의 재산은 서대문에 32평짜리 아파트한채. 분당에 같은평수의 아파트 한채. 마석에 땅과 건물. 충주에 아버지 사업채. 남대문에 아버지 사업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20 억이 조금 넘는 재산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고생모르고 가난이란것도 모른채 군에 입대했고 전역하면 아버지 사업채중 하나를 이어받아 노후까지의 삶이 마치 운명처럼 계약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또 하나의 운명은 그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의 결혼이었죠.
여자쪽 부모님도 그렇고 우리쪽 부모님도 서둘렀기 때문에 전역후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었죠.
그렇게 군 에서의 전역을 앞둔 말년휴가를 나온 시점부터 내 삶은 조금씩 벼랑끝으로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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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3 살위 형과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저까지 총 네식구가 살고 있었고...
가끔 재미로 점을 보거나 역학을 보면 항상 제 밑에 동생이 하나 더 있을텐데....
하는 말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부모복 없고 형제복 없고 오직 아내복과 재산복만 있다고 나오더군요.
비웃었었죠.
부모가 저렇게 재산이 많고 형은 젊은 나이에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면서 탄탄대로로 달리고 있는데 부모복 형제복이 없다니...순 엉터리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게 현실이 될줄....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말년휴가때 뭔가 집안에 일이 있음을 눈치챘고 마침내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형과 저를 불러 앉힌채 10 년동안 함구해야만 했던 무거운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막내인 제 밑으로 9 살난 배다른 동생이 있고 아버지는 두번째 부인이랑 상계동에 아파트를 얻어서 10 년째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또 하나는 사업도 마석땅도 건물도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집도 모두 빚에 넘어가게 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아버지는 나를 바라봅니다.
그리곤 어머니와 이혼을 합의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제게 남겨줄건 빚 삼천만원 뿐이라고..... 아버지는 상계동 두번째 부인에게 얻어준 아파트에서 살게 될거라고..... 형이랑 같이 어머니 잘 모시라고.....
아직도 난 그날 거실에서 일어서 제방으로 들어와 피워물었던 쓴 담배맛을 기억합니다.
곧 아버지는 안방에서 짐을 꾸렸고 어머니는 주방에서 멍한 동공으로 앉아있고 머뭇거리다 현관을 나서는 아버지의 옷가방을 가지고 전 아버지를 배웅했죠.
만일 그 후의 내 삶이 얼마나 벼랑끝으로 내 몰릴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전 아마 그날 아버지 멱살을 움켜 쥐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달후 어머니 친척의 도움으로 덕소에 복도식 낡은 아파트 18 평짜리 전세를 얻을수 있었고 창고같은 제 방에 누워있으면 기차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땐 그 소리가 얼마나 싫었는지 잘때마다 귀를 틀어막을 정도였으니.....
그때 제나이 23.
수입이라고는 제가 월급쟁이하면서 받는 월급 80 만원과 어머니가 일용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 30 만원.
그리고 아버지의 회사에서 고생모르고 일하던 형은 아버지의 사업부도와 부모님의 이혼후 방황을 시작했고 700 전화로 집 전화 50 만원을 써대고 어머니가 일용직으로 하루 하루 벌어들이는 몇만원의 돈을 뜯어 나가는 악마같은 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지 않으면 집에 쌀이 떨어진다는것도 그때 알았고 2 년후에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하면 길거리에 내 앉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후.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가 제게 이별을 말하더군요.
챙피한 이야기지만 울며 사정했습니다.
헤어지더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내가 조금이라도 버틸수 있을때 그때 떠나면 안되겠냐고.......
하루에도 천번씩 죽고싶은 마음 겨우 너 때문에 다스리고 있다고......
여자라는 존재... 정말 냉정하더군요.
가난한사람은 싫답니다.
모두 가난에서 벗어날줄 알고 살지만 결국 죽을때 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이제 겨우 살만하다 싶으면 그때는 다른 사람들이 저만치 앞서 가있고 결국 가난은 지울수 없는 형벌이라고 ........
그날 여자친구가 바닥에 내던진 호출기의 부서진 조각들을 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날 독하게 만들어준...... 빌어먹을 첫사랑에 감사하며......
