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피어난 기쁨. 사60:13-22.
https://www.youtube.com/watch?v=TBe1gr0m4as 이학권
https://cafe.daum.net/rnjstlgur/9oZC/538 권시혁
심훈의 그날이 오면 그런 시가 있죠. 그 시에 보면 우리 해방을 기다린 말인데 그날이 오면 내가 까마귀가 되어서 종로 인경에 머리를 부딪쳐서라도 그 인경의 해방의 종을 울리게 하겠다. 그래서 두개골이 깨어져도 내가 기뻐 죽으리라. 또 이 몸 가죽을 벗겨서 북을 만들어서 내가 들쳐 매고 해방의 행렬에 앞장설 것이다.
시가 막 굉장히 좀 잔인한 시입니다. 그래도 그 시를 읽는 사람은 잔인하다고 느끼기보다는 뭔가 소망의 열정과 역동을 느끼죠. 오늘 말씀이 제게는 그런 말씀입니다. 00:53
우리 성도님들이 받으신다면 다 받으신다면 정말 제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서, 원하지는 않겠지만, 북을 만들어서 이 행렬에 앞장서도 제가 기쁨일 것입니다.
60장 후반부입니다. 이 60장 후반부는 현상 속에 우리는 현상을 살잖아요. 예 현상은 아름답게 꾸밉니다. 왜냐 그러면 추하기 때문에 우린 서로 만날 때도 뭐 단장하고 세수하고 이렇게 만나잖아요. 예, 아름답지 못하므로 그렇지.
엄마와 아기는 그냥 만나도 아름답죠. 그건 본질이고 하나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단절의 현상을 살기 때문에 사실은 추한 삶을 살아요. 01:43
욕심을 부리고 째째하고 계산을 불필요하게 많이 되고, 뭐 다 아름답지 않은 건데 그렇게 살아요. 그 현상의 삶 속에서 본질의 신비와 미각 아름다움이 현현된 경탄의 기쁨이야.
그 현상 속에 이 현상의 뿌리가 되는 본질이 피어나므로 말미암은 현상과 본질이 하나로 어우러진 그 기쁨을 경탄을 노래하는 것이 60장 후반부입니다.
그 마태복음 18장 이 교회론의 중심에 그런 게 나오잖아요. 99마리를 산에 두고 1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간다는 말이 안 되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우린 그렇게 살아요. 02:41
가정에 정말 거의 불가능한 그런 정신 지체 장애자 아이가 생겼다 그 아이 치유도 못 하는데 집안에 모든 돈이 다 들게 생겼다. 그럼 버립니까? 못 버려요. 아니 못 버릴 정도가 아니에요. 엄마는 사랑합니다. 제가 봤더니, 모든 사람은 그 아이를 볼 때 절망밖에 안 봅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품고 있는 엄마는 그 아이가 가끔씩 엄마의 품 안에서 잠깐의 스치는 듯한 미소를 지어요. 그 미소 한 번에 엄마의 마음이 다 녹아버려요. 자기 생명을 준다고 해도 아깝지 않아요. 03:38
그 아이에 대한 기쁨이 있는 것이 생명은 기쁨으로 사는 거예요. 사60:1 시작이 “일어나라 빛을 비추어라. 이는 내 빛이 임하였고 내 빛이 임하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너희는 이제 구원됐다는 말이에요.
생명은 빛이에요. 예수님 그랬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기쁨이 밝음이 피어납니다. 이 밝음이 생명을 사는 길이에요. 04:24
그런데 참 기쁨을 보기 힘든 세상이야. 생명이 짓눌려서 생존이 되어 있으니까. 이사야 60장에서 66장까지 이 말씀을 우리로 받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59장까지 인도하셨는데 이 60장의 시작이 뭐예요? 너희의 빛이 회복되었다. 예 너의 생명의 기쁨이 회복되었다는 거죠.
1-7 | 회복된 빛 | 기쁜 예배 | 코이노니아 |
남은 자들 | 단절 회복 | 열납된 예배 | |
하나 된 시온 | 경탄 환희 | 물질의 통 |
그러니까 빛이 회복된 게 누구예요. 지금 남은 자들 얘기하고 있죠. 남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 된 시온, 시온에 하나 된 자들이죠. 예 하나 됨은 무엇으로 하나 될까요? 기쁨으로 하나 됩니다. 돈으로 하나 된다. 그건 하나 아니죠. 무슨 이익 계산으로 하나 됐다. 05:18
그런 걸로 하나 될 수가 없지요. 함께 기뻐할 때 나도 없어지고 너도 없어지고 우리만 남아요. 하나 된 시온이 그러니까 하나 되었기 때문에 단절이 회복되고 경탄과 환희와 아픔이 피어나는 거예요. 그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신다. 실제로 결론에서 기꺼이 받으신다.
억셉트블 세크리파이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어떤 예배겠어요. 기쁨의 예배죠 기쁨으로 드린 예배죠. 기쁨은 나누어져요. 기쁘면 그냥 통하게 되어 있어요. 그게 코이노니아예요. 06:13
이거는 뭐 법이나 규칙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60장에 핵심 단어가 파엘이에요. 파엘 파엘는 성경 전체 14번밖에 못 쓰는 단어예요. 이사야에 9회 60:7, 13, 21. ra'P; (6286 파아르)영광스럽게 하다. 자랑하다. 아름답다. .raep;a} 피엘 미완 1인 공성 단수
이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좋았더라.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 토브 b/f(2896, 토브) 했잖아요. 그 토브를 우리도 만나서 하나님과 함께 경탄이 터지는 거지. 제가 말씀드렸죠. 하나님이 동물들을 이끌고 아담에게로 왔구나.
