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fgnews.kr/bbs/board.php?bo_table=71&wr_id=22
순복음CIS선교교회 ‧ 이주민 자녀 방과후학교 ‘레오센터’ 창립
23년 10개월, 형진성 목사가 인생의 황금기를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을 위해 선교사로 보낸 시간이다. 복음을 증언하지 않으면 “핏 값을 찾겠다”는 그 한 마디에 울며 삶을 던졌다. 살아남기 위해 언어를 배우고, 온 몸으로 부딪치며 척박한 땅을 일구었다. 한국으로 돌아 왔을 때 심신이 지쳤다. 그렇게 청춘을 바친 선교가 마무리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땅에서 배운 삶의 지혜를 헛되이 버리지 않았다. 이 땅으로 온 이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선교의 문을 열었다. 안산시 사동에 구 소련 출신 고려인 자녀들을 위한 방과후학교 ‘레오센터’를 오픈했다. 또한 이주민교회인 ‘순복음CIS선교교회’를 창립했다. 원양선교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두리선교가 본격화 된 것이다. 형진성 목사는 이주민 선교를 통해 통일의 비전과 새로운 선교 부흥을 꿈꾼다.
피숫꾼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핏 값을 찾겠다"는 말에 선교 떠나
형진성 목사는 중학교 때 예수를 영접했다. 어느 부흥회, 선교사 할 사람 손을 들라는 부흥사의 말에 장난으로 들었다. 그것이 평생 서원 기도가 될 줄 그때는 몰랐다. 하나님은 선교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정이 어려워지고, 어머니의 기도로 한세대학교에 입학했다. 매학기 갈등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원래 해외 선교는 원하지 않았다. 국내에도 오지가 많다. 신학생 때 정선 나주 문막 등 시골교회를 다니며 봉사했다. 신학 지식은 있지만 현장 경험이 없다보니 고전했다.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선교훈련을 받고 싶었다. 마침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선교사 훈련과정이 생겼다. 훈련을 받는데 파숫꾼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핏 값을 찾으시겠다”는 에스겔 말씀이 강력하게 임했다. 순간, 더 이상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선교를 가야하나? “하나님 선교를 가야 한다면 결혼을 하게 해 주세요.” 사실 결혼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선교를 피하기 위해 못가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 기도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전적 은혜로 결혼하게 하셨다. 선교는 피할 수 없었다.
1995년, 인도로 가려는 계획은 뜻하지 않게 러시아로 정해졌다. 선교사 훈련 강령이 절대순종이었다. 교회가 없는 러시아 야쿠츠크로 갔다. 자치국이라 3일 안에 외국인 거주등록을 해야 하는데 난감했다. 그때 한국외국어대학교 강덕수 교수의 도움으로 한국외국어대학의 아쿠츠크사하한국학교에서 한국문화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하족을 위한 선교의 첫 발을 내딛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언어를 배워야 했다. 치열한 생존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 신기했다(?). 아이들이 놀러 오고, 가족들과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친해졌다. 자연스럽게 사하족을 위한 ‘사하순복음교회’가 개척됐다.
23년 10개월 동안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을 위해 선교
구 소련 출신 고려인 자녀들, 이념의 장벽 넘어 통일의 주역으로
사하족은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이다. 하지에는 20만 명이 모여 제천의식을 지낸다. 겨울에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간다. 한국의 겨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때 입은 한랭알레르기로 지금도 고생을 하고 있다. 낯선 환경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 “하나님, 정말 이곳이 선교지가 맞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말라기 말씀으로 확증해 주셨다. 그렇게 6년 동안 버티며, 복음으로 살았다.