그렇게 제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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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퇴근하는 시간이 평균 밤 8 시.
퇴근 후 아침 출근길에 옆 식당에 맡겨두었던 제 어깨를 함몰시킬만큼 무거운 가방을 찾아서 집으로 가는 길을 다시 돈벌이로 활용하기 시작했씁니다.
보따리 장수.
버스로 가기에도 지루한 거리를 엄지발가락 사이에 물집을 실을 넣어 터트릴 만큼 걸으면서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이나 아가씨들이 보이면 가방을 열고서 거리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머리삔. 헤어밴드. 타공목걸이.
지나가는 아저씨들이나 제 또래 남자들이 보이면 가방을 열고서 핸드폰 줄 이어폰 핸드폰 케이스 들을 풀어헤치고 장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한달. 두달. 세달.
종아리에서 못보던 핏줄들이 새로 생겨나고 엄지발가락 사이엔 항상 대일밴드가 자리하고 그래도 기뻣습니다.
그것도 장사라고 차츰 넥타이를 맨 보따리장수라는 닉넴이 거리의 사람들 틈에서 붙기 시작했고 수입도 늘어나 본업보다 더 좋은 수입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그 감격들은 지금 그 몇배의 수입을 벌어들이면서도 맛볼수 없습니다.
때론 카센타에서 고스톱 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장사를 하러 갔다가 돈을 잃은 사람이 보따리를 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카센타 마당에 흩어진 악세사리들을 주워담고 있는데 카센타 개가 물고 도망을 가더군요.
찾으려고 쫒아가고 뛰어다니는데 카센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더군요.
가방을 내려놓고 일어서 가방을 걷어찬 사내의 멱살을 움켜잡았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눈물만 흘렀답니다.
차를 고치러온 경찰은 내게 끝까지 반말을 해대며 나가라고 떠밀고......
절 떠난 첫사랑의 말은 틀리지 않았더군요.
가난은 죄이며 벗어날수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무서움이...두려움이..저를 옭아매고 그날 미친놈처럼 눈물을 흘리며 덕소 뒷 산 길들을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중엔 울다 울다 악에 받치니 아무도 없는 산 길에서 뛰던것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쿵쿵 뛰게 되더군요.
미친놈처럼 울다가....미친놈처럼 웃다가.....내 얼굴을 주먹으로때리며 차라리 죽자고 소리치고....(헤헤..떠올리니 또 눈물이 고여버리네요.)
집안이 무너지던날 그렇게 내 첫사랑도.... 그리고 나 자신도 모두 나를 버렸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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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같은 형은 돈을 주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집에서 산적처럼 씻지도 않고 누워 티비를 보며 낄낄대고 어머니의 찌들어 가는 모습은 점점 날 구석으로 몰아가고 전 평일이면 퇴근길에 주말이면 공사판과 유흥업소 들을 돌아다니며 보따리장수.
나중엔 제법 자리를 잡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렇게 3 년을 살며 제겐 제법 많은 돈이 모였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날수 있는 방법.
월급쟁이로는 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씁니다.
내 모든것을 걸어보겠다고.....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돌아서면서 제 두번째 사랑이 시작되었고 여자는 회사 사장님의 하나뿐인 딸이었습니다.
대학졸업후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했던 그 애가 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애의 고백을 이런식으로 사직서를 내는날 듣게 될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전 그 애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성공할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모두 아니라고 하지만 나 꼭 이 가난에서 벗어나겠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날 다독여줬던 그녀는 지금의 제 와이프 입니다.
처가집과 우리집의 형편이 너무 많은 차이가 있어서 반대가 심했지만 절믿어준 와이프는 가출까지하는 고집을 보여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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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던지고 가진돈을 끌어모으고 약간의 은행대출.
그리고 덕소를 벗어나 서울로 다시 이사오면서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드디어 저의 제 2 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사업은 월평균 700 만원 이상의 이윤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고 전 하루도 쉬지않고 일을 했씁니다.
빚을 모두 갚고 작은 집을 사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또 3 년.