예 아담이 이름은 줬죠. 그러나 경탄이 없었죠. 그런데 이브를 만나더니, 뼈 중에 뼈 살 중에 살 경탄이 터집니다. 하나님은 그걸 원하세요. 하나님이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으세요. 하나님에게 자기 몸을 불살라 드려도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아니에요. 07:11
하나님은 정말 사랑으로 자기의 모든 선하심과 자비하심으로 이 온 세계 우주를 창조하셨어요. 그것을 나와 함께 경탄해 줄 사람 그것을 보면서 정말 좋구나.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는데 못 그릴 이유가 어디에 있어요.
파에르가 성경 전체 14번 나와요. 그렇게 함부로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닌데 이사야가 9번을 쓰니까 이건 이사야 선지자의 비전이에요. 이사야 선지자의 비전은 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를 우리가 만나서 함께 경탄하는 와! 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버리는 이게 60장에서 전반부에 2번 후반부에 2번 4번 나온단 말이지. 그 파엘 단어가 Beautify 파엘. 하나님이 아름답게 하셨어요. 08:11
그러니까 만나면 경탄을 자아내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왜 바깥에 나타난 것이고. 그 속에는 본질 피어난 기쁨. 쉽게 얘기하면 이런 거예요. 우리가 육으로 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죄와 허물밖에 없어요. 그런데 내 안의 본질이 피어나면서 허물과 죄밖에 없는 내 육의 삶을 품어서 이것이 거름이 되어서 내 안에 있는 하나님 형상의 본질이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 합력의 선을 이루는 것이 본질이 피어나는 기쁨이다.
기쁨이 없는 남편, 기쁨이 없는 아내, 기쁨이 없는 부모 악한 것이고. 추한 것이에요. 에이 기쁨이 없다고 그게 악이고 추한 것이야 예 그렇습니다. 09:12
아무리 어려워도 그래도 미소를 환한 얼굴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인격의 아름다움이에요. 인격의 추앙과 악함은 거기에 있어요.
조건과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조건과 상황이 힘들다고 본질 자체의 가치를 자녀들에게 아무리 조건과 상황이 어려워도 그래도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미소할 수 있고 아직은 함께 손잡을 수 있고 아직은 함께 꿈꿀 수 있는 것이야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믿음이죠.
13절에서 22절까지는 시온의 묵시입니다. 예 세상의 모든 묵시는 끝이 파멸이에요. 세상 묵시의 끝은 전부 파멸이에요. 당연히 그렇게 돼 있어요. 10:12
현상의 삶은 반드시 파멸로 끝나게 되어 있어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현상의 삶은 반드시 파멸로 끝납니다. 이 시간 분명한 선택이 있어야 돼요. 나는 현상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이 현상 속에 본질을 피울 것인지 먼저 13절에서 18절은 하나님과 왕이 함께 기뻐한다는 왕은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죠.
하나님과 세계가 함께 기뻐한다는 기뻐하는 것이에요. 13절 여호와가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 소나무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파엘- 아름답게 할 것이라 내가 나의 발 들꽃 그 성전을 영화롭게되어 여기는 글로리 파이할 것이다. 11:03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시온에 남은 자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 된 자들을 내가 경탄스럽게 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여기 시온은 지명이 아니다. 하는 걸 아셔야 돼요.
여기 이사야 선지서에서부터 시온은 더 이상 지명이 아니에요. 인격이에요. 인격 하나님의 경탄스러움을 그 아름다움을 받기 위해서 하나가 된 사람들. 우리는 개개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핸들 할 수 없습니다.
깨어진 우리가 하나 된 그 자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예요. 그게 시온이에요.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거룩한 것은 이 땅의 모든 장소가 거룩함을 보여주는 거지 예루살렘이라는 공간만 거룩하다가 아니라 이 말이에요. 12:02
안식일이 거룩한 것은 생애 모든 날들이 거룩함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지. 안식일만 지키면 된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14절 그러니 왕이 화답합니다. 너를 괴롭히던 자손들은 몸을 굽혀 내게 나오고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내 발 아래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하리라.
이스라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본질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치장을 해도 본질적으로 악하고 추합니다. 그 현상에 본질이 성립되면서 이 악함과 추함이 소멸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회복돼요.
추상적인 얘기지만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 아주 쉬워요. 육으로 사는 우리의 삶은 아무리 뭐 교양 있는 척, 뭐 아무리 믿는 척해야 죄송합니다. Ugly 아름답지 않아요. 우리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우리의 본질이 피어날 때 아름다운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응답하시죠. 15 전엔 내가 버림받고 미움받아서 네게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 말은 인제 이스라엘에서는 저주된 자는 뭐 병에 걸렸다든지 어쨌든 저주가 된 자는 이렇게 가까이 가서는 안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이 모르고 가까이 오면 이 사람이 경고해야 됩니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로소이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로소이다. 이렇게 3번 경고해야 되는데 그 경고를 안 해서 가까워지면은 그 사람이 부정해진 것이고. 그때 이 부정한 사람을 돌로 칠 수 있습니다. 13:58
그래서 여기에서 내게 가는 자가 없었다. 그 표현은 그런 말이에요. 그러더니,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히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16 너는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고 무당들의 젖을 빨고 여기도 우리나 우리에게 어색한 표현인데 젖은 가장 귀하고 값진 영양소죠 무엇보다 고대 사회에서는 왕실의 젖을 먹지 않은 자는 제왕의 후보 서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젖을 빤다고 하는 거는 가장 소중하다. 그런 뜻이죠. 나는 나 여호와는 내 구원자여 내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구원자 구속자 다음에 야곱의 전능자가 나온 것은 이때 이스라엘은 멸망한 지가 벌써 몇 세기가 지나갔습니다. 14:4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지자는 그 포로 되고 잡혀간 자들이 다시스로부터 시작해서 돌아오는 이 꿈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린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잡혀가서 721년에 잡혀가서 지금 이제 6세기니까 뭐 2세기가 넘었잖아요. 그러면 잊었지요. 하나님은 잊지 않아요.