비자가 더 이상 연장이 되지 않아 2000년 하바롭스크로 사역지를 옮겼다. 15명의 러시아 할머니들만 남아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선교하여 교회를 다시 일으켰다. 어느 날 사도행전을 읽는데, 바울이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밀라노에서 만나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내가 깨끗하다.”는 말씀이 가슴에 닿았다. 아! 이제 내가 이 땅에서 할 일이 끝났나보다. 16년 동안 오직 한 길만 고집스럽게 걸었다. 2015년 현지인 목회자를 세우고, 20년 만에 한국 땅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오면서 선교사역이 마무리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교는 다시 시작됐다. 2016년 1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안산 다문화센터장 겸 여의도순복음평신도훈련원 원감으로 사역했다. 안산시 현장에서 다문화 선교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러시아에서 본 것이 도움이 되었다. 2014년부터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그때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선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안산시에도 이주민들의 실생활을 접목한 선교가 필요하다.
2019년 7월 안산시 사동에 구 소련 출신 고려인 자녀들을 위한 방과후학교 ‘레오(LEO)센터’를 오픈했다. ‘레오센터’는 2016년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안산시 다문화 사역을 위해 요한복음 15장 12절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Love Each Other)는 말씀에서 영문자 이니셜을 브랜드 한 것이다. 또 레오는 ‘작은 새끼 사자’를 뜻한다. 이주민 아이들을 미래의 인재로 양성한다는 뜻이다. 그 의미가 너무 좋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2시에서 6시 30분까지 한국어 영어 컴퓨터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교육을 실시한다.
고려인 자녀들을 위한 ‘레오센터’ 방과후학교가 문을 열자 반응은 뜨거웠다.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자리가 채워졌다. 그만큼 이주민들의 자녀교육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형 목사는 누구보다 이런 현상을 잘 이해한다. 러시아 선교지에서 겪은 고충을 한국에 온 이주민들이 똑같이 겪고 있기 때문이다. 비자부터 시작해서 자녀교육, 병원, 일자리 등 낯선 땅에서 이방인들이 겪는 두꺼운 장벽은 힘겹다.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 공감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워한다. 러시아어를 같이 쓰지만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 나라는 각기 다르다. 또 고려인이면서 한국인으로도 살아야 한다. 형 목사는 그런 갈등과 혼돈을 공감하며 진심으로 보듬어 주고,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레오센터’로 시작된 사역은 자연스럽게 이주민들을 위한 교회로 이어졌다. 2019년 11월에 ‘순복음CIS선교교회’을 창립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70~80여명이 예배를 드리다 지금은 20~30여명이 예배드리고 있다. 교회 야외예배에는 150여명이 참석한다. 고려인들은 가족을 중시하다. 교육과 출산율이 높다. 그렇다보니 한 사람을 전도하면 가족 전체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
형진성 목사는 이주민 사역을 통해 통일과 새로운 선교를 꿈꾼다.
고려인 자녀들은 이중언어와 이중국가를 경험하는 세대다. 정치적 이념을 뛰어 넘어 융합이 가능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다.
“고려인, 새터민, 한국인 아이들과 함께 언젠가는 시베리아 횡단을 가고 싶습니다. 러시아 첫 정거장이 두만강 건너 연해주 하산역입니다. 북한, 러시아, 중국의 국경지입니다.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통일을 꿈꾸며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펼쳐야 할 드넓은 세상입니다. 복음으로 교육하면 복음으로 장벽을 뚫고, 차별을 넘어 횡단할 것입니다.”
이주민 선교는 가두리 양식업, 전략적 선교 사역 필요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주민 사역은 선교 통로로 중요하다. 그들의 말 한마디가 현지 선교현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다”, “한국인 교회가 잘 해 준다.”는 말은 현지 선교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다. 언젠가 그들이 한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한국인, 한국교회에게 받은 따뜻함이 복음의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해외 선교는 원양어업입니다. 이주민 사역은 가두리 양식업입니다. 우리 땅에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이 황금 어장을 왜 관리 안합니까? 한국은 이제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새로운 선교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주민들에 의한, 이주민들을 위한 전략적 선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안산시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다문화 도시다.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수많은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와서 살고 있다.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형진성 목사의 이주민 선교사역이 주목된다.
#풀가스펠뉴스 #형진성_목사 #구소련 #CIS #고려인 #안산시 #중앙아시아 #이주민 #순복음CIS선교교회 #레오 #방과후