그리고 지금의 와이프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 29.
이제 고생은 끝났나 싶었는데 끝내 악마같던 형이 사고를 치더군요.
단 한번도 일을 하지 않던 형의 지갑에서 발견된 수많은 현금다발.
그리고 형방 장판밑에서 발견된 사채빚 서류들과 캐피탈 서류들.
그날 저녁 형은 제게 사채빚 이천만원과 캐피탈 이천 오백만원.
개인 빚 팔백만원을 이야기 하더군요.
이거 못갚으면 자기 죽을지도 모른다고.... 이자는 계속 늘고 집에는 깡패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부자는 독해야 한다고 하는데 전 부자가 될 팔자는 아니었는가 봅니다.
차라리 제가 나가서 고생을 다시 하는 한이 있어도 형이 깡패들에게 맞고 쫒겨다니는 건 생각도 하기싫었고 형을 믿고 싶었씁니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도 없는 마당에 형마저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형의 빚을 이자를 제외하고 모든 원금을 갚아주었씁니다.
비로서 웃어보이는 형.
그리고 그날 형은 캐피탈에서 이백만원을 끌어쓰고 집 주소와 제 핸드폰 번호를 캐피탈에 남기고는 떠나버렸습니다.
제 명의로 산 핸드폰 요금 백 오십만원을 연체시킨채.........
살아있는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살아있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이 썩어문들어진 마음을 누가 알아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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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랜 시간 저를 지켜만 보던 와이프가 조용히 절 바라보더군요.
오빠...그만큼 식구들에게 했으면 이젠 할만큼 한거라고....
이젠 오빠 자신을 위해서...그리고 우리를 위해서만 살자고.....
그 후부터 전 아버지도 형도 보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사업은 잘 되었고 형에게 주었던 돈들도 2 년동안 벌어서 모두 채워놓았을때...
그때가 제 나이 31 살.
그러니까 작년이네요.
비로서 안식을 찾은 저는 웹상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어느날 한 출판사에서 전화가 오더군요.
이번 공모전에 응모해 보라고......
응모를 했고 전 우수상을 타며 상금과 작가라는 타이틀 그리고 출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 년동안 쏟아지는 기업들과 출판사의 콜.
투잡을 넘어 쓰리잡까지 하고 있는 지금 전 일억 오백짜리의 작은 집을 한채 소유하고 있고 직접 운영하는 매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참 ... 그리고 이번해 5 월엔 제 아들도 태어났으니 정말 큰 재산이 하나더 불어난 셈이네요 ^^
마지막으로 가난한 시절 저에게 좌절을 줬던 카센타에 새로뽑은 차를 가지고 갔더랬습니다.
종업원들은 바뀌었지만 주인은 그대로더군요.
폼나는 양복에 현금다발을 들고 새로뽑은 고급차를 끌고서 들어가서 내가 그 옛날 당신이 패대기 쳤던 가난한 보따리장수 였노라고 말하니 기억을 못하는건지 머리만 긁적이더군요.
그 개가 있으면 한대 쥐어박아줄라고 햇는데 ...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것을 잃고 빚 삼천맘원 부터 시작한 인생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드리고 싶은말은 마음 먹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가진 이 돈이 정말 부자들에겐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돈이라고 하냐? 하고 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앞으로도 더 많은 세월을 살것이고 그 세월은 절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줄것이라 확신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신 모든분들께 정말 님들을 믿고 계신 부모님과 와이프에게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운 남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좌절은 한번만 하십시오.
그리고 희망을 꿈꾸십시오.
마음이 고단할수록 희망을 그림을 그려보세요...그린만큼 현실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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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긴 글이었네요.
쓰지않은 이야기가 많고도 많은데 너무 긴 글이 되어서 죄송합니다.
첫댓글 보라님 이야기 너무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미투 요.....
...미투~~~~~~^0~
이거 진짜 실화예요? 무슨 인생극장같다~~~~ 음...
...아니요 이건 보라님 옛날 애인!!!!........차버린 그남자!!!!....그래서 우는 보라님...그런게래요....
이거 영화만들어도 히트하겄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