내가 그들을 회복한다고 말씀하시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가슴을 만나면 반드시 회복되게 되어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섭리의 완성은 본질과 현상이 하나 되어 어울리는 것입니다. 현상은 나타난 것이고. 보이지 않지만, 꽃의 생명 본질이 있는데, 이 현상이 단절된 현상이 아니라 본질에서 피어난 현상일 때 하나님으로부터 피어난 것일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현상과 본질은 씨줄과 날 줄 같은 거예요. 씨줄과 날 줄이 어울려서 천을 만들어 내듯이 그래서 이 씨줄과 날 줄이 얽힐 때 합력선이 일어난다. 우리는 육으로 단절된 세상 속에서 그렇습니다.
죄중에 잉태되고 죄악 중에 출생한 존재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마십시오. 우리 중에 거룩할 수 있는 자 없습니다. 우리 중 의와 선으로 사는 자 없습니다. 우리는 죄와 죄악과 허물의 존재입니다. 16:30
그런 우리에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피어나는 기쁨을 누릴 때 죄와 허물 된 우리 육의 삶이 거름이 되어서 우리의 하나님 형상은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예 거기까지는 보이시죠. 그죠 그런데 그렇게 안 살아. 왜 그렇게 안 살까? 본질과 현상 씨줄과 날줄 신성과 인성이 서로 배타적이기 때문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것이 조화를 이루신 분이에요. 그분의 육체 속에 하나님이 온전히 나타나셨어요. 그래서 그분은 온전한 인간이시고 온전한 하나님이다. 이런 뭐 하여튼 얘기를 해요. 여기 하나 마나 한 얘기지. 그러면 왜 우리는 그렇게 안 살까? 우리에게 본질과 현상은 배타적이에요. 17:32
진실을 가꾸려고 하면 믿음과 소망, 사랑을 살려고 하면 현상적으로는 손해 봐야 되고 양보해야 되고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속아서 산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본질의 아름다움을 볼 때까지는 우리는 절대로 현상 지키려고 몸부림을 치지 본질을 살 수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어떻게 해야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까? 하는데 거기에 답변은 안 하시고 뭐라고 했어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본질계의 아름다움이 안 보이는데 이거 어떻게 본질계를 살게 내가 가르쳐주면 네가 살 것이니 가르쳐 준다고 네가 살아지겠느냐? 그런 말이죠. 18:25
다시 말해서 현상과 본질을 딱 한 마디로 정리하면 현상을 볼 때 본질이 보이고 사람을 볼 때 이렇게 생겼냐? 공부 많이 한 사람이냐? 잘 사냐? 뭐냐 조건과 상황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 창조의 기쁨을 같이 보는 것 그리고 본질을 볼 때는 꿈이 피어나요?
본질을 볼 때는 그 본질에서 꽃의 씨앗을 볼 때 이 씨앗에서 무엇이 피어날까 하는 것처럼 본질을 보면 그 본질에 대해서 피어날 꿈이 피워지는 것 그래서 선지자들은 그렇게 말했죠.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는데 그때 너희는 누구든지 꿈을 꾸게 된다. 꿈을 꾸지 않는 인간, 뭐 하고 살까요? 19:21
욕심뿐이지 꿈을 꾸지 않으니 그냥 나 혼자 안전해야 되고 나는 문제 없어야 되고 그것밖에 없겠죠. 우리가 그것을 원할까요? 정말로 그 삶을 원할까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속지 마십시오.
인간은 꿈을 꾸면서부터 인간다움이 피어나는 것이죠. 제가 답변은 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적인 부분이 남아 있어요. 왜 아름다움을 살지 않을까? 그 실제는 삶의 임의적 무작위성이에요. 20:03
예 삶을 보니까 원칙도 없고 법칙도 없고 요령 잘 부리고 거짓된 사람이 잘 되는 것 같아. 이익을 빨리 챙기는 것 같아 그러니까 참 하나님은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 생각으로 만든 개념화된 하나님을 하나 딱 데리고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죠. 20:38
선지서의 중심이 호세아예요. 호세아서예요. 또 선지서의 출발이 호세아예요.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구약에서 말하는 17권의 선지서를 얘기할 때의 선지자로서의 첫사람이에요. 그전에 엘리야 엘리사도 있고 여러 선지자가 있었지만, 그때는 다 종교적 의미이고 하나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는 것을 선포하는 입장에서는 호세아가 출발점이고 중심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 갈릴리 사역의 두 기둥을 호세아서로 세웠죠. 호세아서 육장 6절로 선지서의 중심이 호세아서고 호세아서의 중심이 6장인데 6장 시작을 이렇게 합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오. 우리를 찢었으나 싸매어 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첫 번째 우리는 여호와를 지금 떠나 있죠. 떠나 있으니까 돌아가자 라고 하는 것이죠. 21:37
그런데 왜 떠나 있느냐 하면, 믿어봐야 찢고, 치시고 꼭 복이 안 돼 그렇죠. 믿으면 문제없어지고 만수무강하시고 온갖 오복이 다 그렇지 않잖아요. 믿으면 우리를 사람 만드시거든. 하나님의 항상 사람 만드시는 이건 영광 중의 영광이고 기쁨 중에 기쁨이고 내가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아름다운 일인데 종교인들은 그거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떠나 있어요. 그래서 선지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호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라.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이스라엘은 죽은 영혼이 사흘째 되면 완전히 떠난다고 돼 있어요. 22:36
그래서 나사로를 살리실 때 넷째, 날 살리셨어요. 죽음의 권세를 주님이 넘어서 있는 것을 만날 수 있죠. 그러니까 2절에서 보면 우리는 죽어있다. 종교인들은 자기가 뭐 살아서 뭘 한다고 하는데 아니 너희는 죽어서 세상 물결에 떠내려가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이죠.
이사야 60장으로 말하면 너희는 빛이 없어 너희가 생명의 기쁨을 누리고 있어 아니지 않느냐 그런 말이에요. 우리가 죽어있어요. 죽어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버리고 배설물만 추구하는 거예요.
생명은 반드시 아름다움을 살아요. 예 배설물이 뭐예요? 일상에 필요해요. 밥 안 먹으면 죽어요. 그러죠. 그런데 밥 먹은 것이 배설물 되는 거예요. 23:34
그니까 필요하지만, 궁극화시켜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세상은 무엇을 먹고 마실까를 궁극화 시켰어요. 먹는 게 같이 먹는 게 아니에요. 예 짜장면집에서 먹는 사람도 있고 five star 五聲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먹는 사람도 있다고 그래 봐야 먹는 건 먹는 거예요. 배설물은 필요한데 필요한 건 쓰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궁극화시켰다 이 말이에요. 사도바울이 말한 배설물은 그런 거예요.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이 죽어버린 생명의 기쁨이 없는 너희가 필요한 것이 뭐냐 그러면 여호와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교인은 하나님 모르는 거죠. 24:32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에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나님은 일정하시고 법칙대로이시고 원칙대로입니다. 평면의 삶은 임의적이에요. 이 본질의 깊이를 모르고 현상만 보면 아니 내 운명이 인위적인 것 같잖아요.
나는 왜 남자로 태어났지 왜 나는 한국전쟁 끝에 태어나 가지고 배고픈 시절을 살아야 되지 무슨 의미가 있어요. 임의적이잖아요. 평면은 그런데 실제는 whole에는 우연은 없어요. 25:30
그게 인위적으로 보이는 것은 평면만 보이기 때문에 그 평면 밑의 깊이에서 일어나는 전체를 보면 모든 것은 심은 대로 거두어요. 예수님 그렇게 말했잖아요. 한 아싸리온에 ajssavrion(787, 앗사리온) 2마리 하는 참새도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다 세셨다. 심은 대로 거둔다. 이건 원칙이요. 법칙이요. 영원한 원리예요.
이게 분명한 사람은 선과 의와 아름다움을 심고 가꿉니다. 그러나 세상 거짓에 속은 사람은 뭐 하겠어요. 요령과 거짓만 부리죠. 심지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는 이 교회 생활에서도 요령과 거짓으로 해 나가는 거죠. 26:28
예배는 바로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지요. 예배에서 임재가 회복되고 경외심이 회복될 때 본질의 입체성을 내가 보던 겉을 넘어서 하나님 안에 깊이를 봅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예배를 드릴 때 내 가슴이 열려요. 이게 본질을 여는 열쇠예요. 기쁨이 열리면서 생명의 합력선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래서 예배가 열릴 때 놀라운 복이 열립니다. 그건 뭐냐 그러면 스트레스가 살롬이 돼요.
우리 세상에서는 지금 단절의 세계 속에서 그러니까 내 것 내 맘대로가 이게 중요한 이슈예요. 이렇게 안 살 수가 없어요. 이게 약해지면 굉장히 불안, 나만 불안해지는 게 아니라 가족이 불안해지고, 그렇게 돼요. 27:25
그러니까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인데 스트레스 자체가 나쁜 건 아니죠. 그 스트레스에 샬롬이 임하는 거죠. 몸과 마음이 조화되기 시작해요. 현상과 본질이 하나 되듯이 대표적인 것이 불면증이에요. 불면증은 잠 못 자는 게 아니에요. 못 잘까 봐 긴장하는 거예요. 그 왜 긴장해요? 자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그런 거죠.
이걸 뭐 저는 잘 모르지만, 의학적으로 얘기하면 우리에게는 자율신경계가 있거든요. 자율신경계는 자기가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우리가 control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심장의 맥박이 뛰는 것은 자율신경에 속해요. 내가 빨리 뛰겠다. 그럴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이제 이 자율신경계에는 교장 선생님은 없고 교감만 있어요. 그래서 교감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가 있어요. 28:18
그런데 하여튼 교감신경은 이렇게 우리가 얼럴트되고 칸슈스 깨어나게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부교감신경은 이렇게 의식이 잦아들고 자율신경계가 나를 덮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잠잘 때는 교감신경계가 편안해지고, 이 부교감 신경계가 나를 덮으면 잠이 그냥, 아니 피곤하고 자야 되는데 잠이 안 오다니 그런데 불면증 얘기하는 이유 우리가 얼마나 거꾸로 사느냐 이 말이에요. 29:01
하나님을 잘 믿어보겠다고 몸부림을 쳐. 뭐 40일 금식을 안 해,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 뿌리를 뽑네. 난리를 쳐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정말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셨어요.
이것은 현상의 탕자의 과정을 지나서 완성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본질을 믿고 그걸 기쁨으로 받으면 생명의 아름다움이 절로 피어나는 거지 어떻게 내가 내 생명을 아름답게 만들며 어떻게 아름답게 피울 수 있느냐 이런 말이죠.
그래서 구원= 통이에요. 통.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통하고 우주와 통해요. 이게 마태복음 18장이잖아요. 18장의 핵심 18 19 20절인데 18절이 뭐예요? 하늘과 땅이 통한다. 그러면 19절 너희 서로 통해서 두 사람이 하나 된 곳에 내가 함께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2~3 가정이 내 안에서 교통하는 것이다.
그게 구원이에요. 그런데 구원은 우주 영원에서 최고의 가치잖아요. 구원 이상 가치 있는 게 있어요? 구원은 우주 영혼의 최고 가치예요. 그러므로, 구원받으면 그 순간에 달라집니다. 종교에 속으시면 안 돼요. 종교는 이제 구원받으면 그러면 이렇게 천천히 이렇게 막 어느 날 이렇게 절대로 오지 않는 어느 날,
제가 한번 물어봅시다. 여러분이 만약에 로또 10억 $ 당첨됐다. 그러면 그날로 달라질까요? 똑같을까요? 달라지지. 나를 졸로 볼 거야. 분명히 30:57
그런데 구원을 받았는데 안 달라져요. 그럼 가짜 받은 거지. 종교의 가짜 받은 거지. 성격 하나 못 다스리는 구원을 어떻게 구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성격은 변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성숙해지면 내 성격의 부정적인 부분을 다스리고 긍정적인 부분을 복으로 나누어요.
그 성격 다스림도 안 되는 구원을 구원이라고 하니 어떻게 그런 것에 속고 살 수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구원의 기쁨이 있는 가슴은요, 분명해요. 구원받았다. 그 말은 본질 세계가 열린 거 아니에요. 31:51
그러니까 이 본질 세계 영계가 더욱 알고 싶어져요. 정말 궁금해져요. 그 영계가 뭐요 지리산 가서 만나는 거예요? 아니요. 이 말씀 속에 있는 세계예요. 이 글자가 아니고 이 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예요. 그게 궁금해져요.
그래서 말씀 듣고 나면 집에 가서 다시 들어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이 본문을 가지고 얘기를 했을까? 나는 이렇게 만나는데 왜 이학권성도는 그렇게 만날 수가 있었을까? 그냥 들어서 이게 해결되지 않죠. 노트를 놓고 다시 듣습니다. 노트를 들고 다시 들은 사람은 본문을 열어서 다시 확인합니다. 32:46
이것이 정말 본문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야. 이 본문에서 그런 것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야. 그것이 구원받은 자유입니다.
주일날 나와서 참석해 주시는 거 적어도 하나임 교회에서는 구원받았다. 거듭났다. 그런 소리하시면 안 됩니다. 구원받았으면 하나님의 세계가 말씀 속에 피어난 세계가 점점 궁금하고 더 깊이 들어가고 맛보아 알고 싶게 되는 것이죠.
왕과 하나님은 서로 이렇게 주고받음으로 첫 단락을 끝냅니다. 내가 놋대신 금, 철 대신 은, 나무 대신 놋, 돌 대신 철로 한다. 다시 말해서 차원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33:38
그러면 여호와께서 사60:17 나는 화평으로 관원을 삼고 공의로 감독을 삼는다. 왕이 하드웨어를 만들어진 곳에 하나님께서 소프트웨어를 완성시킨다. 그러니까 왕이 18절 다시 강포한 일이 내 땅에 들리지 않고 황폐와 파멸이 내 나라에 없다. 내가 내 성벽을 구원이라. 내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
성벽은 당연히 구원이 돼야죠. 성벽이 있는데, 구원이 안 되면 성벽을 왜 쌓았겠어요. 이 성문은 왜 있어요. 모든 좋은 것들이 들락날락하려고 성문이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럼 뭐예요? 우리가 만드는 현상의 본질이 피어나는 것이죠. 샬롬과 공의 시온이 본질이 현현된 이 시온 기쁨이 피어난 것이에요. 34:32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아름다운 세계를 하나님과 왕이 함께 감격의 경탄으로 종말적 경탄으로 마감합니다.
19-22절에서 왕이 다시는 낮에 해도 밤의 달도 내 빛이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가 내 영원한 빛이 되며 내 하나님이 내 영광이 된다.
해, 달, 빛 물질세계에 의존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의 본질과 그 자체가 되어 준다.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않고 네 달이 물러가지 않고 영원한 빛 되고 내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입니다.
왕의 경탄이야. 야 너희에게 완성될 하나님의 기쁜 섭리가 이러하다. 여기에서 인제 다시는 한 말이 3번 나오죠. 우리 말씀 만나기 위해 선배님들 많이 나누시더라고요. 로우드 그런 로우드 다시는 no more not again 그런 단어예요. 35:31
이게 인제 18 19 20절 계속해서 나오잖아요. 현상은 끝나고 본질의 현현 세차원이 피어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받습니다.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이제 현상 이제 현상 땅을 차지한다는 건 이제 현상은 단절된 현상이 아니라 본질에서 피어난 현상으로 너희가 누리는 유업이 된다.
21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 손으로 만들어 내 영광을 현현시킬 것인 즉 22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지금 이루었다가 아니라 속히 이루리라 하니까 묵시죠.
예 그래서 이게 현장에서 의미는 아닥사스다에게 네가 내 섭리로 통치하면 네 나라의 영광은 영원하다 그러니까 지금 아닥사스다가 요 말을 받을 때가 언제예요. 아닥사스가 왕이 됐는데 굉장히 불안한 왕이에요. 36:27
막 반란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고 그러는데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와 다마스피야의 그 말씀의 조언을 듣고 그래서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높이고 그 말씀으로 이 강 건너편 속주를 다시 세우고 이럴 때 반란을 진압하고 전쟁을 다 이기고 그랬죠. 근데 지금 말씀이 선포되었어요.
너 계속해서 내 말씀 셰마 하고 내 말씀으로 네가 산다면 그러면 그때 페르시아는 정말로 진정한 제국으로 일어섰을 거예요. 그런데 힘을 가진 아닥사스다는 더 이상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37:16
종교인의 한계인 것 같아. 종교인은 돈 생기면 하나님은 별로 안 중요해져. 이게 인제 현상적인 의미예요. 그러나 본질적인 의미는 뭐예요? 추한 현상 세계는 끝나고 영원한 기쁨이 열린다. 기쁨이 없으면 욕심뿐이에요. 쓸데없이 욕심을 부려. 배설물은 욕심부릴 게 아니고 일용할 양식이면 돼요. 먹을 게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지가 뭐 천년 만년치를 쌓아놓겠다. 자식 것 같이 쌓아놓겠다는 그게 행복을 주는지 안 주는지 모르잖아요. 정말 욕심은 무지막지한 거예요. 38:09
나는 항상 옳아야 돼. 난 항상 잘나야 돼.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나한테 맞춰갖고 비틀어버려.
2. 자 남은 자들을 위한 묵시
현상에 얽힌 본질이 피어나, 현상의 본질. 현상의 날줄과 본질의 씨줄이 얽혀서 이렇게 하나님의 가슴에 있던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이것의 중심은 성경은 일원론이에요. 이원론이 아니에요.
성경의 | 비밀은 일원론 | 세상인 | 평면이 전부 |
not 이원론 | 종교인 | 분열증 환자 |
이렇게 사탄은 악한 신이고 하나님은 선한 신이고 그런 게 아니에요. 사탄까지도 하나님 섭리의 도구일 뿐이에요. 일원론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은 평면이 전부예요. 평면이 전부니까 뭐로 살아요. 요령과 거짓으로 살아요. 요령과 거짓으로 살아야 이익을 챙긴다고 생각해. 종교인은 분열증 환자예요. 예 요령과 거짓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이래요. 39:08
그럼 그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말이 안 되는 일이죠. 오늘 세상에 묵시 중의 하나인 100년의 고독을 나눕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인데 부엔디아 부엔디아라는 말은 그 타임이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유토피아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의 이야기 한 세기예요. 한 세기라고 하는 거는 한 세상을 말해 대개 세기가 바뀔 때마다 세상은 좀 새로워지는 그런 경향도 있죠.
배경은 천일 내전이에요. 천일 전쟁이라고도 하는데 1899년에서 1902년까지 남미가 보수 자유로 갈려와서 죽이고 살리고 10만 명이 죽고 전 국토가 유린되고 그때 파나마가 독립하고 그래요. 원래 그랜 콜롬비아라고 그랬어요. 39:57
그란 영어로 하면 그랜드 콜롬비아죠. 그래서 콜롬비아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그다음에 페루, 페루 일부, 가이아니아 브라질 일부 코스타리카 파나마 이거 다 콜롬비아였어요. 그런데 미국이 사주해 가지고 거기 다 갈랐어요.
그래서 이건 뭐 베네스웰라가 미국이 나쁘다. 그런 말이 아니에요. 그게 그냥 세상 길이여. 이걸 선악과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은 의로울지 모르지만 진정한 의를 모르는 거예요.
이 세상에 모든 투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과 의를 먼저 배워야 돼. 그리고 십자가만이 나를 드리는 십자가만이 진정한 의를 세우는 것이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이 이분법에서는 진정한 의의는 표현하지 않는다. 40:50
가브리엘을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글과 그림을 좋아했는데 집에서 우리 한국이 굉장히 남미랑 비슷한 거 같아. 야 검사가 돼야지 검사 그래 가지고 법학을 시켰는데 공부가 너무 싫어서 중퇴하고 기자 생활을 하는데 정부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유럽 특파원이라는 명목으로 쫓겨나 버렸어요.
평생의 피델 카스트로하고 우정을 나누고 친했어요. 그런데 제가 만약에 정확하게 봤다면 끝에 가서 피델 카스트로와 마르케스의 길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갈라진 건 아니에요. 그러나 두 사람의 지향점은 분명히 달라졌어요.
외갓집에서 자라나는데 외할머니가 이야기꾼이었어요. 그러니까 훌륭한 사람을 만들려면 이야기꾼 외할머니를 두세요. 이 외할머니가 야 그러지 말아라. 이래야 된다. 이게 옳다. 이러면 빨리 쫓아내시고 이야기꾼을 41:51
그래서 1982년 노벨상을 받았고 저는 마르케스를 좋아하고 잘 기억되는 이유가 제가 한국을 떠날 때 마지막 읽은 책이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하는 그 마르케스의 책이었어요. 이 마르케스의 말은 한마디로 얘기는 not to comprehend but to embrace 인생살이라는 건 내가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에요. 가슴으로 품으려는 것이에요.
품으려면 깊이가 있어야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이 세상은 전부 우리가 이해해서 조작하고 만들어요. 그래서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 고독과 단절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마르케스의 작품은 이 작품이 특별히 그렇지만 전체가 다 그래요. 이 현실과 신화가 날줄과 씨줄로 마구 얽혀 있어요. 42:44
그래서 이 작품에도 보면 날아가는 양탄자 승천 정조대 그다음에 돼지꼬리 달린 아이, 노란 꽃비 밤새도록 내리는 노란 꽃비 4년 11개월 이틀간의 홍수, 동물의 엄청난 번식, 집시에 그 양피지, 묵시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도시. 이런 것들이 나와요. 성경을 읽으실 때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으세요.
이 글자 읽고 내 머리로 벗어나지 말고 하나님은 나에게 무슨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시는 것일까? 그렇게 읽으시면 분명히 듣습니다.
예 너 힘든 거 아는데 너 끝까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 아니니? 너 왜 망하는 길로 자꾸 너랑 네 가족 다 데리고 들어가는 거야. 분명히 들립니다. 43:42
그런 이야기를 만났어요. 하나님의 이야기를 성경 가지고 논문 쓰고 학위 받고 그런 것보다는 그래서 이 얘기가 너무 육대 돼지꼬리 아직까지 칠 대예요. 육 대 간에 온갖 사람의 얘기니까 이게 복잡하니까 사람들이 인제 가계도를 그려놓고 이렇게 옆에 적어가면서 읽어요. 다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저 가계도인데 보시면 여러분 쪽에서 이 왼쪽은 아르까디오로 내려가죠. 오른쪽은 아우렐리아노로 내려가요. 그 아르카디오는 좀 외향적인 사람들이고 아우렐리아노는 좀 내향적인 사람들이고 뭐 그런 면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 하나하나에 일어나는 사건이 중요하지 않아요. 이게 마르케스의 아주 매력이에요. 44:40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 중요하지 않아요. 임의적인 거예요. 현상이기 때문에 임의적인 것이에요. 그 사건들이 의미를 가지기 시작하고 그 사건들을 통해서 본질이 피어나게 되는 것은 임의적 사건 속에 숨어있는 그 본질 세계를 만날 때예요.
이 얘기 자꾸 논리적으로 해석한 사람들 해석 보면 정말 답답해요. 저렇게 무슨 뭐 문학 비평이니 뭐니 하면서 저렇게 엉터릴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게 60년대 그 소설의 죽음이라는 게 인제 한창 얘기될 때요. 예 그때 사르트르에 뭐 구토 카뮈에 이방인 카프카의 변신 성 심판 이런 작품들 아마 읽어보시거나 읽어보려고 노력 한번 해 봤을 거예요. 45:39
그런데 이해도 안 되고 골치가 너무 아파. 왜냐 그러면 어떤 이념의 소설을 도구화시켜서 너무 난해하고 작위적이야 그런데 사실은 같다는 얘기 하는데 왜 그렇게 어렵게 얘기하는지 몰라. 이 얘기는 호세 알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루슬라 이구아란 이 서로 사랑해서 인제 결혼하게 되므로 이 얘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촌 간이에요. 그런데 그 예언이 있는데, 사촌 간 결혼하면 돼지 꼬리 달린 아이를 낳는다. 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우르슬라가 정조대를 차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편이 뭐 미치려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이제 친구들이 또 놀려요. 그런데 답상장에 갔는데 친구가 아이고 노릇도 못 하는 녀석이 뭐 이러니까 화가 나서 싸우다가 친구가 죽었어요.
죽으니까 인제 우르슬라가 아 그 친구 영혼이 맨날 나타나서 괴롭히니까 여기서 못 살겠다. 46:38
그래서 이제 떠나서 마권도라고 하는 데를 세워요. 거기 같이 다른 한 젊은이들과 함께 예 마권도를 세우는데 그 강물을 따라서 다 공평하게 물을 쓸 수 있고 햇볕도 공평하게 다 잘 들도록 그렇게 했어요. 동네는 아직 사망자가 없고 전부 나이도 언덜떨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유토피아 같이 그런 공간에서 이 얘기가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정부가 개입해요. 조직과 체계가 개입하는 거죠. 그래서 정부가 군수를 파견해요. 그걸 호세가 인제 촌장이죠. 호세가 인정 해줘서 이제 군수가 거기서 정치하는데 이미 그때 콜롬비아 전체는 보수와 자유 그리고 천일 내전으로 전쟁의 기운이 막 한창 붙을 때요.
그러니까 아우렐리오가 이 정부군을 반대해서 자유파 대령이 되어서 20년 동안 32차례나 인제 봉기를 일으켜요. 그런데 결국은 마권도는 정부군이 점령합니다. 그래서 아우렐리오는 이제 총살당할 입장인데 촌장이자 형인 호세가 구해줘. 구해준 다음에 호세는 의문의 자살을 해요. 그리고 아우렐리오는 마권도를 탈출해서 다시 반란군을 모아서 마권도를 이렇게 탈환합니다. 47:58
그래서 이제 계속 정부군하고 싸우는데 전쟁의 허무를 느끼고 정부군과 휴전 협정을 맺고 내전을 종식시켜요. 그 후에 이 아우렐리오는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가 되고 황금 물고기를 만들기 위해서 인제 두문불출이에요. 칩거하고 나타나질 않아요. 그때 이제 노란 기차가 들어옵니다. 여기에는 노란색이 많이 나와요.
예 그 기차가 들어오면서 모든 걸 바꿔버립니다. 이 기차와 함께 그린고가 그린고는 미국이나 유럽 백인을 그린고라고 해요. 그린고가 들어오고 그들이 들어와서 바나나 농장을 만들고 사람들 착취하고 학대합니다. 호세가 파업을 주동해서 과일은 썩어 나가고 기차가 딱 멈춰 버렸어요.
그러니까 미국이 여기 콜롬비아 군대와 경찰을 사주해서 그 사람들을 학살해 버립니다. 이걸 버네나 매스크로이드 역사적인 거예요. 버네나 매스크레이드라고 해서 엄청난 학살이 있었어요. 49:09
그리고 예를 들어서 호세만 그중에 살아남아서 그 역시 또 칩거합니다. 두문불출합니다. 그때로부터 4년 11개월 2일 동안에 엄청난 장마가 쏟아져서 홍수가 일어나고 끝나자마자 10년 동안의 가뭄이 일어나서 이 마을은 멸망하게 됩니다. 그 멸망의 시기에 부모를 알지 못하는 아우렐리오라고 하는 사생아가 아마란타라고 하는 벨기에 유학갔다가 돌아온 여성과 사랑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모예요. 이모인데 사생아니까 모르는 거죠. 그래서 결혼했는데 돼지 꼬리 달린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때 우르슬라 일대가 비로소 사망합니다. 한 120살 이렇게 됐겠죠. 그리고 이 작품은 이렇게 마감합니다. 100년 동안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 49:58
한 세계를 절망과 우울로 보낸 족속은 다시 생명이 없다. 그런 뜻이에요. 하나님이 형상을 주셔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나는 모르고 조건과 사망만 들여다보니까 임의적이고 무작위적인 이 현상에 우린 너무나 우울하고 절망적입니다.
그 속에서 마권도의 사람들은 자기 지키기에 급급합니다. 그들은 그 아프기 때문에 삶이 아프기 때문에 함께 손잡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해야 될 시간에 전부 자기로 단절됩니다.
그래서 심지어 영웅까지도 이 작품에선 전부 단절되어서 고독 속에 칩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을 해독하는 순간 마권도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우리예요. 우리가 반드시 만납니다. 거짓으로 사는 삶에 결국은 멸망이다. 결국 만나요? 거짓으로 살았으니까. 그러니까 안 살았지. 생명을 주셨지만
그런데 내 생각 돌아가는 동안에 이거 절대로 안 믿죠. 내 생각으로 내 세계를 만들고 있으니까. 그것이 진실이구나를 만나는 순간이 언제예요. 내가 멸망하는 순간이죠. 이 작품은 전부 근친 관계에 빠져 있습니다. 51:46
개인 | 본능적 단절의 피유지. 근친 관계, 인간 게임에 빠진 인류의 우매함 |
집단 | 전체 whole 모르는 무지몽매한 권력 투쟁. |
많은 해석가들이 여기에다가 중점을 두는데 아니 일가족이 싹 같이 갔으니까 근친 관계할 수밖에 없지. 그런 것이 아니고 인간 게임에 빠진 인류의 우매함이야. 우리 인간은 인간 게임 너보다 내가 얼마나 잘났냐? 너보다 내가 얼마나 잘 사냐? 너보다 내가 얼마나 똑똑하냐?
근친상간에 빠져서, 생태계는 파괴되고 기후는 변화되고 동식물은 멸종해 가는데도 그게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내 삶 내 삶을 얼마나 편하게 이게 지키느냐 그거밖에 없어요. 52:39
집단도 마찬가지예요. 전체 whole 평면이 아니라 깊이까지 모르기 때문에 무지몽매한 권력도 좀 아니 보수 진보로 나눴으면 서로 합력해서 살림을 더 잘 살게 해야지 너를 죽여 우리가 산다는 지금 온 세계가 거기에 빠져 있잖아요.
단절의 증세는 쉽고 희생 없는 구원을 원합니다. 이게 종교인들이에요. 구원받기는 분명히 원해요. 그런데 쉽고 희생 없는 구원을 받고 싶어요. 쉽고 희생 없는 구원은 가짜 구원밖에 없죠. 진짜 구원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다 넣어. 다 팔아. 현상의 것 무엇을 붙들 게 있어요. 53:34
현상의 것을 다 내어주면 그때 본질이 회복되는데 그 본질은 내가 내어준 배설물 현상을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바꿔서 내게 돌이켜 주는데 현상밖에 안 보이니 쉽고 희생 없는 구원. 이 종교인들은 상 기본이 절대로 안 됩니다.
이렇게 목매어 부르짖어도 예배 5분 전에 앉는 게 안 된다. 이 말이에요. 희생의 능력인데 그런 희생조차도 안 되는 거예요. 예, 순 나눔이 안 돼요. 순 나눔이 예 하루에 주님의 기도 3번 1분씩 3번 하는 게 안 돼요. 그런 희생 자체가 전혀 불가능하게 닫혀져 있기 때문이에요. 54:32
그러니 예배가 어떻게 예배가 되겠어요. 예배가 희생이잖아. 예배의 비밀. 거짓된 예배 신앙생활이 되어서 하나님의 임재는 버리고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 내 마음대로 내가 항상 주님이 돼 있죠.
지하에서 60장을 분명히 받으셔서 인제는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 되잖아요. 내가 악합니다. 내가 이기적입니다. 난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믿고 싶습니다. 60장에서 나타나는 그 벅찬 하나님의 꿈을 가슴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면 되는 것이잖아요. 그런 고백드리고 다음 주에 만나서 또 1시간 푹 쉽시다. 기도합시다.
첫댓글 신청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샬롬 ~^^
문정수 목사 올림~^^
품음 신청합니다. 샬롬. ^^
신청합니다
박영주
지금부터 신청받습니다. 위의 신청은 무효이며 다 들었음 표시가 없으면 읽음만 허락합니다.
본질 피어난 기쁨 - 다듣고 신청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
저도 감격하여 한번 더 듣고 신청합니다.
박영주
듣고 신청합니다
라인선
다시 듣고 신청합니다. 고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